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빈의 플레이리스트] 달빛에 실어 보내는 마음–드보르자크 〈루살카〉 ‘달에게 부르는 노래’
임주빈_전 KBS 클래식FM PD, 음악 칼럼니스트
2026-09-0810:00
맑은 밤하늘에 휘영청 둥근 보름달이 뜨면 괜스레 맘이 설레면서 벅차오른다. 그날이 정월대보름이나 한가위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이 달을 바라본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을 텐데, 누가 언제부터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습을 만들어냈을까? 수천 년 전 어느 밤, 메소포타미아의 들판에서 달을 바라보던 농부였을까? 아니면 중국의 시인이었을까? 혹은 바다로 나간 이의 무사 귀환을 빌던 어느 섬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작은 알지 못하나 확실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달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공평하게 빛을 비춘다는 것이다. 우리는 눈부시게 찬란한 해, 멀리서 반짝이는 별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정서를 달에게서 느낀다. 고요한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은 은근하고 다정한 정인(情人)과 같다. 그래서 정인에게 고백하듯 달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소원을 비는 것이다.
하지만 달을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떤가. 20세기에 들어와 인류는 지구에서 평균 약 38만 4천 킬로미터 떨어진 달의 표면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다가, 1959년 소련의 루나 1호가 달을 스쳐 지나갔고, 같은 해 루나 3호는 그동안 지구에서 볼 수 없었던 달의 뒷면을 최초로 촬영했다. 그리고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에 착륙하면서 인류는 최초로 달에 발을 디뎠다. 이후 아폴로 계획을 통해 지구로 가져온 달 표본만도 약 382킬로그램에 이른다고 한다. 이제 달은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여신의 궁전도 아니며, 토끼가 방아를 찧는 곳도 아니다. 회색의 돌과 먼지, 움푹 파인 수많은 구덩이로 이루어진, 지질학 연구의 대상인 것이다. 달은 전설 속 신비로운 존재에서 지구와 태양계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존재로 전환됐다.
물론 과학이 달의 비밀을 밝혀내기 전에도 농경사회에서는 달의 변화를 살펴 달력과 시간의 흐름을 가늠했고, 바닷가 사람들은 조수의 변화를 알아챘다. 달은 이렇게 단순히 하늘에 떠 있는 천체라고 하기엔 인간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신비로운 존재를 두고 참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달에는 신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달 자체를 신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의 셀레네(Selene)는 달의 여신이었고, 로마에서는 루나(Luna)가 달을 상징했다. 중국에도 불사약을 먹고 달로 도망가 승천해 달의 여신이 됐다는 항아(嫦娥)의 전설이 있다. 밤과 달, 여성성과 생명, 죽음과 부활 등이 서로 얽혀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달의 이미지는 또 동서양의 여러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중국의 시인 이백과 두보에게 달은 중요한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술잔을 함께 기울이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되기도 했다. 교교한 달빛 아래에서는 현실과 꿈,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진다. 이런 감성에 이끌린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달을 향해 사랑을 이야기하고, 달빛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들을 썼다.
음악에도 달을 소재로 한 작품이 상당히 많다.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Clair de lune)〉, 슈만의 가곡 〈달밤(Mondnacht)〉, 슈베르트의 가곡 〈달에게(An den Mond)〉,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Rusalka)〉에 나오는 아리아 ‘달에게 부르는 노래(Měsíčku na nebi hlubokém)’가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드보르자크의 ‘달에게 부르는 노래’는 달빛처럼 흐르는 오케스트라 선율 위에 루살카의 애절한 사랑을 얹어 노래하는 아름다운 아리아로,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좌)안토닌 드보르자크 (출처:나무위키) (우)드보르자크의 <루살카>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Kristine Opolais)ⓒ켄 하워드(Ken Howard)/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루살카〉는 교향곡 〈신세계〉로 유명한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 (Antonín Dvořák, 1841~1904, 체코)가 1900년에 쓴 3막짜리 오페라다. 대본은 시인 야로슬라브 크바필(Jaroslav Kvapil)이 체코어로 썼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와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드 라 모테 푸케(Friedrich de la Motte Fouqué)의 《운디네》에서 큰 영향을 받았으며, 체코 민속 문학의 전통과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 보제나 네므코바의 작품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루살카는 슬라브 신화에 나오는 물의 요정으로, 이야기는 루살카가 인간인 왕자를 사랑하면서 시작된다. 인간이 되고 싶었던 루살카는 마녀 예지바바에게 도움을 청하고, 인간 세계로 나갈 기회를 얻는다. 대신 목소리를 잃고, 사랑을 얻지 못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인간이 되기 전, 루살카에게는 한 가지 간절한 소원이 있다. 자신의 마음을 왕자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달을 바라보며 노래한다. “내 사랑을 그에게 전해 달라”고. 세상 어디든 빛을 보내는 달이야말로 사랑하는 이가 어디에 있든 자신의 마음을 전해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 아리아 ‘달에게 부르는 노래(Měsíčku na nebi hlubokém)’는 호수의 물결에 흔들리는 달빛을 연상시키는 하프의 아르페지오로 시작한다. 그 위로 관악기와 현악기가 조용히 밤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루살카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노래는 서두르지 않고 긴 호흡으로 부드럽게 이어진다. 루살카는 이 순간 행복한 마음으로 달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지만 이제 인간이 되면 말로 사랑을 고백할 수 없고, 인간이 되기로 한 자신의 선택이 어떤 운명을 가져올지도 알 수 없다. 그녀에게 달은 지금의 간절한 마음을 토로하고 부탁을 들어줄 유일한 존재다. 그래서 이 아리아의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이 섞여 있다. 드보르자크는 달이 뜬 호수의 무대 정경에 하프와 현악기의 부드러운 흐름, 넓게 펼쳐지는 선율, 맑은 음색을 통해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아주 조용하게 표현했다.
