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니, 아쉽게도 도서관에 가본 기억이 없다. 울산시 전체에 도서관이 몇 개 없었던 것 같고, 교통이 편리하지 않아 도서관 근처에 살지 않으면 도서관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절은 지금처럼 어린이를 위한 책이 많지 않아서 도서관은 어른들이 이용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신 부모님은 안데르센 동화, 전래동화, 과학전집, ‘먼 나라 이웃나라’, ‘월리를 찾아라’ 시리즈 등을 사주셨고 집에서 이런 책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이용했던 도서관은 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중앙도서관이었다. 지하에서부터 3층까지 있는 꽤 큰 건물이었는데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이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시절은 도서관에서 학과 과제를 하느라 급급해 전공 서적을 보거나 시험공부만 했을 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학교 입학 전 몇 개월 동안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곳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집 근처의 도서관을 소개받았는데, 내가 생각하던 도서관 외관과는 다르게 단층 건물에 멋있는 집 모양이라 호기심과 함께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거리도 내가 사는 아파트와 가까워 심심하면 그 도서관에 가서 어린이 코너에 있는 그림책을 보았다.
미국은 동네 곳곳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고 사람들로 붐비지 않아서 창가에 앉을 자리가 많았다. 외국인을 위한 일 대 일 튜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을 들르게 되었다. 미국 생활 동안 동네 도서관과 가깝게 지내면서 추억을 쌓다 보니 한국을 가게 되더라도 ‘집 주변의 도서관을 자주 가야지’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직장생활과 육아로 인해 도서관에 가는 게 쉽지 않았다. 휴가나 주말에는 가족 모임에 참여하거나 밀린 일을 처리하기도 바빴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행과 휴가만큼이나 간절하지만 일상에서 누리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주말에는 종종 아이와 함께 집에서 멀지 않은 송파어린이도서관이나 판교어린이도서관을 찾아갔고, 갈 때마다 아이보다 엄마가 더 좋아하고 힐링을 하고 왔다.
빨간 컨테이너 도서관에 ‘에스더 스크롤’이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 ⓒ 송재화
최근에 남편이 근무지를 옮겨 전주로 이사를 왔다. 이사와 함께 직장을 그만두니 낮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공간 자체가 주는 의미가 있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기대되고 설레었다. 마침 친정엄마가 전화를 해 “전주에 좋은 도서관이 많다고 하더라.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도 있네”라고 하셨고, 이번 기회에 책을 좋아하는 친정엄마와 함께 전주에 있는 도서관을 찾아다녀 보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60대 엄마와 40대 딸, 10대 손자의 ‘전주 도서관 여행’이 시작됐다. 내가 사는 전주는 특별한 도서관이 많다. 여행자를 위한 도서관도 있다는데 어떤 곳일까, 정말 궁금했다. 여행이라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새로움을 마주하는 것이다. 때로는 나의 내면을 돌아보기도 하는데, 여행지에서 만나는 도서관은 어떨지 기대되었다. 나는 전주에 살고 있지만 전주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도서관 여행을 떠났다. 엄마는 1박2일을 계획하고 울산에서 전주로 오셨고 이틀 동안 일곱 개 도서관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아들과 함께 전주역으로 엄마를 마중 나갔다. 일정이 빼곡해 엄마를 만나자마자 첫 번째 목적지인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은 전주역 바로 앞, 자동차도로의 중앙 공간에 위치한 빨간 컨테이너 건물이다. 좁고 길쭉한 모양으로, 여행자 라운지와 아트북 갤러리로 나누어져 있다. 방금 기차를 타고 와 전주역에 내린 엄마는 이 도서관이 빨간색 기차처럼 생겼다고 했다. 낮 기온이 35도를 넘어섰고 삼복더위에 잠깐만 걸어도 땀이 주르륵 흐를 지경이었는데, 아트북 갤러리에 들어가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도서관의 크기가 작아 기대감 없이 들어갔지만, 엄마와 아들은 평소 관심 있었던 다양한 팝업북 전시를 발견했다. 절판본 전시 코너에서 전 세계에 1천 746부만 있다는 필사본 두루마리 ‘에스더 스크롤(The Esther Scroll)’을 보니 신기하기만 했다. 여기서도 반나절은 있을 수 있지만 시간 관계상 여행자 라운지로 들어갔다. 여행자 도서관이라는 이름답게 전주 여행과 관련한 도서가 많이 있었다. 책에 있는 맛집, 핫플레이스 리스트는 미리 여행 계획을 세우지 못한 여행자들에게 소중한 정보가 될 것이다. 아들은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 컬러링 엽서를 색연필로 색칠하면서 첫 번째 도서관 방문을 기념했다.
