“딱 1년 동안만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이 두 배로 늘어나요. 그 대신 본인은 10억 원을 받을 수있어요. 그러면 어떨 것 같아요?”
처음 만난 분이 아이스브레이킹 삼아 던진 질문이었다. 분명 내가 기후위기 단체에서 일한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이런 ‘밸런스 게임’을 꺼내든 이유가 의문이긴 했지만, 말투에는 묘하게 악의가 없었고 진심으로 궁금한 듯했다. 덩달아 나도 두 개의 선택지를 곰곰이 곱씹어봤다. 생각보다 본질적인 질문으로 느껴졌다. 사람들은 왜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느끼지 않을까? 10억 원 앞에서는 잠깐 잊어도 되는 게 당연한 것처럼.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데 한 사람이라도 더 설득해야 하는 일이 직업인 나로서는, 어찌 됐든 풀어야 할 문제였다.
지구를 달구는 주범, 온실가스 배출을 둘러싼 언어는 너무 기술적이고, 그래서 막연하다. 한국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 톤(CO2eq, 이산화탄산소 환산량: 다양한 종류의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이산화탄소 기준으로 환산한 수치)에 달하고, 1인당 배출량으로 따지면 무려 전 세계 5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고 해서 그분의 태도가 갑자기 진지하게 바뀌어 “앗 이런, 제가 실례를 범했군요. 앞으로는 기후위기를 가지고 장난치지 않겠습니다”라고 사과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보이지 않는 위기, 들리지 않는 수치
온실가스는 하늘 어딘가에 남아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당장 내 삶을 뒤흔드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겐 기껏해야 열대야에 에어컨을 조금 더 켜야 하는 정도다. 지구 온도가 높아지는 것이 ‘기후위기’가 되려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진짜 ‘위기’로 받아들여야 할 텐데, 나의 영향권과 멀리 떨어진 감각 속에서는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무감각이 모두에게 허락된 것은 아니다. 위기의 안전지대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달리, 최전선에 놓인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이미 생사여탈권을 쥔 현실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국가 의무’라는 국제사법재판소의 역사적인 권고 의견이 나온 순간, 소송을 함께 준비한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태평양 학생들’(PISFCC)의 감격하는 모습. (출처: PISFCC)
2025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기후위기가 ‘긴급하고 실존적 위협’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취지의 역사적인 권고적 의견을 냈다. 기후위기가 마침내 법의 문장 안으로 들어오게 된 데에는 바누아투, 솔로몬제도, 통가, 투발루와 같이 가라앉고 있는 태평양 섬나라들의 “우리는 우리의 사망진단서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외침이 있었다.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는 기후위기 이후 조혼이 늘어났다. 기후위기로 인해 가뭄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생계가 무너지자, 가장 먼저 아이들의 결혼을 통해 ‘가정의 생존 전략’을 꾀했기 때문이다.
멀리 가지 않고 한국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여름 농민들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 1위’인 한국전력과 발전 자회사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4월 말에 피던 사과꽃이 4월 초에 피기 시작하고, 꽃샘추위가 닥치면 냉해가 돌고, 침수 피해가 속출하고, 이전엔 없던 병해가 창궐한다. 농민들은 해가 갈수록 열매가 덜 열리고 덜 자라는 현실로 내몰리고 있는데, 정작 탄소 배출로 기후위기를 부추긴 기업들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는 취지였다.
2025년 여름 기후위기로 피해를 입은 농민들이 한국전력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연 기자회견. (출처: 기후솔루션)
각자도생의 요새화, “너희의 지구는 위험해도, 우리의 지구는 괜찮다”?
이렇듯 기후위기는 절대적으로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경제적 조건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어떤 이에게는 고통을 경감시키고, 어떤 이에게는 몇 배로 증폭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공동 대응’ 대신 ‘요새화’를 택한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1.5도 상승 제한’을 약속한 파리협정을 탈퇴했다. 물론 그의 1기 재임 기간 동안에는 결과적으로 오바마 2기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석탄발전이 폐쇄되고 재생에너지 산업과 인프라가 뿌리 내린 바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변화는 끝까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적어도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무대에서 그가 반복해온 메시지는 이렇게 번역된다.
“너희들의 지구는 위험할지 몰라도, 우리의 지구는 괜찮다.”
