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어린 시절 읽었던 만화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A 가장 인상 깊었던 만화는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하던 만화들이었다. 그중에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와 영국 작가 에디스 네스빗의 원작 동화를 일본에서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모래요정 바람돌이〉는 내 인생의 만화라고 할 수 있다.
〈은하철도 999〉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철이와 메텔이 이름 모를 한 행성에 도착하는데 얼핏 보기엔 지구와 비슷해 보이지만 집들이 순차적으로 폭파되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기계가 인간들의 일을 모두 도맡게 되자 할 일이 없어진 인간들이 집을 터트릴 만큼 살이 찌면서 몸이 점점 부풀어 집을 폭파시키는 것이었는데, 결국 철이가 본 광경은 인간이 스스로 파괴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그 장면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40년이 지난 오늘날 지구가 그런 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모래요정 바람돌이〉는 어린 시절 짧은 우울증을 앓았을 때 나를 구해준 만화다. 바람돌이는 타이어를 먹는 모래요정인데 아이들의 소원을 하루에 하나씩 들어준다. 대신 그 소원의 효력은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 요행으로 얻은 행운의 효력이 그리 길지 않다는 깨달음이 있었고, 불행 또한 하루를 넘기지 말자는 결심을 하게 됐던 것 같다. 당시 이 만화는 오후 5시 30분에 시작해 초등학생 시절 학원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미래소년 코난〉 〈호호 아줌마〉 같은 만화들도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만화들은 삶의 교훈을 주는 내용이 많았던 것 같다.
Q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은?
A 솔직하고 엉뚱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성격도 급한데 사람들의 말을 듣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못 참고 말을 끊는 버릇이 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기’가 내 숙제인데 잘 지켜지지 않아 힘들다. 때문에 말이 통하는 친한 친구들과 만나면 대화의 소재가 매우 광범위해진다. 한 주제로 끝까지 가지 못하고 계속 점핑하게 되는데, 한 지인이 말하길 내가 친한 친구와 나누는 대화는 따라가기 어렵다고 하더라. 그만큼 배가 산으로 가는 이야기가 연속해서 이어지는 대화를 한다.
Q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설치 작업이나 퍼포먼스 작업이 주를 이룬다. 박혜수 작가에게 전시 공간이란?
A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을 묻고 나와 닮은 사람들을 발견하는 공간이다. 내 작품은 관객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보통 일상생활에서 잘 하지 않는 질문들이다. 사실은 진즉에 물었어야 했고 고민했어야 하지만 어쩐지 상대방에게 예의가 아닐까봐, 개인적인 거라서, 상처가 될까봐 묻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나는 작품을 통해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관객들이 돌아가는 길에 자기 질문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답은 전시장이 아닌 삶에서 찾아야 하니까. 때문에 전시장은 목적지가 아니라 다른 시각을 가지고 삶을 바라보게 하는 (사고의) 전환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Q 협업에서 얻는 에너지와 개인 작업에서 얻는 에너지의 가장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나.
A 두 에너지가 매우 다르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솔직히 일주일에 2~3회 이상 사람을 만나면 많이 힘들다. 혼자 생각하고, 떠들고, 만들고, 글 쓰고 하는 시간이 더 주를 이룬다.
생각만 할 땐 굉장히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그림이 되고, 글이 되고, 말이 되면서 완전히 달라질 때가 많다. 그래서 혼잣말도 많이 하는 편인데, 그것은 말로 꺼냈을 때 가지고 있던 생각이 말이 되는지 아닌지 판단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고 협업을 하는 것도 그런 것 같다. 작업실에서 혼자 공상하던 것을 사람들에게 꺼내어 말하다 보면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보인다. 사람들에게 내보여서 반응을 보고 그만둔 작품들도 있는데, 거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해야겠다’ 오히려 확신이 들 때도 있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을 하다 보면 ‘사람 사는 것 다 똑같구나’ 싶을 때가 많다. 사회학, 심리학, 인지과학, 최근엔 금융 관련한 사람들과 협업을 하면서 느꼈는데, 어떤 분야든 깊이 들어가면 통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다름도 있지만, 어떻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그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를 발견하는 일은 매우 의미 있으면서 흥분되는 일이다. 그래서 되도록 접해보지 않은 다른 분야 사람들과의 협업도 진행하려고 한다.
Q 노후에 반드시 함께하리라 생각되는 물건이 있다면?
A 물건보다는 개를 꼭 키우고 싶다. 고양이도 같이 키울 수 있으면 좋고. 반려견을 키우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노후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한 삶을 위해서다. 반려동물이 있으면 정기적으로 산책도 하고, 병원도 가고, 밖으로 나가 사회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노후가 될수록 규칙적인 일과 함께 무언가를 돌봐야 하는 일도 같이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지금의 작업들은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내 초기 작품들은 자연에 대한 것에서 시작했다. 주로 나무와 관련한 것인데 다시 자연과 관련한 작업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 본 다큐멘터리 중 전영애 교수의 ‘여백서원’에 대한 영상이 있다. 평생 연구한 괴테 관련 서적과 버려진 식물들로 만든 서원이 너무 근사해 보였다. 할 수 있다면 조금씩 모아온 내 컬렉션과 책, 여러 잡동사니와 함께 어린 시절 초등학교 앞에 있던 잡동사니 가득한 ‘문방구’ 같은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고 꿈꾸고 있다.
