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군 매곡면 노천리. 야트막한 야산을 뒤로하고 자리 잡은 한가로운 농촌 마을이다. 마을 길로 들어서면 초입에 2층 붉은 흙벽돌집이 눈에 들어온다. 고향집에 들어선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지는 이곳이 농민문학기념관이다. 바로 옆에 노천상리마을회관이 있어 더욱 정겹다.
농민문학기념관은 국내 유일의 농민문학 전문 문학관이다. 관련 자료 수집과 정리, 연구와 전시, 그리고 작가들의 만남과 나눔의 공간이다. 농민문학을 연구하고, 알리고, 교육하고, 성장시켜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농민문학기념관은 2005년 소설가 이동희 관장이 나고 자란 이곳 고향집에 개관했다. 교직에 있으면서 후학을 지도하던 책들, 오랜 작가 생활 동안 읽었던 많은 책과 자료, 농민문학 작가의 유품 등 1만 5천여 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기둥에 ‘무료 카페’라 써 붙인 1층 거실에 앉아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두 번 전국문학관대회에서 인사드린 적이 있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선생은 팔순을 넘긴 노년의 나이지만 반듯한 자세에서 학자적 기품과 농민문학을 향한 묵직한 신념이 느껴진다.
“이 집은 흙벽돌로 지었어요. 흙과 나무, 유리로만 되어 있지요. 예전에 살던 집, 그 자리에 같은 구조로 앉혀 지었어요.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가 사랑방, 저기는 마구간이었지요. 호두나무를 다듬어 만든 구유를 여기 두고 싶었는데, 집사람의 반대로 지금은 밖에 걸어놨어요.”
나고 자란 집터, 사랑방이 있고, 외양간이 있었던 곳, 그 자리에 흙벽돌로 새로 지은 집에 평생 모아온 책과 농민문학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곳이 농민문학기념관이다.
고향과 농민, 그리고 흙은 선생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향 노천리에서 태어나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선생은 고향, 농민, 흙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농민소설의 대표 작가 이무영 선생과의 인연은 농민문학 창작과 연구, 기념관 건립으로 이어졌다. 젊은 시절, 이무영 선생의 작품을 읽고 깊이 매료되었던 때가 있었다. 대학 학과도 망설이지 않고 그가 강의하고 있는 단국대학교 국문과를 선택해 지원했다. 농촌의 삶을 꾸밈없이 그려내면서도 그 안에 인간의 온기를 놓치지 않는 문장들. 그 문장에 이끌려서다.
3월 개강하여 선생을 만났던 그 봄날, 캠퍼스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심각하게 인생을 고민하며 문학에 대한 갈망이 타올랐던 시절, 스승 곁에서 소설 창작뿐만 아니라 문학의 본질, 방향까지 배웠다. 학위 논문도 스승의 문학세계를 집중 연구한 것이었다. 석사 논문이 농촌 생활을 중심으로 한 「이무영론」이었고, 박사 논문은 소설의 구조와 농민 의식을 중심으로 한 「이무영 연구」였다. 그만큼 농민문학 작가 이무영은 가까이 있었다.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던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3년 문학 잡지 《자유문학》에 소설 〈좌절〉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같은 해에 공보부에서 주최한 신인 예술상 문학 부문에서 소설 〈핏들〉이 특상을 수상하면서 농민문학 창작의 길을 열었다. 대학에 재직하고 있을 때는 농민문학회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직을 맡아 초창기 기반을 다지는 데도 노력했다. 1990년 4월이었다. 1989년 10월, 계간지 《농민문학》을 창간하여 현재 지령 130호를 넘기고 있다. 농민문학상도 제정하여 농민문학 작가들을 기렸다. 지난 1월 현재 정재권 시인이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농민문학회는 농민문화상·한국농민문학공로상·한국농민문학상·농민문학 신인상 등 관련 분야 시상식을 가졌다. 농민문학회는 그만큼 크게 발전하고 있다.
