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다.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살상한다. 2026년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공격을 가한 직후 초등학교에 떨어진 폭탄으로 여학생 175명이 몰살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책임을 가리기 위해 유엔이 공식 조사에 나섰다. 전쟁 개시 이후 3주 동안 약 5천 300명의 사망자가 나왔는데 그중 511명이 민간인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인간의 살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중동 전쟁으로 원유 수급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졌음을 하루가 다르게 실감하고 있다. 유가 상승과 에너지 안보에 대한 불안으로 일희일비한다. 원유에 기반한 원자재와 화공 물질의 수급도 직격탄을 맞았다. 전 세계 화학비료용 우레아의 22퍼센트, 알루미늄 원료의 24퍼센트, 냉매제 헬륨의 3분의 1, 황의 45퍼센트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장 전 세계 식량 생산, 제약 산업, 각종 제조업, 생필품 생산과 운송에 거대한 혼란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만들 재료까지 부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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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비에 뒤덮인 테헤란 그리고 생태학살
테헤란 시민들은 공습을 당한 후에 놀라운 일을 겪었다. 시커먼 폭우가 도시 전체에 쏟아져 내린 것이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기시감을 느꼈다. 35년 전 걸프전쟁 때에도 검은 비가 내린 적이 있었다. 당시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에서 수백 개의 유전에 불을 지르고 퇴각했다. 1년 내내 연소 물질이 뿜어져 나오면서 중동이 검은 비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테헤란에서 가까운 원유 저장고가 폭격으로 불탄 후에 검은 산성 폭우가 이란의 수도에 2차 가해를 일으킨 것이다.
검은 비를 맞은 테헤란 시민들은 즉시 다양한 증상에 시달렸다. 두통, 편두통, 어지럼증, 기침, 호흡곤란, 인후통, 눈과 피부 자극, 신경 장애, 인지 장애, 심혈관 장애 등이 나타났다. 특히 천식 환자, 폐질환자, 노약자, 장애인은 더 심한 고통을 당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원유가 불에 타면 아산화질소, 이산화황, 초미세먼지, 일산화탄소, 유독 유기물질, 중금속, 다이옥신과 퓨란 등 발암 성분, 그리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화학물질’이라고 불리는 PFAS(과불화화합물)가 누출된다고 경고한다.
이런 사태는 자연환경에도 궤멸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토양이 오염되고 강, 호수, 지하수, 상수원이 더러워졌으며,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특히 페르시아만 연안의 바다가 심하게 오염되었다. 해양생태계 보전지역 파괴, 야생동물 피해, 가로수와 녹지와 공원과 산림 훼손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실내에 사는 반려동물들의 건강도 눈에 띄게 나빠졌다. 분쟁과 환경을 함께 다루는 평화 NGO 팍스가 인공위성 이미지와 항공사진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이란 내부에서 500건의 환경 파괴, 이란 외부에서 100건의 환경 파괴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런 일은 예전부터 국제사회의 걱정거리였다. 그래서 유엔은 매년 11월 6일을 ‘국제분쟁시 환경 파괴 방지의 날’로 정해 놓은 바 있다.
급기야 이란의 시나 안사리 환경부장관은 이번 전쟁으로 이란에 생태학살(에코사이드)이 발생했다고 선언했다. 생태학살은 우크라이나와 가자에서도 대규모로 발생했다. 에코사이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국제범죄로 다룰 수 있도록 국제법을 바꾸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침략 범죄에 더하여 생태학살까지 국제 핵심 범죄로 지정하여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간에 대한 ‘집단학살’과 환경에 대한 ‘생태학살’을 같은 범주의 극악범죄로 규정하는 것은 인간 사회와 지구환경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지구 시스템의 동조화를 법적으로도 인정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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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전쟁은 기후환경 파괴 전쟁
전쟁은 기후위기 대응을 극히 어렵게 만든다. 전쟁과 기후위기 극복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문제이다. 우선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문제가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군사작전을 벌였던 이유 중 하나가 원유 확보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전쟁이 일어나면 첨단무기 생산과 운송, 전투기와 폭격기의 운용, 병사들의 이동, 군기지 유지를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화석연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전쟁은 천문학적 규모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금까지 프랑스의 1년 치 온실가스 배출량에 해당하는 탄소가 배출되었다. 전 세계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아무리 탄소중립을 실천해도 큰 전쟁이 한번 터지면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도 있다. 미국 브라운대학의 왓슨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모든 나라의 군대가 배출하는 분량이 5.5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전 세계 군대를 하나의 국가라고 친다면 중국, 미국, 인도에 이어 4위에 해당할 정도이다. 게다가 전쟁은 미디어의 관심을 기후위기 대응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기후생태 위기의 초침 소리는 전쟁의 노이즈에 파묻혀 버린다.
