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 인터뷰] 반도체 산업과 국가 경쟁력, 기술의 끝에서 인간을 묻다_유웅환 박사가 들려주는 기술 문명 전환
유웅환_한국벤처투자 대표이사, 전 인텔 수석 매니저
2026-05-2810:00
이번 호 석학 인터뷰에서는 ‘기술이 아니라 문명이 바뀌고 있다’는 관점으로
반도체 산업 발전의 본질을 설명하는 유웅환 박사를 만났다.
AI 시대에 연산보다 데이터 이동이 중요하다는 개념,
그리고 GPU와 메모리가 결합된 기술은 앞으로 어떤 형태로 세상을 바꿀 것인지,
또 한국이 자율주행이나 피지컬 AI 산업에서 앞서가 국가경쟁력을 높일 가능성은 있는지,
이 기술 변화가 일상의 교육 방식이나 공부 방법에 어떤 영향을 줄지 의견을 들어보았다.
“결국 기술은 곧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반도체 전문가 유웅환 박사의 의견을 경청해본다.
영상 차례
00:55 지식 관리 방식과 리더십 노하우
03:10 반도체 전문가가 되기까지 영향받은 인물
05:00 AI 시대,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본질
06:30 데이터 폭발 시대의 핵심, 메모리 반도체
07:34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술
09:05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양극화 문제
11:10 국가의 AI 인프라 선투자, 이익의 국민 환원 모델
14:36 《반도체 열전》을 쓰게 된 계기와 메시지
15:37 글로벌 AI 표준을 주도할 최적의 테스트베드, 한국
18:36 AI 시대, 교육의 방향
24:10 도서관, 지식을 통합하는 폴리매스형 인재를 육성하는 장소
26:13 지금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가치
지식 자산을 축적해온 자신만의 방식
더 라이브러리(이후 ‘더 라’): 인텔, 삼성, 현대차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을 거치셨는데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 터득하신 지식 관리 방식이나 리더십 노하우가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어요?
유웅환(이후 ‘유’): 지식 관련해서 제가 중점을 뒀던 거라면, 입체적인 사고나 입체적인 지식을 쌓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시간 도메인에서 문제가 생긴다, 내가 설계한 게 문제가 생긴다, 하면 ‘이거를 주파수 도메인으로 바꿔보면 어떻게 보일까? 이 현상이’, 뭐 이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거의 10년 가까이 있는 동안 계속해서 프리퀀시 도메인 워킹그룹(Frequency Domain Working Group)이라고 해서, 인텔 내에서 직원들을 통해 크로스 사이트(cross-site) 교육을 했던 것 같아요. 온라인으로 들어와서 같이 회의도 하고, 자기 사례도 나누고 이러면서.정육각형을 정면에서 보면 정사각형인데 좌우에서 보면 ‘아, 이게 주사위 모양의 육면체구나’, 이걸 알 수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좌측에서도 보고 우측에서도 보고 위에서도 보고 이렇게 하면서 입체적으로 문제를 풀기 위한 접근 방법이죠.
