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에서 누리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
물소리 바람소리만으로 가득한, 고즈넉한 대나무 숲을 스님과 남성 배우가 걸어간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삐리리 울리면 배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고 한다. 1998년 시청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통신사 TV 광고다. 이 광고는 어디에서나 잘 터지는 통신사의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것이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과도한 스마트 기기 사용을 경계하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현대인의 일상에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같은 디지털 기기 활용시간이 급속도로 늘어가고 있다. 컴퓨터 화면이나 스마트폰을 하루 내내 들여다보는 디지털 중독도 증가하고 있다. 출근길에도, 업무 중에도, 운전 중에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닐 정도다. 손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초조하거나 공포를 느끼는 ‘노모포비아(nomophobia)’가 있는가 하면,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안 하면 불안해하는 ‘카페인 우울증’도 생겨났다.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면서 두뇌 활동 능력이 떨어지는 ‘디지털 치매’ 증상처럼 과도한 디지털 노출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하다.
이와 관련해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중단하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가 인기를 끌기도 한다. 디지털 디톡스는 디지털(digital)과 해독(detox)의 합성어다. 디지털의 독을 해소한다는 뜻으로,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줄이고 피로한 심신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각종 전자기기와 인터넷, SNS 중독에서 벗어나 심신을 치유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디지털 단식을 의미한다. 잡다한 정보로 피로한 두뇌를 쉬게 하면서 과다한 정보 유입으로 인한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덜어보자는 것이다. 옥스포드사전에 의하면 디지털 디톡스는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의 사용을 자제하고 물리적 세계에서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사회적 상호작용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로 간주되는 기간’으로 정의된다(Oxford Dictionaries, 2019). 이 정의는 단식과 유사하게 자신을 정화하기 위해 전자기기 사용을 일시적으로 금하는 것으로 디지털 디톡스를 이해한다. 불법 약물이나 알코올을 영구적으로 금하는 해독요법과는 다르다.
전자기기로 가득한 도서관이지만 한편으로 공공도서관만큼 디지털 디톡스에 최적인 공간도 없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자신에게 감사 일기를 쓰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종이에 적어보며 달콤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서가 사이를 걸어다니며 제목을 훑어보면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누리거나, 서가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편한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미지의 세상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며 책과 함께하는 몰아지경(沒我之境)을 맛볼 수 있다. 어느새 자신을 짓누르던 각종 스트레스와 좌절감, 분노 등과 같은 부정적 감정은 사라지고,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나 두려움 혹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과 공허감 같은 마음의 독소들이 스르르 해소되는 마인드 디톡스를 경험하게 된다.

도서관이 주는 선물, 디톡스 박스
때로 공공도서관에서는 이용자들에게 디지털 세계로부터 초점을 전환하기 위해 플러그를 완전히 뽑고 야외에서 시간을 보낼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프린스턴공공도서관(Princeton Public Library)에서는 일상적인 관행에서 다시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몇 권의 도서를 추천하고 있다. 주제는 이른바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시간’이고, 추천도서는 《슬로우: 분주한 세상을 위한 단순한 생활(Slow: Simple Living for A Frantic World)》 《언플러그: 바쁜 회의론자와 현대 영혼 탐구자를 위한 간단한 명상 안내서(Unplug: A Simple Guide to Meditation for Busy Skeptics and Modern Soul Seekers)》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 관심(주목)경제에 저항하기(How to Do Nothing: Resisting the Attention Economy)》 《집중력 유지하며 즐기는 독서(The Pleasure of Reading in An Age of Distraction)》 《아무것도 하지 않기: 과도한 업무, 과한 행동, 부족한 생활에서 벗어나기(Do Nothing: How to Break Away from Overworking, Overdoing, and Underliving)》 등이다.
세인트메리공공도서관(St. Mary Public Library)에서는 지역사회 어린이들에게 150개의 디지털 디톡스 박스를 제공하고 있다. 각 상자 안에는 한두 권의 책, 두세 개의 작은 상품, 활동이나 게임 등이 포함된 패키지 묶음이 들어 있다. 상자는 다양한 연령대에 제공되며, 각 상자에는 테마가 있다. 안에 들어 있는 도서의 종류는 유아들을 위한 그림책,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챕터북, 그리고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 청소년 용 책까지 다양하다. 십대들을 위한 상자에는 디지털 해독 주간 챌린지도 들어 있다. 디지털 디톡스 박스는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것에서 벗어나 두뇌에 변화와 자극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린이들이 책을 읽고 비전자적 활동을 즐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이들이 가장 지루함을 호소하는 여름에 디톡스 박스 선물로 놀라움을 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브래드포드공공도서관(Breadford Public Library)은 도서관 주간을 기념해 십대 청소년들을 위한 디지털 디톡스 박스를 제공했다. 서비스 지역에 거주하는 12세에서 18세까지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각 상자는 스트레스 완화제, 맛있는 간식, 케어 용품 등으로 구성되었다.
