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인공 불빛이 없는 깜깜한 밤하늘을 만날 때가 있다. 밤하늘에 빼곡히 박혀 있는 별빛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다 저 빛의 주인인 별은 지금도 존재할까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몇 억 광년을 내달려 지구에 도달한 빛의 주인은 명멸하다 이미 우주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바로 그 순간 반짝이는 빛이 있다는 사실뿐이다. 별을 보며 우주를 상상하다 보면 내가 발 딛고 사는 지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보이저 1호가 찍었다던 희미한 푸른 점과 함께 칼 세이건의 표현 그대로 ‘광활한 어둠 속 다른 어딘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는 보이질 않’는다.¹⁾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다 보면 숙연해진다. 겸허한 마음이 내 안에서 일며 눈에 보이는 그 어떤 존재도 귀하지 않은 생명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을 작업하는 내내 이런 마음이었다. 달력에 깨알같이 작은 글자로 적혀 있는 기념일은 ‘여기 좀 보세요! 우리가 이토록 힘들다고요!’ 하는 무언의 외침같이 느껴졌다. 그 외침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환경 기념일 51개를 추리고 각각의 기념일이 만들어진 배경과 기념일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사정들에 관한 자료를 모으며 지구라는 우리 공동의 집을 참 많이 생각했다.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최원형 저, 블랙피쉬, 2021)
‘세계 코끼리의 날’과 ‘세계 펭귄의 날’이 생긴 이유
지구에서 가장 큰 육지동물인 코끼리는 1940년대까지 아프리카 대륙에 최대 500만 마리가 살았지만 지금은 41만 마리 남짓만 남아 있다. 상아를 얻으려는 밀렵과 개발로 코끼리 서식지인 숲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봤던 한 다큐는 자못 충격적이었다. 밀렵꾼들이 상아를 최대한 많이 얻으려 살아 있는 코끼리 얼굴에 전기톱을 들이대고 있었다. 전기톱 소리에 놀란 코끼리는 당연히 공포에 질려 광분했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상아를 떼어내고 버려진 코끼리 사체에 독수리 떼가 몰리자 그들은 밀렵의 증거가 될까 싶어 코끼리 사체에 독극물을 넣었다. 코끼리와 독수리를 희생시킨 대가로 얻은 상아가 누군가에겐 귀한 선물로, 또 누군가에겐 애지중지하는 물건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어느 목숨과 맞바꿀 만큼 가치 있는 물건이라는 게 과연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이런 슬픔을 끝내고자 2012년에 ‘세계 코끼리의 날’(8월 12일)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아주 조금 위로가 된다.
미국의 맥머도(McMurdo) 남극 관측 기지 앞에는 해마다 4월 25일쯤 아델리펭귄들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남극은 이즈음 겨울이 시작되기에 바다가 얼어붙기 전에 좀 더 따뜻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서식지 파괴로 사라져가는 펭귄을 보호하기 위해 펭귄이 이동하는 시기의 이날을 ‘세계 펭귄의 날’로 정했다. 남극을 대표하는 동물인 펭귄은 적도에 이르기까지 남반구 전역에 걸쳐 18종이 살고 있는데, 이 가운데 11종이 세계자연기금(WWF)이 지정한 멸종위기종 혹은 취약종으로 분류돼 있다.
펭귄의 수는 지난 30년 전에 비해 80퍼센트 가량 감소했다. 감소한 주요 이유는 먹이 부족이다. 기후 변화로 수온이 올라가고 빙하가 줄어드는 등 환경이 변하면서 먹이가 부족해진 이유도 크지만, 펭귄의 먹이인 크릴에서 추출한 오일이 건강식품으로 팔리면서 눈에 띄게 먹이가 줄어든 이유도 적지 않다.
지구에서 고달프고 슬픈 삶을 살아가는 것은 동물만이 아니다. 세계 인구의 5분의 3이나 되는 사람들은 위생적인 화장실을 갖추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고, 카카오농장에서는 아동에게 보호 장비도 주지 않고 불법 노동을 시키면서 임금마저 제대로 주지 않는 노동 착취까지 벌어진다. 창백한 푸른 점 지구를 다시 떠올려본다. 이 작은 점의 한 모퉁이에 사는 인류가 자신들과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퉁이에서 살아가는 존재에게 보여주는 잔혹함이라니. 온통 암흑으로 가득한 곳에서 오직 푸른 점 지구만이 우리가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야 할 곳인데 말이다. 얼마나 하찮고 하찮은 것들로 우리가 서로를 증오하고 오해하고 있는지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성찰할 힘을 갖게 된다면 우리는 공동의 집 구성원 누구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지 않을까?
