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 팀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첫눈에 반한 메리를 다시 만나기 위해, 말실수를 주워 담기 위해, 안타깝게 놓친 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는 몇 번이고 과거로 간다. 방법도 어렵지 않다. 어두운 곳에서 두 손을 꼭 쥔 채 돌아가고 싶은 순간에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 처음에는 팀의 좌충우돌 소동극에 웃음이 터진다. 그러다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 뒤에 얼마나 많은 선택과 수정이 숨어 있는지 생각하게 되고, 결국 중요한 것은 되돌린 시간이 아니라 오늘 하루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여러 번 다시 보게 되는 영화였다.
우리는 언제로 돌아가야 할까
어느 날 나는 그 영화를 틀어놓은 채로 다른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로 돌아가야 할까.
아이가 학교 급식을 먹지 않았다고 말한 그날일까. 학교 급식이 그렇게 형편없었냐고 웃을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아이의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살폈더라면, 남자애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떠들썩한 식당에서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두려웠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 더 전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가 취미로 배우던 검도를 단지 관장님이 엄하다는 이유로 그만두려 했을 때. 그 정도로 포기하면 안 된다고 조금 더 단호하게 붙잡았어야 했을까. 몸을 쓰는 법을 익혔다면 아이가 누군가의 무례함 앞에서 조금 덜 움츠러들었을지도 모를 테니까.
아니, 훨씬 더 전으로 돌아가야 할까. 급우에게 손등을 물리고도 괜찮다고 웃던 날. 퍼렇게 남은 잇자국을 보며 나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아니, 아니, 아니……
아이는 제 방의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아이도 팀처럼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떠올리고 있을지 몰랐다. 양손을 꼭 쥔 채, 식당으로, 검도관으로, 교실로. 하지만 아무리 힘을 주어도 그 자리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아이는 더 두려워졌을지 모른다.
등교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아이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던 날, 그제야 우리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때까지 학교에서는 연락 한 번 오지 않았다. 남편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결석 한 번 하지 않은 것을 자랑처럼 말하는 사람이었다. 학생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가야 한다고 믿었다. 학교 밖 청소년 이야기는 늘 남의 일 같았다. 그러니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와 남편 사이에는 설득과 부탁, 으름장과 완력이 차례로 오갔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문득 눈을 들었을 때 영화는 메리의 방을 보여주고 있었다. 메리의 침대, 그 위에 덮인 컨트리풍의 조각보 이불. 소박하지만 누군가 정성껏 만든 헥사곤 이불.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도 눈여겨본 적 없는 이불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조각보 이불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는 오래 묵은 천들이 쌓여 있었다. 퀼트로 지갑과 바늘쌈지 등을 만들던 때, 언젠가는 퀼트로 태피스트리 같은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둘 모아둔 천들이었다. 하지만 지난한 과정은 물론이고 서툰 바느질 실력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작품이 아니라 소박한 조각보를 만들자고 마음먹었을 때에야 비로소 퀼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멀쩡한 천을 일부러 자르고 그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이다니, 이상해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생각해보면 원래 조각보란 자투리 천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작아진 아이 옷, 낡고 해져 더는 입을 수 없는 옷, 버리기는 아깝고 그대로 쓰기에는 부족한 천들. 쓸 만한 곳을 오려서 이어 붙여 다시 쓸 만한 것으로 만든다. 그러다 보니 조각 하나하나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펼쳐놓은 천들은 모두 새것이었다. 퀼트 작업을 위해 디자인되고 생산된 천들. 누군가의 손때도 타지 않았고, 아무 데도 닳지 않았고, 어떤 날의 기억도 묻어 있지 않았다.
남편은 바느질을 해본 적이 없었고, 나도 능숙한 퀼터는 아니었다. 헥사곤은 그런 면에서도 좋았다. 누구나 한 장씩 만들 수 있고, 이어 붙였을 때 서툰 바느질 솜씨도 어느 정도 가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느질이 시작되었다. 이불 크기 안에 들어갈 헥사곤의 수만큼 종이 모형이 필요했다. 먼저 원하는 크기의 육각형을 종이에 그리고, 그것을 하나씩 잘랐다. 종이본을 천 위에 대고, 천을 접고, 펼쳐지지 않도록 시침질을 했다. 그렇게 만든 조각들은 나중에 변과 변을 맞추어 꿰매야 했다.
