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경제에 관한 책을 준비하면서 도서관 역사를 대충 훑어보았다. 자료가 많지는 않았는데, 내가 아는 것과는 좀 다른 사실들이 많았다. 그냥 대충 알고 있던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에 도서관을 만들었고 그렇게 한국이 도서관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많은 뉴라이트 계열이 말하는 건, 근대화 시기에 일본을 통해서 한국이 경제 발전의 계기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을 비롯해서 금융이 그렇고, 전력회사 등 전력 계통도 그렇다. 좋든 싫든, 근대화의 많은 요소들은 그렇게 일본으로부터 왔다. 그런데 도서관은 그렇지 않다.
일본이 도서관 강국인 것은 맞다. 하지만 라이브러리, 책을 빌려주는 곳이라는 의미에서의 미국식 근대 도서관은 일본에는 없었다. 메이지 유신과 함께 도서관을 만들기는 했는데, 관내 대출은 불가능했고 도서관에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도서관 체제가 정비된 것은 패전 후 미군정기에 미국의 도서관 체제를 도입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책장이라는 의미의 ‘비블리오테카(Bibliotheca)’가 일본의 도서관이었지 라이브러리, 책을 빌려주는 것이 핵심인 미국식 도서관은 일본도 패전 후에야 생겨났다.
초대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때 일본은 한국의 책들을 압수하고 금서로 만들었다. 당연히 주요 조선말 책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했고, 도서관은 짓지 않는다는 무도서관 정책을 썼다. 우리나라에 도서관이 결국 만들어진 것은 3.1 운동의 결과다. 3.1 운동 이후 유화 정책이 시작되었고, 총독부 도서관이 생겨난 것은 1923년의 일이다. 소수이지만 한국인 사서들이 시험을 거쳐서 채용되었고, 향후 도서관의 역사를 끌고 갈 세력들이 이때 형성된 것은 맞지만 그 출발이 3.1 운동이라는 것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1931년 여성 경제인 김인정이 평양에 만든 인정도서관은 한국 도서관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자신이 소유하던 밭과 건물에서 나온 수익으로 도서관을 운영했다. 태평양 전쟁과 함께 총독부가 문을 닫게 하려고 했지만 해방 때까지 버티고 버텼다. 나중에 소련이 진주하면서 인정도서관이 소련군 문화부 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얘기가 나는 가장 감동적이었다.
학교 소유의 포드 자동차를 팔아 도서관을 세운 6.25 전쟁의 역설
해방 이후 독립한 국가 중에서 한국만큼 경제 발전을 이룬 사례는 없다. 그리고 이런 나라 중에서 한국만큼 대대적으로 도서관을 확충하면서 경제 발전과 도서관 설립이 함께 진행된 나라는 없다. 미국이 근대식 공공도서관을 19세기에 대대적으로 확충하면서 20세기에 경제 대국이 된 것과 한국이 같은 공식대로 움직였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미국에 도서관을 만든 것은 미국의 국부 벤자민 프랭클린 이후로 미국의 시민들이었지만, 우리는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 기구가 도서관을 만든 것은 우리의 역사다.
해방과 함께 우리나라는 대대적으로 도서관을 확충했다, 이런 역사는 아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옥중 도서관을 스스로 만들 정도로 이승만 대통령이 도서관에 대해서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해방 정국에서 도서관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정치가 움직이지는 않았다. 도서관법 제정도 지지부진하던 상황에서 6.25 전쟁이 터졌다. 3.1 운동 이후 한국 도서관의 결정적인 전환점이바로 이 6.25 때 생겨났다.