여행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다
다가여행자도서관 1층 ‘별빛책장’ ⓒ 송재화
다음으로는 두 번째 목적지인 ‘다가여행자도서관’으로 향했다. 다가여행자도서관은 전주에서 유명한 관광지인 전주한옥마을과 객사길 옆에 있으며 웨리단길 안에 위치한다. 그래서 주변에 맛집도 많다. 다가여행자도서관 바로 옆에는 ‘흑심’, ‘라디앙뜨’, ‘라노타’가 있는데 이 중 이탈리안 음식점 라디앙뜨를 선택했다. 평소 대기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바로 들어가서 먹을 수 있었다. 샐러드, 리조또, 스파게티는 맛집답게 호불호가 없이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식사 후 몇 걸음을 옮기니 다가여행자도서관이 있었다. 우리는 출입문 앞에 있는 운영 시간 간판을 한참 쳐다보았다. 다른 도서관과 달리 ‘입국 9:00, 출국 18:00’라고 쓰여 있었다. 엄마는 운영 시간을 표현하는 작은 단어 하나가 방문자로 하여금 해외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앞 계단에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전주 도서관 여행은 시작부터 여행과 도서관이 어딘가 닮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 의문을 풀어주는 글이었다.
아들은 1층에 있는 ‘별빛책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책장 앞에 있는 사다리에 관심을 보였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벽면 책장 위쪽에 있는 책도 꺼내보고 “재미있다”라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이 공간에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여행 가이드북과 에세이가 있었고 전주 여행 전시 코너도 마련되어 있었다.
도서관 2층에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왔고 스크린에 흑백 영화가 돌아가고 있었다. 한쪽 벽면의 ‘여행자의 마음 오늘 어때요?’라고 쓰인 문구는 도서관이 방문자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 밑으로 ‘설렘’, ‘새로움’, ‘여유로움’, ‘그리움’, ‘아쉬움’이라는 단어가 오지선다처럼 이어져 엄마와 아들은 ‘설렘’, 나는‘ 여유로움’으로 답했다. 이 단어들 옆에는 크리스털 투명 통이 있는데, 자신이 답한 단어의 통에서 작은 두루마리 종이를 꺼내니 그 말과 관련한 책의 글 조각이 나왔다. 이 글 조각은 도서관이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2층 공간에는 여행과 관련한 그림책도 전시되어 있었다. 이수지 작가의 《동물원》, 김유강 작가의 《마음여행》을 꺼내들었다. 그림책은 길이도 짧고 그림을 통해 작가가 건네는 메시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어 3대가 같은 책을 읽고 각자가 느끼는 바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생일 책이 있다고?
생일책장 ⓒ 송재화
다음으로 세 번째 목적지인 전주시청 로비에 있는 ‘책기둥도서관’으로 향했다. 개방된 공간이었으며 사람들 목소리로 시끌시끌했다. 전주의 독립책방을 소개하는 전시에도 눈길이 갔다. 이 도서관만의 특별함은 없는지 찾던 중 ‘생일책장’을 발견했다. 이 책장에는 365개의 책이 있는데 책등 아래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날짜가 적혀 있었다. 우리는 모두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일을 찾아 책을 꺼내들었다. 아들의 생일은 8월 14일, 책 제목은 ‘야생의 순례자 시튼’이었다. 8월 14일은 작가 어니스트 시튼의 생일이다. 시튼은 동물 보호론자이면서 《시튼 동물기》의 저자로 유명하다. 아들은 평소 동물에 관심이 많고 과학자가 꿈인데 시튼의 삶에 아들의 삶을 거울처럼 비추어보았다.
다음은 여행 1일차의 마지막 목적지인 ‘연화정도서관’으로 향했다. 연화정도서관을 가기에 앞서, 연화정도서관과 덕진공원이 한눈에 보이는 카페 ‘한올’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연화정도서관은 전주 덕진공원 안에 있으며 ‘ㄱ’ 자 형태 건물로 도서관인 연화당과 누각 연화루로 이루어져 있다. 한옥 도서관이라 덕진호의 연꽃과 잘 어우러져 멀리서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카페 창문에서 바라보는 덕진호와 연화정도서관은 사극에 나오는 한 장면 같다.
도서관 입구로 들어가기 전 운영 시간 안내 간판부터 찾아보았다. ‘책꽃 필 무렵 10:00, 책꽃 질 무렵 19:00.’ 역시 연꽃에 둘러싸인 도서관다운 표현이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니 한옥 북카페 같은 느낌이었다. 주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와 세계로 뻗어나가는 K-컬처에 대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김영하, 한강 등 국내작가의 소설을 영어, 일어로 번역한 책을 볼 수 있어 ‘우리나라 소설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7월 한여름의 연화정도서관은 연꽃들로 둘러싸여 도서관 창문으로 보는 바깥 풍경이 정말 아름다운데, 시간이 멈추었으면 할 정도였다. 연화정도서관 옆에는 ‘야호맘껏숲놀이터’, ‘생태숲놀이터도서관’도 있으니 아이들과 쉬어가도 좋을 것 같다. 도서관을 나서면서, 연화교 다리 옆 한옥 창문 포토존에서 엄마의 인생사진을 찍어드렸다.