오페라는 인어공주처럼 비극으로 끝난다. 이국 공주의 등장으로 왕자의 사랑을 잃은 루살카는 죽음의 정령이 되어 호수 깊은 곳을 떠돌게 된다. 마녀 예지바바는 왕자를 죽이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칼을 건네지만, 루살카는 사랑하는 왕자를 차마 죽이지 못한다. 한편 이국 공주에게서 버림받은 왕자는 뒤늦게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루살카를 찾아 호숫가로 돌아온다. 루살카는 자신의 입맞춤이 왕자를 죽게 할 거라고 경고하지만, 왕자는 죽음을 각오하고 그녀에게 키스를 청한다. 결국 루살카가 왕자에게 입을 맞추고, 왕자는 그녀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루살카는 왕자의 영혼을 위해 신에게 자비를 구한 뒤 다시 호수 깊은 곳으로 사라진다.
이제 곧 한가위 보름달이 밤하늘을 채울 것이다. 과학의 눈으로 본 달은 회색 돌과 구덩이뿐인 천체라지만, 인간의 눈에 담긴 달은 여전히 다정한 정인이자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차면 비우고 비워지면 다시 차오르는 달의 모습은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과 성취, 허망함의 순환을 깨우치며 삶의 지혜를 건넨다. 또, 스스로 빛나지 않고 햇빛을 반사해 어둠을 밝히는 달빛의 속성은 내 안의 빛도 실은 누군가가 비춰준 온기 덕분이라는 겸허함을 일깨운다. 루살카가 호숫가에서 달을 바라보며 간절한 사랑을 털어놓았듯,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가 있다면 이번 추석 달빛에 실어 보내는 것은 어떨까. 그 은은한 빛 아래서라면 멀어진 그리움도, 말로 다 채우지 못한 속내도 모두 포근히 감싸질 테니까. 그날만큼은 달빛을 가릴 구름도, 비도 비켜서 있기를 바란다.
[음악 감상]
드보르자크(A. Dvořák)/루살카(Rusalka), ‘달에게 부르는 노래(Mesícku na nebi hlubokém)’
임주빈은 KBS 클래식FM에서 다수의 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KBS 라디오센터장과 예술의전당 이사를 역임했다.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는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쉽게 접하고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게 하고자 힘을 쏟았고, 지금은 강의, 글쓰기 등을 통해서 많은 이와 클래식 음악 감상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작곡가의 생애와 대표작을 수록한 CD 시리즈 “Listen & Lesson – 해설이 있는 클래식‘ 20종을 기획, 제작했다.
윈터링(Wintering). 책의 영어 원제는 이렇다. ‘겨우살이’라든가 ‘겨울나기’ 쯤으로 번역하면 그만일 테지만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겨울이라는 계절의 함의를 다시금 생각해보라는 뜻인 듯하다. 우리는 지금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 서서히 추위에서 벗어날 채비를 하려 한다. 이번 겨울은 어땠는가. 견딜 만했는가? 아니면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가끔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던 지난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처럼 지금의 여름을 보낼 수 있을까. 어림도 없다. 특히 도시에 산다면 이제 에어컨 없는 여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의 어느 날, 더위와 싸우던 나는 마침내 나만의 피서법을 찾아냈다. 그날도 목덜미를 타고 등줄기로 흘러내리는 땀을 견디며 책상머
1995년 늦가을, 나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있었다. 계절의 영향도 있겠지만 당시 바르샤바의 색채는 온통 회색빛이었다. 오랜 동안 소련의 영향 하에서 서구와 교류가 없던 공산권 국가의 수도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스산함, 경직된 분위기를 강하게 느꼈다. 아니, 처음 디뎌보는 (구)공산권 땅이었기에 내가 경직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머릿수건을 쓴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