Q 수많은 만남과 경험을 소화하기 위한 나만의 휴식 방법이 있나.
A 처음 만나는 관객이나 친한 사람이 아닌 경우 그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들어야 한다. 그래서 ‘고독사’, ‘탈북민’, ‘코로나 사망자’들 취재는 돌아오는 길이 많이 힘들었다. 그들의 슬픔이 내게도 전염되기 때문인데, 기독교인이라 종교에서 마음의 짐을 덜어놓고 치유를 받는 편이다.
취미로 야구 감상을 하는데, 예술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사실 야구는 나에게 취미 이상의 삶이다. 한때 야구 기록원이 되려고 했던 적도 있다. 노후에는 응원하는 야구팀 원정 정기 따라다니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Q 대면 설문이나 인터뷰 진행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A ‘사람(사연)을 이용하지 말자.’ 설문과 인터뷰를 진행할 때는 나름 시나리오와 가설을 가지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설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지는 편이다. 그런 경우 과감하게 내 고집을 수정하거나 버려야 한다. 예술가에게 그런 선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 ‘사람을 위한 예술’을 하고 싶다.
다큐멘터리나 설문조사가 실제 이야기로 보이지만 이 역시 작가의 시각과 편집을 거치게 된다. 때문에 작가가 선택된 시각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게 되는데, 가끔은 작가가 정해놓은 틀에 사람들을 끼워 넣는 경우를 본다. 하지만 관객들은 생각보다 이 점을 빨리 눈치 챈다. 그렇게 끼워 넣는 방식은 늘 불편할 수밖에 없고 관객들도 작품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기 어렵게 된다.
나는 늘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길 바란다. 그 목표를 위해서 전혀 새로운 재료, 기법을 활용할 수 있고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과 협업할 수도 있다. ‘사람’이 보이게끔 해야 하는 만큼 작가의 존재감은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Q 아카이브 관리를 도와주는 도구나 책, 프로그램이 있는가.
A 아직까진 직접 분류, 분석, 관리하고 있다. 분석과 해석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섭외해 자문을 받거나, 설문 통계를 내야 할 때 전문 통계회사에 의뢰를 하기도 한다. 요즘은 ChatGPT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아직까진 나와 엉뚱한 대화를 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아카이브의 핵심은 충분히 모인 다양한 내용과 그것을 ‘어떻게 분류하냐’다. 그 분류에 따라서 같은 답변도 전혀 다르게 활용될 수 있다. 마치 요리에서 재료 손질을 해둔 상태라고 볼 수도 있는데, 좋은 재료를 잘 선택해서 다양하게 준비해놓은 주방처럼 요리사에게 행복한 공간은 없을 거다. 내가 수집해놓은 자료들이 추후에 다른 작가, 연구자들에게 그런 자료로 쓰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Q 가장 최근에 사용한 이모티콘을 소개해 달라.
A 춘식이 시리즈다. 춘식이는 고양이인지 돼지인지 정체가 불분명한데, 그런 점이 바람돌이이자 집돌이이기도 한 나와 닮아서 좋아한다.
Q 축적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장기간의 작업이나 전시의 좋은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실수를 해도, 실패를 해도 괜찮다. 다시 하면 되니까. 나는 많은 실패의 경험이 있다. 실패한 작품들이 공개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모를 뿐. 작가로서의 내 인생도 모든 단계를 밟으면서 성장했다. 단계를 뛰어넘는 행운은 내 인생에 없었다. 30대엔 몇 번의 전시로 성공하는 동료 작가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가 겪어온 모든 단계가 나를 성장시킨 것 같다. 때문에 지금도 작품이 내 구상과 다르거나 때론 실망스럽더라도 좌절하지 않는다.
‘실패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면 실패가 아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실 작품을 하다 보면 중반쯤 ‘이건 망했다’ 싶을 때가 있다. 내 경우 실패를 미리 예감해도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실패를 눈으로 확인하는 편이다. 그래야 다음번엔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실패를 위한 작품들이 더러 있는데 나는 그 작품들을 ‘희생작’이라고 부른다.
Q 지금 우리 사회에 있어 ‘책’이란?
A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해지는 것 같다. 사람의 생각과 내면보다 겉모습과 이력을 우선시하는 모습이 책을 대하는 모습에서도 보이는 것 같다.
Q 다른 사람이 나에게 꼭 물어봐주었으면 하는 질문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A 나는 나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만나는 사람, 시간의 변화에 따라 모든 게 계속해서 변화하므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다르다. 따라서 같은 질문을 해도 어제, 오늘, 내일의 답이 달라질 수 있다. 그때그때 나 스스로 내가 이해되지 않을 때 나 자신에게 묻곤 한다. ‘너는 지금 네가 이해가 되냐’고.
때문에 내일의 ‘나’와 내가 만나는 사람이 누가 될지 모르는, 우연이 존재하는 시간에 정해진 무언가를 남겨두고 싶진 않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내게 답을 듣고 싶어하는 질문보다는 묻는 사람의 호기심을 느낄 수 있는 질문을 좋아하는 편이다. 때론 묻는 사람과 함께 답을 찾아나갈 수 있다면 좋은 대화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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