리더로서의 역할이라면 아무래도 실리콘밸리가 개인의 능력을 회사의 경영 성과에 연결을 잘 시켜주거든요. 그걸 얘네들은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해서 남들보다 먼저 생각하고 먼저 개발하고 먼저 돈을 버는가,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런 선도 기업이 되나, 이런 것에 대해서 고민할 때 리더십의 역할이 상당히 크더라고요. ‘이 방향으로 가면 돼. 자, 여기다가 우리의 리소스를 넣을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방향은 이렇게 내가 제안을 하지만 한번 여러분의 생각을 담아봐.’ 이런 식으로 좀 더 구체적이고 전략적인 방향을 잘 제시해주는 리더십. 이런 거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공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반도체 전문가가 되기까지 영향 받은 인물이나 분야
더 라: 반도체 엔지니어의 길을 걷게 되기까지 영향을 받으신 분이 있나요? 그런 가족이나 멘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유:저희 아버지께서 반도체 초창기인 80년대부터 투자를 하셨던 분입니다. 당시 삼성 반도체 자체도 이게 앞으로 돈이 될까, 이런 의구심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때 “모든 전자제품은 자동화가 될 거고, 기계들이 자동화가 될 거기 때문에 반도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산업의 쌀이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용기를 북돋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는 약간 사람 중심적이세요. 사회 공헌도 많이 하시고 지금도 기부를 굉장히 많이 하시거든요. 그리고 나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생각하시고요. 그래서 저 또한 ‘아, 이 기술이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도움을 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MBTI를 보면 제가 좀 사회문제를 푸는 걸 좋아하고, 그걸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성향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지식적인 측면에서 영향을 주신 분은 카이스트 김종우 교수님입니다. 반도체 분야 초창기에 제가 1호 박사인데요, 이 분야를 개척하는 데 교수님이 지도를 잘 해주셔서 거기에 몰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식적인 측면에서는 김종우 교수님이 인생의 멘토이십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본질
더 라: 일반인들은 메모리 반도체가 왜 중요한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AI 시대에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유:기본적으로 메모리의 비중은 예전에 PC에서 모바일을 거쳐 AI 시대로 가면서 더 비중이 커집니다. 왜 그러냐면, GPU AI 시스템의 성능을 저는 메모리가 한 70~80퍼센트 정도 결정한다고 봐요. 비중이 상당히 올라갔죠. 이 메모리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를 우리 인체와 비교해서 말씀드리면, AI는 사실 사람을 모방하는 기술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우리 인체, 사람이 하는 일을 모방하는 건데, 그러면 반도체는 뭐냐. 이제 외부의 데이터가 메모리로 들어오죠? 그리고 (필요할 때) 그 기억을 불러오는데 그게 메모리예요. 그 데이터를 가지고 생각하는 내가 프로세싱(processing)을 하는 거죠
(메모리에 저장된 데이터에서) 정보를 뽑아내 ‘이건 이렇게 해라’ 하고 명령을 내리는 건 신경망을 타고 내려가는 ‘통신’이라고 보시면 쉽죠. 심장에서는 그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거고요. 그래서 반도체를 인체로 얘기하면 세포에 준하는 것 같아요. ‘산업의 세포다’라고 말하고 싶고요. 그중 메모리라는 거는 뇌에서 가장 중요한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그런 유사성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더 라: 데이터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게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유: 5천 년 동안 우리가 쌓았던 데이터가 3년에서 5년 사이에 두 배가 되었거든요. 근데 앞으로는 제가 볼 때 2년에 두 배, 심지어 1년에 두 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AI도 스스로 데이터를 만들어내잖아요, 사람만 하는 게 아니고. (폭발적인 가속도가 붙어) 데이터 양이 무진장 많이 늘어납니다. 요즘 데이터는 다 0하고 1로 표현되는 디지털 데이터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게 (제 역할을 하려면) 저장이 돼야 하잖아요. 아니면 GPU나 CPU에서 계산이나 추론이 되든지 해서 그 데이터가 통신망에서 흘러 다녀야 합니다. 데이터의 흐름이 거기에 있는 거죠. 그러면 당연히 반도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 데이터를 담아야 하니까. 그래서 그 데이터를 담아내는 저장소, 메모리 반도체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술
더 라: “기술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데, 이 철학이 AI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시나요? AI가 오히려 사람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도 있는데요.
유:데이터도 양질의 데이터가 많은 게 중요해요. 그래서 데이터 경제에서 제일 중요한 게 저는 ‘통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많은 데이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양질의 데이터를 뽑아서 쓸지가 관건입니다. 그걸 가지고 AI를 잘 트레이닝시켜야 AI가 사람 중심의 데이터 경제를 만드는 데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죠.
링컨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을 계속 연구하다 보니까 기술을 만들어내는 주체도 사람이고, 그거를 활용하는 것도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 기술이 향하는 방향에 대해서 생각을 한 게, 기술이 개발됐는데 그게 인류를 멸망시키는 기술이다 그러면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인류의 번영에 도움이 되고, 사람을 중심에 두고, 지속 가능한 기술이 저는 의미가 있다고 보거든요.
