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코너에서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거나 사서가 등장하는 소설 등 도서관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10여 년 전, 버지니아에 계신 이모를 뵈러 갔다가 반나절 정도 워싱턴 D. C.의 중심부를 구경하러 간 적이 있다. 본격적인 관광이라고 하기엔 뭣하고, 그 동네에 처음 간 사람이지만 마치 현지인이 그냥 산책 나온 듯 유유자적 돌아다녔다. 워낙 여러 곳에서 온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명소이다 보니 길 가던 누군가 나를 붙잡고는 국방부 건물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고, 마침 그쪽을 지나온 터라 나도 모든 게 초면인 주제에 여유롭게 길 안내를 해줬던 기억이 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1993)에서 봤던 워싱턴 기념탑이며 거대한 링컨 대통령 석상, 미국 대통령이 산다는 백악관, 미국의 주요 정부 부처 건물 등, 영화나 사진으로만 보던 것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은 신기하고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중에 디즈니의 액션 어드벤처 〈내셔널 트레져(National Treasure)〉(2004)에 등장한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의 웅장하고 기품 있어 보이는 외관에 압도당했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영화에서 미국 독립선언문을 악당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훔친다는 황당한 논리를 펼치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는 주인공 벤 게이츠(니콜라스 케이지)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한다. 벤의 할아버지 존 애덤스 게이츠(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어린 손자 벤에게 국보의 비밀에 관해 알려준다. 내용인즉슨, 1832년에 미국 독립선언문 서명자였던 찰스 캐럴(1737~1832)이 미 건국의 아버지이자 템플 기사단인 프리메이슨스에 의해 감춰진 보물에 얽힌 비밀을 게이츠 가(家)의 조상에게 물려주었다는 것. 보물을 찾기 위한 유일한 단서는 ‘비밀은 샬럿에게 있다’는 문구다.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한 벤과 달리, 보물과 관련해 회의적인 벤의 아버지이자 존의 아들인 패트릭 헨리 게이츠(존 보이트)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일축해버린다.
30년 후, 벤과 벤의 친구인 컴퓨터 전문가 라일리(저스틴 바사)는 이안(숀 빈)이 자신의 재력으로 꾸린 탐험대에 합류해 ‘샬럿’이 북극에서 종적을 감춘 배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배 안에서 발견된 해포석(海泡石) 담배 파이프에서 다음 단서가 미국 독립선언문에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하지만 이안은 금세 범죄단의 우두머리라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벤에게 독립선언문을 훔치자는 제안을 하는데, 벤은 여기에 동조하지 않고 이안 패거리에게서 등을 돌린다.
벤과 라일리는 즉각 이안의 계략을 FBI와 내셔널 아카이브의 아비게일 체이스 박사(다이앤 크루거)에게 알린다. 하지만 아무도 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결국 벤은 갈라 이벤트가 열리는 날, 아카이브의 보존실에 보관 중인 독립선언문 원본을 이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훔치기로 한다.
미국 근대사를 아우르는 상징성을 품다
의회도서관은 미국의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 주니어(James Madison Jr., 1751~1836)가 남북전쟁 당시 도서관 창립을 제안한 이래 1897년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의 이름을 딴 본관을 개장했고, 그로부터 120여 년이 지난 현재 1억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아이템을 소장 중이며 3천 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관이 되었다. 이른바 미국의 근대사를 거치면서 그 역할과 기능이 발전해 하나의 문화 사료 저장소로서의 상징성을 품은 곳이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떠올리면 기대하는 물리적 기능, 즉 책으로 구현된 인쇄 매체를 보존하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를 열람하고 연구할 수 있는 역할 이외에도 20세기 후반부터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산들을 보존해 후대에 전하는 매개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국립영화보존법에 따라 1989년 설립된 국립영화보존위원회(National Film Preservation Board)에서 문화, 역사, 미학적 관점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영상물 25편씩을 매해 선정해 의회도서관에서 영구 보존하는데, 1989년부터 2021년까지 총 825편이 선정되었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카사블랑카(Casablanca)〉(1942) 〈대부(The Godfather)〉(1972)와 같은 클래식 명작들부터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1991)라든가 〈터미네이터(Terminator)〉(1984) 〈빽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1985)와 같은 SF 흥행작, 〈메멘토(Memento)〉(2000)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The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2001) 같은 21세기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해당 영상물 공개 10년이 지나야 하는 조건이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의회도서관 사서들도 1997년 이후 영구보존 영상물 선정 작업에 참여한다는 것인데, 그만큼 사서가 도서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다양한 직무를 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세계 최대 규모의 장서 및 인쇄물, 정기간행물 보존뿐 아니라 영상과 음성 기록물 영구 보존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는 의회도서관이 영화 〈내셔널 트레져〉의 시작점으로 선택된 것은 의외가 아니다. 독립선언문은 1776년 7월 4일, 영국의 통치 아래 있던 식민지 13개 주가 형제애의 도시로 알려진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에 있는 독립기념관(Independence Hall)에서 실행된 독립선언의 내용을 담은 역사적 문서이고, 그 원본이 의회도서관에 보존 중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발표된 우리나라의 독립선언문 원본이 천안의 역사박물관인 독립기념관에 보존 중인 것과 비교해도 재미있다. 물론 영화 〈내셔널 트레져〉에서 독립선언문 원본을 탈취하는 과정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눈속임이 동원되는 정도라, 실제 의회도서관의 보안 시스템으로는 왠지 어림도 없을 일 같다.
