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앤쿨 인터뷰] 자존감의 위기, 책은 마음을 어디로 데려가는가_《자존감 수업》의 저자 윤홍균 원장이 전하는 ‘읽기의 힘’
윤홍균_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작가
2026-07-1610:00
이번 핫앤쿨 인터뷰에서는 지난 10년간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보듬어온 베스트셀러
《자존감 수업》의 저자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윤홍균 원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윤 원장은 SNS가 일상이 된 ‘광범위한 비교의 시대’에 행복해지려면
헬스클럽에서 덤벨을 들듯 아주 작은 것부터 ‘만족하는 힘’을 기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자존감이 낮아져 무언가를 시작할 힘조차 없을 때는
타인의 삶과 갈등이 녹아 있는 소설을 통해 치유의 문턱을 낮춰보라고 권한다.
AI가 친절하게 상담까지 해주는 시대지만,
그는 오히려 인간만의 무기인 ‘어설픔’과 ‘부족함’으로
서로를 채워주는 진정한 연결의 가치가 중요함을 역설한다.
또 나에게 나쁜 자극은 끊어내고 유익한 가치와 온전하게 연결되고 싶다면
책이 전하는 목소리에 가만히 집중해보라고 말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마음이 흔들리는 시대,
윤홍균 원장이 들려주는 자존감 처방전은 무엇인지 들어본다.
영상차례
00:57 도서관에 숨어들었던 10대의 윤홍균 02:32 출간 10주년을 맞은 《자존감 수업》 04:40 광범위한 비교가 만들어낸 자존감 위기 08:11 번아웃이 온 사람, 다시 책과 연결되려면? 10:56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소설을 권하는 이유 12:50 혼자 읽기와 함께 읽기, 어떻게 다를까? 14:41 도서관에 들어선 지친 사람에게 17:04 자존감을 키우고 싶지만 막막하다면? 19:45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
Q 《자존감 수업》에서 원장님은 학교가 싫을 때마다 도서관에 숨어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자존감이 낮았던 10대의 윤홍균에게, 책이 해준 것은 무엇인가요?
10대에 들어 한참 천진난만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한 열일곱 살쯤 되니까 현실 파악이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냥 나는 잘 되겠지, 나중에 취직해서 돈 벌고 집 사고 가족을 만들면서 살겠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오다가, 이제 ‘그게 만만한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도 뭔가를 잘 해야지만 잘 살 수 있고, 또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근데 현실적인 생각을 하니까,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공부로 먹고살 수 있겠다’까지는 아닌 거예요. 그리고 외모도 나쁘진 않았는데 외모로 먹고살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좀 애매한 입장이다 보니까 되게 마음이 불안하고 혼란스럽더라고요.
그때 책, 도서관, 이런 게 혼란을 좀 없애줬어요. 책은 글이 한 줄 한 줄 이어져 있잖아요. 그래서 그걸 읽으면 마음이 고요해지는 거예요. 이게 어떤 거랑 비슷하냐면,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야, 이거” 하면서 책 페이지를 정해주고 “한 문단씩 읽어” 하실 때가 있었거든요. 그러면 이제 한 애가 한 문단 읽고, 다음 애가 또 한 문단 읽고, 이렇게 돌아가면 교실이 조용해져요. 왜냐하면 읽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고 자기 차례가 다가오고 있으니까, 이 차례를 안 놓치려고 집중을 한단 말이죠.
책을 읽을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한쪽에서는 ‘운동으로 먹고살아야겠어’, 또 한쪽에서는 ‘공부로 먹고살아야겠어’, 다른 한쪽에서는 ‘성격으로 먹고살아야겠어’, 이런 여러 가지 목소리들이 들리는데,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저자가 쓴 텍스트만 읽을 수 있으니까 다른 잡념들이 사라졌던 것 같아요.