AI 기술도 좀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AI 시대에 우리가 유토피아로 갈 것인가, 아니면 디스토피아로 갈 것인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저는 되게 걱정스러운 면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진짜 국가가 역할을 잘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가면 디스토피아로 가는 거죠.
일자리 감소와 양극화 문제
더 라: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양극화 문제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로서 국가는 이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유:지금 AI가 빼앗는 게 일자리만이 아니고 우리 소득까지 뺏어가는 거거든요. 제가 미국에 있지만 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data scientist) 이런 사람들이 취업을 못 해요. 왜냐하면 클로드(Claude)도 그렇고 오픈AI도 다 AI가 코딩하거든요. 사람이 코딩하는 게 아니에요. 그것도 굉장히 수준급입니다. 굳이 주니어를 뽑아 가지고 교육을 시켜서 성장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여기서 결과를 얻고, 속도가 생명인 AI 시대에는 미국도 그런 걸 하기 힘들어요.
아마존도 그렇고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다 사람 엄청 자르잖아요. 이게 왜 그러냐면, 그 인프라에 투자할 돈을 조달하려다 보니까 인건비가 굉장히 큰 부담(overhead)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사람을 줄이는 거예요. 어차피 그 공백은 AI가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게 계속 가속화되고 있는 거죠. 미국이 그런 상황이니 우리나라는 더더욱 심한 거고, 청년들 일자리는 점점 더 사라질 거고, 그게 다른 분야로 계속 확산이 될 겁니다.
그러면 국가는 어떻게 해야 하지? 손 놓고 그냥 미국처럼 신자유주의로 기업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게 장을 열어주고 국가는 최소한의 규제, 네거티브 규제(원칙적 허용·예외적 금지)만 하고 기업에 맡긴다? 정부의 역할은 축소하고. 이게 맞는 거냐 이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야 합니다. 아까 데이터 통제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실은 ‘부의 분배’ 문제도 중요합니다. 이제는 AI가 굉장히 많은 부를 만들어낼 거예요. 그런데 그거를 어떻게 하면 잘 분배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만드느냐가 이제 국가가 할 역할인 거죠.
더 라: 국가가 AI 인프라에 선투자하고 그 수익을 국민에게 환원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 모델을 참고할 수 있을까요?
유:정부 정책을 제가 많이 해봤기 때문에 아는데, 이게 재원 마련과 세금이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세금을 많이 걷으면 기업들은 AI 시대에 지금 투자할 돈도 없는데 발목을 잡는다 그럴 거 아니에요. 그래서 생각해본 게 노르웨이의 국부펀드 사례입니다. 노르웨이가 석유를 전략자산화해서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국민들한테 복지나 기본 소득으로 분배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아, 그럼 AI 인프라를 국가 자산으로 하면 되겠구나’ 생각을 해낸 거죠. 노르웨이와 유사하게. 그래서 요즘 AI 컴퓨팅이나 데이터센터나 이런 것들에 국가가 자금을 쏟아붓고 GPU를 5만 개씩 사잖아요. 투자도 굉장히 많이 해요. 소버린 AI(Sovereign AI, 국가 주도형 AI) 거기다 돈을 엄청 넣거든요. 또 AI 투자 인베스트먼트 쪽에도 굉장히 돈을 많이 넣고 있어요.
에너지 인프라가 없으면 AI가 동작이 안 됩니다. 엄청나게 에너지를 많이 먹는 시스템이에요. AI 전력 과부하로 블랙아웃이 올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국가가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에너지 인프라를 깔아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비용이 엄청나게 들 거거든요.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도 마찬가지입니다. AI 학습에 쓰는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데이터 배당금’ 얘기도 나오고 있고요. (데이터가 막힘없이 흐르도록 돕는) 통신 인프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커넥티비티(connectivity)도 굉장히 큰 인프라거든요.