정년 뒤 선택한 곳은 다시 고향이었다. 출발의 공간으로 돌아온 셈이다. 빈손이 아니었다. 창작활동 60년이 넘는 동안 장·단편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집, 평론집, 논문집 등 많은 작품과 연구 성과를 발표하였다. 책으로 따지면 30권이 넘는다. 데뷔 50년이 되던 2013년 봄 〈좌절〉, 그리고 〈흙에서 만나다〉 소설 낭독회를 태화관에서 가졌다. 또 2016년 여름에는 《농민21-벼꽃 질 무렵》 소설 낭독회를 향리에서 가졌다. 매화골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3부작으로 된 스승의 대표작 《농민》 3부에 이어 쓴 4부이다. 스승 작품의 연작을 쓴 것이다. 마음을 다잡아 재도약을 위한 나름의 몸짓이기도 했다. 데뷔 60년이 되는 2023년에는 서른세 번째 작품집 장편소설 《흙의 소리》(국악신문 발행)를 출간했다. 영동에서 나고 자란 박연 선생의 이야기이다.
“농민문학은 과거 밭 갈고 논 매던 때의 문학이 아니다. 그때의 농민 정신으로 이 시대를 처방하는 미래의 문학이다. 시대가 극도로 혼탁하고 인간의 영혼들이 병들어 있는 시대에 깨끗한 물줄기를 끌어대주는 그 농부와 같은 맑은 정신을 죽은 시인의 사회에 수혈하는 시대 양심의 문학이다.”(《농민문학》 권두언, 2008)
농민문학은 농촌과 농민이라는 범주에만 머무는 문학이 아니다. 이동희 관장은 농민문학을 특정한 장르로 규정하기보다, 삶의 본질을 포착하는 하나의 시선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속에는 시대를 넘어 남아 있는 삶의 본질, 우리가 지켜야 할 토종의 가치가 살아 있다. 그래서 농민문학은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향하게 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된다는 말도 그 때문이지요”라고 힘주어 말한다.
기념관 1층에는 창작실과 전시실, 세미나실이 있다. 2층은 장서실, 유품실이 있는 귀경재(歸耕齋)다. 전시실에는 농민문학 제재의 시, 시조, 소설, 수필, 희곡, 평론, 아동문학 작품집과 연구서, 관련 논문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밖에 관심을 두었던 단군, 북한 문학, 노근리 사건, 불교 자료 등도 갖추고 있다.
1만 5천여 권에 이르는 장서 가운데 선생이 가장 아끼는 책은 스승 이무영 선생의 작품집 《흙의 노예》다. 1946년 조선출판사에서 간행한 이 소설집에는 출세작 〈제1과 제1장〉을 비롯한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제목 그대로 ‘흙’에 묻혀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정면으로 끌어올린 작품들이다. 《농민》과 더불어 한국 농민문학의 기념비로 불리는 이유를,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낡은 표지 한 장이 말해주고 있다.
또 한 권은 조명희의 《낙동강》이다. 1928년 초판 이후, 1946년 건설출판사에서 다시 간행된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과 〈농촌 사람들〉 등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격동의 시대 속에서 농촌이 겪어야 했던 현실과 인간의 고통이 담긴 작품들이다.
2층 귀경재에는 영동 지역 작가 작품과 자료, 농민문학 작가 유품, 그리고 선생의 발표 작품과 원고 등을 전시하고 있다. 데크로 나가면 선생의 작품 〈핏들〉의 소재가 된 핏들이 내려다보인다. 이 들판에는 학이 내려와 노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멀리 직지사를 감싸고 있는 황학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따라 가지런히 놓인 상패들이 눈에 들어온다. 크고 작은 상패와 감사패들이 층층이 놓여 있다. 농민문학을 향해 걸어온 길, 강단에서의 시간,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기념관을 세우기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다. 생각해보면 이 기념관은 농민문학을 향한 한결같은 신념이 쌓여 만든 ‘살아 있는 텍스트’인 셈이다.
내년에 구순을 맞는 선생은 지난해 원고지 3천800장 분량의 장편소설 《뿌리 끝에서 만나리》(도서출판 풀길, 2025)를 간행했다. 남과 북으로 갈린 비극을 사랑의 화합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민족 동질성의 명분을 확인시키고 있는 이 작품은 ‘통일을 향한 정신적 좌표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박덕규, 〈왜 단군 이야기인가〉). 선생은 2년 전 《서정문학》 기획 기사, ‘나의 인생, 나의 문학’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한 가지 자위하는 것은 노숙을 하지 않고 푹신한 요를 깔고 실컷 잠을 잘 수 있는 것이지만 가끔 잠도 자지 않고 쓰려고 한다. 죽을 때까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을 기운만 있으면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낙일 것 같다.’(《서정문학》 98호, 2024)
긴 세월을 지나왔지만, 문학을 살아 있음의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득 귀경재, 당호가 떠오른다. 도연명의 〈귀거래사〉 한 구절도 떠오른다.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귀경(歸耕)은 고향에 돌아와 밭을 간다는 뜻이지만, 선생에게 밭을 간다는 것은 작품을 쓰는 것일 것이다.
