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칼리오도서관. 도서관 이용자가 정보를 열람하는 동안 반려견이 기다리고 있다. ⓒ조금주
외국의 공공도서관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들
제법 오랜 기간 도서관에서 근무를 했던 내게도 외국의 공공도서관에 가면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있다. 핀란드의 칼리오도서관(Kallion Kirjasto)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중년의 여성 이용자가 개와 함께 자료실로 당당히 들어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은 다른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은 출입 금지이기 때문이다.
입장을 저지하는 직원도 없었고, 눈치를 주는 이용자도 없었다. 반려견은 주인을 따라 성큼성큼 따라 들어와서는 점자책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주인의 곁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리곤 이내 책상에 자리를 잡은 주인의 의자 옆에 찰싹 붙어 바닥에 누운 자세로 꼼짝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도 반려견도 행동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아마도 도서관 이용은 오래된 습관인 듯했다.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근무하는 사서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도서관은 동물도 들어올 수 있나요?”
“아무 동물이나 입장이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도우미견의 경우에는 허용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앙도서관(San Francisco Main Library)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사람보다 커다란 덩치의 개가 서가 사이를 어슬렁어슬렁 다니고 있었다. 놀라는 나에게 도서관을 안내해주던 매간 사서가 장애인 이용자가 동반한 안내견이라고 말하면서, 장님의 길을 안내하는 맹도견(盲導犬),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고령자를 돌보도록 훈련받은 보호견(介助犬), 청각장애인을 도와주기 위해 특별히 훈련된 청도견(聴導犬) 등의 도서관 동반 입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해주었다.
장애 여부와 무관하게 샌프란시스코 중앙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 ⓒ조금주장애인실 사서의 모습 ⓒ조금주
주위를 둘러보니 휠체어를 타고 있거나, 한쪽 팔이 없거나,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곳곳에 보였다. 이렇게 많은 장애인들이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는 풍경이 나에게는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사서의 안내를 받아 도서관 1층의 청각장애인센터(Deaf Services Center), 2층의 토킹북 및 점자 센터(Talking Books And Braille Center) 같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들을 둘러보았다.
청각장애인센터에는 연령별 사인 랭귀지 관련 자료와 강좌 안내가 있고, 토킹북 및 점자 센터에는 10만 점 이상의 디지털 ’토킹북‘과 이를 듣기 위한 특수 플레이어가 있었다. 장애인 전문 도서관이 아닌 일반 공공도서관 내에 장애인실이, 그것도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마침 청각장애인 서비스센터에서는 보청기를 착용한 사서가 데스크에 근무 중이었다. 그녀는 필자가 한국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바로 장애인 관련 영화인 〈도가니〉 비디오를 가져다 보여주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다.
외국 공공도서관의 낯선 풍경은 공공도서관의 도우미견이나 장애인 직원, 혹은 무수한 장애인 이용자들만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매간 사서의 설명은 더욱 놀라웠다. 사서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 수화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며, 그래서 기본적인 수화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청각장애인들이 주눅 들지 않고 마음 편하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라고 했다. 메간 사서가 스스로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화장실은 저쪽입니다” 등의 수화를 손짓으로 보여주었다. 진정한 ‘배리어 프리(barrier-free)’ 도서관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장벽이 없는 도서관의 배리어 프리 시설들
‘배리어 프리’란 장벽을 뜻하는 ‘배리어(barrier)’와 자유로움을 뜻하는 ‘프리(free)’의 합성어다. 1974년 국제연합(UN) 장애인 생활환경 전문가 회의에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 관한 보고서가 등장하면서 건축학 분야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편의를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이후 노약자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회적 약자들도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종류의 물리적, 제도적, 심리적 장벽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였다.
고령자 사회의 대표 국가인 일본의 공공도서관들이 일반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잘 갖추고 있고 서비스도 발달되어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지도 안내가 있고, 대면 낭독실과 녹음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출입구에는 관내에서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장애인용 휠체어가 수 대 배치되어 있다. 일본의 지중해라고 불리는 효고현 아와지섬(淡路島)의 스모토도서관(洲本図書館) 건물 출입구 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몸이 불편하신 분은 버튼을 눌러주세요.’ 버튼을 누르면 사무실 안쪽에서 직원이 휠체어를 가지고 특별히 마중을 나온다.
일본 미라이 on 도서관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 안내도 ⓒ조금주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설계한 화장실 ‘다레데모 토이레’의 모습 ⓒ조금주
장애인의 도서관 이용이 편안하려면 무엇보다 화장실 사용이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의 세키마치도서관(関町図書館)에는 독특한 화장실 사인이 눈길을 끈다. 누구나 사용 가능한 ‘다레데모 토이레(誰でも トイレ)’다. 고령자, 휠체어 이용자, 임산부, 유아 동반 부모들은 물론 인공항문이나 인공방광을 사용하는 장루 설치 환자를 포함하는,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을 고려한 화장실이다. 접는 시트, 간이 난간, 오물 수채나 온수 시설, 오스토메이트(ostomate) 대응 설비 등 모든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쾌적하게 만들어져 있다. 화장실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곳에 있고, 문은 고리를 붙잡고 돌려서 여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옆으로 밀면 쉽게 열리도록 되어 있다.
