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문서와 전시에 대한 비평 한 편을 썼다. 아직은 초고라서 조금 더 다듬어야 하는 그 비평에서, 나는 문서를 전시하는 일의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1년 후의 도서관’ 지난 화에서 등장했던 것처럼, 문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종이에 기록된 텍스트부터 동적 문서(dynamic document)로서의 웹페이지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보존과 공유, 이동, 글쓰기의 역동성을 넘나들며 문서는 인간과 더불어 행위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시’란 무엇일까? 영어에서 전시(exhibition)라는 말은 ‘밖으로 내보이다, 드러내다’라는 의미를 지닌라틴어 ‘exhibere’로부터 비롯되었다. 오늘날 통용되는 의미에서의 전시라는 말이 정립된 것은 18세기와 19세기에 이르러서이고, 이전까지는 증빙 서류 등을 제출한다는 법적이고 실용적인 의미에서 더 빈번히 사용되던 용어였다. 서류를 제출해 내용을 입증한다는 뜻의 용어가 오늘날의 의미에 이르기까지는 1851년의 ‘런던 만국박람회(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가 자리했다. 이를 통해 ‘exhibition’은 내용을 제출하고 입증했다는 행위 자체보다도, 무엇을 선보이는지가 중요한 개념으로 변모했다.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은 전시에 대해 정의하며, 큐레이터를 전시라는 미디어를 만드는 창작자(Ausstellungsmacher)로 비유한다. 전시는 그 자체로 미디어이자, 개별적인 작품들의 합으로 치환될 수 없는 서사다. 그리고 이 서사는 대개 잠깐 동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시간이 되면 막을 내린다. 상설 전시마저도 영원하지는 않다. 모든 건축물의 시나리오에는 궁극적으로 폐허가 있다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말처럼, 지리적 공간에서의 전시는 영원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서는 그와 다르다. 문서는 본질적으로 텍스트에 연루되어 있고, 텍스트는 복제되고 이동하며 널리 널리 퍼져서 설령 스스로를 변주하면서라도 영원히 살기를 지향한다. 문서는 그런 텍스트의 몸이다.
문서의 시간은 영원을 가리키고 전시의 시간은 찰나를 가리킨다. 그렇다고 이들의 시간성에 위계를 설정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이 서로 다른 시간성들이 교차할 때 태어나는 아이러니의 아름다움이다. 문서가 한 사람의 생애와 역사를 초과하며 살아나가길 꾀한다면, 전시는 한 생애의 어느 한 지점에 열띠게 매료되도록 이끈다. 그 일은 단 한 순간, 바로 그곳에서만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감각하도록 이끈다. 전시는 우리가 우리 삶의 한 순간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안도다다오 《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 표지 Ⓒ오픈하우스
‘전시 문서화’라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
전시 공간은 저녁이면 어김없이 폐관하고, 그러니 우리는 돌아서서 나오기 전까지만 그 비일상적인 스토리 속을 거닐 수 있다. 단 한 순간이기에 애틋하고 기민해진다. 모든 전시는 늘 시간의 유한함에 대한 스토리텔링이다. 그렇다면 문서는? 모든 문서에는 시간의 선형성을 변주하려던 어느 최초의 문서 저자의 열망이 깃들어 있다. 문서 전시는 바로 이런 서로 다른 시간성들의 교차다.
‘문서’에 포함될 수 있는 코덱스 형태의 책과 영상 작업부터, 넓은 범위의 아트북에 속하는 갖가지 작업에 대한 모든 전시가 ‘문서 전시’의 느슨하고 직관적인 인상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렇다면 반대로 전시를 문서로 삼는 일은 어떨까. ‘전시 문서화’는 문서와 전시의 교차가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문 닫힌 미술관을 떠난 한 사람이, 늦은 밤 그의 침대에서 혼자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쩌면 그 책은 그가 낮에 떠나온 전시장에서 구입한 전시 도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그 전시가 꽤 마음에 들었다. 도록에서 자신이 보았던 작품을 찾아, 그 이미지를 들여다본다. 그러나 작품의 모습은 ‘실제’와 같지 않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평면으로 뒤바뀌어 페이지에 실린 다른 무엇이 되어 있다. 나는 이 순간 도록을 보는 사람의 실망감에 대해 알고 있다. 그건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감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한편으로, 바로 그런 변화된 무엇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실제’란 걸 말하려 한다.
지리적 공간에서의 문서 전시와 달리, 전시 문서화는 페이지라는 시공에서 이루어진다. 지리적 공간에서 3차원적인 부피와 질량을 차지했던 것이 평면적인 글과 이미지로 변주된다. 또는 페이지 그 자체가 일종의 조형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도 조금 다르면서도 비슷한, 전시와 문서를 연결해본 경험이 있다. ‘1년 후의 도서관’이라는 이 연재의 첫 화에 썼던 단체전 ‘잠시-묶음: 타로 이티티 아아 모이에하 에파아 리하하 도서관’과 나의 작업 〈REDEEMING LOVE〉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 후속담이다.
