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여름 극장가는 어떤 작품의 것으로 기억될까? 제일 먼저 도전장을 내민 것은 나홍진 감독의 〈호프(Hope)〉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광복절 직후의 스코어로 보자면 〈호프〉는 제작사가 밝힌 손익분기점인 700만 관객 동원에는 실패했고, 작품의 호불호에 대한 논쟁만이 더 강하게 남아 있다.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쉽지만, 현재 그 자리에는 두 편의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와 〈오디세이〉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오디세이〉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블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스파이더맨’을 연기한 톰 홀랜드가 〈오디세이〉에서 텔레마코스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는 점을 빼고도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돌아갈 집을 상실한 영웅들이 겪고 있는 향수(鄕愁, homesickness)의 감정과 상태, 이를 찾아가거나 극복(혹은 인정)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아내와 아들이 있는 고향 이타카로 귀환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길을 잃고 10년 동안 지중해를 방황하고 있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파이더맨〉은 이미 여러 배우와 감독들에 의해 영화화되었지만, 톰 홀랜드가 주연을 맡은 〈스파이더맨〉은 이번 ‘브랜드 뉴 데이’까지 총 네 편이 제작되었다. 2017년 ‘홈커밍(Homecoming)’, 2019년 ‘파 프롬 홈(Far from Home)’, 그리고 2021년 ‘노 웨이 홈(No Way Home)’이라는 부제에서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처럼, 이전까지의 세 편은 스파이더맨이라는 픽션의 영웅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집으로 귀환하고, 집에서 멀어지고, 마침내 집을 상실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최신작인 ‘브랜드 뉴 데이’도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과는 달리 심각한 향수병을 앓고 있는 피터 파커의 고독과 정신적 고통에 서사의 대부분이 녹아 있기에 당분간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홈리스(homeless)의 불완전한 감정 상태와 그 에피소드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토퍼 놀란 ‘오디세이’ 2026 스틸컷 출처: https://www.reddit.com/r/ChristopherNolan/comments/1tyi3kt/the_odyssey_4k_143_stills/?tl=ko
일상의 상실, 아니 사라진 일상의 이야기
앞에서도 밝힌 것처럼 〈오디세이〉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며, 읽지는 않았어도 그 내용이나 결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에 스포일러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영화이다. 물론 영화와 서사시 간 약간의 차이점은 존재하고 있지만 이는 작품 감상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영화의 결말은 오디세우스의 귀향으로 끝나는 서사시와는 달리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왕위를 넘기고 아내 페넬로페와 서쪽 바다로 떠나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아왔는데, 영생과 풍요를 약속했던 여신 칼립소를 과감하게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왜 오디세우스는 집을 다시 떠나는가? 아니 영화 내내 홈리스의 고통과 절망을 보여줬는데, 그토록 찾았던 집의 안정감과 고양감, 가족과 친구들이 주는 달콤함과 즐거움을 영화는 왜 길게 보여주지 않는가, 라고 말이다.
