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박사 공부를 하던 시절에 생겨났다. 유럽에는 도제식 박사 수업이 있었는데, 아마 내가 그런 도제식 수업을 한 거의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다. 논문을 쓰던 초기, 지도교수와 2주에 한 번씩 만나 지도를 받았고, 논문에서 다루어야 할 고전을 한 권씩 읽어가고 그걸 교수에게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거의 보지 않는 장 바티스트 세이(Jean-Baptiste Say)의 고전 같은 것들을 읽었는데, 점점 더 희귀한 책들로 넘어가면서 책을 구하는 게 엄청나게 힘든 일이 되었다.
결국 도서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대학 도서관 사서들에게 내가 그렇게 밉보이지는 않았는지, 정말 열성적으로 전국 도서관에서 책을 구해주었다. 프랑스도 행정이 느리기로 소문나서, 도서관 상호 대출이 가능할 뿐 2주 내에 책이 도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책을 구하면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어서 마지막 며칠은 밤을 새야 했다. 옛날 사람들은 무슨 책을 그렇게 길게 썼는지, 툭하면 천 페이지가 넘어갔다. 정말 눈물 흘리면서 새벽까지 책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 소리 안 하고 그렇게 고전들을 읽어갔는데, 책을 읽는 것보다 구하는 게 더 애를 태우는 일이었다. 도대체 이렇게 어렵사리 구해서 책을 읽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그렇게 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사람은 주변에 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게 일대일 도제식 수업이라고 했다.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이나 자료를 구하는 것부터 짧은 시간에 자료를 분석하는 것까지가 다 훈련의 내용이라고 한다. 이제는 프랑스도 미국식 박사 과정과 많이 비슷해져서, 더 이상 그런 도제식 수업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교 앞 빵집에서 그리 비싸지 않은 사과파이 같은 것을 사다가 도움을 준 사서들에게 주게 되었다. 박사 논문 후반부에는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나 논문과 겹치지 않는 것을 보는 게 또 큰일이었다. 당시 환경 분야에는 ‘런던학파’가 아주 유명했다. 영어권 책들은 최신본을 구하는 게 런던이 파리보다 더 빨랐다. 결국 파리에서 런던까지 기차로 갈 수 있는 유로스타를 타고 갔다. 그 시간들을 거치면서 나는 사서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건 내가 사서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구해줄게”, 그렇게 열성적으로 움직여준 사서들을 존경하지 않기도 어렵다.
내 인생에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사서는 아주 우연히 스위스 취리히에서 만난 사서였다. 신혼 초 신혼여행은 강릉으로 짧게 갔었고, 진짜 신혼여행을 겸해서 나중에 취리히에 아내와 한 달 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때 아내는 박사 과정 중이라서, 대학 도서관 사서의 편지를 들고 취리히연방공과대학에서 도서관 출입증을 받았다. 다른 곳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유럽에서 대학 도서관 사서들 사이의 추천장은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아내를 도와줬던 사서를 아주 우연하게도 지하철에서 만나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게 되었다. 그때 일주일에 사흘 일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둘째를 출산하면서 주 3일 근무를 하는데, 그 삶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석사 학위가 두 개 있는 전문직 여성. 매우 특수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덜 노동하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진짜로 일주일에 사흘 일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은 불교방송국에서였다. 라디오 방송은 매일 하지만, 실제로 만드는 것은 사흘 동안 하고 있었다. PD와 작가, 진행자까지 전부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 소득은 조금 줄지만 정규직으로서 일자리가 불안하지 않은 직업, 그게 내가 쓰는 책들에서 일종의 이상향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 직업 안정성과 유연한 근무가 결합된 스위스의 사서를 본 후, 전문성을 높이면서 일은 덜 하는 사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 뒤의 일이었고, 물론 지금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사서는 시간제 근무 등 다양한 유연 근무 형태로 근무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서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사서를 존경하는 학자를 별로 만나지 못했다. 조교들이 알아서 책을 빌려오기 때문에 유명한 사람들이 직접 도서관에 가거나 사서를 만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는 않을 수도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사서는 사회적으로 아주 높은 지위의 직업이다. 존경도 많이 받지만, 실제로 사서협회 등 사서들의 네트워크가 매우 강력하다. 철학자 송도율이 간첩 혐의로 투옥된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의 구명 운동에 나섰지만, 결정적으로 그를 감옥에서 꺼낸 것은 사서였던 그의 아내였다고 들었다. 독일 사서들이 움직였고, 결국 독일 정부가 움직이게 되었다. 사서들이 움직이면 학자들도 같이 움직인다. 그런 게 내가 사서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이미지였다.