이게 공공재입니다. 그런 모든 것들에 국가가 선투자를 해주면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줍니다. 그런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국민 세금에서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그 투자에 대한 수익 역시 국민에게 분배를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국가도 이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투자를 하고, 거기서 캐피탈 게인(capital gain)을 바탕으로 자본 소득을 가지고 그걸 국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그게 이상했어요. 국가가 어디다 투자한다는 게 이상한 거잖아요. 그러면 불공정해지잖아요. 내가 심판도 하는데 선수도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제가 KVIC 대표로 있으면서 느꼈던 게, 국민 세금 1조 원을 투입해서 벤처 스타트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만들어주잖아요? 그러면 이게 공공의 이익에 준해서 세금을 적절하게 쓴 거죠. 근데 AI 시대에는 상황이 달라요. 그렇게 투자를 했는데 AI 회사만 돈 벌고 일자리는 막 줄여요. 그러면 공공이 세금을 인프라에 투자했는데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 상황이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게 잘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다시 디자인을 해줘야 한다는 거죠. AI가 경제적 가치를 만들고, 우리 사람은 사회적 가치와 지속 가능한 인류의 성장을 위해서 긴 호흡에 투자를 해주면 됩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기관은 국가죠. 이제 국가가 그 역할을 해서 양 수레바퀴가 균형을 잡아야 균형 잡힌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반도체 열전》을 쓰게 된 계기와 한국이 가진 강점
더 라: 저서 《반도체 열전》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유: 예전에 학생 때 어떤 분야에 대해서 3개월 동안 연구해서 논문을 쓰고 그거를 마무리 짓는 건 미래에 ‘아, 내가 이런 연구를 했구나’ 내 역사에 흔적을 남겨 놓는 거였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반도체 열전》을 쓰게 된 거죠. 특히 당시는 아버지께서 작고하신 때였고, 저는 반도체 정책에 대해서 칩스법(Chips Act)이라든지 변화하는 반도체 정책 변화 속에서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져야 할지에 대해 정책적으로, 산업적으로, 또 기술적으로 밑그림을 좀 그려주고 싶었죠. 그래서 그동안 연구했던 거를 정리해서 책으로 쓰게 된 겁니다. 독자들은 재미없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소중한 기록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남겨두고 있습니다.
더 라: 《반도체 열전》에서 자율주행·피지컬 AI 분야가 한국에 특히 적합하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유: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사람들이 페이스가 빠르잖아요. 빨리빨리, 이런 거 너무 잘 하고 초저지연 환경에 익숙해요. ‘초저지연 환경’이라고 하는 거는 이런 거예요. 자율주행 차를 예를 들면, 차를 타고 가는데 앞에 갑자기 바위가 떨어졌어요. 그러면 저게 바위인지 아니면 구름인지 그런 걸 빨리 알아차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지연을 최대한 줄이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안전이고 기술이고 그렇거든요. 그래서 AI 추론 영역에서는 그런 초저지연 기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빨리 반응을 해야 하니까. 서비스 로봇도, 내가 뭘 물어봤는데 한참 생각하고 얘기하면 답답해서 안 쓸 거잖아요.
스마트 팩토리도 마찬가지예요. 공장에서 작업하는데 사람들 중간에 로봇이 들어갔을 때 잘못하면 사고가 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초저지연’ 응용 분야가 앞으로 많이 중요해질 겁니다. 근데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이런 첨단 기술을 가장 빠르게 습득하고 활용하고 피드백을 주는 국가예요. AI를 사용하는 비율도 가장 높은 나라고요. 그래서 일단은 우리 국민이 그런 기술에 매우 적합하고 관련 산업을 잘 일으킬 수 있다, 이런 확신이 들어요.
