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끊긴 지하 서고는 어두웠다. 홍수로 무릎까지, 어떤 곳은 허리까지 차오른 진흙탕에서 사람들은 손으로 그 속을 더듬어 책을 찾았다. 건져 올린 책은 곧장 옆 사람에게 넘어갔다. 그렇게 지하에서 건물 밖까지 길게 이어진 줄은 책 한 권이 지날 때마다 하나의 긴 팔처럼 움직였다.
물에 잠긴 도시와 이웃 도시, 이탈리아 각 지역에서, 그리고 근처 프랑스와 영국, 미국과 일본에서까지 누가 부르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줄을 서서 서로에게 책을 전달했다. 몇 주를 그렇게 함께 일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옆에 선 사람의 이름조차 몰랐다.
1966년 11월, 아르노강이 휩쓸고 간 피렌체 국립중앙도서관에는 날마다 도움의 손길이 모여들었다. 스물두 살의 미국 여대생 도린(Doreen)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해 늦여름, 그녀는 재학 중이던 대학의 해외 학습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피렌체에 왔다. 다른 학생들과 함께 산마르코 광장 근처의 호텔에 묵으면서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르네상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리에서 미술과 역사를 공부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두 달 남짓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아침,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린은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골목 끝 모퉁이에서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며칠째 쏟아진 비로 불어난 아르노강은 새벽 사이 둑을 넘어 도심으로 밀려들었다. 거리 대부분은 물에 잠겼고, 강가에 위치한 국립중앙도서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물은 가장 먼저 도서관 지하 서고를 덮쳤다. 그곳에는 18세기 개관 때부터 이어져 온 말리아베키아나 장서(Magliabechi collection)와 궁정 도서관에서 옮겨 온 팔라티나 문고(Bibliotheca Palatina)를 비롯해, 수백 년 동안 도서관이 모아 온 약 10만 권의 책과 문헌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물과 진흙 속에 파묻혀버렸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도린이 머물던 호텔에는 물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식사 시간이 되면 조금씩 바깥소식이 들려왔다. 강가의 성당과 미술관, 도서관이 물에 잠겼고 도시 곳곳에서 복구 작업이 시작됐다고 했다.
피렌체 안팎에서 일손을 보태려는 사람들도 모여들었고, 학생들도 복구 작업에 지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도린 역시 자원봉사에 나섰다. 그녀가 향한 곳은 피렌체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건물 앞에는 진흙을 뒤집어쓴 책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지하에서부터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져 나오고 있었다. 도린은 그 줄의 중간쯤에 섰다. 곧 앞사람이 몸을 돌려 무언가를 내밀었다. 두 팔로 받아들자 묵직한 무게가 그대로 전해졌다. 물을 잔뜩 먹은 종이는 차갑고, 미끈거렸고, 진흙 냄새가 났다.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틈도 없었다. 그녀는 곧장 몸을 돌려 뒷사람에게 넘겼다. 그리고 다시 앞을 향했을 때, 앞사람의 손에는 이미 다음 책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그 줄을 ‘인간 사슬’이라고 불렀다.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던 것들은 ‘덩어리’로 기억했다. 물과 진흙을 잔뜩 머금은 책은 제목도 형태도 알아보기 힘든, 정말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현장에는 대단한 열기가 느껴졌어요.”
그 줄에는 도린처럼 피렌체에 머물다 자연스럽게 작업에 합류한 사람도 있었고, 홍수 소식을 듣고 먼 곳에서 달려온 사람도 있었다. 마크(Mark)는 런던에서 BBC 뉴스를 통해 홍수 소식을 접한 뒤 두 시간 만에 친구와 함께 차에 짐을 싣고 길을 떠났다. 이틀을 달려 피렌체에 도착한 그는 2주 동안 국립중앙도서관 지하 서고에서 복구 작업을 도왔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엉망이 된 책과 문서를 끊임없이 밖으로 옮겼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무엇을 건져내고 있는지, 그것이 이후 어떻게 복원될지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손에 들어온 덩어리를 다음 사람에게 넘길 뿐이었다. 그럼에도 현장에는 이상할 만큼 강한 열기가 있었다.
로마에서 온 스무 살 법대생 피에트로(Pietro)는 피렌체에서 일주일 동안 복구 작업을 도왔다. 그 역시 인간 사슬 한가운데 서 있었다. 한동안 손에 들어오는 자료를 옆 사람에게 넘기기에 바빴다. 어느 순간 고개를 돌려 양옆을 바라보았다. 한쪽에는 일본에서 온 사람이, 다른 한쪽에는 미국에서 온 사람이 서 있었다. 누구도 이들을 한곳으로 불러 모은 적이 없었다. 공식적인 조직도, 정해진 모집 절차도 없었다. 그런데 홍수가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줄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사슬은 멈추지 않아야 했다. 한 사람이 손을 멈추면 그 뒤의 사람들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 번, 누군가가 손에 들린 것을 들여다봤다. 그는 진흙을 뒤집어쓴 커다란 책의 표지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진흙 아래에서 이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키아벨리였다. 손에서 손으로 넘긴 수많은 책들 가운데, 그가 들여다본 단 한 권의 책이었다.