대답은 어렵지 않다. 집에는 심리적 안정이, 감정적 평온이, 다정한 웃음과 가벼운 대화와 수다가 넘치지만 집에 머물러 있으면 인물의 행동이, 그 연쇄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 서사가 멈추기 때문이다. 일상은 정서적으로는 안온하지만 서사적으로는 사건이라고 부를 수 없는 작은 일들의 연속이거나 동일한 것들의 반복에 불과하다. 오히려 집을 떠날 때 이야기는 발생한다. 매일의 일기가 집을 나선 후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호프〉의 싸움은 외계인의 침입에서 출발하고, 〈테이큰〉의 폭력은 딸이 납치되었을 때 시작한다. 〈브레이킹 배드〉의 암에 걸린 화학 교사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마약을 제조하기 시작할 때 평생 경험하지 못한 사건이 펼쳐지는 것처럼, 집이 더 이상 정든 집이 아닐 때, 일상이 깨어지고 주인공이 파괴된 집을 복구하기 위해 나설 때 모든 이야기는 생기를 얻고 약동한다. 또한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펼쳐지는 갑론을박의 시시한 이야기보다는 결코 집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보길 원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아이러니가 있다. 매일 먹고 있는 것은 집밥인데, SNS에는 어쩌다 한 번 먹는, 그것도 그리 대단한 맛이 아닌, 미쉐린 별이 붙은 레스토랑의 사진을 올리는 것처럼. 대부분은 집과 학교, 집과 직장을 오가는 단조로운 삶을 살면서도 일 년에 한 번 가는 며칠간의 여행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집에는 파랑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흥미가, 질리지 않고 아주 오랜 시간을 반복해서 먹을 수 있는 어머니의 레시피가, 별다른 내용을 말하지 않고도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나 가족이 있다. 세상의 산해진미를 경험한 미식가가 마지막에 희구하는 밥상이 어머니가 해준 평범한 찌개나 국인 것처럼. 일상에는 집 떠난 스파이더맨도, 칼립소 여신의 무릎을 베고 누운 오디세우스도 벌떡 일어나 돌아오게 만드는 재미와 즐거움이 있다.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 포스터 (좌)바카리즈무 (우)이치카와 미카코
‘바카리즈무’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문제는 모든 사람이 노상 경험하는 자질구레한 일상의 서사를 흥미롭게 가공하는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드문 일을 아주 잘하는 이야기꾼 중 하나가 일본의 멀티 엔터테이너 ‘바카리즈무’이다. 본명은 마스노 히데토모이지만 ‘바카리즈무’라는 활동명을 사용하는 그는 일본의 개그맨이자 배우이며, MC이자, 드라마 각본가이다. 만약 당신이 왓챠나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을 구독하고 있다면, 어렵지 않게 그가 각본을 쓴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입문작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2025)〉, 〈브러쉬 업 라이프(2023)〉이다.
바카리즈무 이야기의 특징은 놀라운 허구적 설정과 이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는 일상의 모습, 그리고 일상을 묘사하는 세밀함과 인물들의 수다이다. 가장 최근작인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를 놓고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싱글맘 엔도 키요미(이치카와 미카코)는 중학생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후지산이 한눈에 보이는 집 근처의 호텔에서 일을 하고 있다.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던 키요미는 트럭에 치일 뻔하는데 이를 직장 선배인 타카하시(카쿠타 아키히로)가 놀라운 신체 능력으로 구해준다.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타카하시의 육체적 능력을 놀랍게 여긴 키요미는 이에 대해 거듭해서 묻다가, 그가 100년 전 지구에 온 외계인의 후손임을 알게 된다. 맙소사.
외계인이 서사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1979)〉에서 외계인은 인간의 배를 뚫고 나와 잊을 수 없는 살육의 장면을 선사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E.T.(1982)〉에서 외계인은 경찰과 과학자들을 피해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보름달이 뜬 하늘을 날았다. 2026년, 나홍진의 〈호프〉에서 외계인은 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호포리의 사람들은 그중 하나를 잡아 잔혹하게 해부를 했다. 하지만 〈핫스팟〉의 외계인은 무섭지도, 놀랍지도, 위협적이지도 않다. 그는 자신이 외계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키요미와 그 친구들 앞에서 10엔짜리 동전을 끊임없이 접어대고, 그 능력을 활용해 학교 체육관 천장에 낀 배구공을 꺼내거나 수험표를 놓고 간 호텔 투숙객에게 빠르게 뛰어가 이를 전해줄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키요미와 그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떤다. 식당의 음식을 품평하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뒷담화를 하고, 투숙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의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대화의 내용이 너무나도 익숙하고 일상적이기에 마치 내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바카리즈무의 이야기가 말도 못 하게 재밌다는 것이다. 마치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매일같이 열고 닫으며 먹을 게 하나도 없네, 라고 느끼는 내 주방에 놓인 냉장고의 재료를 전문 요리사가 새로운 별미로 탈바꿈해주는 마법과 같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일상의 냉장고를 열고 뭐 새로운 것이 없나 찾고 있다면 고개를 들어 ‘바카리즈무’의 이야기를 보라. 놀라운 집밥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서희원_문학비평가
2009년 문화일보와 세계일보를 통해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2019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얼룩을 가리는 손》(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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