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둘째는 태어날 때 숨을 못 쉬었다. 청색증이라는 단어는 그때 처음 들었다. 조선시대였으면 아마 아이도 죽고 아내도 죽었을 것 같다. 2016년 총선 때 어찌하다 보니까 나는 민주당의 정책을 총괄하고 있었다. 아이가 세 살 때 폐렴으로 병원에 두 번째 입원을 했는데, 순천에 가는 비행기에서 ‘선거가 끝나고 나면 아픈 아이와 아내를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사회적으로 하던 일들을 정리하고 육아를 시작했다. 둘째는 아팠고, 나는 바빴고, 아내는 결국 다니던 회사를 퇴직한 상태였다.
시간이 걸렸지만, 아내는 복직을 했고 둘째는 해마다 입원을 하다가 작년에 처음으로 입원을 안 했다. 물론 짧게 입원을 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 못 가는 날이 많아서 수업일수를 채우지 못해 6학년에 못 올라갈 위기였다. 가을에는 학교에 잠깐 갔다가 조퇴하거나, 병원에 갔다가 오후에 학교에 가서 지각하는 일을 반복했다. 가까스로 수업일수를 채웠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경을 헤매곤 했는데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봄가을에 주로 입원을 했기 때문에 언제 입원하게 될지, 아직도 초긴장이다.
계속 아프면서 컸기 때문에 둘째는 아는 게 많이 없다. 그렇다고 완전 순진무구, 그런 건 아니다. 얼마 전엔 내 핸드폰으로 게임 아이템을 사면서 15만 원을 결제했다. 직접 혼내면 너무 크게 혼낼 것 같아서, 결국 동네 파출소 당직자가 으름장 가득한 훈계로 도움을 주었다. 둘째는 다시는 게임은 안 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약발은 그때뿐이었다. 최근에는 새벽 2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있다가 나한테 걸렸다. 하이고, 아이 키우기 어렵다.
그런 둘째가 요즘 토요일 오후에는 어린이도서관에 혼자서 갔다 온다. 그래도 이제 커서, 도서관 앞의 분식점에서 혼자서 밥 먹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종로어린이도서관이 버스 타고 갔다 올 거리다. 몇 년 전에 없어질 뻔한 게 겨우겨우 살아남았다. 그렇게 우리 집 둘째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한국, 이제 도서관이 없어지지 않도록 지키는 게 우리 시대의 과제가 되었다.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던 도서관 경제학을 쓰게 된 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러나 아는 게 너무 없는 둘째가 분식집 김밥과 튀김을 먹기 위해서라도 도서관에 다니게 될 때였다. 《힘내라, 도서관》은 그런 상황에서 쓰기 시작했다. 모든 도서관은 지키지 못하더라도, 아픈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도서관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종로구 사직단 복원과 관련해 철거 논의가 있었던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이미지 출처: http://gaonbit.kr/blog/12545/)
제안1. 학교 도서관 주말 운영
책 쓰는 과정에서 가장 놀라웠던 얘기는 서초구청장이었던 조은희 의원에게서 들었던 얘기다. 구청장 시절, 도서관을 새로 만들던 때의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도서관 예산 감축에 대해서 “그러지 마세요”라고 얘기를 했고, 점차적으로 새로운 도서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너무 그걸 좋아해서, 서초구에 도서관을 계속 늘렸다고 했다. 마침 그때 내가 분석하던 자료 중에 강화도 어느 어머니의 인터뷰가 있었다. 코로나 때 사서가 있는 학교 도서관은 도서관에서 별도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도서 교육을 계속했는데, 자기 아이네 학교는 사서 교사가 없어서 그냥 문 닫고 있었다고 한다.
이념적이거나 개념적인 얘기를 다 떠나서 우리의 현실만 얘기하면, 한국에서 가장 잘사는 서초구 비슷한 곳과 서초구와 반대인 곳으로 도서관을 분류할 수 있다. 서초구처럼 단체장이 도서관에 관심을 갖고 마침 예산도 뒷받침되는 곳은 도서관이 점점 많아지고, 더 좋아진다. 그러면 사람들의 효능감이 높아지고, 이용도 많아진다. 그 반대인 곳, 단체장이 도서관에 별 관심이 없거나 가난한 지역일수록 도서관을 늘리기는커녕, 있는 도서관을 지키기도 어려워진다. 공공도서관은 물론이고, 학교 도서관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 한국 도서관에 대해서는 진보/보수의 차이보다는 단체장의 소양과 교양에 더 많은 것이 걸려 있다.
