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한 도시의 모습은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뾰족뾰족한 첨탑이 도시 곳곳에 있었고 조약돌로 시작되었다는 로열 마일(Royal Mile)의 도로가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잠시 낭만을 즐기고 있을 때면 “우와, 저것 봐요. J. K. 롤링이 《해리포터》 주인공들의 이름을 지었다는 공동묘지가 나와요!”라고 소리지르는 귀여운 여행 메이트 네 명의 아이들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열두 살이 된 아들, 딸과 동갑내기 조카, 일곱 살 막내조카, 그리고 나와 남편, 우리는 이곳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왔다.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 해리, 론처럼 그 세계를 유영하고 상상하는 아이들 덕분이다. 어느 곳에 서 있든 호그와트로 가는 길의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신비했고, 곡선으로 뻗은 도로와 하늘을 번갈아 올려다보면 그곳엔 뭔가 현실과 다른 것이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기에도 충분했다.
해리포터 워킹 투어 ⓒ강영아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리포터 워킹 투어를 신청했다.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채비하고 소설의 주인공처럼 지팡이를 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강아지 보비 동상 앞에서 만난 행인들은 모두 9와 3/4 플랫폼 앞에 서서 마법 학교로 가기 위해 준비한 학생들 같았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서성이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해리포터》에서 방금 해리가 툭 튀어나온 듯 한 사람이 나타나 우리 앞에 와 있었다.
강렬한 첫 만남으로 시작한 도슨트의 이야기는 곳곳을 옮겨가며 이어졌다. 해리포터 속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따온 그레이프라이어스 커크야드, 다이애건 앨리의 모태가 된 빅토리아 시크릿, 《해리포터》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기숙사들의 모티브가 된 조지 해리엇 스쿨,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전체적인 영감을 준 장소인 에든버러 성까지, 끝도 없이 나오는 이야기에 사로잡힌 형, 누나들은 도슨트와 눈을 마주치며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해리포터 이야기도 모르고 영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막내는 그저 주변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형, 누나 따라온 꼬맹이인데 배도 고프고 지루했는지 나에게 물었다. “고모, 저 사람이 몇 번 이야기하면 끝나요?” 나는 그 물음이 웃겨서 막내에게 사탕도 물려주고 지루하지 않게 달래고 얼랬다. 막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배배 꼬며 자꾸 자석처럼 나에게 붙었다. 이번에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냥 하는 말 같지가 않아서 해리포터 일행을 뒤로 한 채 근처 화장실을 찾았다. ‘library’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서둘러 입구 문을 향해 돌진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스코틀랜드 어린이공공도서관이었고 아담한 공간에 사서 선생님 두 분이 일을 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국립도서관 입구 ⓒ강영아
다급하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사서 선생님은 어딘가를 가리키며 어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누가 봐도 여행을 온 이방인,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뻔한데도 상관없이 환대로 맞아줬다. 막내는 화장실로 우당탕 들어갔고 나는 멋쩍은 마음을 안고 다소곳이 두 손을 모아 조용히 스코틀랜드 어린이공공도서관 어린이 코너를 둘러봤다. 유모차를 끌며 아이를 재우던 두 분의 엄마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와 조카의 모습을 보고 모두 이해한 듯 은은한 미소를 띠었고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그 상황이 마치 그림 같다고 생각되었는데, 유모차가 도서관 안에 들어온 모습이 생경해서였고 그곳이 낮잠을 자는 아가들의 쉼이 되는 공간, 엄마들의 사유의 벗이 되는 공간이라는 게 근사해서였다. 곧 엘리펀트 하우스에서 유모차 안에 아이를 재워가며 글을 썼던 J. K. 롤링 작가의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어린이도서관 내부 ⓒ강영아
누구나 와서 무엇을 하기에 좋은 공간의 구성이 돋보였는데, 제일 안쪽에는 어린이들의 작업실이 있었고 그 옆은 널브러져서 책을 볼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이 있었다.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오솔길처럼 책들이 재밌게 놓여 있었지만 편하게 걸터앉아 책을 읽기에도 단정했다. 부러운 마음이 생겨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막내가 돌아왔다.