일하는 틈틈이 바느질을 하다 보니 진도는 좀처럼 나가지 않았다. 언제 끝날까, 끝낼 수는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분명한 것이 있었다. 한두 조각씩이지만 언젠가는 끝나게 되리라는 것.
우리는 육각형 조각들에 집중했다. 바느질을 하는 동안만큼은 아이의 방 앞에서 아이를 재촉하지 않을 수 있었다. 늦은 밤 학원에서 돌아오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나 하던 안달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아이는 여전히 방 안에 있었다. 어쨌든 우리 곁에 있었다.
가끔 제대로 꿰매라고 남편을 닦달하곤 했지만, 나중에는 누가 만든 것인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 바느질이 고른 조각도 있었고, 조금 비뚤어진 조각도 있었다. 그래도 변을 맞추어 꿰매면 하나의 면이 되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서툰 곳이 보였지만, 멀리서 보면 육각형의 무늬가 또렷했다.
대입이나 진로에 대한 걱정은 뒤로 물러났다. 할 수 있다면 아이가 힘을 내 다시 등교해보는 것, 더 힘을 내준다면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었다. 우리는 기다릴 수 있었다.
아이의 방문이 열렸다. 아이는 천 조각으로 어지러운 거실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우리를 보았다. 별일 없는 일상이었다. 아이는 물을 마시고 들어갔다. 더 이상 안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불은 조금씩 넓어졌다. 처음에는 흩어진 조각들이었지만, 작은 면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무릎 위를 덮을 만큼 커졌다. 조각들을 거실에 펼쳐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좀 더 나은 배열을 궁리할 무렵, 식탁에 앉아 있던 아이가 내일 학교에 가보겠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아침에 눈을 뜨면 관성처럼 가는 학교가 누군가에게는 온몸의 힘을 모아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었다.
새 천으로 만든 우리의 조각보에는 아직 이야기가 없었다. 남편은 붉은 천으로 만든 헥사곤을 골라 조각보의 한 귀퉁이에 꽃 한 송이를 넣었다. 이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 뒷이야기는 조각보 이불을 덮을 아이가 이어가게 될 것이다. 아이가 이불을 덮고 잠들 수많은 밤. 사소해서 따로 이야기를 할 것도 없는 일상들이.
하성란_소설가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등의 소설집과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A》 등의 장편소설, 《소망, 그 아름다운 힘》(공저)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 등의 산문집을 냈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좋아하지만 아직 능숙한 것은 없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을 지나오며 노동의 힘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2002년, 스웨덴 말뫼의 항구에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크레인을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배에 실려 멀어지는 크레인을 보면서 그들은 눈물을 흘렸다. 우리에게 ‘말뫼의 눈물’로 알려진 바로 그 이야기이다.말뫼에는 오랫동안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이 서 있었다. 150미터 높이의 크레인은 도시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눈에 띄었다. 일상은 물론이고 한 사람의 생을 이
9월이 되자 낮 기온이 떨어지고 눈에 띄게 일몰 시간이 빨라졌다. 지난봄부터 이때를 기다려왔다. 얼른 털실과 대바늘, 그리고 ‘꽈배기바늘’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뜨개는 한 계절을 앞서간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다가 지난겨울에는 때를 놓치고 말았다. 하루이틀 미루는 사이 덜컥 봄이 와버린 것이다. 하루에 몇 단씩 뜨는 것이 고작이다 보니 계절을 따라잡
나는 종종 ‘스톤 수프’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때마다 궁금증이 바뀌었다. 어릴 적에는 돌 하나로 맛있는 수프를 끓일 수 있다고 마을 사람들을 속이는 나그네의 꾀에 놀라고 마을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웃음이 났다. 어떻게 사람들은 그런 터무니없는 속임수에 넘어갔을까. 대기근으로 늘 배가 주렸을 테니 돌이 수프가 되는 기적을 바랐을 것이다. 과연 돌은 아무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