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KBS ‘다큐 인사이트’에서 〈인재전쟁〉을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청자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
A 작년 1월 ‘딥시크’라는 처음 들어보는 AI 챗봇이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미국 오픈AI 사 챗GPT의 10분의 1 정도 비용을 들여 만든 중국의 AI가 챗GPT와 비교해도 결코 크게 뒤지지 않는 성능을 낸다는 소식이 퍼졌다. 의심해 마지않던 엔비디아 주가가 하루 만에 17퍼센트 가까이 하락하며 전 세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차이나테크의 부상’이라든지 ‘레드 AI의 역습’ 같은 미사여구는 동네 서점의 책이나 뉴스의 헤드라인을 통해서도 흔히 들을 수 있었지만, 미국 주식이 이렇게 흔들리는 건 중국의 ‘실체 있는’ 무언가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체감케 했다. 디스플레이, 전기차, 휴머노이드, AI 등 거의 모든 첨단산업 부문에서 중국이 우리를 앞서고, 전 세계 과학기술 부문 TOP10 대학 안에 중국 대학이 무려 여덟 곳이나 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등골이 서늘해졌다. 50위까지 스크롤을 내리는 동안 우리나라 대학은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지금껏 기술을 수출해 이만큼 먹고 살아왔던 우리나라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수많은 인재가 불확실한 미래를 견뎌야 하는 공대를 피해 의대라는 하나의 선택지에 매몰되어 있는 이곳. 우리는 어디에서 미래를 찾아야 하는가. 막막한 마음으로 〈인재전쟁–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을 만들기 시작했다.
Q 대치동 키즈라고 들었다. 대치동에서 PD의 꿈을 꾸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나만의 고유한 서사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어떤 것이 있을까.
A 대치동 키즈이기 이전에 난 93년생 ‘무도 키즈’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매주 〈무한도전〉을 기다리는 낙으로 살았다. (그 시절 무도의 레전드 회차들은 지금 봐도 참을 수 없이 웃기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엔 우리나라 예능으로선 거의 최초로 가끔 제작 PD가 화면에 직접 등장해 메인 출연자들, 그리고 시청자와 소통하곤 했다. ‘저렇게 매주 다양한 곳에 가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재밌는 사람들과 놀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직업이 있다니!’ 그때 PD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상파 PD가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부모님 말씀에 그냥 막연히 열심히 공부했다.
중학교 2학년 땐 거실에 있는 컴퓨터에 몰래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이런저런 영상을 만들었다. 그러다 한번은 글로 써서 내도 되는 국어 수행평가 숙제를 굳이 영상으로 만들어(그땐 그걸 ‘UCC’라고 불렀다) 냈다. 지금이야 초등학생들도 스마트폰으로 능숙(?)하게 영상 편집을 하지만, 그 당시엔 학생이 영상을 만드는 풍경은 보기 드물었다. 그런 나를 신기하게 여기신 국어 선생님은 반마다 돌아다니시며 내 영상을 전교에 홍보해주셨고, 그렇게 웬만한 친구들은 모두 내 꿈이 PD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 때 행복하고, 남들에게 그것을 보여줄 때 짜릿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 일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대학 졸업 직전 가장 가고 싶었던 방송사 시험에 합격해 꿈에 그리던 일을 시작했다.
내 기억에 학교 전체를 둘러봐도 장래희망 란에 PD를 써내는 친구는 나 빼곤 없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동창들을 만나보면 실제로 PD 일을 하는 건 나밖에 없다. “넌 진짜로 꿈을 이뤘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꼭 나에게 하는 말이다. 나의 동료 대치동 키즈들은 대부분 의사, 변호사, 약사, 회계사가 되었거나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 시절 학생기록부에 각자 써낸 장래희망(혹은 그 옆 칸 ‘부모님이 추천하는 장래희망’)이 대부분 실현된 셈이다.