카페 ‘한올’에서 바라본 덕진호와 연화정도서관(좌), 책기둥도서관(우) ⓒ 송재화
도서관이 건네는 말
여행 2일차는 아침부터 서둘러 첫 번째 목적지인 ‘학산숲속시집도서관’으로 향했다. 이 도서관은 전주의 남쪽 평화동 학산에 위치해 있다. 도서관 이정표를 따라 산속으로 15분 정도 올라가면 아름다운 저수지와 둘레 데크 길을 만날 수 있다. 풀 냄새를 맡으며 데크 길을 걷다 보면 키 큰 나무들 사이에 작은 집처럼 보이는 도서관을 찾을 수 있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통창으로 보는 초록색 바깥 풍경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한다.
우리는 문학 자판기를 발견했다. 자판기는 ‘사랑’, ‘위로’, ‘재미’, ‘휴식’ 중 나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위로’를 눌렀고 에밀리 디킨슨의 <애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이라는 시가 나왔다. 이 시는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온 나의 삶에 “그동안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면 된다”고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엄마는 자연 속에서 시를 읽으니 감동이 두 배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 ⓒ 송재화
여행 2일차 두 번째 목적지는 꽃심도서관이었다. 도서관 맞은편의 삼계탕집 ‘예우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사실 근처에는 전주에서 유명한 전주 콩나물국밥집 ‘현대옥’의 본점이 있다. 고민을 했지만 전날이 중복이라 몸보신 차원에서 삼계탕을 선택했고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꽃심도서관은 전주의 대표 도서관답게 1층은 어린이 책 놀이터가 있고 2층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공 서적까지 갖춰 소장 도서가 많아 보였다. 대형 서점처럼 지나가는 통로에 추천 도서가 다양한 주제로 전시되어 있었다. 엄마는 《처음 시작하는 우리교회 독서모임》이라는 책을 보고 한참을 읽으셨다.
3층에는 12세부터 16세까지 트윈세대를 위한 ‘우주로 1216’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악기 연주, 동영상 제작, 나만의 건축물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아들은 현재 열 살이라 우주로 1216에 입장하지 못했지만 5학년이 되면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드디어 전주 도서관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금암도서관으로 향했다. 금암도서관은 전주시에 처음 생긴 시립도서관인데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이 도서관에는 루프탑이 있다고 해서 한 번에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 힘차게 올라갔다. 마지막 계단을 헉헉거리며 내디뎠을 때 “우와” 감탄과 함께 가슴까지 뻥 뚫렸다. 사방이 확 트여 있고 구도심 뷰가 넓게 펼쳐져 카페 루프탑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요즘 도서관은 카페인지 서점인지 헷갈릴 정도로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드는 것 같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내 마음과 생각에 집중하게 되고 에너지가 충전되기도 한다. 도서관을 여행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도서관에 머물면서 전시된 책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여행지에 가면 맛집을 찾아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처럼, 여행지에 있는 도서관에 가면 뜻밖의 책들을 만나 마음의 양식을 먹을 수 있다. 특히 작은 도서관들은 따뜻하고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별한 큐레이션으로 방문자에게 “이 책 읽어볼래?” 말을 거는 것 같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책을 통해 방문자와 소통을 한다. 정답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방문자에게 도서관은 인생의 지혜가 담긴 책들을 소개해준다. 그래서 책에서 한 번이라도 깊은 위로와 용기를 얻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대를 가지고 도서관으로 발길을 향하는 것 같다. 책의 도시 전주는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과 다가여행자도서관에 이어 한옥마을에도 여행자 도서관을 개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주는 먹을거리, 볼거리뿐 아니라 읽을거리까지 준비하고 전주로 여행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8월 목포, 용해동 갓바위문화타운은 여름 햇살에 눈부시게 빛난다. 이곳은 목포의 역사와 예술, 생활문화를 품은 문화예술 복합지구다. 목포문학관을 비롯해 남농기념관, 목포생활도자박물관, 목포자연사박물관, 목포문예역사관 등 여러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어 다양한 목포 문화의 아름다운 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목포의 문학적 기억을 응축해 보여주는 목포문학관은 푸
[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도서관이 도피처가 돼버렸다. 이사를 하면서다. 뉴스로 접하던 층간소음이 내 문제가 될 줄이야······. 처음엔 낯선 환경 탓이려니 하며 적응해보려 애썼지만 한 달도 못 가 위층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위층 여
여름휴가를 제주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후로 나는 줄곧 도서관을 생각하고 있었다. 올해 4월, 돌이 갓 지난 아이와 제주에 방문했을 때, 제주 토박이인 친구가 회심의 미소를 띠고 우릴 데리고 갔던 곳을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곳은 고(故)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한 기적의 도서관(2004)이었다. 장난스러우면서도 독특한 삼각 형태의 외형을 지닌 이 도서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