이게 과연 맞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들이 컴퓨터로 자료 검색도 하고, 교양도 쌓고, AI의 도움을 받아서 더 ‘교양 있는 학생’으로 자랄까? 집에다 책 많이 사주면 알아서 백과사전도 읽고, 학습만화도 읽으면서 ‘책 많이 읽는 학생’으로 클까? 불행히도 우리 집 둘째는 물론 이제는 중학교 2학년이 된 큰애도 그런 어린이 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 억지로라도 그냥 도서관에 같이 가는 수밖에 없다.
둘째가 제일 좋아하던 방과후 수업은 탁구와 코딩이었다. 탁구는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계속 하지는 못했고, 코딩은 그래도 자리가 넉넉해서 계속 다녔다. 게임으로 코딩을 가르쳤는데, 결국 ‘현질’ 한다고 많은 돈을 쓰게 되었다. 혼내기는 했는데, 같은 반 친구들과 통화하면서 게임 하는 그 세계에서 더 잘 하고 싶다는 욕구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둘째 초등학교 앞 육교 밑에는 남자애들 몇 명이 머리 맞대고 서 있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분식집 앞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이다. 그들의 그 강렬한 욕망을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그냥 부모로서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학교 도서관을 주말에도 좀 열어주면 좋겠다. 교육의 힘이나 국가 자식자본 같은 복잡한 얘기를 떠나서, 주말마다 버스 타고 도서관 가는 일이라도 좀 줄이면 좋겠다. 용산에서 청와대로 온 이후, 주말 오후에 집회가 많아져서 “아빠, 버스 안 와요” 이런 전화를 받고 급하게 운전을 하게 된다. 지금이야말로 독서 교육이 중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지만, 초등학교 학교 도서관에 주말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 같다.
제안2. 도서관 특별전형 신설
내가 뭔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도서관 관장들에게 대입 학생 추천권을 주겠다. 작은 도서관을 몇 개 합쳐서 자체 위원회를 만들고, 지역별로 도서관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가한 학생들에게 문헌정보학과 혹은 인문 계열 학과에 추천할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 어차피 지금도 균형발전 혹은 농촌지역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교장들이 학생 추천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걸 조금 개선해서 도서관 특별전형을 만들면 어떨까? 조금 복잡하게 한다면, 지역경제가 어려운 지역일수록 도서관 전형을 더 유리하게 제도를 설계하면?
좀 더 방향을 넓히면 도서관의 청소년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이걸 자기소개서에 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렇게 행정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교육으로 몰려가는 학생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방에서 넉넉하지 않은 형편의 학생들의 대입을 도서관이 도와줄 수 있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바뀔 것이다.
저출생 문제 해결과 함께 붕괴하는 지역경제 살리기가 지금 국민경제의 제1번 과제다. 출생아 수가 적은 지역의 도서관에 대입 추천권을 더 강화하고 더 늘려주면 좋은 일들이 생겨날 수 있다. 도서관 정책이 어려운 것은, 문화부와 교육부 그리고 지자체로 관련 부처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그렇다. 도서관장에게 대입 추천권을 주기 위해서는 문화부와 교육부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 구조로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못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게 좋은 점은, 학원에 어차피 못 갈 가난한 학생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역에서는 십대를 몇 명이라도 더 잡아둘 수 있다. 안 그래도 출생아 수가 급감하는 중인데,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에서 도서관의 도움을 받아 지식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국민경제의 경쟁력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지역의 공공도서관이 대입 추천권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가 보는 도서관의 풍경과 문화 자체가 바뀐다. 도서관이 더 젊어질 것이고, 도서관 프로그램도 더 다양해질 것이다. 이게 큰돈 드는 일이냐? 그렇지는 않다. 어떻게 이 과정을 지역 시민들의 감시하에 공정하게 설계하고 운영할 것이냐, 그렇게 시민적 관심과 참여로 풀 수 있는 문제다. 학교장도 무리 없이 하는 일, 도서관장이라고 못 할 게 없다.
