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순천만 습지 ⓒ 이경란
입장료 5원의 신세계로부터
기억 속 최초의 도서관은 대구 중심가에 있던 시립도서관이다. 붉은 벽돌로 육중하게 지어진, 일제 강점기의 양관이었던 그 도서관이 애초 어떤 용도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듣기로는 형무소 건물이라고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내가 들어갈 수 있던 건물은 본관이 아니라 그 옆에 작게 지어진 어린이 열람실이었고, 당시로는 현대식 건물이었다. 5원이었던가, 10원이었던가. 입장료를 내면 그림책이며 동화책을 하염없이 읽을 수 있었다. 만화방에 가서 그만큼 만화를 보려면 20원을 내야 했다. 반값 혹은 그보다 더 싼 값에 눈치 보지 않고 다양한 책을 지겨워질 때까지 볼 수 있는 도서관은 내게 어마어마한 신세계였다.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는 맛이란 정말이지 깨소금보다 고소하고 짭짤했다. 밥때를 놓치고도 배고픈 줄 몰랐고, 몇 시간을 책들에 푹 파묻혀 있다 보면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보다 재미가 났다.
하지만 그렇게 도서관에서 책들을 골라 읽는 재미는 그로부터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청소년에게 그러했듯 도서관은 주로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로 영어나 수학을 공부하러 가는 곳, 우동을 파는 매점이 있는 곳, 비록 자판기였지만 때 이르게 커피 맛을 배우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잔디밭이나 나무 그늘 벤치에서 어설픈 감상에 젖었던 기억도 물론 빼놓기 어렵다.
삼산도서관의 생각, ‘시민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한 해의 일들을 돌이켜보며 떠올리게 되는 기억 중 삼산도서관에서의 일을 빠뜨릴 수 없다. 봄에 시작한 글쓰기 강의가 여름까지 이어졌는데 그 일이 아니었다면 순천도, 삼산도서관도 내 인생의 변두리에조차 자리를 잡지 못했을 터이다. 남쪽 바다에 면한 순천은 내게 먼 곳이어서 고달플 것도 같았지만 그건 섣부른 예상이었을 뿐 실제로는 갈 때마다 즐겁고 설렜다. 바쁜 일상을 쪼개어, 또 남들은 불금을 구가할 시간에 도서관으로 오는 분들을 만나는 일이 어찌 그렇지 않을까. 여러 강의 중에서도 어찌어찌 나와 닿은 소중한 인연들이니 말이다.
순천시립삼산도서관 전경 ⓒ 이경란
삼산도서관은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문학이나 글쓰기 강좌를 열 뿐 아니라 도서관이 시민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을 마련한다. 이를테면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대출 택배 서비스라든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한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 들이 그렇다. 취약계층 대상의 특화된 프로그램들 외에 흥미로운 작업도 진행한다. ‘1111 프로젝트’는 1년간 111권 책 쓰기 사업으로, 작년에 사업을 달성하여 현재 기네스 등재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아무리 예향이라고는 하나 지방 소도시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31년째 도서관에서 근무해온 신춘우 관장의 노련하고도 진취적인 운영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여기가 원래 군부대가 있던 자리입니다. 부대가 외곽으로 이전한 후 설립된 곳이라 더 의미가 있는 곳이에요. 2011년에 개관했고 도서관 외에도 평생학습센터, 400석 규모의 다목적 홀이 연계되어 있습니다. 순천 출신 문인들과 시민들이 지은 책 1만 1천여 권이 소장, 비치되어 있기도 합니다. 순천의 4대 문인인 조정래, 서정인, 김승옥, 정채봉 선생의 책들도 물론이고요. 저희의 큰 자부심입니다. 삼산에서는 도서관 문화의 저변 확장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작년에는 전국 도서관 장애인 서비스 사례 2위로 선정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호응해주신 시민들 덕분입니다.
