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나 북미의 도서관을 탐방 다니다 보면 ‘아니, 공공도서관에서 이런 것까지 대출해준다고?’ 하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 일명 ‘사물도서관(Library of Things)’ 서비스다. 도서관의 주요 소장 품목이었던 책과 정기간행물, 음악 CD와 영화 DVD를 넘어서 주방용품, 가정에서 사용하는 많은 각종 장비 세트, 원예 장비와 씨앗, 전자제품, 장난감과 게임기, 예술 작품, 과학 키트, 공예 용품, 악기 및 레크리에이션 장비까지, 대여해주는 물건들은 다양하다. 가정에서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유용하고, 보관하기 번거로운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ARLIS(Alaska Resources Library and Information Services)의 박제동물이나 미시시피주 클리블랜드의 볼리바카운티도서관(Bolivar County Library)의 산타클로스 복장과 같이 점점 더 특이한 물건들로 확장되고 있다. 참여하는 공공도서관 수도 증가 추세다. 한국에서는 장난감도서관이 대표적으로, 공공도서관과는 별개의 대여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사물도서관의 역사는 사실 오래되었다. 한국의 이은영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슈투트가르트시립도서관(Stadtbibliothek Stuttgart)의 ‘그래포틱(Graphothek)’이 대표적이다. 무려 1976년부터 시립도서관의 그래포틱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모토는 ‘책처럼 그림을 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방에 배치된 그림들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게다가 그래포틱은 하루에 세 시간만 열었다.
마일란더 플라츠 지역에서 새로운 슈투트가르트시립도서관이 개관하면서 미술품 대출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래포틱 책임자인 제시카 버거(Jessica Berger)는 이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이용자가 있습니다.” 방문자는 도서관의 가장 꼭대기인 8층의 미술 자료실 앞에 멈추어 서서 어떤 예술 작품으로 자신의 아파트, 병원, 혹은 법률사무소를 아름답게 꾸밀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제시카는 아트 페어나 갤러리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찾고 있다. 그녀의 구입 기준은 오로지 첫째도, 둘째도 작품의 퀄리티다. 선택하는 작품에 제한이 없다는 이야기다.
슈투트가르트도서관의 그래포틱은 1976년 개장 이래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현재 2천 500여 점의 오리지널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드로잉, 에칭화, 사진, 콜라주, 수채화 등을 선보이는데, 지역 및 국제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과 접촉해 예술계의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고 소장품을 확대하며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피카소(Picasso), 보이스(Beuys), 바젤리츠(Baselitz)의 작품도 소장 중이다. 도서관 8층의 그래포틱에서 디지털 이미지 카탈로그와 전통적인 슬라이드 카탈로그를 모두 찾아볼 수 있으며, 이미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연회비 15유로를 내는 도서관 회원이면 원하는 작품을 예약하고,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상자에 포장해 집으로 가져가서 8주 동안 감상할 수 있다. 2.50유로의 보험료가 자동으로 청구되며, 다른 이용자가 예약되어 있지 않은 경우라면 대여 기간을 최대 6회까지 연장할 수 있어 최대 1년간 소장 가능하다.
