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소피 칼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린 적이 있다. 사진과 글을 활용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질 때여서 그의 책이 좋은 레퍼런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였다. 하지만 책을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나는 이내 흥미를 잃고 말았다. 세련되고 도발적이며 매혹적인 작가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 내용들이 상당히 자기 파괴적이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깊이까지 서사가 뻗어나가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시도해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소피 칼은 내 관심의 영역에서 멀어졌다.
그사이 나는 20대에서 40대가 되었다. 예전에, 20대 작가 지망생으로서 나는 소피 칼의 실제 작업이 어떤지와 상관없이 그를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 중 하나로 여겼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주목받고 대가들과 협업하며 일찍이 화려한 경력을 쌓은 근사한 인생을 사는 작가 정도로만 인식했다고나 할까. 한편 시간이 흘러 40대가 된 여성 작가로서 소피 칼의 작업을 다시금 살펴보니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맥락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가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는 에피소드들이 단지 감각적이고 예술적인 영감을 주는 일상적인 사건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여성, 특히 인생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여성들이 쉽게 처할 수 있는 폭력적인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저 가벼이 넘길 수만은 없게 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 〈초상화〉를 먼저 살펴보자. 이야기 속 화자인 아홉 살의 ‘소피’는 엄마에게 온 우편물 속에서 자신을 기숙사 학교로 보낼 것을 제안하는 편지를 몰래 읽게 된다. ‘나(소피)’는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자 엄마의 남자친구 중 한 사람이 실은 자신의 친아빠이리라 생각한다. 아이는 그 남자가 집에 오면 그의 ‘무릎 위에 앉아’ 자신에게 사실을 고백해주기를 기다린다. 그의 무관심과 침묵에 상처받은 아이는 편지를 그림 액자 뒤에 숨겨놓는다. 그렇게 하면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보내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기라도 하듯이. 아이는 버림받을까 두려워한다. 아이는 자신의 친아빠가 누군지 확신을 갖지 못하는 불안정한 정서 상태이다. 아홉 살 된 여자아이가 어른 남자의 무릎 위에 앉아 있다는 대목도 자못 신경이 쓰인다.
세 번째 에피소드 〈코〉에서는 열네 살의 소녀 ‘소피’의 얼굴과 몸의 생김새가 불완전하다고 평가내리며 그 부분들을 성형수술로 고쳐주겠다고 말하는 조부모가 등장한다. 그들은 수술 날짜까지 잡지만 이틀 전 담당 의사가 자살함으로써 수술은 취소된다. 아이의 보호자가 건강상 문제가 없는데도 외모의 부족함을 지적하며 수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권유하고 실제로 실행하려고까지 했다는 이야기는 가혹하고 끔찍하다. 아동학대가 아닐 수 없다.
학대는 집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처녀의 꿈’이라는 제목이 붙은 에피소드에서 열다섯 살의 ‘나’는 식당에 간다. 종업원은 미성년자인 그에게 ‘처녀의 꿈’이라는 디저트를 내온다. 그것은 바나나와 아이스크림을 남성의 성기와 같은 모양으로 배열한 것이었다. 소피는 난처해한다. 짓궂은 장난으로 넘어가기엔 위협적이고 모욕적인 행동이며, 소피는 한동안 남자의 벗은 몸을 보지 못하는 후유증을 앓게 된다. 성인도 아닌 미성년자에게까지 성희롱이 만연했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이야기라고 해석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까울 듯하다.
《진실된 이야기》 속 화자가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가면 폭력의 강도는 더 세진다. 〈면도날〉에서 ‘나’는 크로키 모델이 되어 옷을 입지 않은 상태로 사람들 앞에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 속에 있다. 매일 그림을 그리러 오는 한 남자는 세 시간 동안 공들여 그린 그림을 ‘나’가 보는 앞에서,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면도날을 이용해 갈기갈기 찢는다. ‘나’는 꼼짝 못 하고 그 남자의 행동을 바라본다. 그러한 행위가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남자는 그것을 즐기는 듯하다. ‘나’는 열두 번이나 그 일을 겪었고 열세 번째 날에는 아예 모델 일을 그만둔다.