나는 인재가 대단히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자신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정확히 알고, 2)그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 다시 말해 인재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의 절묘한 교집합을 찾아내 그 안에서 치열하게 생산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서사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선 ‘나는 현재 행복한가?’ 그리고 ‘요즘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 삶의 적당한 단계 단계마다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답하며 행동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인재다. 반드시 명문대 졸업장을 가진 사람만이, 혹은 국가가 보호하는 자격증을 갖춘 사람만이 인재라는 착각. 이제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기 시작한 이 편견은 그동안 많은 이들이 맹목적으로 인재라고 믿어왔던 사람들을 AI가 대량 대체하는 가속화 상황이 멈추지 않는 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필연적으로 깨질 것이다.
Q 《인재전쟁》에서 대치동 스터디카페 대표가 의대는 “명예로운 금메달이자 가치 높은 에르메스 가방”이라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의대는 20년 이상 사교육이라는 레이스를 마친 보상이라고. 자연계 학생의 상위 20위권 학과가 의예과인 것을 보면 사회 구조 때문에 의대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중국 공과대학에는 창업을 하려는 학생도 많은데, 중국 사회와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A 우선, 모두가 알다시피 경제적 보상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사의 평균 연봉과 엔지니어 평균 연봉을 비교해보면 통계에 따라 3~5배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러니 엔지니어의 길을 등지고 의사의 길을 가는 것은 지금 당장 개개인의 차원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똑똑한 선택이다. 반면 중국은 정반대다. 공산주의 사회체제의 특성상 중국의 의사는 공무원과 같은 지위를 갖기 때문에 마음껏 돈을 쓸어 담을 수 없다. 실제로 현지에서 취재할 때 대학생, 고등학생들에게 왜 의대에 안 가냐고 물어보면 돈도 엔지니어처럼 못 버는 데다가 공부하고 수련해야 하는 시간은 비교도 할 수 없이 더 긴데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뭐냐고 반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교실에 가보면 한 반에 두세 명 정도는 의대를 희망한다. 이들은 돈보단 정말 사람의 생명을 고치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돈보다 더 중요한 키워드는 ‘불안’이다. 2부 ‘의대에 미친 한국’의 예고편에 보면 시청자 다수를 허탈하게 만든 멘트가 등장한다. “의대에 가서 롯데월드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열다섯 살 중학생의 목소리다. 어떤 댓글이 기억난다. ‘얘야. 롯데월드 근처에 살고 싶으면 공대에 가서 기술 창업을 해야지.’ 맞다. 젊은 나이에 정말 ‘떼돈’을 벌고 싶다면 기술기업을 창업해 사업을 하는 게 더 맞는 방법이다. 의사가 되면 20대는 물론이고, 특히 남자는 군대까지 포함하면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수입이 생기기 시작한다. 당장 각종 SNS만 봐도 20대, 30대에 경제적 자유를 이뤄낸 ‘영 앤 리치’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직업은 의사가 아니다.
공대에 가면, 카카오를 만든 김범수 의장 혹은 딥시크를 만든 량원펑처럼 돈방석에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졸업 이후 펼쳐질 일련의 선택 중 한두 번이라도 잘못된 버튼을 누르면 엄청난 격차로 또래 집단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공대 행을 망설이게 한다. ‘얼마나 뜻깊은 도전을 해봤는지’를 궁금해하기보단 ‘왜 실패했는지’를 먼저 따져 묻는 우리나라에선 특히 그렇다. 그래서 공대에 간다는 것은 사회에 나가자마자 ‘대박’과 ‘쪽박’ 중 어떤 게 나올지 모르는 ‘랜덤 박스’를 받아 드는 것과 같다고들 말한다. 반대로 의대에 가면 ‘대박’까진 아니더라도 웬만해선 적어도 ‘쪽박’은 나오지 않는,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익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확정된 박스를 획득하게 된다는 믿음이 팽배하다.