1952.2.20 경남 국회도서실 개관식. 출처:국가기록원
전쟁 중이던 1951년 결정되어 경남도청 안에 국회도서관이 설치되었다. 해방과 동시에 국회가 만들어지고, 국회도서관이 만들어진 그런 역사가 아니다. 경희대학교 중앙도서관이 만들어진 것도 이 피란 시절의 일이다. 설립자인 조영식 박사가 직접 마련한 700여 권의 도서로 개관을 했다고 한다. 1.4 후퇴 당시 부산으로 피란을 간 연세대학교(당시 연희대학교)는 도서관을 만들 때 학교가 소유하던 포드 자동차를 팔았다. 학교에 도서관을 만들자는 학교도서관운동이 시작된 것도 바로 이 6.25 때였다. 국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도서관을 만들자는 흐름이 생겨난 것은 아이러니하다. 미국에 도서관 열풍이 불었던 것은 식민지 시절이었고, 결국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후에 마을문고의 뿌리가 된 시민도서관운동도 6.25 때 탄약 박스 같은 곳에 책을 담아서 농촌 지역에 배달했던 자체적인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이 시기에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정부 정책과 결합되면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많은 마을문고의 원형도 6.25 때 시작되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작동했던 공공도서관 설치 5개년 계획
맹아로만 남아 있던 한국 도서관이 결정적 전환기를 맞은 것은 군사정권 때의 일이다. 경제학과 학부 시절부터 세계은행의 보고서까지, 한국의 경제 기적에 대해서 다양한 설명을 배웠지만, 도서관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 그렇지만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공공도서관 설치 5개년 계획이 같이 작동한 것은 사실이다. 소수의 사서들이 결국 군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인데, 이게 향후 수십 년 동안 한국 경제의 흐름을 바꾸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당시의 엘리트 군인들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독재정권과 군사정권 중에서 이렇게 경제발전 초기부터 도서관을 같이 만들었던 사례는 없다. 당시 군인이 도정을 맡은 경기도에서는 시군구 공공도서관 설치의 권유를 적극적으로 독려하면서 강제 조항처럼 추진하였다. 경기도의 공공도서관 전통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의 독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만든 도서관이 지금 한국 경제의 대중적 지식 기반을 만들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박정희 시절의 도서관 건립 붐은 전두환 때에도 계속되었고, 노태우 때에 이르러 도서관 입관료 폐지와 개가식 도서관으로의 전환 등 질적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21세기가 되기 전에, 공공도서관의 외형적인 면에서는 한국은 이미 완성형 국가가 되었다. 한국 도서관의 중요한 순간 세 개를 꼽으라면 나는 3.1 운동, 6.25 전쟁 그리고 5.16 군사정변이라고 하겠다.
이런 얘기들은 평생을 경제학자로 살았던 내가 전혀 모르던 얘기들이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아니 우리의 도서관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경제적으로 성공했는지, 아직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잘사는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간의 도서관 격차
서초구에는 공공도서관이 아홉 개 있다. 잘사는 지역인 데다가 도서관 운영이 잘 되었고, 점점 더 도서관에 효능을 느낀 지역 주민들의 만족감이 높아져서, 점점 더 많은 공공도서관이 생겨나게 되었다. 당시 이 도서관을 만드는 데 관여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이거지!”, 그런 감동을 느꼈다. 지역 소득과 도서관에 관심 있는 단체장이 결합이 되면 화려하지는 않아도 아주 교과서적이면서도 모범적인 사례가 생겨난다.
출처: unsplash
이 얘기에 감동을 느끼는 순간, 마음 한구석에 슬픔도 생겨났다. 잘사는 지역에 마침 도서관에 대해서 우호적인 단체장이 오면 도서관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반대의 경우를 우리는 더 많이 본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 또 마침 거기에 어떤 이유로든 도서관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은 단체장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서울을 비롯해서 지자체가 관리하는 많은 도서관에서 우리는 지금 그러한 현상을 보고 있다. 지역에 도서관 위원회가 자생적으로 도서관을 만들고 관리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사실상 단체장의 생각에 지역 도서관의 너무 많은 것들이 의지하고 있다.
과연 도서관 강국으로서 우리는 지금의 번영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가난한 소년, 소녀에게 지금도 도서관은 가장 중요한 친구이자 멘토이며 위로자라는 것이다. 잘사는 지역에는 서초구처럼 점점 더 많은 도서관이 생겨나고, 못사는 지역일수록 도서관이 먼저 없어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중학교 2학년, 초등 6학년, 두 소년의 아버지다. 나는 그렇게 부자는 아니라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는 없지만, 토요일이면 두 소년이 도서관에 가서 일주일 동안 읽을 책을 빌려오는 것이 그들의 문화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제 둘째는 토요일 오전에 버스 타고 나가서, 분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서 뭔가 빌려오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종로에 살고 있어서 최고의 어린이 도서관과 함께 많은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6.25 전쟁 중에 도서관을 만드는 붐이 생겼듯이, 저출산 국면에서 우리가 새로운 도서관 역사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한국 경제의 전력을 믿기 때문에 도서관이 주는 감동을 아직도 믿는다. 우리나라에 있는 도서관 중에서 사연 없는 도서관은 하나도 없다. 그중에 많은 것들은, 정말로 눈물 나는 얘기들이 배어 있다. 나중에 좀 더 여유가 생기면, 이 얘기들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우석훈_경제학자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대 환경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국무조정실 등에서 환경관리와 기후변화협약 담당 업무를 수행했다. 수년간 기후변화협약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국제협상에 참가했고, 한국생태경제연구회의 설립에 참여한 이래 생태경제학의 기본 이론을 정리하고 생태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 《88만원 세대》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힘내라, 도서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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