폭력이 더 직접적으로 행해지는 에피소드도 있다. 〈고양이들〉에서는 ‘나’의 연인이었던 한 남자가 질투심에 사로잡혀 ‘고양이와 잘 것인지 자신과 잘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다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결국 고양이를 목 졸라 죽인다. 고양이는 마치 ‘나’ 대신 희생양이 되어 죽임을 당한 것처럼 읽힌다. 위태로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목〉에서는 밤거리에서 한 남자가 ‘나’의 목을 조르려 했고, ‘나’는 의식을 잃고 거리에 쓰러진다. 〈언쟁〉에서는 사랑해서 결혼한 남자가 ‘나’에게 복종을 요구하며 물건을 집어 던지고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소피 칼의 작업을 언급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도발적인, 장난스러운, 자유로운 상상에서 비롯된 장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에서 겪는 폭력적인 상황을 자기 방식대로 용기를 내어 증언하는 텍스트로 읽힌다.
소피 칼은 사실과 허구를 혼합하며 서사를 만들고 기억과 이야기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과 긴장감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형식을 구축한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진실된 이야기》 역시 이에 충실한 방식을 따르는 듯 보인다. ‘진실된 이야기’라는 제목도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러함에도 독자는 여기 쓰인 이야기들이 정말로 일어난 일이었을지, 허구적인 이야기일 뿐인지 의심하고 묻게 된다. 역자가 후기에서 소개한 일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소피 칼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다는 것은 그의 작업을 대하는 너무나도 순진한 태도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한편으로 나는 전혀 다른 가정을 시도해보고 싶다. 만약 소피 칼이 진짜로 ‘진실된 이야기’만을 말하고 있다면? 오랫동안 사회는 여성이 진실을 말했을 때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스토킹 범죄로 고통받는 피해자에게 너무 사랑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가정 폭력이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는 이유로 범죄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듯이, 여성이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것은 쉽게 사소하거나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10년 전 출간된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을 때, 실제로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을 작가가 과장해서 썼다는 반응에 개인적으로 기함한 적이 있다. 그 소설을 읽은 여성 독자들은 오히려 그토록 평범한, 일상적인 일들이 모여 하나의 소설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러움을 느낀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들은 끊임없이 사실을 이야기해왔으나 사회는 귀 기울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여성들은 오랫동안 사회의 ‘믿을 수 없는 화자’로서 살아왔다.
나는 소피 칼의 작업이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선을 오갈 수 있었던 이유가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위치에 처하곤 하는 여성의 현실을 역으로 활용했기에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글과 함께 실린 사진 이미지는 복잡한 몽타주 효과를 기대하지 않으며 텍스트에서 언급하는 이야기의 실제 오브제를 찍은 것처럼 단순한 연결성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독자는 질문한다. 소피 칼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허구로 들어가는 틈은 어쩌면 소피 칼이 만든 것이 아니라 독자의 마음속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는 어떤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야기를, 특히 자신의 결점이나 연약한 부분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 위해서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지난 몇 년 동안 소설을 쓰고 그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나 역시 많은 용기를 내야만 했다. 《진실된 이야기》의 후반부에 실린 〈병원에 다녀옴〉 챕터에서 ‘나’는 건강검진을 받던 중에 “당신은 슬픈가요?”라는 질문과 맞닥뜨린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예”라고 대답한다. 진실을 말한다는 행위는 때론 슬픔을 감내해야만 가능하다. 그것은 잘 꾸며진 허상처럼 매끄럽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실은 때론 믿을 수 없을 만큼 비현실적이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한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그것만이 우리를 살게 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누구든 자신만의 진실을 계속해서 말하기를 바란다. 그 무엇도 우리가 이야기하기를 멈추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무엇도 우리가 자신만의 진실에 다가가는 길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전하영_소설가
2019년 문학동네신인상, 2021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시차와 시대착오>, <시그투나>를 펴냈다.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요즘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무엇인가. A 최근 좋아했던 단어는 ‘질색’이다. 소설을 쓰다가 어떤 장면에서 화자가 느끼는 애증의 감정을 ‘질
이번 '스토리' 코너에서는 에세이스트 김나리가 도서관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발랄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해질 무렵 오거리에서 정장을 멋있게 입은 사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전에도 몇 번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모두 약속하지 않은 우연한 자리였다. 그는 어느 장소에서든 정갈하게 정장을 갖춰 입었다. 몸에 꼭 맞는 사이즈를 입고도 그다지 불편한 기색
“교육은 세상을 바꾸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 넬슨 만델라 세상에는 사람을 가두는 감옥이 있고, 사람을 키우는 도서관이 있다. 그런데 어떤 특별한 장소에서는 이 둘이 하나가 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해안에서 약 7킬로미터 떨어진 대서양 한가운데, 차가운 바람이 그치지 않는 로벤섬이 있다. 넬슨 만델라는 이곳에 있는 빅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