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하면 고문서에서부터 최신간까지 다양한 책들을 갖추고, 전문가와 학생들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술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 게 보편적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만남의 장소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혼자 미소를 짓는다. 남편을 처음 만난 ‘소중한 인연의 장소’가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1982년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Louvain)대학에 석사 과정을 위해 유학을 떠났다. 학부 때 불어를 부전공했으나 불어로 하는 철학 수업을 따라가기가 벅차서 비는 강의 시간에는 항상 철학과 도서관에서 예습 복습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9월 새학기 첫 주부터 단단히 각오를 하고 도서관을 찾았다. 빈자리가 보여 앉으려는데 맞은편에 앉은 누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봉쥬르”라고 해서 얼굴을 들어보니 해맑게 미소 짓는 남학생이 있었다. ‘아, 벨기에 사람들은 참 친절하구나’라고 생각하며 유학생으로 환영받는 것 같아 반가워서 나도 “봉쥬르” 하고 인사했다. 강의 내용을 복습하는 내내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나에겐 도서관이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소통의 공간이요 행복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먼저 다가온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문화와 휴식의 공간
지난 6월 출장길에 벨기에의 대표적 도서관인 왕립도서관(KBR)을 찾았다. 《더 라이브러리》에 벨기에 왕립도서관을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왕립도서관은 서적 보관, 열람이라는 도서관 기본 기능을 하는 곳일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장소로서 수도인 브뤼셀은 물론 벨기에 전역의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벨기에 왕립도서관 내부 ⓒ최자현
사진에서 보다시피 왕립도서관은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 같은 건물과 현대 양식의 건축물이 공존하고 있다. 도서관 안에는 16세기에 지어진 고딕풍 채플을 비롯한 클래식 & 모던 양식의, 다양한 크기와 용도의 방이 있어 국내외 컨퍼런스, 세미나, 음악회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로 대중에게 개방되거나 대여를 할 수도 있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벨기에의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로 유명한 투츠 틸레만스(Toots Thielemans)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그의 음악 세계와 삶을 다룬 귀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왕립도서관은 정기적으로 점심시간에 약 한 시간 동안 작은 음악회를 열어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휴식과 문화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우리 국립도서관 블로그에 보니 벨기에 왕립도서관에서는 소장 자료를 이용한 초중고 교육과정을 학습 비용을 받고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양피지나 파피루스 등과 깃털, 갈대 펜 같은 다채로운 재료로 쓰인 필사본 등을 통해 책과 쓰기에 대한 실감나는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오면 도서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기쁨과 충만한 행복이 있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에서 스치는 사람들에게서는 남다른 향기와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들 중에는 또 얼마나 소중하고 뜻깊은 인연들이 이루어지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모처럼 도서관 나들이를 즐기면서 새삼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도서관이 보유한 귀중한 자산과 공간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게 끊임없이 연구하고 기획하는 사람들, 그들의 땀과 수고 덕분에 왕립도서관이 벨기에 최고의 명소 중 한 곳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최자현 주한 벨기에대사 부인의 소피 반드봉세르(Sophie Vandepontseele)
벨기에 왕립도서관 현대 컬렉션(Directrice de la Collection Contemporain) 국장 인터뷰
Q 왕립도서관의 상징적인 마크 ‘KBR’은 어떤 의미인지요.
A ‘KBR’은 2019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네덜란드어 왕립도서관(Koninklijke Bibliotheek)과 불어 왕립도서관(Bibliothèque Royal)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벨기에는 남부 불어권, 북부 네덜란드어권 그리고 소수의 독일어권이 있는, 세 가지 언어를 국어로 쓰고 있는 나라입니다. 왕립도서관 명칭을 부르는 데 있어 언어적인 갈등을 고려해 벨기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2개 국어를 합쳐서 왕립도서관 약자를 만들어 부르고 있습니다. ‘K’는 네덜란드어로 ‘왕립’을 뜻하는 ‘Koninklijke’의 첫 자고, ‘B’는 네덜란드어와 불어에서 도서관을 칭하는 ‘Bibliotheek’, ‘Bibliothèque’의 첫 자, ‘R’은 불어로 왕립을 뜻하는 ‘Royal’의 첫 자를 땄습니다. 언어로 인한 갈등을 막기 위해 세심한 숙고에서 나온 결과지요.
Q 벨기에 왕립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특별한 자료는 무엇입니까?
A 약 150킬로미터에 달하는, 4만 5천 점 이상의 희귀본을 비롯해 총 800만 점 이상의 자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70만 개의 판화 그림, 15만 점의 지도와 도면, 25만 점 이상의 동전 등 방대한 규모의 자료를 17개 층에 분산시켜 소장하고 있지요. 벨기에는 지리적으로 유럽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여러 강국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오래 전부터 벨기에인들이 이 지역에 살고 있었으나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한 지는 200년이 채 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왕립도서관의 전신은 1772년 처음 대중에게 개방되었고, 1803년 브뤼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유명한 애서가인 벨기에 헨트(Gand) 태생 찰스 반 헐덤(Charles Van Hulthem)의 개인 컬렉션 7만여 점을 장서에 포함, 벨기에 왕국 건립(1831년) 조금 후인 1837년 ‘벨기에 왕립도서관’으로 정식 개관했습니다. 20세기 중반에 브뤼셀 시내 중앙에 웅장한 규모로 새로 건축해 ‘알베르 1세 국립도서관’으로 불리다가 2019년 ‘KBR’로 변경했지요.