분쟁과 환경을 감시하는 단체인 CEOBS는 전쟁으로 인한 물 문제에도 주의를 환기한다. 전쟁이 나기 전부터 중동 지역은 기후위기로 인한 가뭄과 지하수 고갈로 큰 불편을 겪어왔다. 이란에서는 2025년부터 제한 급수를 실시해왔을 정도이다. 그래서 중동 각국은 바닷물을 이용한 해수담수화 산업에 뛰어들었다. 전 세계 담수화 시설 중 가장 큰 공장 10개가 걸프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두바이, 도하, 아부다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용하는 식용수, 생활용수, 농업용수의 70퍼센트가 담수화를 통해 확보된다. 오만과 쿠웨이트는 그 비율이 90퍼센트가 넘는다. 걸프 지역 전체로 보면 약 1억 명의 인구가 해수담수화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담수화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물 취약성도 함께 늘어난다. 담수화는 중앙집중화가 높은 산업이어서 전시 공격용 대상으로 전략적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담수화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면 심각한 인도적 재난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물이 없으면 인간과 환경은 생존 자체가 어렵다. 이 때문에 1949년의 제네바협약 추가의정서에서는 식용수, 농업용수, 관개용수에 대한 직접적 공격을 인도적 이유에서 금지시켰다. 물 시설은 단순한 자원 인프라가 아니라 인간과 환경의 생명유지장치라 할 수 있다. 현재 중동 정세는 전쟁의 승패만이 아니라 인간-자연 전체의 실존적 보전을 좌우하는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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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기후생태 위기를 넘어서
그렇다면 전쟁이 끝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전쟁의 종료는 물리력에 의한 직접적 살상의 종료를 뜻할 뿐이다. 포성이 멈춘 순간부터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신체적·정신적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기후재난을 당했던 지역의 주민들이 평생토록 겪는 PTSD와 유사하다. 폭격을 당한 지역은 식생, 농업, 수자원, 생물다양성이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다. 1차대전 당시의 격전지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 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전쟁은 기후생태 위기 앞에서 우리에게 사활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한편에서는 석유 수급이 어려우니 석탄이나 원전을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당장 나오기 시작했다. 얼핏 당연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기후위기 극복이 더욱 어려워진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화석연료를 퇴출하고 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리면서 녹색전환에 더욱 박차를 가하자고 한다. 어느 쪽이 맞는가? 이것은 결국 우리가 원하는 미래에 대한 세계관의 문제로 귀결된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을 들어보라. “햇빛은 가격 폭등이 없고, 바람은 수출금지 대상이 아니다.” 전쟁으로 인한 경제사회적 고통이 커질수록 단기적인 미봉책의 유혹에 쏠리기 쉽다. 하지만 현 위기의 본질을 성찰한다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느 쪽인지 명백히 보일 것이다. 인간사회와 지구환경을 구하려면 평화를 회복하고, 기후생태 위기를 넘을 수 있는 장기적 비전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녹색 민주시민의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여, 어렵더라도 미래지향적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조효제_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
오랫동안 인권사회학과 글로벌사회학을 가르쳤으며, 근래에는 인권과 기후생태 위기를 연구하고 있다. 최근작으로 《불타는 지구에서 다르게 살 용기》(창비),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창비), 《탄소 사회의 종말》(북이십일)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하룻밤에 한강을 열 번 건너다》(강)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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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연구비 삭감으로 칼바람 부는 미국 대학가미국 대학가에 연구비 예산 삭감의 칼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미국의 대학들은 대부분 6월 30일에 한 해의 회계를 마감하고 7월 1일부터 새 회계연도를 시작한다. 이와 달리 연방정부의 회계연도는 매년 10월 1일에 시작된다. 때문에 지금 미국 대학들은 한 해 살림을 마무리하고 새해 살림을 준비하고 있는 것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