장애인을 위한, 장벽 없는 도서관 서비스
도서관인 만큼 기본인 자료와 서비스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워싱턴 DC의 마틴루터킹 기념 공공도서관(Martin Luther King Jr. Memorial Library)에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서비스센터(Centre for Accessibility)가 있다. 토킹북 기기(talking book machines)와 점자책을 제공하는데, 이용자는 약 천 명 정도라고 한다. 장애인들의 특성을 고려해 택배 서비스도 제공하며, 이용자 주소로 도서나 DVD 등을 우편으로 배달해주고 있다. 장애인들을 위한 색다른 프로그램이나 서비스들도 있다. 예를 들면 맹인이나 시력이 나쁜 사람들이 모여 스크래블(Scrabble), 모노폴리(Monopoly), 빙고(Bingo), 우노(Uno) 등의 게임을 즐기는 게임 나이트(game nights)가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점자도서 클럽, 청각장애인 문화를 위한 각종 행사들, 이들을 위한 수화 강좌들, 오디오북클럽, 아이패드나 안드로이드 강좌, 테크놀로지 강좌들도 있다.
마틴루터킹 기념 공공도서관에 있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서비스 센터의 모습 ⓒ조금주스모토도서관의 이우치 히데끼 관장이 녹음실을 소개해주고 있다. ⓒ조금주
일본의 스모토도서관(洲本図書館)에서는 대면 낭독(対面朗読)과 전화도서관(テレホン ライブラリー)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화도서관 서비스는 이용자에게 전화로 책을 소개해주는 것으로,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 수요일마다 새로운 내용으로 바뀐다. 대면 낭독 서비스는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로, 이용 대상자는 시각장애인이나 글을 읽지 못하는 노인이다. 낭독 자료는 기본적으로 도서관 책이지만 설명서나 팸플릿 등도 상관없다. 읽어주는 사람은 도서관 자원봉사자이고, 장소는 도서관 내의 대면낭독실이다.
난독증(dyslexia)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서관도 있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중앙도서관(Openbare Bibliotheek Amsterdam)의 MLP(Makkelijk Lezen Plein, 영어로 Easy Reading Square)는 8세에서 13세 사이의 읽기 장애가 있는 아동에게 초점을 맞춘 특별한 서비스다. 주의력결핍(Attention Deficit Disorder)이나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등 난독증이나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MLP 컬렉션은 잡지, 동화책, 오디오북 등에서 재미있는 읽기 자료를 선별해 쉽게 찾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제공한다. 독서를 자극하고 독서의 즐거움을 촉진하는 방법으로,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어린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있다.
스모토도서관의 대면낭독실 전경. 이곳에서 도서관 자원봉사자가 시각장애인이나 활자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용객에게 책을 소리 내어 읽어준다. ⓒ조금주
모든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기관, 공공도서관
공공도서관은 모든 이들에게 공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주주의 기관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비장애인이나 모두 도서관 이용자고, 이용자로서 동일한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 또한 도서관을 이용하는 장애인은 시각장애인만이 아니다. 청각, 지체, 뇌병변, 발달 장애를 가진 다른 장애인들도 고려해 장애 유형별 편의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미국의 건축가 로널드 메이스(Ronald L. Mace, 1942~1998)는 모든 나이와 능력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ages and abilities)을 나타내기 위해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으로, 특정 존재를 배려하는 설계가 궁극적으로 모든 존재를 배려하는 설계라는 의미다. 무장애(barrier free) 원칙을 기본으로 물리적 장애물의 제거만이 아니라 여러 이용자의 행동 및 심리 특성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은 다양하며, 그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라는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프랑스의 에밀 졸라 도서관.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조금주
최근 한국의 공공도서관에서도 장애인 서비스가 확대되고 점자 도서가 증가하고 있지만, 장애인 이용률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 조성과 장비 구축이 필수 요건이지만 장애인의 도서관 이용 증대는 단지 도서관 직원들의 업무만이 아니다. 장애인들이 심리적인 위축감을 느끼지 않고 일상에서 도서관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용하려면 무엇보다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교육이 선행되고 지속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동정과 시혜(施惠)의 대상이 아니라 도움과 관심이 필요하지만 동등하게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이용자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조금주_작가, 넥스트 라이브러리 대표
작가, 넥스트 라이브러리 대표. 도곡정보문화도서관과 반포도서관 관장을 역임했다. 2023년 1월 1일, 도서관 건립 컨설팅, 운영 자문, 사서 교육 등 도서관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도서관의 미래를 기획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 도서관 연구소 ‘넥스트 라이브러리(Next Library)’를 열었다. 쓴 책으로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힘, 도서관》(2015),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2017)이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시립도서관의 그래포틱유럽이나 북미의 도서관을 탐방 다니다 보면 ‘아니, 공공도서관에서 이런 것까지 대출해준다고?’ 하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 일명 ‘사물도서관(Library of Things)’ 서비스다. 도서관의 주요 소장 품목이었던 책과 정기간행물, 음악 CD와 영화 DVD를 넘어서 주방용품, 가정에서 사용하는 많은 각종 장비 세트, 원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이용자 행동강령모하메드 빈 라시드 도서관(Mohammed Bin Rashid Library)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내부 공간 사진을 찍고 있는데 중앙 아트리움 건너편에 앉아 있던 건장한 20대 청년이 허겁지겁 쫓아왔다. 왜 허락도 없이 자신을 찍었느냐고 큰 소리로 항의를 했다. 그가 있던 곳은 내가 서 있던 쪽 창문과 중앙의 개
도서관에서 누리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물소리 바람소리만으로 가득한, 고즈넉한 대나무 숲을 스님과 남성 배우가 걸어간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삐리리 울리면 배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고 한다. 1998년 시청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통신사 TV 광고다. 이 광고는 어디에서나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