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겨울, 사서들의 손에 얇은 소책자가 한 권씩 조용히 건네졌다. ‘독서의 일곱 가지 기쁨’이라는 제목의 16페이지짜리 작고 얇은 책자였다. 펼치면 한 호흡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고, 덮으면 금세 잊힐 것 같은 이 작은 책 안에는 오늘 우리가 ‘사서’라고 떠올리는 얼굴이 담겨 있었다.
단정한 옷차림의 차분한 목소리, 그리고 책 곁에서 오래 머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침착한 그녀들의 이미지는 언제, 어디서 만들어지기 시작했을까? 그 시작에는 이 작은 책자의 주인공 메리 라이트 플러머(Mary Wright Plummer)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글이 사서들의 손에 들리기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래된 규칙 하나, “The librarian who reads is lost”
과거 도서관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지식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기능에 집중되어 있었다. 성인 남자, 혹은 특정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도서관의 이러한 모습은 책이 대량으로 인쇄되고 공공도서관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던 19세기 말까지도 이어졌다. 일반 대중에게 도서관은 조용히 닫힌 공간이었다.
플러머가 처음 도서관 세계에 발을 들인 1887년 무렵 사서의 주된 역할은 책을 구입하고, 목록화하고, 분류하고, 대출을 관리하는 것이 전부였다. 도서관에 입고되는 책을 관리했지만, 읽을 수는 없었다. 책을 다루되 읽지 않는 것, 그것이 사서에게 요구된 자세였다. 책 제목을 알고, 저자를 기억하고, 청구기호를 익혔다. 그러나 내용은 허락되지 않았다.
“책을 읽는 사서는 망한다.”
작업 도중에 내용을 잠깐 들여다보는 것조차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도서관에서 사서들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장서 관리가 엉망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그들 사이에서는 ‘책을 읽는 사서는 망한다’는 식의 문장까지 떠돌았다. 누가 책을 읽지는 않는지 서로를 감시하고 경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문화 속에서 플러머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책을 읽지 않는 사서가 어떻게 누군가에게 필요한 책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 변화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메리 라이트 플러머의 초상 (New York Public Library)
모두를 위한 도서관
그녀가 처음으로 바꾸고 싶었던 것은 도서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도서관은 누구를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할까? 왜 어떤 사람들은 도서관 문 앞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을까? 이 질문들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세인트루이스 공공도서관을 거쳐 브루클린의 프랫 무료 도서관(Pratt Institute Free Library)에 합류한 플러머는 1895년 프랫도서관의 관장이 되면서 처음으로 그 물음에 직접 답할 기회를 얻었다.
1896년 봄, 그녀는 새로 문을 여는 프랫도서관에 지금껏 어느 도서관에도 없던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바로 어린이 전용 열람실이었다.
당시 아이들은 도서관에 마음대로 들어올 수 없었다. 도서관은 어른의 공간이었고, 어른에게 맞춰 계획되고, 관리되고, 운영되고 있었다. 플러머는 바로 그 전제를 바꾸고 싶었다.
어린이 열람실을 만들기로 한 결정은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작은 가구와 책들을 준비하는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도서관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고정관념 자체를 건드리는 일이었다.
어린이 열람실에는 건물 남쪽에 별도의 출입구가 만들어졌다. 12세기 영국 캔터베리 킹스 스쿨의 ‘노르만 계단(Norman Staircase)’ 양식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아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 문을 통해 어른들의 공간과는 분리된 별도의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현재 프랫도서관에 보존된 어린이 현관 아치 구조물 출처: Barry Winiker / Getty Images
처음 온 아이에게 사서는 열람실을 함께 돌아보며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소개해주었다. 아이의 관심사를 묻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 한두 권을 골라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바닥에 앉거나 의자에 기대어 자신들이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프랫도서관의 어린이 전용 열람실은 하나의 시작에 불과했다. 플러머는 어린이 전문 사서 교육과정을 만들었고, 이 과정을 거친 앤 캐럴 무어(Anne Carroll Moore)는 이후 뉴욕 공공도서관 전 지점에 어린이 열람실을 설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새롭게 만들어진 열람실에는 이민자 아이들을 위한 다국어 장서도 갖춰졌다. 도서관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모두의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프랫 무료 도서관의 어린이 자료실(1910년경) (Pratt Institute Archives Photograph Collection)
독서의 일곱 가지 기쁨-익숙함, 놀라움, 공감, 감상, 확장, 충격, 깨달음
공간은 바뀌었지만, 사서가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책을 관리하는 창고지기로만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 너머의 역할은 여전히 흐릿했다.
