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장편소설 《디어 마이 송골매》를 출간하면서 작가의 말 말미에 나는 이렇게 썼다.
‘작가의 말을 근사하게 쓰고 싶었는데 잘 안 된다. 글보다 앞서는 어떤 마음 때문이다. 그 마음을 간략하게 줄일 수 없어 소설로 대신했으니 길이로 보나 쓴 시간으로 보나 가성비는 그야말로 꽝이다.’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어떤 마음’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덕질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덕질이란 ‘어떤 분야(사람 등)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며 그 관련 자료를 모으거나 파고드는 것’이라고 AI는 정의하지만 그 마음을 감히 AI가 어떻게 알겠어. 인간이 품고 사는 오랜 열망과 애정에 대해, 그리하여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생의 비밀이 되기도 하고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대해. 인공지능이 만능이 된 줄 아는 세상에서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호젓이 의기양양해진다.
삼중당 문고판 한 권에 600원 하던 시절, 송골매 사진 한 장에 100원이었던가, 150원이었던가. 책도 사고 싶고 사진도 사고 싶어서 등하굣길을 걸어 다니기 일쑤였다. 도시락 두 개 든 책가방을 양쪽 어깨에 번갈아 멨다가 급기야는 끌어안은 채 버스로 너덧 정거장 되는 거리를 걷다 보면 배는 고프지, 기운은 달리지, 눈앞이 캄캄해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병아리 눈물만 한 용돈을 아낄 다른 방법이 없어 가방으로 허기진 배를 눌러가며 걸었다. 그게 꼭 가난 때문은 아니었다. 사교육이 금지된 시절이라 자식 많은 우리 집의 가계도 그럭저럭 굴러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그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는 송골매 사진과 카세트테이프와 이런저런 곡들을 모아 녹음한 믹스 테이프까지 탐내기에는 어림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떡볶이를 포기할 수도 없고 말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행정복지센터 간 김에 해본 인바디 측정에서 하체 근육만 튼실하다 나온 결과는 그때 이미 예정된 운명이었으리.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2(인터뷰)》. 이 책에서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모두 다 사랑하리〉 등이 수록된 송골매 2집을 48번째 명반으로 꼽았다. 챕터 제목은 ‘가장 높이 비상했던 록의 이름’. ⓒ도서출판 선
소설을 써보자고 용기를 낸 건 내가 마흔다섯이 된 해였다. 그전까지 소설가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내가 소설을? 내가 어떻게? 어쩌면 그런 의문조차도 품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찌되었건 소설을 쓰자고 결심했다. 결심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렸지만 그 후로도 몇 달 동안 도대체 뭘 써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만 하고 있었다. 어느 저녁 우연히 가족이 틀어둔 토크쇼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였다. 좋아하는 마음 저 아래에는 원망도 있었다. 왜 이제 음악을 하지 않는가. 왜 음악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서 더 좋다고 하는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록밴드(예전에는 그룹사운드라고 불렀다) 송골매의 보컬이자 리더 배철수였다(대면 시에는 선생님이라 부르지만 여기서는 존칭을 생략하기로 하자. 왜냐하면 덕질의 대상은 인격체 이상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무한한 애정과 약간의 미움을 품고 있었던. 애정의 역사는 송골매 이전 활주로 시절부터였지만 미움의 역사는 더 이상 연주를 하지 않은 시점부터였다. 물론 구창모(역시 존칭 생략!)와의 결별 이후에도 마음 한구석이 늘 시렸다. 아! ‘젊음의 행진’ 생방송에서 감전 사고를 당했던 그날이 생각난다. 그때 얼마나 큰 충격과 걱정으로 밤잠을 설쳤는지!
얘기가 자꾸 옆으로 새는 듯하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그때 내 첫 소설이 정해졌다. 그래, 잘 아는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쓰자!
그 방송을 다 보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데스크톱 하나로 세 식구가 함께 쓰던 시절이었다. 나는 언제나 3순위였다가 곧 1순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점점 즐거워졌고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자 소설인지 뭔지 알지 못할 어떤 글이 완성되었다. 분량은 147매. 내용은 곤고하게 살아가는 중년의 여성이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를 앞두고 예전에 함께 덕질을 했던 친구를 찾고, 만나고, 그 친구한테 속고, 울고, 혼자 재결합 콘서트에 가서 블라블라블라······.
그 글을 완성하고 나자 내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난생 처음 온전히 혼자 결정하고 혼자 용기를 내어 혼자 해낸 작업이었다. 금전적 보상은 없었다. 쓰는 일이 그토록 순정하여 자본주의에 역행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먹고살기 괜찮은가 보지. 중년의 여성이 글쓰기에 매달릴 때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먹고살기 힘들었다.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살아 있는 죽음, 죽어 있는 삶이란 역설에 사로잡힌 채 하루하루 생존에만 허덕였을 것이다.