프랑스 파르디외시립도서관, 아토텍
프랑스 파르디외시립도서관(Part-Dieu Library)에서도 예술 작품을 대여해주고 있다. ‘아토텍(Artothèque)’이라 불리는 서비스인데, 1945년부터 현재까지의 예술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고 모든 작품이 독창적이다. 개인으로도 대출할 수 있고 기관 대출도 가능하다. 개인은 아티스트의 판화, 사진, 비디오를 2개월 동안 대출할 수 있고, 지역사회의 학교, 기업, 보호소, 주간병원, 협회 등의 기관들은 최대 15점의 예술 작품을 3개월 동안 빌릴 수 있다. 이용자는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 아마추어 예술가, 감정가 등 다양하다. 개인은 가정에서 새로운 예술적 언어를 발견할 기회를 얻을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는 사무실, 리셉션, 카페테리아에서 사람들에게 현대미술과의 만남을 제공할 수 있다. 초중고 학교 교사들은 미술사의 중요한 작품을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즐기기도 하지만, 현 세대의 예술가들을 발견하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아토텍은 도서관 이용자와 현대미술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된다. 이용자들이 미술 교육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비판적 감각을 발달시키며, 다양한 표현과 다양한 문화에 자신을 개방하게 한다. 더불어 파르디외도서관에서는 작가의 판화, 작가의 책, 작가의 영상, 사진, 아카이브 컬렉션 등 관련 자료들도 함께 대출할 수 있다. 아토텍 서비스는 인기가 많아서 2023년 지하 1층에 위치한 어린이자료실 내 어린이 미술도서관(Children’s Artothèque)으로 확대되었다. 미술관과 달리 도서관의 미술 작품들은 벽에 걸어 두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만져볼 수도 있다.
공공도서관의 악기 대여 서비스
슈투트가르트시립도서관에서는 악기도 대여해준다. 아코디언, 베이스 박스, 베이스 기타, 어쿠스틱 기타, 핸드 드럼, 하프 거문고, 타악기 세트 등 원하는 악기를 예약하고 대출할 수 있다. 악기의 범위가 튜너 및 악보대와 같은 액세서리까지 포함되고, 악보는 물론 음악 제작도 지원된다. 대출 기간은 2개월이며, 1회 연장할 수 있다. 도서관 회원카드 소지자라면 대출이 가능하고, 미술 작품과 같이 악기도 2.50유로의 보험료가 청구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슈투트가르트시립도서관의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일렉트릭 기타, 드럼, 베이스, 바이올린, 피아노 등을 연주해볼 수도 있다.
인턴십 프로젝트로 뮤직 스튜디오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한 실비오 스칼라텔라(Silvio Scarlatella)는 “여기에서 사람들은 장애물 없이 신속하게 음악을 만들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기기가 무선 헤드폰을 통해서만 동기화되기 때문에 스튜디오는 굉장히 조용하다. 마치 20년대 무성영화의 한 장면 같다. 서투른 연주여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헤드폰 덕분에 외부인은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운드 스튜디오는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문턱이 낮은 실험 공간이다. 음악에 관심 있는 18세 이상의 도서관 회원이라면 언제든지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수 있다. 시립도서관의 프레데릭 버거(Frederik Berger)는 “기기가 민감하기 때문에 연령 제한을 두었습니다. 이 나이가 된 젊은이들은 기기를 존중할 것으로 우리는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훈련된 직원이 다양한 악기에 대한 초보자 워크숍을 제공하기도 한다. 버거는 “우리는 음악 학교와 경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기타, 베이스 같은 악기와의 첫 접촉에 관한 것입니다”라고 강조한다. 조용한 콘서트도 열 수 있다. 청취자는 라디오 헤드폰을 통해 악기에 연결되기에 외부인에게는 들리지 않는 콘서트다. 사운드 스튜디오 서비스는 2019년 3월에 개시되었다.
