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전하영 작가와 독서를 함께 하는 반려묘의 모습 ⓒ전하영
Q 요즘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무엇인가.
A 최근 좋아했던 단어는 ‘질색’이다. 소설을 쓰다가 어떤 장면에서 화자가 느끼는 애증의 감정을 ‘질색’이라고 표현했고, 그 말이 품고 있는 시간이 겹겹이 쌓인 듯한 뉘앙스가 문맥적으로 무척 적절해서 크게 만족했던 기억이 있다. 곧 출간될 나의 첫 소설집에도 그 단어가 두세 번쯤 나올 거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자주 쓰고 싶었지만 한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나름 자제심을 발휘했다. 어쩌면 훗날 ‘질색’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Q 영화와 소설의 장르상 가장 큰 차이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A 15년 정도 무명의 영화인으로 살다가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영화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 창작 수업을 들으면서 한국문학을 처음 접했고 그전까지는 아예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던 터라 무엇을 읽더라도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아직도 소설을 쓸 때마다 내가 소설이란 걸 쓰다니, 하고 놀라고 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눈앞이 깜깜해질 때도 많고. 초보 소설가이자 전직 영화인으로서 말하자면 소설과 영화의 차이는 작업을 혼자 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기질적으로 혼자서 작업하는 편이 훨씬 더 편하고 자유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좀 더 일찍 영화를 그만두고 소설로 전향했어도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한다.
Q 예술가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두려울 것은 차고 넘치는데, 그게 꼭 예술가에게만 해당하는 걸까 반문하면 또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예술가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고 싶은 욕구가 강한 부류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아마도 그 목소리가 약해지거나 평범해지는 게 가장 두려운 상황 아닐까. 대개 그 두 가지는 나이가 들면서 한 개인의 개성이 뭉툭해지는 과정 중에 발생한다.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어느 정도 반열에 올랐다고 하는 작가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나이가 드는 것과 더불어서 자기객관화를 잘 하지 못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본다. 전성기 시절 좋은 작업을 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작업 수준이 예전만 못한데 명성이나 대우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좀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그런데 대부분 남성 작가인 것 같다. 여성 작가들의 경우는 일단 살아남는 게 너무 힘든 것 같다.
Q 직장이 미술관이라서 좋은 점은?
A 끊임없이 새로운 전시가 열리기 때문에 지속적인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다. 감각적으로 환기되는 부분도 있고. 미술관의 공간이라는 게 일상적으로 접하지 않는 화이트 큐브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영감을 받을 때가 있기도 하다. ‘문장 웹진’에 발표한 〈경로 이탈〉이라는 단편소설은 그렇게 쓰였다. 관람객에게 오픈되지 않는 제한구역에서는 가로 세로 4미터 이상의 커다란 엘리베이터나 예상치 못한 곳으로 열리는 출입문 등을 만나게 되는데, 처음 접했을 때 그런 사물들에게서 무척 초현실적인 인상을 받았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는 않게 되었는데, 그런 변화들 역시도 재미있게 여겨진다.
전하영 작가가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면 찾는다는 미술관의 도서실 전경 ⓒ전하영
Q 살아가면서 가장 경계하거나 꺼리는 일은 무엇인가.
A 글쎄. 몸이 아픈 게 싫다, 그 정도?
Q 어떤 글을 읽었을 때 ‘아, 이거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야’라고 느낀 경우가 있나.
A 영화를 보면서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아녜스 바르다의 〈방랑자〉, 피터 잭슨의 〈천상의 피조물들〉, 프랑소와 오종의 초기작, 장 뤽 고다르의 60년대 작품들, 〈2046〉 이전까지의 왕가위, 〈헤더스〉 〈트루 로맨스〉 〈아이다호〉 〈천국보다 낯선〉 같은 미국 독립영화들······. 20대 중반 즈음 영화학교를 다니면서 크게 마음고생을 했고, 그러면서 그때 이후로는 이전과 같은 순수한 동경의 감정을 느끼지는 못하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고, 그로부터 어떤 작업이 만들어질 것인가 등 현재 주어진 조건 안에서의 상황과 위치에 집중하게 되었다.
Q 전하영 작가에게 ‘눈[目]’이란?
A 아껴 써야 하는 소중한 도구.
Q 월 도서 구입비로 어느 정도 지출하나.
A 월급의 10퍼센트가량을 도서 구입비로 쓴다. 매년 연말정산 할 때마다 깜짝 놀란다.
Q 생활과 예술 작업 둘을 다 잘 해나가는 노하우가 있는가.
A 매일 퇴사 생각을 한다. 둘 다 잘 해나가고 싶다.
Q MBTI는?
A INTJ.
Q 독서하는 풍경을 소개해줄 수 있나. 무엇을 마시는지, 누구와 함께 하는지 혹은 혼자서 하는지, 음악을 트는지 등.