요컨대 ‘의대에 못 간 아이들이 공대 간다’는 인식은 틀렸다. 오히려 무서워서 공대에 못 간 아이들이 죄다 의대로 몰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현세대 아이들의 공통된 장래희망이라는 건 곧 그 부모 세대의 욕망과 공포의 투영물이다. IMF 사태 당시 대량 실직의 상처가 기성세대에 각인시킨 공포, 그리고 그로 인해 싹튼 ‘라이센스’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아이들의 다채로운 재능과 꿈, 그리고 미래 선택지를 제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Q 인터뷰에서 “기자는 쪽지를 쓰는 사람이라면 PD는 편지를 쓰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중고차 신종 사기 잠입 취재도 하고, 캄보디아 잠입 취재를 통해 청소년 중독 문제를 파헤쳤다. PD라는 일이 주는 가장 큰 가치는 어떤 것일까.
A PD라는 직업이 이 사회에 제공하는 가장 큰 가치는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지점들을 발견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실체나 폐해에 조명을 비추는 일에 있다. 특히 시사교양 PD에게 그 조명의 밝기와 각도는 곧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된다.
몇 년 전 언론사 인터뷰에서, 기자가 여러 장의 다양한 쪽지를 쓰는 사람이라면 PD는 한 통의 긴 편지를 쓰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비유를 한 적이 있다. 기자와는 또 다른, PD만 가지는 일종의 특권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긴 호흡의 완결된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드라이한 팩트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50분이라는 시간 동안 시청자에게 사실뿐만 아니라 정서적 울림을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이번 〈인재전쟁〉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기술 발전이 눈부시다는 것, 혹은 우리나라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로만 몰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 아래 달린 댓글들 중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것이 ‘올해 본 영상 중 가장 무서운 공포 영화였다’라든지 ‘시작한 지 5분 만에 팔에 소름이 돋는다’ 같은 글이었다. PD가 전달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구현한 정서적 울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중고차 사기나 캄보디아 잠입 취재 때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범죄 사실을 알리는 것을 넘어 시청자에게 내가 느낀 허탈감, 위기감, 불만 등 생생한 감정을 공유하고 함께 느끼게 함으로써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변화 의지의 출발선에 서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이라는 재료로 시청자를 설득하고,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감정의 파도를 효과적으로 공유하는 것. 그것이 시사교양 PD가 이 사회에서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쓸모 있고도 거대한 가치라고 믿는다.
Q 다큐 프로그램의 주제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A 예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즉 나의 개인적인 관심사나 불만, 궁금증에서 기획의 실마리를 찾곤 했다. 봉준호 감독의 유명한 말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맥락에서, 나의 진솔한 이야기가 곧 진정성 있는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여전히 유효한 원칙이지만 이번 〈인재전쟁〉을 제작하며 주제 선정의 원칙을 말함에 있어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이 사회가 지금 당장 필요로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라는 것에 조금 더 귀와 눈을 예민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특히나 수신료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KBS의 시사교양 PD로서, 개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넘어 우리 공동체가 반드시 직면해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은 중요한 자질임을 넘어 당연한 의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무엇에 갈증을 느끼고 무엇 때문에 답답해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시청자들의 이러한 요구에 치열한 자료조사와 효과적인 메이킹에 대한 고민을 통해 응답하는 것이 공영방송 시사교양 PD의 본령이라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곳에 직접 가서 대신 눈과 귀가 되어주는 일, 막막하고 수고스럽고 때로는 위험할 게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지더라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기획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국가의 운명이나 미래 먹거리와 직결된 주제일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결국 시청자가 궁금해했지만 미처 구체적이고 미시적으로는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다큐멘터리의 시작점을 결정할 가장 단단한 기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Q 잠입 취재를 할 때의 준비물과 요령이 궁금하다. 또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
A 잠입 취재를 위해 챙겨야 할 것은 두 가지인 것 같다. 절대 들키지 않을 촬영 장비, 그리고 들켜도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이다. 통상 상대를 속이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을 역으로 속여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기에, 현장에서의 미세한 흔들림은 곧 실패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잠입 취재 때는 나를 버리고 철저히 타인이 되는 ‘페르소나 설정’을 한다. 캄보디아 도박장에서는 코인으로 운 좋게 수백억을 번 ‘영 앤 리치’로 변장했고, 중고차 사기 현장에서는 당장 차가 필요하지만 새 차를 살 만큼의 돈은 아직 못 모은 사회 초년생으로 나를 재정의했다. 혼자 오긴 무서워서 삼촌(사실은 카메라 감독)이랑 같이 왔다는 ‘핍진성’ 있는 설정도 추가한다. 취재 전날부터 스스로를 세뇌하며 캐릭터에 몰입(?)하는 작업도 은근히 도움이 되었다.