밖에서 해리포터 투어를 하고 있는 큰 아이들이 생각나 서둘러 나가는데, 꼬맹이의 뒤뚱뒤뚱한 모습을 보니 미안해져 사서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책 읽는 곳인데 화장실이 급해서 들어와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사서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니 개의치 마세요. 그리고 도서관은 그런 부분을 다 염두에 두고 만든 곳이니 마음껏 즐기다 가세요”라고 말해주었다. ‘즐기라’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아 다음날 아이들과 함께 다시 찾아가 도서관을 즐겼다. 그 마음으로 도서관에 머무르니 공간과 존재가 다른 의미로 재해석되었다.
스코틀랜드 어린이도서관의 전시 도서들 ⓒ강영아
18세기 계몽주의가 만개하면서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된 에든버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올드타운과 뉴타운의 나란한 배치로 유기적인 도시계획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나선형의 배치로 여행자들은 에든버러로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어 도시 자체의 매력에 금방 빠져들게 된다. 트램을 타면 하나의 흐름으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경관은 다름 아닌 도서관의 위치였다. 올드타운 중심가 버스정류장 앞에는 스코틀랜드 공공도서관이, 뉴타운 중심가 버스정류장 앞에는 워터스톤즈(Waterstones)라는 서점이 자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서관 정문이 있다는 것은 도시의 상징으로밖에 볼 수 없다. 북쪽의 아테네다운 발상이다. 지혜의 도시답게, 사유의 근원이 되는 도서관은 중앙에 놓고 사람들이 편하게 오고갈 수 있게 만든 도시의 위엄과 판단에 크게 감흥을 받았다.
아이들을 따라 에든버러로 오게 된 것도 문학의 힘이다. 문학이 주는 힘은 나이와 나라를 넘어선다는 것을 아이들의 등 뒤에서 실체적으로 깨달았다. 책을 읽으면서 펼쳐지는 무한의 상상력이 영화로, 뮤지컬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서, 에든버러가 지금껏 종이책과 문학을 중요시하고 소중히 여기는 이유도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로열 마일을 걷다 보면 몇 분 안에 천재와 지식인 50명을 만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만들어질 정도로 그곳엔 애덤스미스, 프랜시스 허치슨과 같이 역사적인 발자국을 남긴 사상가들이 많다.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대중이 있었기에 철학자들이 활동할 수 있었을 텐데, 그 힘은 독서 문화의 일반화, 대중화로 연결되고 그 중심엔 공공도서관이 있었다.
그것은 AI와 챗GPT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인공지능으로부터 인간의 존재와 존엄을 지켜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방인의 낯설어하는 마음을 즐기는 마음으로 변모시키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몫이다.
한국도 가장 번화하고 누구나 오기 쉬운 곳에 절대적 환대를 보여주는 공공도서관이 존재하면 좋겠다. 자본주의의 세포를 걷어내고 도서관의 인간미를 일상으로 심어주는 일에 용기를 내기 바란다.
[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한라도서관 진입로, 방선문계곡 숲길 ⓒ강영아 도서관과 자연의 조화《나니아 연대기》에서 수잔이 옷장 문을 열고 신비한 세계로 진입하는 경험을 하듯 이곳, 제주에도 비밀의 문을 가진 도서관이 있다. 한라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바깥 공기
[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여천천 옆 아름다운 산책로를 거느린 명당울산은 강변마다 생태공원을 조성해 산책로가 잘 이루어져 있다. 여천천 산책로는 공업탑에서부터 출발해 태화강역 근처까지 이른다. 6킬로미터가 넘는 산책로가 형성되어 있다. 주민들이 많이 살기로 유명한
[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도심 어딜 가나 도서관 근처인 춘천대학을 졸업하고 글을 계속 쓰고자 고향인 춘천에 내려와 작업실을 마련했다. 이후 2, 3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기면서 방을 구할 때마다 꼼꼼하게 따져봤던 건 난방 방식이나 주변 편의시설이 아닌 도서관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