브루클린과 깊은 연관이 있는 유명작가 5명의 서명이 새겨진 브루클린공공도서관 특별 한정판 도서관 카드. 왼쪽부터 아이작 아시모프, 마리안 무어, 월트 휘트먼, 베티 스미스, 리처드 라이트의 서명이 있다. (이미지 제공: 우석훈)
AI 시대의 파운더 아이작 아시모프의 어린 시절도 도서관에서 시작됐다
‘내 생각의 상부 구조와 디테일 그리고 진짜 골격에 대한 진짜 교육은 공공도서관에서 생겨났다.
책을 사줄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난 가난한 소년에게 도서관은 놀라움과 습득을 향해 열린 문이었다.
내가 그 문으로 들어가 그곳에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아무리 감사해도 지나치지 않다.’
- 《아이작 아시모프 자서전》 중에서
‘로봇 3원칙’을 만든 아이작 아시모프는 넉넉지 않은 러시아 이민자의 자녀였다. 브루클린도서관의 사서들이 도대체 그가 갔던 도서관이 어딘지 열심히 찾았지만, 그가 갔던 도서관이 어느 분원인지 결정적 증거는 결국 찾지 못했다. 1906년에 만들어진 카네기빌딩 안에 있었던 이스트 브랜치 분원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이었다. 강철왕 카네기가 2천 200개에 달하는 공공도서관을 미국 전역에 만들 때 만들어진 도서관 한 곳에 어린이 시절의 아이작 아시모프가 갔던 것 같다. 그가 만들어낸 로봇 3원칙은 ‘로봇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시작한다.
언젠가 큰애가 AI 얘기를 하면서 로봇 3원칙에 대해 말했을 때, 나는 비정하게도 “현실에서는 그딴 거 없다”고 대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정의선이 로봇 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살 수 있었던 것은, 국방부 로봇 프로그램에 참여를 거부하면서 경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AI가 사람을 조준하고 실제로 살상하게 되는 일을 우리는 막을 수 있을까? 그런 기술이 있다면 이란 등 곤란한 상황에 빠진 국가들이 사용을 회피할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AI와 로봇의 상당 부분은 로봇 시리즈와 《파운데이션》을 쓴 아이작 아시모프의 영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그런 아이작 아시모프는 자기는 도서관이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19세기 미국 경제의 큰 힘은 이렇게 도서관에 간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우리는 아직 모르고, 심지어 도서관도 모를 것이다. 지금 도서관에 오는 어린이들 중 누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될지 혹은 빌 게이츠가 될지. 그런 게 도서관이 가진 힘이다. 미국 경제가 그것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시대에 도서관이 갖는 힘은,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의 청소년들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도서관의 이런 역할이 지금 꼭 필요하다. 출생아 수가 너무 줄었기 때문이다. [계속]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전 7권 중 3부인 《파운데이션을 향하여》
우석훈_경제학자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대 환경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국무조정실 등에서 환경관리와 기후변화협약 담당 업무를 수행했다. 수년간 기후변화협약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국제협상에 참가했고, 한국생태경제연구회의 설립에 참여한 이래 생태경제학의 기본 이론을 정리하고 생태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 《88만원 세대》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힘내라, 도서관》 등이 있다.
일제의 '무도서관 정책'을 끝낸 3.1 운동과 인정도서관도서관 경제에 관한 책을 준비하면서 도서관 역사를 대충 훑어보았다. 자료가 많지는 않았는데, 내가 아는 것과는 좀 다른 사실들이 많았다. 그냥 대충 알고 있던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에 도서관을 만들었고 그렇게 한국이 도서관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많은 뉴라이트 계열이 말하는 건,
미술 작품을 깊고 풍부하게 감상하는 법도스토예프스키는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은 책과 쓴 글이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읽은 책이 나의 생각을 만들고, 내가 쓴 글이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문호의 명언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읽기와 쓰기는 생각을 키우고 확장시키는 가장 확실한 마중물임에는 틀림이 없다.초등학
책 대신 농민신문을 탐독하던 소녀어린 시절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1970년대 말 초등학교에 들어갔던 내게는 읽을 책이 부족했다, 아니, 거의 책이라고 생긴 건 교과서와 참고서 정도일 뿐이어서, 새 교과서를 받아들자마자 교과서의 지문들을 수도 없이 읽어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거의 외우다시피 하곤 했다.우리 옆 동네는 담배 농사를 많이 지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