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서관사연구회는 2021년 도연문고에서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부일지 1948》을 펴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전신인 ‘국립도서관’ 사서부의 1948년 업무일지를 번각(飜刻)하고, 연구자 세 명의 논고를 더한 책이다. 올해 8월에는 일본어 번역에 일본 연구자들의 논고 등을 추가한 《한국국립도서관 사서부일지 1948》이 도쿄의 니치가이 어소시에이츠(日外アソシエーツ)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올해 3월까지 근무했던 미야기현도서관에서 해외 자료를 찾다가 교보문고 웹사이트(https://www.kyobobook.co.kr)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미야기현에서 가장 큰 공립도서관인 이 도서관은 해외 자료도 수집하고 있었으며, 나는 한국어 자료의 수서도 담당했다.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부일지 1948》은 물론 제목에도 끌렸지만, 문헌정보학 분야의 ‘도서관사’ 코너에 실려 있었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사실 한국 도서관사를 평생의 공부로 삼아 조금씩 공부해오던 터라, 개인적으로 구입해 바로 읽었다. 읽어보니 앞서 말한 대로 세 명의 연구자가 쓴 논고와 번각된 1948년도 업무일지가 실려 있었다. 일본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한반도의 도서관사와, 대한민국이 수립된 1948년 당시 국립도서관의 업무 내용이었다. 8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업무 자체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감동했고, 그러한 나날의 축적이 곧 도서관의 역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기 4281년 4월 14일(수)과 4월 16일(금)의 업무일지 150~151쪽Ⓒ 《사서부일지》
업무일지다 보니 잡다한 내용, 감정을 담은 내용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다. 그저 담담하게 그날그날 어떤 업무가 이루어졌는지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1급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자료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그동안 쌓아온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번역을 시작하기로 했다.
다만 그 번역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작업이었다. 매일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한 시간 정도, 휴일에는 저녁부터 몇 시간씩 원서와 사전을 옆에 두고 번역한 문장을 컴퓨터에 입력해나갔다. 그러다 보면 그때 한국 도서관의 업무 현장이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잡지 기사를 이용자용 열람 카드에 적어 넣는 일, 타자 연습을 하는 일, 정리된 도서의 정보를 원부에 기입하는 일, 잡지나 신문의 결호를 확인하여 보충하는 일, 다른 도서관에서 빌려 온 자료를 필사하는 일 등.
나 자신도 사서로서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기에 손에 잡힐 듯 실감이 났다. 시대가 달라 사용하는 기기와 업무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부일지 1948》에 대한 이해는 점점 깊어졌다. 번역은 몇 달 만에 끝났다. 다시 읽어보니 당시 직원들의 분투가 잘 전해졌다. 신생 국가의 국립도서관에서 어떻게든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자 관장을 비롯한 직원 모두가 힘을 모으는 모습에 공감했고, 감동을 받았다. ‘어떻게든 이 자료를 일본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일본에서 문헌정보학 관련 자료를 펴내는 몇몇 출판사에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는 어렵겠다’는 답변이라도 오면 그나마 나은 편이었고, 대부분은 답변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겠거니 했다. 지방에 사는 이름 없는 도서관 사서가, 그동안 일본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한국 도서관사를 번역했다고 한들 누가 눈여겨보겠는가.
나는 2014년부터 일본도서관문화사연구회 회원으로 있다. 일본도서관문화사연구회는 1982년 도쿄에서 발족한, 이름 그대로 일본의 도서관 문화사와 그와 관련한 여러 분야를 연구하는 단체다. 연구회는 연 1회 《도서관문화사연구》라는 잡지를 펴낸다. 이 잡지에는 회원들이 도서관 문화사를 중심으로 쓴 흥미로운 논고와 연구 노트, 서평 등을 발표·개제하고 있다. 나도 언젠가 글을 써서 발표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번역을 마친 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부일지 1948》 서평을 발표해보기로 했다. 연구회 사무국에 해외 문헌의 서평도 발표 대상이 되는지 문의하고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그리하여 다시 원서를 정독하고 서평을 써서 제출한 것이 2023년 12월이었다. 심사를 거쳐 게재가 결정되었고, 여러 차례 교정을 거듭한 끝에 2024년 9월에 게재되었다. 그렇게 나는 이 자료를 일본에 알리고 싶다는 꿈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2024년 10월,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에 니치가이 어소시에이츠 담당자가 영업차 방문했다. 일본에서는 출판사에서 자사의 상품들을 들고 도서관에 영업을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고액의 자료나 DVD를 들고 오는 영업맨들이 있다. 니치가이 어소시에이츠는 일본에서 레퍼런스용 자료와 도서관 관련 자료를 다수 펴내는 출판사다. 그날도 새로 펴낸 레퍼런스용 자료를 들고 영업맨이 우리 도서관을 방문했다. 마침 그날은 내가 창구 담당이었다. 유익한 정보를 얻고 이야기가 끝날 무렵, 문득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문화사연구》의 발행처가 니치가이 어소시에이츠 아니었나’ 하고. 그래서 《도서관문화사연구》에 내가 쓴 서평이 실렸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구입해 두었던 잡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미 번역을 다 마쳤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며칠 뒤 그는 번역 원고를 보내달라고 했다. 참고용으로 쓰겠지, 생각했다.