동진 사람 도연명은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을 알고 고향으로 내려오지만, 선생은 학문의 뜻을 펼치고 그를 더 완숙시키고 함께하기 위한 것이었다. 평생 농민소설을 쓰고, 연구하고, 지켜가는 데 전념해온 선생의 삶이 농민문학과 농민문학기념관의 살아 있는 역사이자 소중한 자산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념관을 나선다.
문학관 주변 맛집
영동의 농민문학기념관이나 월류봉, 와이너리터널 등 관광지를 방문한 사람들은 황간에 있는 올갱이국밥집을 찾게 된다. 올갱이국밥은 농사철 보양식, 여름철 단백질 공급원, 해장 음식으로 자리 잡은 서민 향토음식이다. 금강 상류에 위치한 황간의 금상천 맑은 물에서 잡히는 올갱이는 잡맛이 없고 육질이 단단하여 고소한 식감을 자랑하기 때문에 황간에는 일찍부터 올갱이국밥집이 생겨났다. 이 지역에서는 “술 마신 다음 날엔 올갱이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특색 있는 음식이 되고 있다.
영동 황간역 부근에 60년 전통의 올갱이국밥을 전문으로 하는 안성식당을 찾았다. 규모도 제법 크고 깔끔하다. ‘안성식당’이란 상호는 식당을 처음 시작한 시어머니의 고향이 안성이라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메뉴는 올갱이국밥, 올갱이무침, 올갱이전 등 단출하다. 이 음식점은 어머니의 손맛, 든든한 한 끼의 서민 음식으로 그야말로 영동군에서 대를 이어 장사하고 있는 인심 좋은 집으로 알려져 있다. 몇몇 방송에서도 취재해 간 적이 있는데, 인기 비결은 건강을 생각하는 식재료로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만드는 데 있다고 자랑한다.
올갱이국밥과 전을 주문했다. 열무겉절이, 콩나물무침, 깍두기, 멸치볶음이 먼저 나온다. 이어 나오는 올갱이전은 바삭한 메밀부침에 부추와 올갱이가 듬뿍 들어가 고소하다. 주메뉴인 올갱이국밥은 된장 베이스에 올갱이를 오랫동안 끓여 육수를 내고, 신선한 올갱이와 건강하고 식감 좋은 아욱, 그리고 동네 산에서 채취한 버섯, 부추까지 그야말로 정성이 가득 깃든 한 상이다. 무엇보다 국물이 깔끔하다. 소고기 육수와는 달리 민물 특유의 구수함, 된장의 깊은 맛이 어우러진다.
앞으로도 ‘손님들 찾아와 주심에 감사하며 100년 가게를 향해 살겠다’는 주인장의 소박한 바람을 뒤로하고 음식점을 나온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정성으로 대접받은 느낌이다.
이창경_신구도서관재단 이사, 수필가
신구도서관재단 이사, 한국출판학회 고문, 수필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에서 수학했다. 1991년 《추강 남효온 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04년 《문예운동》 수필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고전 편찬 일을 도왔고 1989년부터 신구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출판 교육, 출판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 연구에 힘써왔다. (사)출판문화학회 회장, (사)한국출판학회 회장, (사)아시아민족조형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쓴 책으로 《함께 걷는 책의 숲》과 《세계의 식물원 산책 1》(공저)이 있다.
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배경으로 하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마을을 둘러싼 문학적·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문학관 기행 연재를 맡은 신구도서관재단 이창경 이사가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을 방문하고 쓴 에세이를 10월호에 싣는다.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지난여름 한탄강
이효석 선생을 만나러 봉평으로 떠나는 아침. 가을비가 촉촉이 내렸다. 몇 해 전 겨울, 이효석문학관을 찾은 적이 있다. 그날은 발목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다. 메밀꽃이 없는 봉평, 허생원과 동이가 건너던 냇물이 없는 봉평의 겨울은 한없이 적막했다. 그 겨울바람 속에서 메밀꽃이 필 때쯤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선생은 소금을 뿌린 듯
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배경으로 하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지역을 둘러싼 문학적·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문학관 기행 연재를 맡은 신구도서관재단 이창경 이사가 부산에 소재한 추리문학관을 기행한 내용을 6월 호에 게재한다.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6월 바닷바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