A 집에서는 주로 소파에 앉아서 편한 자세로 책을 본다. 맞은편에는 고양이가 자리를 잡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언제 자기랑 놀아줄 건가 하는 표정으로. 사무실에서는 구석진 자리에 있는 내 책상에서, 모니터 뒤에 몸을 구기고 책을 읽는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전하영 작가가 독서를 하다 말고 반려묘의 콧등을 살짝 만지고 있다. ⓒ전하영
Q 다른 사람이 나에게 꼭 물어봐주었으면 하는 질문이 있다면?
A 맛있는 식당을 알게 됐는데 같이 갈래요?
Q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는 뭐라고 생각하나.
A 다양성.
전하영이 추천하는 책 다섯 권
《다락방의 미친 여자》(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
제인 오스틴, 메리 셜리, 샬롯 브론테 등 우리가 익히 잘 아는 19세기 영미권 작가 소설의 역사적인 의미를 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재정립하는 책이다. 강렬한 제목만으로도 어쩐지 영감이 솟아나는 기분이 든다. 1970년대에 쓰인 책이라서 지금으로서는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아는 정전이 애초에 어떤 대우를 받았었는지 그 낙차를 경험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개정판이 나오기를 오래 기다렸고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나와 같은 분이 많았으리라 추측된다. 지난 1월에는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열린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서 부분 부분을 발췌해 읽었는데, 올해 안에 꼭 완독하고 싶다. 참고로 책의 정가가 5만 원이 넘어서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할 수가 없었는데 사서 분들께 꼭 추천드리고 싶다.
《우리가 사는 방식-수전 손택을 회상하며》(시그리드 누네즈)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가 추억하는 수전 손택의 40대를 아주 가까이, 때론 너무 부담스러울 만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회고담이다. 시그리드 누네즈는 20대 중반에 수전 손택의 아들 데이비드 리프와 사귀면서 모자가 살던 뉴욕의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젊은 여성의 눈에 비친 손택의 사적인 모습은 언뜻 낯설면서도 우스꽝스럽기도 한 면모가 있어서, 기존에 알고 있던 냉철한 지식인으로서의 수전 손택과는 상반되는 친밀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생활’의 디테일을 무시하고 예술과 글쓰기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바치는 철부지스러운(?) 태도가 개인적으로는 무척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유일무이한 것은 수전 손택의 글뿐만 아니라 작가정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되었다.
《소설 만세》(정용준)
소설가가 되면 다른 소설가 친구가 많이 생길 줄 알았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비사교적인 성격 때문인지 현실에서는 소설가를 만날 기회조차 거의 없었다. (눈물) 정용준 작가의 《소설 만세》를 읽고 있으면 길을 걷다 우연히 소설가 친구를 만나 함께 차를 마시며 글쓰기에 관한 이런저런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소설을 쓰려고 할 때마다 그전에는 어떻게 소설을 썼는지 전혀 모르겠고 도통 감이 안 잡혀 답답해하는 적이 많았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소설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간신히 한 문장을 쓰면 이어서 몇 개의 문장이 함께 손을 잡고 따라온다는 저자의 표현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빛의 시간》(정빛그림)
등단을 하면서 내가 쓰는 소설을 ‘예술가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빛그림 작가의 소설에도 예술가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이상한 여자들이 많이 나오는데, 나는 이상한 여자들이 나오는 소설이 좋더라. 〈벨롱에서〉 〈눈 속의 늑대들〉 같은 작품들은 정말 멋지다. 세련되고 직설적인 문장도 내 취향이고.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페이스 러시》(크리스토퍼 완제크)
SF소설을 청탁받은 후 리서치 차원에서 과학 서적을 여러 권 읽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책이다. 우주여행과 화성 이주를 꿈꾸는 낙관론에 대해 현실적인 문제의 이모저모를 세세히 따져가며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험난한 여정이 될지, 그리고 지난 시도를 돌아봤을 때 어떤 부작용이 뒤따랐는지의 역사적인 사례와 객관적인 정보를 도판과 함께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우주여행이 자살여행이 되지 않기 위한 안내서’다. 저자는 아마도 INTJ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1년여의 시도 끝에 나는 SF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펑크를 내버렸으나, 언젠가는 좀 더 넓은 지평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써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하영_소설가
2019년 문학동네신인상, 2021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시차와 시대착오>, <시그투나>를 펴냈다.
꽤 오래전 소피 칼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린 적이 있다. 사진과 글을 활용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질 때여서 그의 책이 좋은 레퍼런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였다. 하지만 책을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나는 이내 흥미를 잃고 말았다. 세련되고 도발적이며 매혹적인 작가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 내용들이 상당히 자기 파괴적이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깊이까지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백은선에게 ‘고백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A 많은 독자들이 내 시가 고백의 형식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하며
Q 2만 5천여 권의 책과 함께 살기 위한 집을 지으면서 가장 고려했던 점은 무엇인가.A 첫째, 책은 습기와 햇빛에 취약하기 때문에 이 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창문을 수평고창(水平高窓)으로 설치해 책장을 직접 비추는 햇빛을 차단했다. 환기가 잘 되고 많은 책을 수장하기 위해 층고를 4.5미터로 높게 했다. 둘째, 작은 도서관으로 개관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