- 신춘우 (삼산도서관장)
규모가 큰 현대식 건물을 들어서면 입구 왼쪽에 대출 코너가 있다. 대부분의 도서관이 층마다, 열람실마다 별도의 대출 코너를 운영하는 것과는 달리, 서가를 통합해 한 군데에서 대출 신청을 할 수 있어 동선이 절약되는 편리함이 있다. 도서관 전체가 하나의 서가인 셈이다. 특별히 눈길을 끌어당기는 곳은 여순 항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은 공간이다. 어느 땅이 찢기고 할큄을 당한 역사가 없을까마는 순천 역시 민중의 고통이 서린 곳, 도서관은 죽은 지식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님을 관련 자료와 도서를 따로 비치해둔 이 공간이 새록새록 일깨운다.
순천 시민이 쓴 책을 모아놓은 공간 ⓒ 이경란
순천행이 차차 몸에 익으면서 딱 강의만 하고 돌아오는 길이 점점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순천의 명소 한번 못 가보고 이대로 여덟 번의 강의가 끝나면 어쩌지? 순천만 습지의 갈대숲이 그렇게 아름답다던데. 국가정원은 규모도 엄청나지만 그렇게 잘 꾸며놓았다던데. 낙안읍성은 또 어떻고. 드라마 촬영장도 볼거리가 많다던데. 언제나 가볼 수 있을까? 게다가 혼자?
그러던 중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청탁받고 쾌재를 불렀다. 고기 먹고 싶은데 텃밭 상추를 한 아름 갖다 안긴 격이라고나 할까. 더욱 놀라운 일은 오래전 직장 동료가 순천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이제 핑계도 주어졌고 일행도 꾸려졌다. 우리는 신나게 ‘카톡카톡’ 울리면서 삼산도서관 주변 도장깨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바지런한 동료는 혼자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엄선하여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게 링크를 보내왔고 스케줄을 조율했다. 단시간에 두루 돌아볼 수 있는 동선을 제안한 것은 물론이고 소탈하고 살가운 말들로 30년간 만나지 못한 격절감을 한방에 날려주었다.
도서관 주변, 순천만 습지에서 낙안읍성까지
드디어 국가정원 매표소 앞 나무 그늘에 미리 와 있던 그와 해후하던 순간, 우리에게는 오랜만이라는 인사조차 필요 없었다. 장거리 운전에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워낙 체력에는 자신이 없는 나를 위해 그는 국가정원의 스카이큐브를 타고 순천만 습지로 바로 넘어갔다. 마치 놀이동산 관람차에 탄 것처럼 설렌 내 눈앞에 펼쳐지는 그 풍광이라니! 우리는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소소한 근황을 주고받으며, 다가왔다 멀어져가고 또 다가오는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상에 발을 디뎠을 때 훅 콧속으로 들어오는 습지의 냄새. 그것이 정말 냄새였는지, 습지의 냄새라는 것이 실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비염으로 매일 티슈를 반 통씩은 쓰는 나의 폐부를 무언가 새롭고 신선하되 시원(始原)을 간직한 공기가 씻어냈다. 갈색의 갈대와 초록의 여린 갈대(여린 갈대는 처음 보았다)가 선명한 경계를 긋고 있는 광활한 습지로 들어갔을 때는 방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지질한 상념들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일상으로 복귀하면 다시 질기게 들러붙을지언정 그 순간만큼은 한바탕 통곡하고 싶을 만큼 지극한 어딘가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찰나였지만 충분했다.
다시 스카이큐브를 타고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앉아 국가정원으로 넘어온 우리는 이게 하루 만에 볼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는 감탄을 꽃송이마다 흘리며 걸었다. 강익중 작가의 <꿈의 다리>를 건너며 우리 젊은 날의 꿈이 분명 빛나기도 했었음을 상기하기도 했다.
해는 넘어가고,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흥분을 안은 채 도서관 쪽으로 향했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간 식당의 옥호는 ‘춘천마쪼은닭갈비’. 도서관 사서가 추천한 곳이었는데, 순천에서 웬 춘천 닭갈비냐 싶었지만 맛집이란 게 워낙 경험자의 판단이 절대적이지 않던가. 심심해 보이는 상차림과는 달리 깔끔하고 깊은 맛이 옛정을 나누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우리, 전에 야근할 때 자판기 커피 참 무지 마셔댔는데” 재잘거리면서 찾은 인근 카페 ‘비 레스트’에서의 커피 한 잔도 빼놓을 수 없다. 삼산도서관 옆, 순천대 건너편에 위치한 카페는 대학가답게 수수한 듯 정겨운 인테리어와 깔끔한 커피 맛, ‘카공족’을 위한 지하의 넓은 공간 등이 인상적이었다. 나눌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수다는 수다를 낳는 법이라, 커피 마시랴 수다 떨랴 우리가 그 밤 순천의 소음 데시벨을 조금쯤은 올리지 않았을까.