연기의 자연스러움을 뒷받침하는 것은 완벽한 ‘플랜 B’다. 들켰을 때 신분을 바로 밝힐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밝힐 것인지, 혹여나 생길 수 있는 위급 상황에선 누구에게 무엇으로 연락할 것인지 등 실패에 대비한 구체적인 대응책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가 완벽할 때 비로소 ‘들켜도 괜찮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생기고, 그 안정감이 현장에서의 긴장을 덜어 가장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물론 이 모든 준비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운이다. 코로나19 시기 오후 10시면 문을 닫아야 하는 불법 유흥업소 잠입 취재 당시 업소 관리자가 우리가 타고 온 승합차를 경찰차로 오해해 뒷문을 열고 손님들을 황급히 대피시키는 덕분에 결정적인 장면을 담을 수 있었던 것처럼, 현장의 변수는 언제나 계획을 앞지른다. 하지만 그 운조차도 치밀한 준비와 뻔뻔한 마음가짐이 전제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 편이 된다고 믿는다.
Q 독서 루틴이나 습관은 무엇인지, 혹시 독서 모임 같은 데 참여하는지, 독서 중에 자주 하는 딴짓이 있는지 궁금하다.
A 사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책을 사 모으는 건 좋아하고 잘 하는데(교보문고 플래티넘 회원을 매달 유지 중이다) 막상 완독한 책은 일 년에 몇 권 안 된다. 또 다큐멘터리 PD의 직업 특성상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많은 책을 쌓아놓고 자료를 섭렵하며 안정감(?)을 느끼는 편이라 기획 중인 주제와 직결된 책들 이외에 내가 정말 개인적으로 읽고 싶었던 책들은 지금도 여전히 읽고 싶‘었’던 책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 많다.
그 몇 권 안 되는 ‘개인용’ 책은 보통 약 세 번에 나눠서 읽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100페이지가 넘어가면 집중력이 불가항력적으로 흐트러지는 나의 뇌 때문에 이른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는 말은 내겐 독서평 댓글창에나 존재하는 이야기다. 그저 그러면 100페이지에서 끝나고, 재밌으면 200페이지까지, 너무 짜릿하게 재밌으면 끝까지 읽는 ‘단계적 독서’를 내 맘대로 실행 중이다. 또 기억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이건 지인과의 식사 자리든 방송에서든 써먹으면 좋겠다 싶은 멘트나 정보, 혹은 어투가 있으면 잠시 독서대에 책을 고정시켜놓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켜서 메모해두는 편이다. 안 그러면 다 휘발되어버린다. 독서 모임은 따로 하지 않는데 모임을 정말 열심히 나가고 그곳에서 많은 에너지와 영감을 얻는 회사 선배를 보면서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을 아주 잠시 해본 적은 있다.
Q PD가 되기 위한 절차와 자질이 궁금하다. PD가 되고 싶은 지망생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A PD의 채용 절차는 각 방송사마다 다르고, 또 같은 방송사라도 매년 다르다. 내가 2018년 여름에 치른 KBS 시사교양 PD 시험의 절차는 크게 서류 → 필기 → 실무 면접 → 임원 면접 이렇게 네 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PD 시험을 준비하는 지망생이라면 아래 링크 영상에 그 과정을 매우 자세히 풀어놓았으니 보시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PD 시험은 내가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지를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시험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더더욱 막막하다. 여타 자격 시험들과는 달리 도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준비해야 하는지, 앞으로 몇 달 동안 무엇을 더 보충하면 합격할 수 있는지 대충 감이 오지도 않는 시험이다. 그러한 동시에 실력 있는 수험생이라면 어느 방송사 시험을 쳐도 필기전형까진 늘 합격하는 걸 보면 또 완전히 운에 좌우되지도 않는, 수수께끼 같은 시험이다. 그럴 땐 “희망을 갖고 계속 도전하라”는 추상적인 말을 해주는 친구보단 “스터디 일주일에 한 번 더 늘리자”고 말해주는 친구와 더 가깝게 지내는 걸 추천 드린다. 많이 써보고, 또 다른 수험생이 쓴 것도 최대한 많이 읽어보고, 평가하고 평가받는 절대적인 시간을 늘리면 실력은 는다. 계단식으로 늘어서 당장은 조금 답답할 뿐 분명히 실력은 는다. 그러니 뭐라도 한 글자라도 더 써보고 더 읽어보길 권해드리고 싶다.