Q 《자존감 수업》이 출간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읽힙니다. 10년 전 독자와 지금 독자가 이 책에서 찾는 것이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저 윤홍균은 뭔가 좀 ‘힘을 내보자, 할 수 있다’ 하는 젊은 패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저도 용기를 내보자는 취지로 쓴 책이었죠. 그 당시 독자들에겐 ‘자존감’이라는 단어 자체가 신선하기도 했고, 스스로 터득하고 스스로 훈련할 수 있게 쓴 책이었으니까 ‘이것만 하면 좀 용기를 낼 수 있겠다’, ‘이런 것만 하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고 성공도 할 수 있겠다’라고 부추기는, 그렇게 흔들어서 용기와 에너지를 주는 역할을 했죠. 그때는 저도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10년이 흐르면서 저 윤홍균이라는 사람도 조금 알려지게 됐고, 자존감이라는 단어도 사실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이 되다 보니까, 지금의 《자존감 수업》은 신선함은 좀 떨어지지 않나 싶어요. 대신 ‘자존감’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돼서, 놀랍지는 않지만 ‘신뢰를 주는 책’이 되지 않았나 싶고요. 그래서 여전히 사람들이 읽으면서 용기도 내고 하고자 하는 의욕도 생기게 되지만, 지금은 ‘믿을 수 있는 존재’로, 내가 힘들 때나 내가 지쳤을 때 믿고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친구 같은 역할로 사람들이 이용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똑같은 책인데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느끼고 있습니다.
Q SNS 속 비교와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자존감 위기, 이전 세대가 겪은 것과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가요?
예전에도 비교는 있었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저 사람이 잘 돼야 나도 잘 되던 공동체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비교를 하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자괴감을 느끼는 게 있기는 있었는데, SNS로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서는 비교 대상이 방대해진 거예요. 여름에 ‘햇살이 좋다’ 그러면 옛날엔 ‘우리나라 대한민국 최고’ 이랬는데, 지금은 캘리포니아, 하와이, 호주의 아름다운 절벽에서 파도치는 풍경이 사진으로 너무 선명하게 잘 보이니까 거기랑 또 우리를 비교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비교하는 스케일이 상당히 커졌고, 그러다 보니까 행복해지기가 더 힘들어졌어요.
요즘 주식이 한참 오르고 있잖아요. 엄청나게 주식이 오르면서 시가총액이 계속 올라가고 주식 해서 돈 번 사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데 주식으로 돈 벌어서 행복해진 사람은 거의 없어요. 나보다 더 번 사람들이 항상 SNS에 있거든요.
남들은 비교를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보라고 하는데 말이 안 돼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면 남들하고 비교를 해야 되거든요. 내가 키 큰 사람인 걸 알려면 남들하고 비교를 해야 되고, 내가 예쁜 사람인지 돈 많은 사람인지를 알려면 남들과 비교를 해야 나 자신이 (구체적으로) 펼쳐지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광범위한 비교’를 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얼마나 만족할 수 있는지, 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가 상당히 중요한 시대가 됐죠.
Q 그렇다면 비교의 불안을 잠재울 ‘만족감’을 느끼는 연습도 있나요?
만족은 무거운 걸 들어 올리는 거랑 비슷해요. 우리가 처음 헬스클럽에 가면 3킬로그램 덤벨 들기도 힘들잖아요. 근데 3킬로그램을 계속 들다 보면 들게 돼요. 3킬로그램을 들 수 있는 힘이 생긴 거예요. 만족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가장 원초적인, 밥 먹고 만족하는 것부터 훈련을 해야 해요. 밥을 먹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식사를 통해서 만족할 거리를 찾아야 해요. 먹었는데 맛이 없었어도 그래도 만족할 거리를 찾아봐야 해요. ‘그래도 배는 불렀어’ 이렇게 자기 자신한테 알려주는 거예요. ‘여기가 맛이 없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최고의 식당이라고 말하긴 힘들어도 배고파 죽을 뻔했는데 양은 충분했어.’ 이렇게 자기 자신한테 만족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연습을 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만족을 줄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자기한테 만족의 언어를 들려줄 것들을 많이 찾게 되죠. 그러면서 하나하나 만족하는 힘이 생기는 것이지, 누가 그냥 막 주지는 않아요. 남을 통해서 만족감을 얻으려고 하면 또 SNS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는 채워지지 않으니까 하나하나 덤벨을 들듯이 자꾸 찾아보고 자기 자신한테, 내 뇌한테 알려줘야 합니다.