소음은 아니지만 데시벨이라면 맹꽁이 소리를 능가할쏜가. 혼자 돌아온 숙소의 열린 창으로 맹꽁이 소리가 밤새 들려왔다. 그 압도적인 생명의 소리. 와그르르 쏟아지는 밤별만큼 조밀한 소리가 어떻게 숙면을 불러주었는지 모르겠다. 아침이 되자 맹꽁이 소리는 간 데 없고 햇살이 눈부셨다.
강익중 작가의 <꿈의 다리> ⓒ 이경란
둘째 날의 첫 행선지는 드라마 촬영장. 촬영이 없는 촬영장은 우리를 순식간에 어린 시절로 데리고 갔다. 쌀집과 전파상과 달동네를 기웃거리다 내가 잠깐 홀린 곳은 디스코장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뒤적여보는 사진들 사이에서 동영상을 하나 발견했다. 번쩍이는 조명 사이로 울려 퍼지는 음악. 너무나 익숙한 팝송인데 곡명이 생각나지 않는다. 오래전 몇 번 가본 디스코장의 광란이 고스란히 기억나는데 어째 곡명은 입에 맴돌기만 하고 떠오르지 않을까. 이토록 유정한 공간에서 맛보는 시간의 무정함이여. 돌연 영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촬영 중 나도 모르게 몇 번 풀쩍거린 흔적. 드라마 촬영장을 나와서는 ‘봉화식당’의 푸짐한 생선구이 상을 받고 풀쩍거려 탕진한 기력을 회복했다. 다음 행선지는 마침내 낙안읍성.
견문이 좁고 얕은 나의 눈에도 낙안읍성은 보존과 관리에 공들인 티가 났다. 높지 않은 성곽과 야트막한 해자, 초가지붕이 연이은 읍성에서 어떤 목소리를 들어야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도서관에는 없는 날것일 터인데,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했건만 나는 어리석은 농자(聾者)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어떤가. 하루, 한 달, 한 해를 거듭하는 동안 그들의 목소리는 시나브로 내게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민초들의 삶은 사실 보존된 읍성에 떠도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면면할 따름이다.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구에서 태어나 텔레비전과 라디오, 만화를 섭취하며 성장했고 시립도서관 담장 옆집에 살면서 책 읽기에 재미를 붙였다. 소설집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 《사막과 럭비》 《소년들은 자라서 어디로 가나》, 장편소설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 《디어 마이 송골매》가 있다.
2023년 장편소설 《디어 마이 송골매》를 출간하면서 작가의 말 말미에 나는 이렇게 썼다. ‘작가의 말을 근사하게 쓰고 싶었는데 잘 안 된다. 글보다 앞서는 어떤 마음 때문이다. 그 마음을 간략하게 줄일 수 없어 소설로 대신했으니 길이로 보나 쓴 시간으로 보나 가성비는 그야말로 꽝이다.’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어떤 마음’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여천천 옆 아름다운 산책로를 거느린 명당울산은 강변마다 생태공원을 조성해 산책로가 잘 이루어져 있다. 여천천 산책로는 공업탑에서부터 출발해 태화강역 근처까지 이른다. 6킬로미터가 넘는 산책로가 형성되어 있다. 주민들이 많이 살기로 유명한
[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한라도서관 진입로, 방선문계곡 숲길 ⓒ강영아 도서관과 자연의 조화《나니아 연대기》에서 수잔이 옷장 문을 열고 신비한 세계로 진입하는 경험을 하듯 이곳, 제주에도 비밀의 문을 가진 도서관이 있다. 한라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바깥 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