Q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는 뭐라고 생각하나.
A ‘어떤 사람이 인재인가’ 하는 질문 앞에 학생도 학부모도 모두가 길을 잃고 헤매는 사회.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궁리만 남은 사회.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를 치열하게 되물으며, 불확실한 미래라는 ‘랜덤 박스’를 기꺼이 열어젖히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귀한 가치다. 결국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AI의 파도 속에서 대체할 수 없는 인재의 본질은, 정답을 찾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국민 한 명 한 명이 모두 자신이 스스로 인재라고 마음껏 자부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용재가 추천하는 책 세 권
《수축사회》(홍성국)
〈인재전쟁〉에서 다룬 ‘의대 쏠림’과 ‘생존 경쟁’의 근원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다. 인구 감소와 저성장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파이가 줄어드는 ‘수축사회’로 진입한 한국의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한다. 왜 우리 세대가 ‘대박’보다는 ‘안정(라이센스)’이라는 방어기제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지, 그 거시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데 탁월한 시야를 제공한다.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송길영)
인재의 정의가 ‘자신만의 고유한 서사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관점과 가장 맞닿아 있는 책이다. 조직의 부속품이 아닌, 스스로 자립하여 서사를 쌓아가는 ‘핵개인’의 등장을 예고한다. AI가 화이트칼라의 업무를 대체하는 시대에 우리가 왜 ‘어떻게’가 아닌 ‘왜’라는 질문에 집중해야 하는지, 그리고 미래의 인재가 갖춰야 할 ‘자생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짚어준다.
《이병한의 테크노-차이나 탐문》(이병한)
다양한 분야의 깊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둘째고, 저자의 ‘글빨’이 이 책을 읽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도록 만들었다.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이렇게 다른 표현을 쓸 수 있다니. 정말 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PD에게도, 또 PD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에게도, 글이란 이렇게 대중에게 명료하게 콕콕 박히게 써야 하는 거였지, 하고 한 번 더 자극을 줄 수 있는 책.
정용재_KBS 시사교양 PD
8년 차 다큐멘터리 PD. 인생이라는 자유이용권을 쥐고 태어나 최대한 많은 놀이기구를 타고 싶어 2019년 KBS에 입사했다. ‘다큐 인사이트’ 〈화산, 인간〉에선 한 달 동안 과테말라 활화산 아래 살기도 했다가 ‘추적 60분’에선 캄보디아 불법 도박판을 파헤치기도 했다. 폐장 시간까지 전 세계 모든 놀이기구를 타보는 것이 목표다.
Q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통해 유럽과 한국의 그림책 작가를 인터뷰하셨어요. 그림책 작가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나요.A 그림책은 5세 어린이도 볼 수 있지만 50세의 어른도 볼 수 있는, 그래서 저마다 연령대에 맞춰서 자기 삶의 키워드를 얻어갈 수 있는 놀라운 매체라고 생각하는데요, 평화나 사랑이나 우정처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5월호에서는 최규승 시인을 소개한다. Q 시인 최규승을 소개한다면?A 4년 정도의 습작기를 거쳐 2000년부터 시를 발표해왔고, 또 몇 권의 시집을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요즘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무엇인가. A 최근 좋아했던 단어는 ‘질색’이다. 소설을 쓰다가 어떤 장면에서 화자가 느끼는 애증의 감정을 ‘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