Q 심리학 책을 아무리 읽어도 자존감이 그대로인 사람이 있습니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독서가 달라져야 한다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읽고 난 다음에는 자존감이 높아지는 좋은 책이 있으면 이런 질문이 없었을 텐데,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세상에는 아직 그렇게 완벽한 책은 없고 저는 또 독자이기도 하니까 독자로서의 팁을 드리자면, 일단은 작가가 주는 메시지를 그대로 좀 읽으면 좋겠어요. 많은 분들이 안 읽어요. 책을 펼쳐놓고 내용을 펼쳐놓고 그냥 넘겨요. 넘기면서 자기 생각을 해요. ‘자존감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써 있으면, 본인 생각으로 ‘자존감이란 뭐 자존심하고 좀 다른 거지 뭐’ 하면서 읽어요.
책을 읽을 때는 최대한 집중해서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해야 해요.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하게 되고 자신의 경험이 자꾸 떠오르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책에서 작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 워딩 그대로를 따라가면서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이게 한 번 읽어서는 잘 안 되더라고요.
책을 한 번에 쓴 작가는 없어요. 쓰고, 다시 쓰고, 다시 다듬고, 마침표를 찍었다 뺐다 하면서 수없이 퇴고를 반복한 다음에 완성되는 건데, 그걸 한 번만 쓱 보고 ‘내가 이 책을 마스터했다’ 내지는 ‘내가 이 작가를 안다’라고 생각하면 상당한 오류에 빠질 수 있어요. 그러니 일단은 워딩 그대로를 읽어주시고, 만약에 책에서 권하는 게 있으면 꼭 한 번씩 해보시면 좋겠어요.
Q 번아웃이 온 사람에게 “책 읽어보세요”라고 권하는 게 과연 유효한 처방일까요?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책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가장 낮은 문턱은 무엇일까요?
지친 분들은 어떤 책을 읽으면 좋겠냐, 또 어떤 활동을 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진료실에서 많이 듣는데, 성공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상당히 집중을 해야 성공할 수 있는데, 번아웃이 왔다는 건 무언가에 집중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거든요. 그래서 함부로 뭘 해보라고 권하는 것 자체가 지친 분들에게는 실례가 될 수 있고, 오히려 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어요. 가령 저는 “《자존감 수업》을 읽으세요”라고 얘기했을 뿐인데 지친 상태에서는 “당신이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지친 겁니다”라고 들리기도 한단 말이죠.
지친 분들, 번아웃이 온 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조언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할 부분이에요. 항상 상대방을 존중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뭐뭐 하세요”라고 얘기하기 전에 잠은 잘 주무시고 계신지, 식사는 잘 하고 계신지, 이것부터 반드시 체크해봐야 합니다. 체크를 하시고 “식사를 잘 못 하고 있다” 그러면 배달 음식 시키지 말고 데리고 나가서 양질의 식사를 하게 해드려야죠. 그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먼저 해야 할 일이고, 그러면 이제 뭐가 남았어요? 잠 문제가 남았죠. 일단 이 사람이 잠을 잘 자게 도와줘야 해요. 커피 마시지 말게 하고, 밥을 먹었으니 이제 허브차 같은 걸 마시거나 같이 걸어 다니면서 밤에 잠을 잘 잘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거죠. 그래도 이 친구가 못 잘 것 같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잠을 잘 잘 수 있게 하는 책을 그때 줘야겠죠.
똑같은 책을 주더라도 무턱대고 주는 것과, 다른 욕구를 채워주고 그 욕구가 채워졌는지 체크해본 다음에 ‘괜찮아. 이거 줄 타이밍을 잘 잡았어’ 하면서 “잠을 못 자면 이런 책 한번 읽어봐. 베고 자기 참 좋아” 이렇게 얘기하는 건 다르거든요.
Q 원장님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자기계발서보다 소설을 권하신다고요. 왜 하필 소설일까요?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는 상태가 되면 자존감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인 ‘자기효능감’이 떨어져요. ‘내가 무엇 무엇을 할 수 있다’, ‘나는 가치가 있다’, ‘능력이 있다’라고 하는 자기효능감이요. 그래서 ‘나는 못 하겠어’라는 생각이 지배를 하거든요.
저는 정말 자기계발서를 좋아하고 자기계발서의 도움을 받았지만, 자기계발서를 쓰는 사람들은 일단 자기 계발이 된 사람들이에요. 자기 계발 중이거나 자기 계발을 시작하는 사람은 자기계발서를 쓸 수 없어요. 이미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담, 자신의 성공 이야기를 통해 독자를 도와주려고 쓰는 책이 자기계발서거든요. 저는 근데 따라올 독자들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못 따라올 독자들도 생각하는 사람이잖아요, 의사다 보니까.