최영건 《사랑으로 돌아가기》 표지 Ⓒ안온북스
다음해의 도서관에 대한 상상
‘잠시-묶음’ 전에 있던 나의 작품은 내가 당시 이미 출간했던 소설책을 낱장 분리한 페이지들과, 그때 출간을 준비하고 있던 원고의 출력물,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몇 점의 이미지 출력물을 이어 붙여 만든 것이다. 문서를 재료로 삼아 만든 것이니, 〈REDEEMING LOVE〉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내게는 문서와 전시를 연결하던 일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당시에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책이 이제는 코덱스 형태의 출판물이 되었다.
산문집 《사랑으로 돌아가기》는 여러모로 그 전시 및 작품과 연계된 책이다. 시각예술 작업인 〈REDEEMING LOVE〉는 한편으로 책처럼, 노트처럼 읽을 수 있다. 그중에는 《사랑으로 돌아가기》에 실린 내용도 있다. 전시에 나의 책을 나의 몸만 한 크기로 펼쳐놓았던 셈이다. 책이란 실은 그토록 여러 형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랑으로 돌아가기》의 표지에도 사연이 있다. 책의 표지는 미술을 전공한 나의 엄마 신빈의 콜라주 〈별 바다 물고기〉를 담은 사진이다. 디자이너님께서 사진을 분할하고 한 차례 더 작업해 책의 표지를 삼았다. 엄마의 콜라주는 내가 어린 시절 아끼던 컵을 깨트린 파편들로 만든 작품이다. 별이 그려진 푸른 유리와 그녀가 그린 바다, 물고기로 이루어진 콜라주에는 부서진 것을 아름답게 되살리는 힘이 깃들어 있다.
‘잠시-묶음’ 전이 있던 해가 시작되던 무렵 나는 엄마의 고향인 군산의 월명공원에 그 콜라주 액자를 가져가, 나무에 기대어 두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후 전시를 준비하며 사진들을 인화해 시각예술 작품인 〈REDEEMING LOVE〉를 만든 여러 페이지들 중 일부로 삼았다. 세상에 나온 책과 나오기 직전의 책, 그리고 사진들이 섞였다. 이후 더 시간이 흘러 〈REDEEMING LOVE〉에 쓰인 것과 같은 사진이 이번에는 산문집 《사랑으로 돌아가기》의 표지가 되었다.
처음부터 나는 시각예술 작품과 책에 동일한 사진을 쓰고 싶었다. 그 작업들에 깃들이고 싶었던 나의 마음과 바람이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의 마음가짐과 한 줄기로 흐르는 기억을 시각예술 작품과 코덱스 형태의 도서라는 서로 다른 형태들로 변주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책은 내 책꽂이에 꽂혀 있다. 지리적 공간에서의 전시는 끝났지만, 나는 그 전시의 일부가 산문집과 더불어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 같다. 그 곁에는 내가 〈REDEEMING LOVE〉의 재료로 삼느라 대부분의 페이지를 뜯어 쓴 소설책 《연인을 위한 퇴고》도 있다. 책들은 재료가 되고, 전시가 되며, 내게 귀한 기억이자 체험이 된다.
나는 시각예술 작업과 연계하여 이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사실 모든 책들은 저마다의 물리적인 면을 지닌 공간들이다. 거기에는 프린터로 출력한 것이든, 손으로 써 내려간 것이든, 활판이나 목판으로 찍어낸 것이든, 페이지라는 시공을 살아가는 것들이 있다. 나는 이 시공에 내게 소중한 기억을, 엄마의 콜라주와 그 콜라주를 사진 찍고 이어붙여 만든 나의 시각예술 작품을, 그리고 그 모든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두었다. 1년이 지나 돌아보니, 새삼 그들이 보인다. 1년이 더 지나면 그들은 또 어떻게 보일까. 도서관은 바로 그런 우연과 스토리텔링, 접속과 교차의 장소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나의 이런 사연을 마주칠 누군가를 상상한다. 그에게는 그만의 만남이 있을 것이다. 책의 전시는 그렇게 한 사람의 생애보다 더 길고 넓은 시간을 은유하고 꿈꾼다.
최영건_소설가, 미술평론가
백합꽃 먹어보고 싶은 사람. 문학과 미술을 연결하며 여러 책을 펴냈다. ‘텍스트-띵’이라는 말과 함께 《살아 있기에 관한 띵, 띵, 띵》이라는 책을 준비 중이다.
문서의 시간이 움직이는 방식 문서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다. 세계적인 기록 관리 및 아카이브 관련 전문 학술 단체 미국기록관리자협회(SAA, Society of American Archivists)에서는 공식 학술 용어 사전 사이트인 ‘기록학 용어 사전(Dictionary of Archives Terminol
도서관에 대한 단서들도서관과 지도(atlas)가 서로 닮았다는 걸 알아챈 한 사람이 있다.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에 대한 이야기다. 바르부르크 문화학 도서관은 그의 프로젝트 ‘므네모시네 아틀라스’와 함께 사고의 기계로서의 아카이빙을 이야기한다. 바르부르크 도서관의 책들은 십진분류의 주제별 숫자나 저자명 순으로 배치되지 않았다. 대신 ‘좋은
저는 손으로 사부작사부작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실은 공예를 잘하지도 못하고 끈기도 부족합니다. 소질 있다는 말을 듣고 덜컥 시작한 목공은 나무를 자르고 조립하는 것보다 사포질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슬쩍 발을 뺐고, 우드 카빙은 조각도에 손을 베인 뒤 학을 뗐습니다. (수저 세트를 몇 년째 완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팬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