2025년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개최된 브라질 벨렝에서 같은 기간 열린 ‘기후정의행진’ 사진. 선주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박윤경
지난해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도 답보를 벗어나지 못했다. COP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기후 정상회의로, ‘1.5도 상승 제한’ 약속도 2015년 이 회의에서 마련됐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합의를 도출하고 세계 각국이 손뼉을 치며 환호하던 당시의 감격이 무색하게, 이후 회의들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서른 번째 회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종 합의문에서는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이라는 핵심 문구가 빠졌고, 개발도상국의 기후위기 적응을 위한 재원 목표도 이전 구상보다 약화됐으며,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채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형식적인 발언만 남겼다. 각국의 조별 과제라고 할 수 있는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역시, 인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70여 개 국가들은 제출조차 하지 않았다.
하나뿐인 행성에서 찾아야 할 ‘공통의 세계’
하지만 각자 으리으리한 요새를 지으며 살아가기에는, 애석하게도 우리가 사는 행성은 하나뿐이다. 지금은 부유한 세계가 자원을 비축하며 다가오는 기후위기에 대비해 방어막을 쌓고 있다지만, 나중에는 ‘Make Great Again’ 할 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이주민이야 국경을 봉쇄해 막을 수 있다고 해도(물론 이것도 장담할 수 없다), 폭염, 홍수, 가뭄과 같은 기후 재난과 자원 고갈, 서식지 파괴는 다르다. 우리가 세운 장벽을 가차 없이 허물고 덮쳐오거나,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기어이 틈을 비집고 파고들어 올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도의적으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공통 세계’를 찾아야만 한다. 모든 인간이 함께 생존하고 함께 번영할 세계를 함께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프랑스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저서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에서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땅으로 내려오라’고 말한다. 같은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존재들로서, 우리가 문화를 나누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마주하고, 함께 누릴 풍경을 만들어가는 ‘공유된 경험’의 감각을 키워야 한다는 것.
대기 중 온실가스를 줄일 정책과 기술을 고민하는, ‘하늘만 쳐다보는’ 일을 지닌 나에게도 이 말은 중요하다.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드는 일은 기후위기 대응의 최우선 과제다. 하지만 숫자만 줄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왜 줄여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은 사라지기 쉽다. 우리는 종종 각자의 기후 속에서 살고 싶어진다. 온실가스는 막연하고 기후위기는 내 가시권 밖에 머무를 때가 많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미 같은 땅에 착륙해 있다. 10억 원을 준다 해도, 온실가스를 두 배로 늘릴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연결돼 있고, 누군가의 현재를 파는 일은 결국 우리의 미래를 파는 일이기 때문이다. 얼핏 순진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미 세상은 망했다’는 냉소가 넘쳐나는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건 이렇듯 미약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다짐일지 모른다.
〈참고도서〉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신기후 체제의 정치》(브뤼노 라투르, 이음, 2021)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각자의 대응을 꾀하는 것이 아닌, ‘공통 세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글로벌 사회’가 무색하게도 기후 대응에 있어선 ‘국민국가의 보호로 귀환하려는 광적인 갈망’을 비판하는 저자의 사유가 흥미롭다.
《재앙의 지리학-기후붕괴를 수출하는 부유한 국가들의 실체》(로리 파슨스, 오월의봄, 2024)
기후위기는 ‘부의 유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함수’에 가까우며, 특히 글로벌 경제 시스템하에서 기후위기의 영향은 ‘더 부유한 국가에서는 수출하고, 덜 부유한 국가에서는 경제성장의 대가로서 수입하는 방식으로 거래된다’는 사실이 생생한 사례와 함께 소개돼 있다.
《탄소 사회의 종말-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조효제, 21세기북스, 2020)
탄소 배출을 줄여나가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되, 여기에 사유와 정책을 국한하지 않고 환경 파괴, 생물 다양성 감소, 먹거리 문제, 기후정의 등을 함께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심각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서 기후위기를 알릴 여러 전략도 함께 소개돼 있다.
박윤경_기후솔루션 활동가
지구 온도 1.5도 상승을 막기 위해 정책연구·소송·국제협력·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시민단체 '기후솔루션'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일이 기후위기 해결은 물론,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취약계층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후 단체로 들어오기 전에는 언론사 기자, 증권사 마케터로 일했다. 직무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도록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길을 걸어왔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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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나를 망치고 있다. 대학에서 몇 학기를 보낸 후 내린 결론이었다. 모든 것이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말이 무서웠다. 학교에 다니는 것도, 다니지 않는 것도 나의 선택. 일을 하는 것도, 대학원에 가는 것도 나의 선택. 그러니까, 내 삶이 전부 나에게 달려 있다고……? 나는 그 아득한 자유를 감당하지 못했고, 내 선택은 방종과 유사한 방향으로 나아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