그래서 ‘자존감 수업’이라는 제목이 나온 거예요. 딱 봐도 자존감에 대한 책이라는 걸 그냥 제목부터 보여드린 거예요. 더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 있어하는 게 뭘까,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봤더니, 대한민국 사람들이 제일 잘 하는 건 수업 듣는 거예요. 문맹률이 제로에 가깝거든요. 어쨌든 학교는 다 다녀봤어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얘기할 때 끄덕끄덕하는 것도 다 해봤거든요. 그래서 ‘이 책은 자존감에 대한 책이고, 이 책은 수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책을 쓴 거예요.
학습 중에 가장 본능적인 학습은 ‘모방 학습’입니다. 누군가 옆에서 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따라 하는 거예요. 누가 옆에서 웃고 있으면 나도 따라 웃는 거고, 누가 옆에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으면 나도 일단 엎드리게는 되는 거예요. 이렇게 옆에서 무언가 하고 있으면 따라 하는 게 가장 본능적인 학습이고, 이거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소설은 이야기란 말이죠. 소설에서는 항상 갈등이 존재해요. 갈등이 존재하고, 그 갈등이 해결됩니다. 스토리를 보는 게 자기계발서 보는 것보다 훨씬 쉽죠. 소설을 쓰시는 분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독자가 후킹될 수 있게,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다 만들어줬어요. 그래서 자기계발서도 좋고 소설도 좋고, 이야기가 있는 책이 접근하기가 쉬운데, 이왕이면 감동할 수 있는 이야기가 좋으니까 소설부터 먼저 읽고, 어느 정도 모방이 됐으면 또 자기계발서도 읽고, 자기계발서 읽다가 또 소설도 읽으면서 힐링도 하고, 왔다 갔다 하게 되겠죠.
Q 독서는 보통 혼자 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에는 꼭 ‘독서 모임’, ‘독서 토론’ 같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붙는데요, ‘혼자 읽기’와 ‘함께 읽기’, 효과가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가 독서를 하는 이유는 작가하고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에요.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 사람이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런 사람이 이걸 권하는구나’, 그러면서 나도 작가에게 말을 하는 거예요. ‘내 생각은 이런데 네 생각도 이렇니?’, ‘야, 우리가 공통점이 있구나’, ‘이 점은 우리가 좀 다르구나’, ‘그래, 다르지만 다음 장으로 넘어가 볼 만하네’ 하고 넘어가고요. 결국은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거지만 문제점이 있죠. 독서를 통한 상호작용은 작가가 너무 멀리 있어요. 너무 멀리 있어서 나는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생각에 빠져버릴 수가 있죠. 곡해하고 왜곡할 수가 있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계속 읽으면서 내가 싫어하는 부분을 놓칠 수가 있다는 게 단점이에요.
이 부분을 보완해주는 게 독서 모임이고 독서 토론입니다. 내 관점에서는 분명히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것 같았는데, 저 사람 관점에서는 ‘난 이 사람 덕분에 인생이 달라졌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러면서 이 작품과 작가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으니까 더 본질적이고 더 구체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독서 토론이 잘 이루어지려면 서로의 느낌, 서로의 감상을 존중해주는 토론이 이루어져야겠죠.
Q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를 비롯한 많은 AI가 상담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로서, AI가 끝내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힘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엄청난 경쟁자가 나타났죠. 글도 써주고 상담도 해주니까요. 저는 나름대로 ‘n잡러’라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서 ‘이거 진짜로 나도 경쟁력에서 밀리면 어떡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좀 내려놓고 챗GPT한테 배우고 있습니다. 챗GPT가 어떤 면에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어필을 하는지 배우고 있어요. 배워봤더니, 참 친절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친절하지 못하거든요. 친절한 데다 기복이 없어요. 밤 12시에 부르든 새벽 5시에 부르든 항상 똑같은 컨디션으로 일관되게 친절하고 정확한 정보를 주고, 틀린 것도 가끔 있지만 틀린 정보를 제시하면 또 친절하게 사과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친절함과 정확함, 그리고 사과하는 능력, 그리고 내가 한 가지를 질문하면 ‘이것도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것도 궁금하지 않으세요?’ 하면서 궁금할 법한 연관 키워드를 제시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이야, 저런 건 나도 치료자로서 또 작가로서 배워야겠다’라고 하면서도, 아직은 AI가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특징을 하나 찾아내기는 했어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어설픔’이에요.