그다음에 우리의 통신 환경도 완전 초저지연이잖아요. 미국이나 유럽에서 스마트폰 써보신 분들이라면 그 늦은 속도에 너무 답답함을 느꼈을 거예요. 우리나라가 가장 통신이 빠르죠.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초저지연 환경, 그런 통신 인프라도 잘 돼 있고, 또 그걸 구동하고 운용하는 반도체 산업에서도 메모리든 시스템 반도체든 세계적인 강국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세계 5위 안에 드는 자동차 제조 강국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율주행 시스템이다, 그러면 자율주행 시스템을 먼저 다 만들어서 테스트를 해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고, 아 이게 된다라고 하면 국민들이 모두 써보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면 거기서 글로벌 표준이 나올 거거든요.
“이거 우리 5천만 국민이 다 써봤어. 근데 이게 되는 솔루션이야. 이게 표준이 돼야 해.” “이 반도체 시스템은 이렇게 구성해야 하고, 거기에 응용 소프트웨어는 이렇게 올라가야 해. 우리가 테스트베드 해봤더니 돼. 갖다 쓰면 돼.” 앞으로는 이렇게 솔루션을 파는 거죠. 예전에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지켜본 소위 선도 국가, 선도 기업들이 취하는 방식이 그거였습니다. 미리 다 해보고 다 되는 솔루션을 확인한 다음에 그 표준을 주도하는 거죠. 그렇게 해야 만찬을 즐기는 자리에 갈 수 있습니다. 설거지만 했잖아요, 지금까지는.
국가와 교육 시스템이 매우 중요한 시기
더 라: 한국의 의대 쏠림 현상과 획일화된 교육 문제가 심각합니다. AI 시대에 우리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유: 제가 매년 ‘국민이전개정(NTA, National Transfer Accounts)’ 결과가 나오면 그걸 가지고 분석을 하는데, 국민이전개정이 기업으로 얘기하자면 재무제표 같은 겁니다. 그런데 그거를 분석하다 보면 그게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다 담고 있어요. 돈의 흐름을 보여주는 거니까. 이 국민이전개정을 보면 16세, 17세 때 적자 폭이 가장 커집니다. 한 4,400만 원 정도 돼요.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사이 학령기에 적자 폭이 커지는 건 다 사교육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현재 제일 수입을 많이 내는 나이가 43세에서 45세인데, 그것도 4,400만 원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러니까 우리가 4,400만 원의 돈을 막 써 가지고 한 30년 후에 4,400만 원밖에 못 버는 구조예요. 그래서 지금 어떤 사람이 이 조건으로 0세에서 85세까지 살았다고 할 때, 이 조건에서 계산을 해보니까 7억 원의 적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이 통계는 우리 교육이 양질의 교육이 안 되고 있다는 걸 방증하고 있는 거죠. 그건 또 산업적인 가치, 경제적인 가치로 잘 일치가 안 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이기도 한데요. 미국이나 선진국에는 없는 사교육 시장은 상당히 특이한 현상인데, 그게 어디서 나왔나 제 나름대로 생각해봤습니다. 우리나라는 기계적인 평등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예요. 그런데 그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고 하는 게 기계적인 평등을 만드는 건 아니거든요. 페어니스(fairness), 그러니까 우리가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게 기계적인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좀 더 정의로운 평등을 말하는 건데, 우리는 기계적인 평등을 공정으로 생각하며 굉장히 정의를 잘못 내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을 일차원적인 잣대로 그 능력을 평가하잖아요. 국영수 암기 과목 점수로 1등부터 10등까지 줄을 세웁니다. (외형적 스펙과 지표만 보는) ‘뷰티 콘테스트’로 투자도 이루어져요.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대부분 점수를 매겨서 1등부터 줄을 세우고, 성적이 잘 나오는 사람은 국가나 사회에 유익하고 성적이 안 나오면 낙오자고 뭐 이렇게 평가를 하지 않습니까?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들은 정량적인 평가도 하지만 정성적인 평가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평가자의 전문성을 신뢰하고 그 사람한테 권한을 충분히 위임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권한이나 책임을 위임하면 이 사람이 혹시 그 권한과 책임을 이상하게 활용하지 않을까 그렇잖아요.