또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하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자. 소설이라 하기엔 멀고멀었던 그 글을 쓰면서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이 있다면 오랜 기간 나의 원대한 소망이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였다는 것인데, 한편 그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내 의지와 무관했으므로 소망하되 동시에 절망하게 되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글을 오랫동안 매만졌다. 다시 쓰고 고쳐 쓰고 늘여서 쓰고 다시 줄여서 쓰는 동안 10년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때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렸다.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 그때의 내 마음을 나는 아직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문자 그대로 심장이 쿵쾅거리고 피부 여기저기에서 땀이 배어났다. 속이 메슥거리는 것도 같았고 어지러운 것도 같았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었지만 무언가를 할 수도 없었다. 혼란과 흥분과 기쁨이 폭포처럼 전신을 강타했다.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시자 조급함 속에서도 각오를 다져야 했다. 그전까지 혼자 울고 웃으며 고치고 또 고치던 글을 세상으로 내보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사이 나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가로서 두 권의 책을 출간한 터였다. 그 글이 나의 세 번째 책이 되어야 했다.
새 파일을 열고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구성이 완전히 바뀌었고 새로운 인물들이 투입되었다. 재결합 콘서트를 디데이로 설정하고 그 100일 전 시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침내 40여 년 덕질이 소설 한 편에 압축되었다. 책은 재결합 콘서트 1주년에 맞춰 출간되었는데 추천사를 배철수 선생(이럴 때는 저절로 경칭이 붙는 신기한 현상)께 받았다. 다시 무대에 서주셔서, 또 매일 멋진 음악을 들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오래 곁에 계셔달라고 DM을 보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콘서트 후 급조된 ‘상품’이 아님을 강조했다. 덕질은 나 같은 내향인에게도 도발적인 용기를 부여해준다. 음반과 콘서트장 입장 오픈 런을 기다리며 며칠씩 한뎃잠을 자는 극성팬들을 생각해 보시라! 무서울 게 없다.
《디어 마이 송골매》 표지 ⓒ교유서가
콘서트는 이틀 연속 갔다. 코로나 시국이었는데 마스크가 다 젖도록 울었다. 고마웠고 행복했고 벅찼고 죽도록 기뻤다. 2022년 추석 연휴였다. 올림픽공원을 서성이며 만났던 그토록 낯설고 익숙했던 중년들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시간만큼은 의심 없이 가까운 친구였다. 그리고 2024년, 또 이틀 연속 콘서트에 갔다. 《디어 마이 송골매》가 2023년 출간되었으므로 그때는 책을 들고 갈 수 있었다. 나는 공연장 앞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흉내 낸 사진을 찍었다. 횃불 대신 소설책을 높이 들었지만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미쳐도 아주 미친 상태였으니까. 덕질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미치는 것, 미치고도 부끄럽지 않은 것, 미쳤음을 자랑하고 싶은 것. 광장에서 빛났던 수많은 응원봉을 떠올리면 이해가 되시려나. 나도 물론 응원봉을 흔들었다. 송골매 봉은 판매하지 않아 주문, 제작했다. 거창한 건 아니다. 유치원 재롱잔치에 쓰는 물건이었다. 부끄럽지 않다고 위에서 밝혀두었듯 나는 그 유치찬란한 응원봉을 아주 자랑스럽게 쳐들고 행진했다.
숨을 고르고 정색하며 말하건대, 덕질은 필연적으로 추억이 되지만 추억에만 머물지 않는, 펄떡거리는 현재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써봤자 모르는 사람은 끝까지 모르는 일. 뭐 어쩌겠나. 나로서는 안타까울 뿐.
소설을 출간하고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해 ‘성덕’의 반열에 오름. ⓒ이경란
이경란_소설가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구에서 태어나 텔레비전과 라디오, 만화를 섭취하며 성장했고 시립도서관 담장 옆집에 살면서 책 읽기에 재미를 붙였다. 소설집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 《사막과 럭비》 《소년들은 자라서 어디로 가나》, 장편소설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 《디어 마이 송골매》가 있다.
[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입장료 5원의 신세계로부터기억 속 최초의 도서관은 대구 중심가에 있던 시립도서관이다. 붉은 벽돌로 육중하게 지어진, 일제 강점기의 양관이었던 그 도서관이 애초 어떤 용도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듣기로는 형무
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배경으로 하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지역을 둘러싼 문학적·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문학관 기행 연재를 맡은 신구도서관재단 이창경 이사가 부산에 소재한 추리문학관을 기행한 내용을 6월 호에 게재한다.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6월 바닷바람은
윈터링(Wintering). 책의 영어 원제는 이렇다. ‘겨우살이’라든가 ‘겨울나기’ 쯤으로 번역하면 그만일 테지만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겨울이라는 계절의 함의를 다시금 생각해보라는 뜻인 듯하다. 우리는 지금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 서서히 추위에서 벗어날 채비를 하려 한다. 이번 겨울은 어땠는가. 견딜 만했는가?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