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 오수완 장편소설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조진주_소설가
2022-12-0100:01
[스토리] 코너에서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거나 사서가 등장하는 소설 등 도서관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오수완, 나무옆의자, 2020)
사라진 도서관에 대하여
호펜타운 반디멘 재단 도서관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재단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오랜 기간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도서관은 결국 매각되었다. 시의회는 소중한 예산으로 도서관을 구제하기보다는 도로를 보수하고 주변 경관을 개선하는 일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도서관은 지역 경제를 부흥시키기에 효과적인 시설은 아닐 테니까. 몇몇 도서관 마니아들이 소문을 듣고 발걸음을 할 수 있겠지만, 그 수가 한 지역을 먹여 살릴 만큼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호펜타운 반디멘 재단 도서관은 식당이 되었다. 허기진 이들이 배를 채우며 다정한 이웃과 일상을 나눈다. 그러나 한때 이곳이 또 다른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도서관이 사라진 지금, 우리는 그 모습을 추측해볼 뿐이다. 도서관의 연혁이 새겨진 동판과 열람실에 꽂힌 책들. 호기심 많은 탐독가들을 맞이하던 안내 데스크와 2층에 자리한 사서의 정돈된 공간. 사서는 주의 깊은 눈으로 책과 사람들을 맞이하고, 세심한 관리인 부부는 건물 구석구석을 보살핀다. 평화로이 자리 잡은 질서 속에 이들의 하루가 조용히 흘러간다. 운 좋게 이 도서관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기억을 되살려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있으리라. 아쉽게도 그럴 기회가 없었던 나와 같은 이들은 상상할 뿐이다.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휘발되고 상상은 변형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사라진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당신이 도서관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책을 사지 않고서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읽어야 할 책은 많고, 그 모든 책을 구입하기에 나의 통장 잔고는 소박하므로. 상황에 따라 ‘개인이 소장하기 어려운 희귀한 자료가 소장돼 있’는 도서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나 역시 전공 공부에 필요한 고서를 찾기 위해 종종 도서관에 들르곤 했다. 폐가제로 운영되는 열람실에 예약해둔 자료를 찾으러 갈 때면 비밀을 파헤치는 탐험가가 된 듯했는데, 사실은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굳이 도서관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도서관이 불러일으키는 정서는 매혹적이니까.
서가에 빽빽이 꽂힌 책들에 둘러싸여 있노라면 어릴 적 즐겨 찾던 아지트에 들어온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진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그러나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외롭지 않게 한다. 그렇기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곳이 필요할 때 도서관을 찾기도 한다. 중고등학생 때는 동네 독서실을 놔두고 굳이 먼 구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시험공부를 하다 집중력이 사라질 즈음이면 교과서를 던져두고 서가로 가 이해할 수 없는 공식들로 혹사당한 머리를 쉬게 했다. 대학교 시절, 도서관은 갈 곳 없는 자를 위한 쉼터가 되어주었다. 책장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다 눈에 들어오는 책을 집어 들고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는 구석에 자리를 잡곤 했다. 고른 책이 설령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으니까. 도서관을 즐겨 찾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을까.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오수완, 나무옆의자, 2020)
어디에도 없는 누군가의 책들
그런데 만약 당신이 호펜타운 반디멘 재단 도서관을 찾는다면 또 다른 방문 목적이 추가될지도 모른다. 그곳은 ‘어디에도 없는 책들’, 혹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책들’이 모여드는 곳이니까. 그렇다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희귀본이나 값비싼 장서까지는 아니고 대개 이런저런 이유로 출간되지 못한 책들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쓴 글을 정성스레 책으로 묶어 도서관으로 들고 온다. 많은 이들이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한다. 직접 겪은 경험이나 상상으로 구축한 세계, 혹은 공들여 축적해온 지식이 혼자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 되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오롯이 귀 기울여줄 이를 만날 기회는 생각보다 자주 오지 않기에, 이야기를 품은 이는 결국 펜을 든다. 언젠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고대하며. 그렇게 세상에 퍼지지 못한 이야기가 기회를 기다리는 곳이 바로 호펜타운 도서관이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 이야기들을 누군가는 흥미롭게 여길 것이고 누군가는 도통 어디에 써먹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것이다(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겠지만). 예를 들어 이런 이야기는 어떤가?
당신은 책을 읽으며 직접 기타를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손으로 만드는 기타》). 아름다운 장서표들을 감상하고 싶은가?(《장서표의 책》). 펼치면 조금씩 부식되어 마침내 사라져버리는 책이 존재한다면 궁금하지 않을까?(《공空의 책》).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에 관한 책은 개인적으로 한 번쯤 읽어보고 싶다. 물론 글을 쓰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시체를 처리하는 방법: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안내서》).
이상은 어느 날 도서관에 찾아오기 시작한 미스터리한 인물, 빈센트 쿠프만이 기증한 책들의 목록 중 일부다. 만약 목록 가운데 마음을 사로잡는 제목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당신이 직접 써보는 것도 좋겠다. 어차피 이 도서관에 모인 이야기들은 다 그렇게 시작되었으니. 사랑하는 대상을 떠올리며 묘사한 표현들을 모아둔 책은 어떨까. 읽고 나면 세상이 좀 더 달콤하게 느껴질 것이다.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나와 같은 이들은 참고서로 삼을 수 있겠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는 기술을 알려주는 책은 도움이 될까? 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을 때 유용할지도 모른다. 혹은 스파이들의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순환 고리
쓰고 싶은 책을 떠올렸다면 이제 그 책을 읽을 이들을 상상해보자. 야무진 꼬마아이와 빗속을 헤매는 여인, 노숙자와 시인, 퇴직한 사서와 영감을 얻으려는 래퍼······. 도서관은 서가의 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서관을 찾는 이가 더해져야 비로소 완전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책을 읽은 이들은 무언가를 쓰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되고 그렇게 쓰고 난 이들은 다시 읽는 사람이 된다. 책으로 만들어진 순환 고리다. 하마터면 그대로 사라질 뻔한 이야기가 다른 이에게 전해지며 이 고리는 더욱 견고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호펜타운 도서관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펜타운 도서관은 사라졌다.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책들도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지금껏 여러 도서관을 가보았지만 나는 아직 이와 같은 도서관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너무 낙담하지는 말기를. 사람들은 호시탐탐 제 이야기를 풀어놓을 곳을 찾을 것이다. 빈센트 쿠프만이 기증했던 책들을 가져간 누군가 다시 어딘가에 그것들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한 도서관은 없어지지 않는다. 마땅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뿐. 그러니 관심을 가지고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라. 호펜타운 반디멘 재단 도서관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조진주_소설가
소설가.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2017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현재 ‘어’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다시 나의 이름은》과 장편소설 《살아남은 아이》가 있다. 관심사는 K-Pop, 그리고 초록 친구들인 페페로미아와 테이블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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