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중학생인 큰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로봇 3원칙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로봇은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되고, 인간에게 복종해야 하며, 그런 조건 하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현실에서 이런 건 없고, 그건 그냥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에 나오는 얘기일 뿐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아들은 매우 실망하였다.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 씰(Navy SEAL)을 다룬 미국 드라마 〈씰팀(SEAL Team)〉에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무인기를 조종하던 군인이 갖게 된 트라우마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냥 사소한 에피소드는 아니고, 투 톱 중 한 명인 주인공이 이 사건으로 죽게 된다. 로봇이 직접 살상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마지막 조종은 사람이 하는데, 이게 언제까지 지켜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쨌든 아시모프의 로봇에 대한 상상은 영화 〈매트릭스〉는 물론이고 일본의 〈공각기동대〉 등 무수히 많은 로봇 이야기의 원형이 되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로봇》에 나온 바로 그 로봇은 대작 소설 《파운데이션》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은하 제국이 멸망하고 인류가 다시 출발하는 과정에서 틈틈이 등장한다. 제국이 멸망할 때, 인류가 가진 기억을 보존해서 다시 출발할 때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일부의 사람들이 비밀스러운 기관 하나를 만드는데, 그게 바로 ‘파운데이션’이라는 이름의 도서관이다. 지금 우리가 살기 시작한 이 세상의 원형이 되는 모습을 철학적으로 보여준 아이작 아시모프의 세계에서, 인류 문명의 마지막 단계에서도 도서관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이 명예가 되는 시대
AI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선 책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 인류 문명에서 문자의 등장은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냈고, 이 문자 문명의 최상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책이다. 중국이 처음 통일되던 진시황 때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먹으로 글자를 쓴 대나무판 얘기가 종종 나온다. 대나무판이든 진흙판이든, 소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책과 함께 인류는 국가를 이루었고, 국력을 강화시키고 유지하는 힘이 책에서 나왔다. 유럽을 비롯해 책을 쓰고 보존하던 국가들이 아직 국가로서 남아 있다. 아프리카든 중남미든, 아무리 강성하고 화려했다고 하더라도 책에 대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은 왕국들은 자본주의 시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한국은 물론 일본이나 중국도 독립 국가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기를 겪었지만, 그래도 결국 자신들의 모습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조선에 독서 열풍을 만든 것은 박지원이었고, 집필 열풍을 만든 것은 정약용이었다. 오죽하면 왕이 직접 박지원을 불러서 “그런 식으로 천박하게 글 쓰지 말라”고 했겠는가? 책을 어떤 식으로 쓸 것인지 왕이 직접 나서서 훈육한 이 사건을 ‘문체반정’이라고 점잖게 부르는데, 책이 얼마나 한 나라의 질서에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조선이 망하고 나서 총독부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불순한’ 조선어 책들을 금지하고 압수한 사건이다. 그 책들 중에는 미국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어 책을 금지한 총독부는 ‘무도서관 정책’을 시행하였다. 3.1 운동이 일어나고 나서야 우리는 책과 도서관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힘으로 우리는 지금의 나라를 일구게 되었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부터는 공공도서관 확충을 위한 종합계획이 같이 추진되었다. 한국 경제의 번영은 도서관의 힘과 함께 오게 되었다.
책의 힘은 앞으로도 여전할 것인가? 산업으로서의 책은 책의 전성기 시절에 비해 상당히 위축될 것이다. 사람들은 책을 덜 읽을 것이다. 20세기 이전에 책은 집권층과 집권층을 돕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 등이 읽는, 그야말로 소수 특권층과 문화적 소양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읽는 것이었다. 베토벤은 그의 인생 역작이자 인류가 반드시 들어야 하는〈합창 교향곡〉을 성공시키고서도 악보 출판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그 이후에 나온 음악들은 먹고 살아야 했기에 쥐어짜면서 만든 음악이다. 그래도 노년의 베토벤에게 출간은 그나마 확실한 수입원이었다. 귀족들의 후원을 받지 않고 연주회 수입만으로 생활이 된 첫 번째 작곡가는 브람스였다. 20세기 초까지 소설가들의 주 소득원은 인세가 아니라 낭독회였다. 마치 지금의 음악 산업이 음원 소득보다는 음원 공개 후 진행되는 콘서트인 것과 유사한 구조였다. 20세기 책의 경제적 전성기가 끝나가고, 이제 다시 위축된 책 산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AI에 밀려서 책은 사라질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들더라도, 지식에 대해서 경제적 지불이 발생하는 거의 유일하고 안정적인 방식은 출간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책을 읽고, 소수의 사람들이 책을 쓰고, 그 소수가 사회를 통치하는 방식은 사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 보편적인 방식이었다.