그날 진흙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름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캐럴린(Carolyn)은 남편 찰스(Charles)와 함께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물이 빠지지 않은 길을 피해 돌아가기로 했다. 그들은 세인트제임스 교회 앞을 지나갔다. 한 달 전,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 곳이었다. 교회 앞에는 홍수가 쓸어버린 물건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뒤집힌 의자와 찬송가, 종이 뭉치와 제의, 가죽 표지의 오래된 책들과 노트 따위가 한데 뒤엉켜 있는 게 보였다.
그 사이에 노트 한 권이 펼쳐진 채 진흙 위에 놓여 있었다. 캐럴린은 손글씨로 적힌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노트를 집어 들었다. 교회 신부님의 일정표였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자신과 남편 이름과 함께, 한 달 전 치른 결혼식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믿기 어려울 만큼 기묘한 우연이었다. 사람들이 진흙 속에서 중세와 르네상스의 이름들을 건져 올리고 있을 때, 캐럴린은 발밑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도린과 같은 피렌체 프로그램에 참가한 미국인 대학생 빅터(Victor)가 도서관에서 작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진흙투성이 차림으로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 1층 회랑을 지날 때였다. 같은 방향으로 걷던 이탈리아 청년 세 명이 그를 발견하고는 짧은 영어로 말을 건넸다.
“Thank you.”
잠시 뒤, 다시 한 번 같은 인사가 전해졌다.
“Thank you.”
그날 그들 사이에 오간 말은 그게 전부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빅터는 피렌체를 다시 찾았다. 가이드와 도시를 걷던 중 자신이 1966년 홍수 당시 이곳에 머물던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침수된 지하에서 젖은 필사본을 꺼내 옮겼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가이드는 곧바로 말했다.
“그럼 당신이 진흙의 천사였군요!”
처음 듣는 표현이었다. 빅터는 자신이 했던 일에 ‘진흙의 천사’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천사라는 말은 본성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맡은 일을 가리키는 이름이다.”(아우구스티누스)
1966년 11월, 피렌체의 기자 조반니 그라치니(Giovanni Grazzini)는 진흙 속에서 일하던 젊은이들을 ‘진흙의 천사(angeli del fango)’라고 불렀다. 진흙투성이가 된 채 도시를 구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탈리아어로 천사를 뜻하는 ‘angelo’는 그리스어 ‘앙겔로스(angelos)’에서 왔다. 앙겔로스는 원래 ‘전하는 사람’, 곧 전령을 뜻했다.
그해 피렌체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은 전령과 닮아 있었다. 누군가에게서 받아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손에 들어온 것을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사람들이었다.
책은 읽는 사람만으로는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누군가는 그 이름을 적고, 놓일 자리를 정하고,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 두었다가 다시 찾는 사람이 나타나면 꺼내 건네야 한다. 책은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대신 기억하고, 전달하고, 보관하고, 다시 찾아내야 한다. 평소에는 서가와 목록 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손. 1966년 피렌체에서는 홍수가 그 모습을 밖으로 드러냈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서가에서 책을 꺼내 건네듯 서로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그들의 손을 따라 책은 한 사람에게서 또 다음 사람에게로 건너갔다.
샌디에이고의 기차역에서 한 사서가 수용소로 향하는 아이들에게 엽서 한 장씩을 나눠주고 있었다. 수신인에는 자신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소식을 전해 달라는 짧은 부탁을 함께 남겼다. 그 약속은 이후 300여 통이 넘는 편지가 되어 그녀에게 돌아왔다. 떠나야 했던 아이들제2차 세계대전의 전선이 태평양까지 넓어지던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1916년 겨울, 사서들의 손에 얇은 소책자가 한 권씩 조용히 건네졌다. ‘독서의 일곱 가지 기쁨’이라는 제목의 16페이지짜리 작고 얇은 책자였다. 펼치면 한 호흡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고, 덮으면 금세 잊힐 것 같은 이 작은 책 안에는 오늘 우리가 ‘사서’라고 떠올리는 얼굴이 담겨 있었다.단정한 옷차림의 차분한 목소리, 그리고 책 곁에서 오래
책이 닿지 않던 곳1930년대 미국 켄터키주는 여러 위기가 한꺼번에 덮친 땅이었다. 대공황으로 석탄 광산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마을에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들의 생활수준은 처참했다. 전기나 상하수도를 갖춘 마을은 드물었고, 도시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도 없었다.생필품을 사러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환경에서 책은 당연히 그들의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