어설픔은 사람으로 하여금 채워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켜요. 작가로서 제가 어떤 글을 쓰더라도 어설픈 구간이 있단 말이죠. 그럼 그 구간을 보면서 독자분들은 ‘이 사람은 이 부분이 부족하구나’ 하면서 저한테 연민의 정을 느낄 수도 있고, 제가 챗GPT보다 못 하는 부분이 있는 걸 보면서 위안을 삼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종합하면, 인간에게는 부족함이 있고 부족함을 채워주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것까지 챗GPT가 경쟁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거죠. 제가 아내하고 지금 20년 넘게 같이 살고 있는데, 아내가 저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제가 잘 나갈 때가 아니에요. 제가 아플 때예요. 아플 때, 뭘 못 하겠다고 성질 부릴 때, “아, 몰라” 하면서 “나 너무 힘들어” 하고 울고 있을 때. 그때 아내가 보여주는 반응을 보면서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라는 걸 느끼거든요. 아내도 그런 저를 사랑하면서 행복해하고요. 그런 것을 느끼려면 부족해야죠. 그래서 인간의 부족함이 오히려 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Q 정신적으로 지친 사람들이 자주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습니다. 책이 있는 공간에 들어서는 것 자체로 이미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요?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쓴 빅터 프랭클이라는 선생님이 계세요. 그분이 깨달은 게, 유태인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아남고 어떤 사람들이 포기했는가를 보면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살아남는다’는 거였어요. 그게 심리 치료, 정신의학계에서 ‘의미 치료’라고도 쓰이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거든요.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건물을 지을 때, 그 건물을 짓는 사람들은 다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거예요.
오늘 여기 같은 경우는 치료실이거든요. 이 치료 공간을 만들 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곳에서 치유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배치를 했어요. 도서관도 마찬가지예요. 도서관을 만드는 분들이 ‘이곳에 오시는 분들이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그럼 책은 왜 읽느냐 할 때 ‘충전을 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사람들이 도서관에 그냥 있으면 좋겠어요. 도서관에서 다리가 아프면 그냥 의자에 앉아 있고, 둘러보다가 기운이 없고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모르는 채로 있는 거죠. 우리가 백화점에 가면 거기에 있는 거 다 사려고 가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보고, 냄새 맡고, 한번 입어나 보고, 그러고 안 사잖아요. 그렇듯이 책도 꼭 내 것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 훑어보고 다시 꽂아놓고, 또 훑어보고, 쇼핑하듯이 좀 즐기면 좋겠어요. 그러라고 만들어놓은 곳이 도서관이니까, 그렇게 도서관에 가서 좀 있다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Q 도서관에 오긴 했는데 어떤 책을 집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 자존감을 키우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 원장님이 그 사람 앞에 서 있다면 첫 마디로 무슨 말을 건네시겠어요?
망설이고 있다면, 그 감정은 항상 기억과 같이 가기 때문에 망설이게 만드는 어떤 기억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실컷 망설이라고 할 것 같아요. 망설이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망설이시라고 할 거예요. 말을 걸긴 할 건데, 존중은 질문으로 통한다고 해요. 그러니 저는 이 사람을 존중하기 때문에 질문을 하겠죠.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자존감을 높이려고 하시는지 여쭤보겠죠. 그럼 ‘뭐 때문에 높이려고 한다’ 얘기를 하시겠죠. 그러면 자존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볼 것 같아요. 저는 관심이 있으니까, 그냥 흘러가는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에 대한 걸 궁금해할 거니까요.