환경 기념일과 관련한 큐레이션으로 도서관에서부터 시작하는 환경교육
낮은 자리에서 자기 목소리를 갖지 못한 인간, 비인간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들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여러 환경 기념일을 도서관에 오는 이용자들에게 알리는 일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기념일과 관련한 도서를 전시하는 일은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도서관을 환경교육의 장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올 한 해 도서관 서가 한 곳을 환경 기념일로 채워보면 어떨까? 도서관은 지혜의 숲이면서 동시에 나무숲이기도 하다. 나무로 만든 책으로 가득한 곳이니까. 그런 점에서 도서관이야말로 숲의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을 찾고 숲을 보전할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숲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종이로 사라지는 숲을 지킬 수 있는 재생 종이가 있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벌목하는 대신 사용한 종이를 다시 순환시켜 만든 게 재생 종이다. 중등 교과서는 재생 종이로 만들지만 초등 교과서는 어쩐 일인지 여전히 재생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재생 종이와 친환경 잉크로 출간하는 녹색 출판조차 대세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생 종이에 관한 인식이 높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식목일에 아무리 나무를 심은들 종이를 낭비한다면 나무를 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질문을 던진 한 환경단체가 ‘종이 안 쓰는 날’을 만들었다. 식목일 전날인 이날에 재생 종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해봐도 좋겠다. 종이 안 쓰는 날에 재생 종이로 출간한 책들(이왕이면 기후나 환경과 관련한 책이면 금상첨화가 될 것 같다)을 전시하면서 재생 종이의 의미를 이용자들에게 알리는 일도 유의미할 것 같다.
여름이면 건물마다 냉방기 이용률이 높다. 도서관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전기의 60퍼센트 이상을 화력발전소에서 만든다. 전기 사용량이 늘수록 배출하는 탄소량도 증가하고 지구는 점점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도서관 내 냉난방 온도를 적절히 조절하려고 하면 덥다거나 춥다는 이용자들의 민원이 자주 발생한다. 이런 일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더워지기 전에 지구의 날(4월 22일)이 생긴 취지에 관한 책 전시와 관련 강연 등을 개최해서 이용자들에게 기후 문제를 환기시키는 건 어떨까?
추워지기 전에 에너지의 날(9월 22일)이 생기게 된 순환 정전 등에 관한 이야기를 전시하고 이용자들과 함께 에너지 문제를 생각하는 기회를 가져볼 수도 있겠다. 여름철 전기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 가운데 ‘그린 커튼’도 있다. 여름에 볕이 들어오는 창에 줄을 늘어뜨리고 덩굴식물을 심어서 창으로 들어오는 볕을 조절한다면 냉방비를 줄일 수 있다. 그린 커튼은 도서관 외벽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아웃테리어로도 멋지다.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²⁾다시 칼 세이건의 생각을 옮겨본다. 작년만 해도 우리나라는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을 여러 차례 겪었다. 더 큰 재난이 벌어지기 전에 자연이 우리에게 힌트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힌트를 얼른 알아차리고 더 큰 파국이 오기 전에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나는 ‘우리’를 믿는다. 미처 몰라서 우리 공동의 집을 함부로 다루었지만 알고 나면 삶의 자세가 달라질 ‘우리’를 믿는다. 도서관은 지혜의 보고다. 그 지혜를 서가에 가둬둔 채 화석화시키지 말고 이제 생명을 불어넣어야 할 때다. 우리 삶 곳곳에 필요한 지혜를 책에서 꺼내 시민들과 만날 접점이 도서관에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1), 2)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사이언스북스, 2001.
최원형_작가
KBS, EBS 방송작가와 잡지사 기자를 거쳐 생태와 환경에 관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으킨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사고를 목격하며 에너지와 기후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는 시민들과 글과 강의로 소통하며 함께 살아갈 좋은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대》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 《착한 소비는 없다》 《제로 웨이스트 쫌 아는 10대》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라면을 먹으면 숲이 사라져》 《10대와 통하는 환경과 생태 이야기》 등 12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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