니치가이 어소시에이츠의 담당자는 서평과 번역 원고를 일본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는 두 분의 대학 교수님께 보여드리고 의견을 구한 모양이었다. 책으로 내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두 교수 모두 흥미와 관심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런 사정을 모른 채, 나는 평소 신세를 지던 사서 선배 한 분께 서평을 보내드리면서 원서를 번역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그러자 선배가 번역문을 보내달라고 연락을 해 바로 보내드렸다. 서평과 번역문을 읽은 선배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니치가이 어소시에이츠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센다이에 사는 다나카 씨가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 니치가이 어소시에이츠에서 번역서로 묶어낼 수는 없겠는가” 하고.
두 교수의 관심과 선배의 추천에 힘입어 니치가이 어소시에이츠는 출판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내 번역에 두 교수의 도서관사 관련 논고를 더해 책으로 펴내기로 했으며, 2025년 2월 출판이 정식으로 결정되었다. 니치가이 어소시에이츠는 정식으로 편집 담당자를 정하고 번역 원고 교정과 편집 작업에 들어갔다. 동시에 교수님들께는 짧은 기간에 논고를 집필해주십사 부탁드렸다. 번역문 감수와 판권 교섭 등은 도쿄의 쿠온출판사 김승복 대표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사서 선배는 간결하고 명료한 머리말을 써주었다. 이후 그야말로 폭풍 같은 기세로 일이 진행되어, 8월에 한 권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이로써 일본에서도 《사서부일지》를 일본어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일본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한국 도서관사의 한 시기가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나의 두 번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2026년 8월 22일 도쿄의 한국 책방 ‘책거리’에서 열린 출판기념 좌담회.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필자인 다나카 마코토 사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쿠온출판사 김승복 대표.
8월 하순, 이 출판에 관여한 이들이 도쿄에 모여, 소박하지만 출판기념 행사를 열었다. 그때 논고와 머리말을 써주신 분들이 나보다 더한 열의로 이 책의 출간 의의를 이야기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며, 나는 감개무량했다. “좋은 책을 내셨어요, 다나카 씨”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출판을 이루어냈다는 흥분은 어느새 안도감으로 바뀌어 갔다. 지금까지 이어온 나의 공부가 결실을 맺었고, 일본 도서관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으며, 내가 손댄 이 자료가 한국과 일본의 상호 이해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행사가 끝나고 돌아가려던 참에 쿠온출판사의 김대표가 말을 걸어왔다. “다나카 씨, 이 책은 한국어 사서 일지를 번역한 거지만 다나카 상이 단 주석으로 1948년도 사서들의 일이 훨씬 입체적이고 구체적으로 다가왔어요. 이 책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내는 일도 한번 해봅시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일본의 문헌정보학 선생님들의 논문도 한국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그건 어렵지 않겠느냐고 하자, “우선 책의 개요를 써서 저에게 보내주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 책의 개요쯤이야 못 쓸 것도 없겠지만, 다시 한국에서 번역 출판되는 것은 어려우리라 생각하며 행사장을 나섰다.
그날 밤, 도쿄에 제법 큰 지진이 있었다. 도쿄의 호텔에 묵고 있던 나는 잠에서 깨긴 했지만 그대로 다시 잠들어버렸고, 사태의 심각성은 다음 날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김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진 때문에 잠이 깨어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전날 행사의 개요와 내 서평 등을 한국어로 번역해 한국의 지인들에게도 보냈다는 것이었다. 김 대표가 내용을 정확하게 정리하고 내 서평 등을 한국어로 옮긴 실력에 감탄하던 차에, 다시 연락이 왔다. “다나카 상의 이야기를 한국의 사서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원고를 써보시겠어요?” 몹시 곤혹스러웠지만, 한국의 도서관 관계자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고쳐먹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독자 여러분께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 일본의 도서관과 사서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이제 나의 세 번째 꿈이 이루어진다!
번역: 김승복(쿠온출판사 대표)
다나카 마코토(田中亮)_일본 미야기현 교육위원회 소속 사서
일본 미야기현 교육위원회 소속 현직 도서관 사서로 1948년 1월 1일부터 12월 30일까지 작성된 국립중앙도서관의 사료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부일지: 1948년(단기 4281년)』 를 일본어로 번역해 올해 8월 도쿄의 니치가이 어소시에이츠(日外アソシエーツ)에서 출간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 팀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첫눈에 반한 메리를 다시 만나기 위해, 말실수를 주워 담기 위해, 안타깝게 놓친 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는 몇 번이고 과거로 간다. 방법도 어렵지 않다. 어두운 곳에서 두 손을 꼭 쥔 채 돌아가고 싶은 순간에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 처음에는 팀의 좌충우돌 소동극에 웃음이 터진다. 그러다 우연
내가 떠나고도 이 책상들은 남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품을 내어주고 그의 너저분함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은 책상일 것이다. 우리는 겨우 지나가는 발자국이다. 책상 앞에 앉아 먼저 하는 생각은 나를 책상으로 이끈 이유와 가장 멀리 떨어진 생각뿐이다. 매일 출근하여 자리에 앉아 모니터의 전원을 켜며 나는 요즘 온통 이직 생각에 빠져 있
9월이 되자 낮 기온이 떨어지고 눈에 띄게 일몰 시간이 빨라졌다. 지난봄부터 이때를 기다려왔다. 얼른 털실과 대바늘, 그리고 ‘꽈배기바늘’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뜨개는 한 계절을 앞서간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다가 지난겨울에는 때를 놓치고 말았다. 하루이틀 미루는 사이 덜컥 봄이 와버린 것이다. 하루에 몇 단씩 뜨는 것이 고작이다 보니 계절을 따라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