프랑스 니옹시의 파르디외도서관에서도 악기를 대여해준다. 목적은 다양한 악기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독학으로 음악 연습을 하도록 함으로써 아마추어들의 연주를 촉진하는 것이다. 도서관은 커버, 튜너, 앰프, 스트랩, 케이블 등의 액세서리가 포함된 팩 형태로 약 60개의 악기를 제공한다. 이용자들이 원하는 악기만이 아니라 평소에 접해보지 못했던,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악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다양화했다. 음악도서관의 사서는 악기만이 아니라 독립적인 연습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자원을 제공한다. 악기 발견, 아마추어 음악가들 간의 연습 활동, 워크숍과 같은 아마추어 연습에 관한 회의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에는 음악 전문가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음악가, 그리고 음악 자료실 사서도 참여한다. 스튜디오에서는 악기 연주를 녹음하고 특수 음악 장비(사운드 카드, 마스터 키보드, 컨트롤러)를 사용해 사운드 창작물을 작곡할 수 있다. 컴퓨터 지원 음악에 대한 워크숍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최고의 공유 전문기관, 공공도서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공공도서관에서도 악기 대여 서비스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공공도서관은 2016년에, 브루클린공공도서관은 2018년에 악기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캐나다 밴쿠버와 토론토 공공도서관은 각각 약 100여 점의 악기를 대여해준다. 대여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모든 악기가 대출되고 대기자가 줄을 설 정도로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악기를 빌리기 위한 신규 회원가입이 늘고 있으며 악보나 키보드 책들도 덩달아 대출이 증가하고 있다. 어려서 악기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 처음 악기를 배우는데 악기가 없어 아쉬웠던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다. 또 새로운 악기를 시도하고 싶지만 아직 구매할 생각은 없고 연주 방법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프로그램이다. 악기 연주는 그 자체로 큰 기쁨을 가져다주고 음악 커뮤니티를 구축하도록 한다. 악기 대여 서비스로 더 많은 사람들이 악기 연주를 좋아하게 되고, 도서관에서는 악기를 빌린 사람들을 모아서 악기 수업을 받게 하고 음악 콘서트를 열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한다.
점점 더 많은 수의 해외 공공도서관들이 미술 작품과 악기 대출을 필수로 여기는 경향이다. 공공도서관에서 미술 작품과 악기 대여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보이는 이유는 경제적 격차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항상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작품과 악기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엄두를 못 냈던 것이다. 큰마음 먹고 악기를 구입한다 해도 이내 싫증이 나서 집안 어딘가에 처박아 두게 될까 걱정도 된다.
도서관은 미술과 음악에 대한 높은 경제적, 심리적 장벽을 허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지금은 제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서로 공유하는, 공유경제의 시대다. 공유숙박인 ‘에어비앤비’와 카쉐어링 ‘소카’가 유행인 것처럼 미술 작품과 악기도 공공도서관에서 공유가 가능하다. 공유는 이용자에게 두 배의 기쁨을 제공하고, 이용자는 돈을 절약하면서도 주인처럼 그것을 즐길 수 있다. 소유의 경직성보다 대출의 유연성을 살려보자. 음악이나 미술은 일종의 언어다. 이용자가 다양한 언어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은 문해력을 장려하는 도서관의 사명이다. 공공도서관은 접근 장벽을 허물어 시민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무엇보다 공공도서관은 물건을 빌려주는 데는 최고의 전문기관이 아닌가?
조금주_작가, 넥스트 라이브러리 대표
작가, 넥스트 라이브러리 대표. 도곡정보문화도서관과 반포도서관 관장을 역임했다. 2023년 1월 1일, 도서관 건립 컨설팅, 운영 자문, 사서 교육 등 도서관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도서관의 미래를 기획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 도서관 연구소 ‘넥스트 라이브러리(Next Library)’를 열었다. 쓴 책으로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힘, 도서관》(2015),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2017)이 있다.
고립된 노인들을 세상과 연결해주다코로나19 상황이 심각했던 때의 일이다. 캐나다 토론토시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공공도서관의 강제 폐쇄를 결정했다. 도서 대출은 금지되었고, 대면 서비스는 모두 보류되었다. 노스욕(North York)에 거주하는 75세의 새론 자비스(Sharon Jarvis) 씨는 도서관 이용이 불가함을 알게 되자 좌절했다. 15년간
계층간 세대간 디지털 격차 심화디지털화는 현대인의 삶에 점점 더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육과 정보 습득, 쇼핑, 의사소통, 공공 서비스, 문화생활 등 일상의 모든 영역이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디지털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각종 디지털 기기나 미디어를 활용하는 사람들과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간의 차이로 인해 디지털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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