〈내셔널 트레져〉 일러스트 ⓒ조창범
의회도서관의 기능과 역할의 흥미로운 발견
영화 제목 ‘내셔널 트레져’는 국가에서 지정할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닌 보물이나 자산을 뜻하며, 우리는 이를 ‘국보(國寶)’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 중구에 있는 ‘국보 1호’ 숭례문이 국보의 대명사처럼 여겨진다. 영화 〈내셔널 트레져〉는 영화는 물론 TV, 캐릭터 사업, 테마파크에 이르기까지 엔터테인먼트 전반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영향력을 지닌 ‘디즈니’와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산물인 ‘독립선언문’, 그리고 이를 보존하고 있는 ‘의회도서관’이라는 역사적 명물을 합쳐 창조해낸 결과물이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벤 게이츠는 현대판 ‘인디애나 존스’를 떠올리게 하며, 영화 속에서 단서를 쫓아 보물의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은 댄 브라운(Dan Brown)의 소설을 영화화한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2006)나 한때 우리나라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했던 방 탈출 게임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의 관점에서 숨겨진 해답을 찾기 위해 크게 골머리를 썩일 필요는 없다. 애초에 〈내셔널 트레져〉가 지향하는 바는 복잡하고 심오한 두뇌게임보다는, 적당하게 미국의 역사도 상기시키고 적당한 액션과 모험과 음모가 뒤엉킨 액션 어드벤처 프랜차이즈 구축이 목적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독립선언문처럼 국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보물의 보존 장소인 의회도서관에서 비롯되어 워싱턴 D. C. 전역으로 확장되는 아이디어는 〈내셔널 트레져〉가 제작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신선하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정식 명칭은 ‘도서관(Library)’이면서도, ‘박물관(Museum)’의 역할까지 병행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CJ ENM에서 한국영화 해외 배급, 단편영화제 기획 및 프로그래밍을 비롯, 국내·국제영화제 초청 및 프로그램 업무, 외화 마케팅 등 20년간 영화 관련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섭렵하고 있다. 현재 영화 리뷰 전문 블로그 ‘부귀영화 富貴映畵’(bryanjo.com)를 운영 중이다.
작가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드라마, 박해영이라는 세계드라마를 이야기할 때, 배우의 이름보다, 방영되는 시간대나 방송사보다, 작가의 이름이 먼저 언급된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최고의 영예일 것이다. 과거 김수현 작가가 그랬고, 송지나와 노희경 작가가 그랬으며, 지금은 김은숙과 김은희 작가 같은 소수가 이런 영광을 누리고 있다. 여기에 하나의 이름이 추가되었다.
영화는 흑백의 이미지로 고인이 된 움베르토 에코가 미로처럼 이어진 자신의 서가 안을 걸어가는 뒷모습을 쫓으며 시작한다. 처음에는 너무 방대한 양의 책이 꽂혀 있어 그곳이 개인 서가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약 5만 부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밀라노의 브라이덴세도서관과 볼로냐대학교 도서관에 일부 기증되었다. “La biblioteca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이야기하는 방식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영화를 모두 다 보았고, 볼 때마다 좋은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라고 판단했지만, 반복해서 그의 영화를 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 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의 경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