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공공 건축의 꿈을 짓는다는 것 - 마쓰시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강우근_THE LIVERARY 에디터
2022-09-0509:00
[스토리]코너에서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거나 사서가 등장하는 소설 등 도서관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마쓰시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비채, 2016)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현대국립도서관을 짓는 경합에 참여하는 무라이 설계사무소의 신입 건축가 사카니시의 성장 과정을 다룬 소설이다.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종합건설사무소에 취직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사카니시는 무라이 사무소에 일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다. 사카니시가 종합건설사무소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고도성장사회에 맞춰 모습이 비슷한 고층 건물을 짓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건축 장인인 슌스케 무라이의 설계사무소는 외면적으로 과시되지 않고 시대가 변해도 아름답고 편안한 건물을 짓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는 도서관 건축
무라이는 취업 면접에서 ‘휠체어를 타는 식구가 있는 집’을 설계해본 사카니시에게 휠체어를 타는 가족이 있냐고 묻는다. 사카니시는 휠체어 타는 가족이 없지만 상상을 해보았다고 하는데, 그 대답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건축은 건물 안으로 들어올 사람이 어떻게 일상을 보낼지 마음으로 그려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현대국립도서관 설계는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시민 이용자를 상상하는 일이다. 한글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부터 도수가 높은 안경을 껴야만 글자가 보이는 노인까지, 걸음이 빠른 사람부터 휠체어를 타는 사람까지, 고고학 정보를 찾기 위해 방문한 사람부터 약속 시간이 남아서 잠시 방문한 사람까지.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다.
한여름 동안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도쿄에서 떨어진 아오쿠리 마을에서 도서관 건축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들면서 열띤 분위기가 된다. 직접 음식을 요리하고 끓인 홍차를 나눠 마시면서 때로는 이성적이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책장의 재료로 백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목재를 선택한다. 책이 꽂혀 있지 않을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며 빈 책장의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본다. 도서관 이용자 모형을 만들어 책장 사이를 걷는 아이와 부모를 배치해본다.
“열람용 의자와 테이블을 편하게 만들면, 일부러 도서관에 다니면서 책을 끝까지 읽어보는 즐거움도 생기죠. 현대도서관은 책 대출 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책과 기적처럼 만나기도 하고 독서를 위해 정리된 환경에서 질 높은 책 읽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장소로 만들고 싶습니다.”
-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120쪽
중년 건축가 가와라자키와 고바야시는 서가에 집어넣을 책을 기획성 있게 배열해볼 것을 제안한다. ‘사망 20주년 작가 회고전’이나 ‘영화화된 원작 소설’이 담긴 서가를 떠올리는 것이 건축가의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 대목에서 건축은 건물을 완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된다. 좋은 건축이란 지어지면서부터 그 건물을 이용할 사람과 함께 지속성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게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도서관 유리 복도를 꺾어 들어가면 보이는 아오야마 묘지의 초록 풍경에 잠시 멈춰 선 사람을 떠올린다. 통유리로 지어질 일층에 기획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과, 강연회뿐만이 아니라 상영회나 콘서트가 열릴 강당에 사람이 채워지는 모습도 그려본다.
그때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목적을 넘어 이용자들이 문화생활을 향유하며 마음 놓고 산책하는 공간이 된다. 책도 가구도 모두 나무로 이루어진 도서관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숲이 된다. 그 숲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나무들처럼, 오래 머물수록 우리는 그곳이 도서관인지를 잊어버릴 것이다. 음악에 빠진 나머지 연주를 듣는 청중이 연주회 홀에 와 있는지도 모르게 되는 순간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우리와 동화되고 있다는 것이니까. 이색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 애쓰지 않고 ‘사람’을 생각하며 지은 도서관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건축하는 마음은 오래 그곳에 남아
비록 무라이 설계사무소의 도면이 공공도서관 경합에서 선정되지 못할지라도 사카니시는 무라이의 건축하는 정신을 이어받고자 한다. 화려한 외관으로 압도되게 하는 건축을 짓는 시대에 느리지만 공을 들여 오래 기억되는 건축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빛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에서 렌조 피아노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움을 기리는 장소는 도시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죠. 그런 장소는 흔치 않지만 여전히 생겨나서 기적같이 느껴집니다.” 렌조 피아노는 바다라는 경관과 빛이라는 자연이 어우러지는 보틴 센터라는 스페인 공공 건축을 지으면서 100년, 200년 넘게 건물이 기억되기를 바란다.
렌조 피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쓴 이탈로 칼비노와의 대화를 회고하기도 하는데, 아무리 흉흉하고 절박한 도시라 하더라도 각각의 도시에는 반드시 아름답고 행복한 구석이 있으며, 우리는 이런 것들을 찾아내서 힘과 실체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를 둘러싼 행복한 구석 중 하나에는 도서관이 해당한다고 믿는다. 크고 작은 마을에서 우리가 누구든지 빛을 환하게 밝힌 채로 기다리는 도서관. 우리는 이전과 다른 시간 속에서 책에서 흘러나온 이미지와 냄새에 둘러싸인 채로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될 것이다. 책이라는 물질을 통해 우리는우연히 교차하고 만날 것이다. 바쁜 사회에서 사람들의 손에 닿게 할 책을 보관하는 도서관은 건축되는 것과 동시에 아주 정교하고 오래된 꿈을 이어간다. 각각의 도서관을 처음 지었을 때 품었던 공공 건축의 꿈은 지금 우리의 발걸음과 맞물리고 있다.
결국 사카니시와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공공도서관 설계 경합에서 실패한다. 하지만 좋은 실패란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는 일. 아쉬울지라도 결과에 실망한 채로 자신이 믿는 세계로부터 쉽게 돌아서지 않는 일. 무라이가 사카니시를 채용했을 때 확인했던, 건축을 통해 다른 사람을 상상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강우근_THE LIVERARY 에디터
THE LIVERARY 에디터. 시인. 202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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