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코너에서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거나 사서가 등장하는 소설 등 도서관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THE LIVERARY
우주=도서관?
여기 우주가 있다(사람들은 그곳을 ‘도서관’이라고도 부른다). 이 우주는 무한히 확장하며 영원으로 나아간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스물다섯 개의 알파벳 철자다. 물론 알파벳 철자는 스물두 개이고 다른 세 개는 쉼표와 마침표 그리고 띄어쓰기에 따른 공간, 즉 여백이다. 여백은 빈 공간이자 다른 철자들로 인해 채워질 미래의 가능성이고 그 가능성으로 인해 책은 차이를 만들며 변화하고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얻는다. 그러므로 여백을 포함한 스물다섯 개의 동일한 원소들로 인해 우주/도서관은 영원을 향한 기하학적인 질서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여기 하나의 특정한 도서관이 있다. 보르헤스가 허구적 상상력으로 만들어놓은 ‘바벨의 도서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육각형 진열실들로 구성된 이곳은 끝없이 뻗어 있는, 모든 위층과 아래층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진열실들은 비좁은 현관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거울을 통해 복제된 표면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연쇄는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 생각하도록 왜곡하는 기능이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끝은 개별 인간인 나의 한계를 드러낼 뿐, 무수히 많은 인간의 지식이 축적되는 도서관에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수께끼와 절망으로 가득한 미로이자, 낙원으로서의 도서관
보르헤스가 묘사한 ‘바벨의 도서관’은 권태와 절망, 공포의 분위기를 띤다. 그것은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하여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했던 보르헤스가 친구의 소개로 취직한 미겔 까네 시립도서관에서 비롯됐다. 직장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은 보르헤스는 그곳 지하 서고에서 소설을 구상하거나 책을 읽으며 지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 공간이 무한히 뻗어나가면서 의미 없는 책들로 둘러싸인 무한 공간의 미로로 변하는 섬뜩한 형이상학적 공포를 느꼈다. 그러니 바벨의 도서관이 무한 공간의 미로처럼 그려진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보르헤스는 윌리엄 반스톤과의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세계관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세계를 수수께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곤 “그에 관한 한 가지 아름다운 사실은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을 거라는 점”을 든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자 미로로 존재하는 세계가 도서관의 형상으로 그의 소설에서 그려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세계는 보르헤스에게 낙원으로 다가온다. 그는 “나는 늘 낙원을 정원이 아니라 도서관으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보르헤스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아름다운 낙원의 모습인 도서관으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보르헤스가 도서관을 낙원으로 여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는 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고정된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이 놓인 도서관은 세계의 상을 반영하고 그 책 중에는 세계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책도 존재하겠지만 기실 인간이 그 책을 찾아 읽을 수는 없다. 불완전한 사서인 인간은 자기가 집어 든 책이 스물다섯 개의 기호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만 확인할 따름이다. 그 기호 체계의 수수께끼를 해석하는 일은 온전히 인간인 우리의 일이다. 이로써 해석을 통한 다양한 의미의 장이 펼쳐진다. 그런 점에서 바벨의 도서관에 놓인 책들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저자를 중심에 두고 책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고정된 하나의 의미만을 산출할 뿐이다. 보르헤스가 저 혼돈 가득한 바벨의 도서관을 그려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보르헤스는 ‘바벨의 도서관’의 모든 언어 구조들과 스물다섯 개의 알파벳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다양한 용법들을 포용한 책이 비논리적인 단어 조합과 암호 표기법적이고 알레고리적 방식을 취하면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책이 영원히 변치 않는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닌 의미의 창출을 기다리는 형식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독자의 참여를 요청하는 일이자 독자의 능동적인 해석을 통해 책이 지닌 의미의 모호성 너머에서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바벨의 도서관 ⓒTHE LIVERARY
알파벳의 자유롭고 무한한 조합을 실현하는 ‘바벨의 도서관’
알다시피 도서관을 도서관이게 하는 것은 책이다. 책은 무수히 많은 인간의 지식으로 구성된 것이지만, 〈바벨의 도서관〉에서 책은 스물다섯 개의 원소가 우연에 기반을 둔 배열과 마치 무의미의 놀이처럼 자유롭게 조합된 구성을 취한다. 이는 책이 놓인 도서관의 질서와 상반된다. 도서관의 각 육각형 진열실에는 각 벽마다 다섯 개의 책장이 놓여 있고 각 책장에는 똑같은 모양의 책 32권이 꽂혀 있다. 각 책은 410페이지로 되어 있으며 각 페이지는 40줄, 각 줄은 80개의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제목을 의미하는 책등의 글자는 책의 내용을 설명하지 않는다.