Q 왕립도서관이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A 왕립도서관은 우선 고문서를 보관하며 전시하는 박물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왕립이며 동시에 국립 도서관인 ‘KBR’은 부르고뉴 대공들의 서고에 있던 다양한 중세의 필사본과 고문서, 화폐, 음악 악보 등 많은 중요한 문서를 잘 보전하고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능입니다. 부르고뉴 대공(duc de Bourgogne)의 서고와 구텐베르그 궁전(Palais de Gutenberg)에 유치되어 있던 900여 점의 필사본 중 250점을 소장하고 있어 유럽 내에서도 높게 평가되는 중요한 도서관입니다. ‘시간을 보존합시다’라는 문구를 도서관 로고에 삽입한 이유지요. 이 고문서들을 도서관 박물관에서 한 부문씩 교대로 공개하고 전시합니다. 파손되기 쉬운 필사본 등을 보존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전시하는 것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교대로 한정량만 대중에 공개합니다. 고문서 직접 관람은 학술 전문가가 신청, 예약을 해 허가를 받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Q 일반 이용자들은 고문서들을 어떻게 접할 수 있습니까?
A ‘KBR’은 고문서 보관뿐만 아니라 일부를 디지털화시켜서 많은 사람들이 열람할 수 있게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디지털 문서는 종이로 된 책이나 문서와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완하는 역할을 하면서 보다 많은 이용자들에게 도움을 주게 됩니다. 고문서를 포함한 귀한 문화유산을 디지털을 통해 용이하게 접할 수 있게 해주고, 연구를 도우며, 그 가치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확하고 알맞은 검색어를 선정하는 시스템 작업 등 세심한 주의와 전문성을 요구합니다.
Q 왕립도서관의 다른 활동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A 벨기에에서 출판되는 모든 출판물은 왕립도서관에 제출되어 인가를 받아 소장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평균 약 3천여 개 제목이 새로 등록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최고의 전문 연구직, 인문·사회·자연과학 분야 교수, 연구자들에게 세미나나 학술지식 교류의 장소가 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왕립도서관은 교육의 장소로 매달 도서관학과 재학생들의 방문과 견학이 이루어지며, 이는 미래의 사서들에게 좋은 비전을 제시해줍니다. 또한 대학과 정부 공공기관의 사서들이 방문해 더 나은 운영 방안을 모색하는 의견을 교환하고 방향을 찾아나가는 대화의 장소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자현_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
1982년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후, 같은 해 석사학위를 위해 벨기에 가톨릭루벵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현 프랑수아 봉탕 대사를 만나 1985년 결혼했다. 남편과 함께 독일 뮨스터대학에서 박사과정 중 첫 딸이 출생하며 벨기에로 돌아갔고, 1990년 남편이 외무고시에 합격하며 1992년 싱가포르를 첫 임지로 마드리드, 이후 뉴욕의 벨기에 유엔 대표부 참사관과 스트라스부르그 공사를 역임했다.
2012년 남편이 주한 벨기에 대사로 첫 대사 발령을 받아 근무한 이후 불가리아, 마세도니아, 코소보, 알바니아 4개국 겸임 대사로 일하면서 가족과 함께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는 중이다.
디지털 네이티브3년을 끌던 코로나 비대면 시대가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강의실 밖 캠퍼스는 만개한 겹사과꽃처럼 활기로 가득하다. 대면 강의는 물론 답사, MT 등 미루어놓았던 모임과 만남이 끊임이 없고 일정 너머 일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교수라면 이럴 때 간절한 것이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편안한 의자에 기대 좋아하는 책을 펼치는 시간일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읽는다중학생인 우리 집 아들놈은 책을 읽지 않는다. 책꽂이에 수많은 책이 꽂혀 있고 아빠가 소설을 쓰는데도 아들은 책과 거리가 멀다. 책 좀 보라고 하면 아들은 해맑은 얼굴로 “나중에 보고 싶은 거 생기면 얘기할게” 하고는 그만이다. 가끔 뭘 읽었다고 해서 물어보면 일관되게 대충이다. 나였으면 며칠에 걸쳐 읽었을 두꺼운 소설을 두어 시
“핀란드의 도서관법에 대해 알고 있나요?”‘시민의 거실’로 불리는 오디. 그곳의 사서 하르 아날라(Harri Annala)가 내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또 핀란드에 살면서도 도서관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내가 도서관법, 그것도 핀란드의 도서관법에 대해 알 리 없었다. 당황해하는 나에게 하르가 친절하게 설명했다.“핀란드의 모든 공공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