미국 일리노이주 블루아일랜드공공도서관(Blue Island Public Library)에서 제안하는 디지털 디톡스 방법은 더욱 흥미롭다. 새해를 휴대폰 청소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기기의 중독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스마트폰과 스마트폰 속 데이터를 ‘정리’하는 몇 가지 간단한 단계를 알려준다. 제목만 들어도 마음이 솔깃하지 않은가?

마음 쉼을 위한 마인드 디톡스(Mind Detox)
도서관은 디지털 중독에 의한 독소를 해소해주는 공간일 뿐 아니라, 마음의 고통에 의한 독소를 씻어내주는 치유의 공간이 되기도 하다. 제법 많은 도서관들을 다녀온 탓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어온다. “어느 도서관이 제일 좋았어요?” 그때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었다. 도서관마다 색다르고 각각의 장점이 뛰어나서, 비교 불가의 도서관들을 놓고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가장 좋은 도서관은 개인의 선호나 취향의 문제이지 우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해오면 주저없이 “벨기에의 프레디케렌이요”라고 답한다.
프레디케렌(Predikheren)은 네덜란드어로 ‘설교하는 신사들’이다. 엄격한 가톨릭 신앙의 도미니크(Dominicans) 수도사들을 의미한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의 스헤르토겐보스(‘s-Hertogenbosch) 시가 개신교의 통치를 받게 되면서 수도사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쫓겨났다. 이들이 메헬렌(Mechelen)에 정착해 설립한 수도원이 프레디케렌이다.
바로크 양식의 조용한 수도원은 프랑스 혁명과 그 이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이웃 국가들의 점령 및 합병으로 완전히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불우이웃을 돕는 시민병원 및 빈민보호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무기고가 있는 군병원으로 개조되어 군인들의 막사로도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경비대의 피난처로 변모되었다. 1977년 마지막 연대가 이전하고서야 건물은 비워지게 되었다. 40년 이상 건물은 누수되고 각종 곤충들의 서식지가 되어 곰팡이가 피고, 망가지고, 파괴된 채 폐허로 (살아)남았다.
메헬렌 시는 건물을 보호기념물로 지정하고 수도원은 2019년 현대적인 시립도서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수도원 건물에는 풍부한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어린이실로 사용되는 아름다운 다락방부터 카페테리아로 변신한 회랑, 낡은 유화 그림 같은 반원형 아치, 원목과 오크빔의 천장 구조로 이루어진 넓은 홀에 이르기까지 옛 모습 그대로다. 중앙 정원을 통해 따스한 햇살이 곳곳에 스며들고 은은한 노란 전등 불빛과 어우러지면서 아련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에 검게 그을리고, 칼날에 잘려나가고, 못 자국으로 구멍 난 무수한 상처들도 그대로다. 하얗게 부패하거나 썩어서 검게 변한 기둥들, 군화가 밟고 지나간 바닥의 대리석 조각들, 벗겨지고 뜯기고 덧입혀진 벽들은 자신들이 목격했던 아픔과 고통의 시간들을 기억하는 듯하다. 넓은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받으며 말 못할 고통의 긴 세월들을 버티고 견디고 살아남아 프레디케렌은 마침내 평화로움에 안착한 듯했다.
프레디케렌은 혼신을 다해 일해왔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부대끼는 마음을 견디지 못해 떠난 여행에서 만났다. 산티아고를 걷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걸어가다 도착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와 정성을 쏟아 일했던 것이 결국 몸에 독으로 남았고, 살기 위해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과 아끼는 도서관을 스스로 끊어내었던 결단이 자해의 상처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감정선이 툭, 터진 듯 눈물이 쏟아졌다. 내 안에 쌓였던 독소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프레디케렌은 그렇게 번아웃을 겪고 있던 내게 마음 ‘쉼’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여전히 나는 걷고, 걷고, 또 걸으며 새로운 도서관을 찾아간다. 힘든 자갈길과 고되고 가파른 계단들, 끝없이 펼쳐지는 아득한 아스팔트길을 지나 새로운 도서관을 만나러 간다. 도서관에 가면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마음을 꺼내어 펼쳐놓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렇게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이유 모를 친밀감을 느끼고,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마음 쉼’의 신비로움을 경험한다. 마치 마법과도 같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