질서정연한 도서관의 체계는 책의 존재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세계의 진리를 담고 있으리라 상상하는 책의 내용은 다른 책과의 차이를 통해 의미를 지닐 뿐이다. 한 권의 책은 단순한 글자들의 미로와 같다. 알파벳의 자유로운 조합은 실제의 세계로부터 얻어낸 의미라는 진리를 담는 데 복무하기보다는 조합 자체의 형식적 실험과 그것을 해석하는 이의 차이에 복무한다. 엄격한 질서와 법칙이 획일적으로 적용된 도서관의 외형과는 달리 차이와 혼돈, 우연으로 조직된 책이라는 미로는 논리적이거나 정합적일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역설적 세계인 ‘바벨의 도서관’에서 인간은 사서로서만 존재한다. 그는 스물다섯 개의 원소가 무한히 반복되면서 구성된 책을 찾거나 정리하고 목록을 작성하고 파악하는 이일 따름이다. 그러나 도서관은 무한하며 똑같은 책이 없을 정도로 모든 기록이 차이를 지닌 채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을 모두 파악하고 정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불완전한 사서인 상태에 놓인다. 그러니 자기 삶의 이유 혹은 존재 이유를 밝힌 변론서를 찾아 헤매는 것도 당연한 일일 테다. 안타깝게도 변론서를 찾을 확률은 0에 가깝지만 말이다. 어쩌면 찾지 못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내 삶이 이미 정해진 고정값에 따르는 것이라면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절망스러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이미 쓰였고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총체적인 책도 한 권 있다곤 하지만 불완전한 사서인 인간은 그 책을 읽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불확정적이고 변화무쌍한 다양성을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조차 이미 어떤 책에는 쓰여 있을 수 있겠지만, 완전함 속에 존재하는 불완전함이야말로 한계가 없는 도서관의 주기적 반복이라는 영원을 구성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지도 모를 일이다.
질문을 만들어냄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장소
그런 점에서 보르헤스에게 책은 특정한 의미로 해석되는 텍스트라기보다는 독자와의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다르게 해석되고 의미가 갱신되는 텍스트다. 작가는 독자로서 앞선 시대의 책을 읽고 그 영향 아래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보르헤스는 “나는 좋은 독자들은 좋은 작가들보다 더 신비롭고 독특한 문학적 존재라고 믿는다”라고 했다. 쓰기의 미학보다는 읽기의 미학을 강조하는 이 말은 그가 〈버나드 쇼에 관한 단상〉에서 “책은 격리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다. 그것은 수많은 관계들의 축이다. 하나의 문학은 텍스트 자체 때문이 아니고 그것이 읽혀지는 방식에 따라 이전이나 이후의 다른 문학과 변별된다”고 한 것과 연결된다. 즉, 스물다섯 개의 알파벳 철자가 우연으로 엮인 저 혼돈의 텍스트 속에서 하나의 의미를 강요하는 것에서 벗어나 독자와 관계 맺음으로써 수없이 다양한 해석을 낳고 그로부터 새로운 사고와 예술의 가능성으로 표현되기를 바라는 보르헤스의 문학적, 철학적 사유가 〈바벨의 도서관〉에 담겨 있는 것이다.
도서관에는 어떠한 질문에 관한 것이든 완벽하고 절대적으로 그에 답하는 책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그 책의 유일한 의미이자 존재 의의라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다양하게 찾는 것이 더 뜻깊지 않을까. 알파벳 철자에 포함된 띄어쓰기에 따른 공간, 그 여백은 어쩌면 독자의 자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펼치며 우주를 확장하는 독자야말로 앞과 뒤의 차이와 관계를 맺도록 이어주는 여백의 가능성이 되어 보르헤스가 고독 속에서 아름다운 기다림으로 가슴 설레도록 하는 존재가 아닐까. 독자들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책, 그리고 그러한 책들이 모여 있는 장소인 도서관이 무한히 확장되는 우주로 표현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도서관은 한계가 없지만, 순례자의 방문과 그가 책을 읽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의 반복이 없다면 ‘바벨’은 상상 속 전설로만 남을 것이 분명하다.
이병국_시인, 문학평론가
시인, 문학평론가. 그 외 이런저런 알바生. 동시대 문학 작품을 즐기는 데 관심이 있다. 펴낸 시집으로 《이곳의 안녕》,《내일은 어디쯤인가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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