국영수 암기 과목 시험은 좀 잘 못 봤지만 사람을 고치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동기부여가 되며 열정이 넘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이제 그런 사람이 의사가 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직업이 아니고 진짜 업으로서 그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요. 인간은 누구나 고유한 재능이 다 있잖아요. 그 재능을 신이 주신 재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 그 재능을 잘 살려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나 사회, 기업이 도와야 하는 거죠. 그게 저는 인간 중심의 사회라고 생각하는데, 각 사람들의 개성, 재능을 존중하고 그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열정과 관심을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거죠.
어떤 일을 하든지 자연스럽게 본인이 양질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반이 마련돼야 합니다. 이를테면 스위스 명품 시계가 나온 배경을 보면, 분침을 평생 깎으신 분이나 시침을 평생 깎으신 분들이 그 직업의 장인으로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요약하면 개인의 재능, 신이 주신 재능을 잘 살려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 수 있도록 이 사회가, 국가가, 교육 시스템이, 기업이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일을 하면 양질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직업의 귀천에 상관없이 국가가 보장을 해줘야 합니다. 그게 저는 기본적으로 제일 중요한 국가 철학, 기업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은 지식의 장의 조정과 매개 역할로
더 라: AI 시대에 도서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요. 도서관과 사서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까요?
유: 기존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사실 AI가 이미 그 역할을 다 해준다고 봅니다. 우리 인간은 기존의 지식을 습득하는 역할보다는 조금 더 미래 지향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도서관이 그런 역할을 해주면 너무 좋겠다 싶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노예들이 기본적인 노동을 다 제공하니까 시민들이 ‘아카데미아(Academia)’ 같은 데 모여 가지고 지식을 나누고 융합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창조를 하고 혁신을 만들어낸 거거든요. 지속 가능 사회에 대한 어떤 기반을 만들어낸 건데, 우리 도서관이 앞으로 그런 역할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사를 초청해서 강연을 한다’, 이건 좀 일방적이잖아요. 그런 거 말고 인문학, 기술, 의료, 출판 등 자기 분야가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나누면서 지식을 인테그레이션(integration-통합, 완성)하는 거죠. 도서관은 여러 기술 분야 이런 것들을 다 이해하고 그걸 잘 인테그레이션 할 수 있는 인문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 폴리매스(polymath)형 인재들을 많이 육성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도서관 사서의 역할은 그걸 잘 코디네이션하고, 잘 조력하고, 지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사회가 공정한 사회인가’에 대한 물음
더 라: 마지막으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유: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공정(fairness), 그러니까 형평(equity)을 이루는 사회는 뭐냐.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재능을 충분히 키워서 이 사회에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고 기여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영어 표현 그대로 ‘Giving everyone what they need to be successful(모두가 성공할 수 있도록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지원하는 것)’이죠. 그런 사회가 공정한 사회이고 그 그런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고요. 또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직업의 귀천에 상관없이, 거기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을 때 양질의 삶을 누릴 수 있게 국가가 보장해줘야 한다. 그게 국가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철학, 방향이라고 봅니다.
유웅환_한국벤처투자 대표이사, 전 인텔 수석 매니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후 인텔에서 수석 매니저를 지냈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스카우트되어 최연소 상무로 재직했다. 현대자동차연구소 이사, SKT 부사장(ESG그룹장) 등을 거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반도체 정책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 현재는 정책금융인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그간 반도체 분야 90여 편의 국제 논문은 물론, 프렌티스 홀(Prentice Hall)과 함께 고속반도체 설계에 관한 저서 등을 출간했다. 국내 저서로는 《사람을 위한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을 생각하다》 《사람은 사람의 꿈에 반한다》 등이 있다.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평택시의 매력을 소개해 달라.A 삼성반도체·쌍용자동차·LG전자 등 많은 기업이 소재한 산업도시이자, 캠프 험프리스·오산공군기지·공군작전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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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게임 상에서 겪었던 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A 내가 처음 접한 MMORPG가 〈아이온〉이었다. 기존에는 혼자 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