AI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경제 양극화다. 잘 되는 곳, 살아남은 곳이 계속 커지고, 부자가 더욱 부자가 되는 시대다. 자본주의 초기에 우리가 그걸 못 본 것이 아니다. 외형적으로는 커졌지만, 본질적으로는 초기 자본주의와 비슷한 상태로 가는 중이다. 물론 그게 모두에게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이 상황에서 책이라는 아주 독특한 상품의 보편적 소비를 유지하는 것이, 경제라는 눈으로 볼 때 국가 경쟁력의 한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을 단순하게 나누어보면, AI가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과 AI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으로 나뉘게 될 것이다. 누가 AI에게 일을 시킬 것인가? 법과 제도를 만들고 고치는 사람들, 사회의 장기적 전략을 만들고 추진하는 사람들이다. 경제에서는 트렌드를 만들고, 유행을 선도하고, 창조를 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창조 경제라고 불렀던 것이 극한까지 가는 게 AI 시대의 경제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안 읽은 사람도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집단적으로는 여전히 독서를 하고 책을 쓰는 것을 명예롭다고 생각하는 게 AI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들의 특징이 되는 시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름답거나 이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그렇지만 인류는 대체적으로 이런 상태로 발전해왔다. 많은 국민들이 책을 읽는 ‘보편 독서’의 시대는 아주 짧은 수십 년 동안만 존재했다.
현대적 의미의 도서관이 갖는 가장 큰 힘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집단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고급 노동자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좀 야박하게 말할 수 있다. 미국이 이렇게 했고, 유럽도 그렇게 했고, 일본은 물론 한국도 그렇게 했다. 도서관을 만들고 사회 전체적으로 지식 습득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 그게 후기 자본주의의 특징이기도 하다. 똑똑한 몇 사람 가지고 20세기 국민경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공민교육과 도서관이 기본적인 두 축이고, 여기에 평생교육이라는 보조 축 하나가 더해져 20세기 지식 경제를 움직여왔다.
AI 시대, 어떻게 어린이들이 독서 능력을 갖게 할 것인가, 이게 선진국들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정책 트렌드다. 자신의 책 시장을 어떻게든 지키고, 다음 세대에게 독서 능력을 갖게 하고 유지하게 하는 것이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국제 경쟁에서 AI를 잘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AI 체계를 어떻게 구조화하고 운용할 것인가, 그런 일을 할 사람들이 더 필요하게 된다. 미국, 영국을 비롯해서 ‘얼리 스타트’라고 불리는 조기 독서교육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나라가 있을까? 없다. 이게 꼭 아날로그에 대한 노스탤지어 때문이 아니라, 책이 가지고 있는, 길게 생각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에 대한 교육 효과 때문에 그런 것이다.
독서문화의 종합적인 지휘자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을 통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나고, 가난한 어린이들도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도서관이 다양한 책을 구매하면서, 베스트셀러가 아닌 분야의 전문적이거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책들도 출간의 기회를 갖게 된다. 책을 쓰는 사람들과 책을 읽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종합 인터페이스가 바로 도서관이다. 책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도서관의 의미도 줄어들지 않는다. 문화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경제적으로, 특히 국민경제의 시각에서 AI 시대에도 도서관의 역할은 여전히 핵심적일 것이다.
언제 도서관을 그만 만들어도 되는가? 간편하게 생각하면 미국이 도서관을 포기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꽤 오랫동안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도서관의 가치를 가장 크게 인정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도서관이 왜 필요하냐고 하는 사람은, 국민경제의 국가 간 경쟁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AI 시대, 국가 간 경쟁에서 책 시장은 줄어들 수 있지만, 책의 중요성과 도서관의 역할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노벨상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석훈_경제학자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대 환경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국무조정실 등에서 환경관리와 기후변화협약 담당 업무를 수행했다. 수년간 기후변화협약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국제협상에 참가했고, 한국생태경제연구회의 설립에 참여한 이래 생태경제학의 기본 이론을 정리하고 생태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 《88만원 세대》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힘내라, 도서관》 등이 있다.
어린이도서관이라도 지키자우리 집 둘째는 태어날 때 숨을 못 쉬었다. 청색증이라는 단어는 그때 처음 들었다. 조선시대였으면 아마 아이도 죽고 아내도 죽었을 것 같다. 2016년 총선 때 어찌하다 보니까 나는 민주당의 정책을 총괄하고 있었다. 아이가 세 살 때 폐렴으로 병원에 두 번째 입원을 했는데, 순천에 가는 비행기에서 ‘선거가 끝나고 나면 아픈 아이와 아
일제의 '무도서관 정책'을 끝낸 3.1 운동과 인정도서관도서관 경제에 관한 책을 준비하면서 도서관 역사를 대충 훑어보았다. 자료가 많지는 않았는데, 내가 아는 것과는 좀 다른 사실들이 많았다. 그냥 대충 알고 있던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에 도서관을 만들었고 그렇게 한국이 도서관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많은 뉴라이트 계열이 말하는 건,
디지털 네이티브3년을 끌던 코로나 비대면 시대가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강의실 밖 캠퍼스는 만개한 겹사과꽃처럼 활기로 가득하다. 대면 강의는 물론 답사, MT 등 미루어놓았던 모임과 만남이 끊임이 없고 일정 너머 일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교수라면 이럴 때 간절한 것이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편안한 의자에 기대 좋아하는 책을 펼치는 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