본인이 생각하는 자존감이 어떤 개념인지, 사랑받고 싶은 건지, 능력을 키우고 싶은 건지, 본인 마음대로 좀 해보고 싶은 건지, 너무 세상이 불안하고 위협적이어서 안전 기지를 찾는 건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거든요. 그걸 물어보고, 그럼 내가 도움을 드려도 될지 말지 그것도 여쭤보겠죠. “아니요, 저 혼자 고민하고 싶은데요?” 이럴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도움을 받고 싶다 하시면 또 질문하겠죠. 그러면 어떤 도움을 받고 싶으신지, 그냥 저랑 이렇게 도란도란 얘기하시기를 바라는 건지, 아니면 큐레이터가 되어 ‘당신한테 이런 책들이 어울립니다’라고 선별해주기를 바라시는지, 또 아니면 그냥 이왕 이렇게 만난 거 밥이라도 같이 먹기를 바라시는지. 사람마다 욕구가 다 다르고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으니까.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다 가고 싶은지도 물어볼 거예요. 그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최선을 다해서 해주겠죠. 어쨌든 누군가를 도와주려면 일단은 그분을 존중하려 할 것이고, 존중을 하려면 니즈가 뭔지 물어보는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네요.
Q 끝으로 ‘더 라이브러리’의 공통 질문입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 단어로 짧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제는 연결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자본주의의 핵심은 경쟁이거든요. 공동체 사회하고는 달라요. 공동체 사회에서는 저 사람도 ‘우리’니까, 팀이니까, 먹고살아야 되니까, (가게나 주인이)마음에 안 들어도 팔아줬단 말이에요. 그게 공동체 사회예요.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언제 쓰일지 모르니까 같이 데리고 가줬어요. 그게 공동체 사회였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우선이거든요. 만족이 우선이거든요. 제일 좋은 거 하나만 차지할 수밖에 없게 됐어요. 자본주의는 경쟁과 함께 가고, 개인주의와 함께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로움의 시대’를 건너면서 ‘어떻게 해야 연결될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될 겁니다.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능력은 점점 희소해지면서 점점 더 필요한 기술이 되어가고 있죠.
그런데 항상 역설이 있죠. 혼자 살아도 되지만 혼자 살면 너무 외로우니까 같이 살아야 하는 역설이 존재하듯이, 연결이 되려면 우선 끊어내는 게 필요하다는 거죠. 계속 스마트폰 릴스를 보면서 가족들과 연결된 식사를 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내가 가장 재미있고 흥미롭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끊어내야 진정한 연결이 이루어질 수 있는 거죠.
외로움과 연결의 힘, 끊어냄과 연결의 힘이 상존하는 시대에서, 어떻게 하면 나쁜 것,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잘 끊어내고 나에게 유익한 것을 연결할 수 있을까. 그 투쟁이 될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홍균_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작가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원장. 2016년 출간한 첫 책 《자존감 수업》이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일본,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도 출간돼 호평받고 있다. 《경향신문》 《한국일보》 《레이디경향》 《월간 생로병사》 등에 글을 썼으며, 〈EBS 부부가 달라졌어요〉 자문의, 교통방송 〈귀로 듣는 처방전〉 상담의로 활약했다. ‘어쩌다 어른’, ‘세바시’ 등 다양한 매체에서의 강연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면서, 대부분의 시간은 병원을 찾아오는 내담자들과 보내고 있다.
AI 시대의 도서관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문화인류학자인 조한혜정 교수는 ‘인류는 싸움이 아니라 공감능력으로 진화’했다고 말하며환대와 배려의 공간으로서 도서관의 역할을 얘기한다. 1. 문화인류학과 도서관- 가장 거시적이면서 가장 미시적인 인류학- 사서들도 문화인류학자가 되어야 한다2. 인류가 거치고 있는 세 번째 혁명기- 인류사에 나타난 세 차례 대혁명
더 라이브러리 ‘석학 인터뷰’는 우리 시대 다한 분야의 석학들을 모시고삶과 독서에 관한 풍성하고도 깊이 있는 경험과 철학을 나누고자 기획되었다.이번 호에서는 KAIST 뇌인지과학과 정재승 교수를 만나최전선에서 연구하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일과 21세기 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인터뷰했다. [인터뷰 개요]1. 과학자야, BTS야? “과학자를 보지 않은 사람이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는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스스로에게 친절하라”고 말했다.허준이 교수의 축사에는 교육과 배움, 독서의 본질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교육과 배움에서 스스로에게 친절한 긍정정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의 긍정정서를 키우는 독서 교육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강연 개요]1. 교육의 본질- 교육에서 아이의 긍정정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