미국사서협회에서 사서들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어린이들에게 그림으로 사서를 표현하라고 했는데, 주로 할머니 그림이 많았다고 한다. 미국의 지역 도서관에서 젊은 사서들을 보기 힘든 현실적인 문제가 아이들의 그림에 반영되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어떻게 하면 젊은 사서들을 지역에 보낼 수 있는가가 미국 도서관의 고민 중 하나다.
언젠가 들은 얘기 하나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미국이나 유럽의 도서관에서는 사람들을 만나는 창구 자리에 유능한 사서들이 간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대학교에서 만난 사서들은 머리 숙여 존경할 정도로 아는 게 많은 사람들이었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우리나라 도서관 창구에는 신입 사서들이 가고, 경력 사서들은 데스크 업무로 가게 된다. 공무원 사서의 직급 체계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까 도서관을 찾은 시민들이 경력이 많고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서들을 창구에서 만나게 될 일은 거의 없게 된다. 도서관에서 관장을 만나거나 유능한 관리자를 만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럼에도 내가 한국의 사서에 대해서 갖는 가장 강력한 이미지는 도서관 문 닫는 날, 서고 정리하면서 신문 깔고 짜장면 먹는 사서들의 모습이다. 깔끔한 열람실 밖에서 사서들이 하는 많은 일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방법이 없다.
도서관 책을 쓰는 중에 나에게 많은 자문을 해준 사서들이 있다. 국회도서관의 후배가 외국 국회도서관의 사례와 제도들을 많이 알려주었다. 그리고 도서관 연구를 하던 대학 후배가 엄청 꼼꼼하게 자문을 해주었다. 내가 만났던 수많은 후배들 중에서 정말 강렬한 기억을 남겼던 후배였다.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했다. 책이 나온 직후, 그가 막 새로 생긴 도서관의 관장이 되었다. 도서관과 시민의 관계에 대해서 현장에서 많은 고민을 하던 사서라서, 마음속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도서관이 지금처럼 자리를 잡고 늘어나는 과정에 6.25 전쟁터에서 혹은 군인들을 설득하면서 도서관이 만들어지게 한 멋진 사서들이 많이 있다. 사실 경제학계에는 그 정도로 존경할 선배 경제학자가 많지는 않다. 나는 평소에도 사서들에게 많은 의견을 구한다. 그들이 가진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존경받는 사서들이 좀 더 등장하기를 희망한다.
사서가 강해야 도서관이 강해지고, 도서관이 강해져야 책이 강해진다. 그리고 책이 강해져야 ‘딥(deep) 지식’이 생겨난다.
우석훈_경제학자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대 환경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국무조정실 등에서 환경관리와 기후변화협약 담당 업무를 수행했다. 수년간 기후변화협약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국제협상에 참가했고, 한국생태경제연구회의 설립에 참여한 이래 생태경제학의 기본 이론을 정리하고 생태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 《88만원 세대》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힘내라, 도서관》 등이 있다.
어린이도서관이라도 지키자우리 집 둘째는 태어날 때 숨을 못 쉬었다. 청색증이라는 단어는 그때 처음 들었다. 조선시대였으면 아마 아이도 죽고 아내도 죽었을 것 같다. 2016년 총선 때 어찌하다 보니까 나는 민주당의 정책을 총괄하고 있었다. 아이가 세 살 때 폐렴으로 병원에 두 번째 입원을 했는데, 순천에 가는 비행기에서 ‘선거가 끝나고 나면 아픈 아이와 아
AI 시대에 책을 쌓아놓고 읽는 힘“혹시 여러분,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 보셨나요?”서울에 있는 중앙중학교에서 〈라스트 사무라이〉에 대해서 물어봤다가 아차 싶었다. 강연에서 언제나 필승 공식이었던 영화였지만, 지금 중학생들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혹시 톰 크루즈는요?” 톰 크루즈, 알 리가 없었다.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미션 임파
일제의 '무도서관 정책'을 끝낸 3.1 운동과 인정도서관도서관 경제에 관한 책을 준비하면서 도서관 역사를 대충 훑어보았다. 자료가 많지는 않았는데, 내가 아는 것과는 좀 다른 사실들이 많았다. 그냥 대충 알고 있던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에 도서관을 만들었고 그렇게 한국이 도서관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많은 뉴라이트 계열이 말하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