그녀가 생각했던 사서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는 글이 바로 《독서의 일곱 가지 기쁨》이다. 1910년 한 문학지에 실린 이 에세이는, 도서관 교육의 기준을 설계하고 전국 사서들의 커리큘럼을 다듬어온 사람이 쓴 글이라고 하기엔 놀랍도록 개인적인 시선에서 독서의 즐거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에세이의 첫 문장부터 플러머는 변화를 이야기한다. 책을 분류하고, 책장에 꽂고, 대출을 관리하는 것이 전부였던 시기가 끝나가고 있고, 이제는 책을 직접 읽는 것도 사서의 일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변화를 오랫동안 닫혀 있던 낡은 문이 열리는 순간처럼 표현한다.
“마치 새로운 자유의 헌장이 우리 손에 쥐어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제 당당히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예전처럼 이미 다 읽은 듯 시치미를 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뒤이어 오랫동안 몰래 책을 사랑해왔던 사람이 마침내 그 사랑을 드러낼 수 있게 됐다는 고백과 함께 일곱 가지 기쁨을 하나씩 펼쳐놓는다.
플러머가 말하는 일곱 가지 기쁨은 오래 사랑해온 작품을 다시 꺼내 드는 익숙함에서 시작한다. 오래된 책 속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놀라움, 나와 같은 시선으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공감과 위로. 이러한 기쁨은 책을 읽은 사람만이 털어놓을 수 있는 내면의 고백이자 감각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 눈물이 났던 경험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흐느끼고 싶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이 불쑥 올라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끝에 이런 불가항력적 순간들이야말로 문학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인다.
또 어느 날은 구두 수선공이 직접 쓴 철학책 한 권을 팔러 사무실에 찾아온다. 허름하게 제본된 책이었지만 그녀는 내용을 확인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책을 구매한다. 나중에 읽어보니 그 낯선 구두 수선공이 스피노자와 거의 같은 철학을 스스로 사유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플러머는 “그가 먼저였다면, 스피노자만큼 유명해졌을 것”이라며 그때 느꼈던 감정을 놀라움의 기쁨이라 부른다.
플러머가 남긴 것
플러머가 평생에 걸쳐 만들어온 모두를 위한 도서관과 사서가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인 역할은 생애 마지막 연설문에 남아 있다. 그녀는 미국도서관협회 회장으로서 연례 총회의 개회 연설을 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 서지 못했다. 병색이 짙어 병상에서 원고를 완성할 수밖에 없었다.
“공공도서관은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입니다.”
대신 낭독된 그녀의 목소리는 결국 이렇게 요약되었다. “책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도서관은 결국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것이 그녀가 평생 동안 도서관과 사서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녀가 도서관에서 보낸 30년은 처음부터 하나의 목표를 향해 걸어간 시간은 아니었다. 의문이 생기면 따라갔고, 없는 공간이 필요하면 만들었으며, 아직 쓰이지 않은 말이 있으면 먼저 써 보였다.
그 삶이 쌓여 하나의 얼굴이 됐다. 1916년 겨울, 사서들의 손에 조용히 건네진 그 얇은 소책자는 한 개인이 평생에 걸쳐 완성한 초상화였다. 단정한 옷차림, 차분한 목소리, 책 곁에서 오래 머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침착함은 처음부터 한 여성의 얼굴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얼굴을 사서라는 단어로 떠올린다.
책이 닿지 않던 곳1930년대 미국 켄터키주는 여러 위기가 한꺼번에 덮친 땅이었다. 대공황으로 석탄 광산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마을에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들의 생활수준은 처참했다. 전기나 상하수도를 갖춘 마을은 드물었고, 도시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도 없었다.생필품을 사러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환경에서 책은 당연히 그들의 손에
10년도 더 된 일인 것 같다. TV의 건강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데, 한 외국 여성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암을 최초로 발견하고 경고한 것은 바로 반려견이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다. 반려견이 주인의 몸에서 특이한 냄새를 맡고 계속 경고성 행동을 해서 병원에 가게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암세포에서 발생하는
1. 내가 사는 동네에 아주 작은 공원이 있다. 골목의 서른 개쯤 되는 계단을 올라가 딸랑 그네 네 개가 있을 뿐인 놀이터로 접어들면, 근처 어느 집의 열린 대문 안이나 화단 덤불에서 서성이던 ‘귀(貴)’가 카트 바퀴 구르는 소리를 듣고 울면서 쫓아와 맞아준다. 하소연하는 듯도 하고 따지는 듯도 한 울음소리다. 귀의 정식 이름은 귀부인. 3년 전엔가,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