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백은선에게 ‘고백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A 많은 독자들이 내 시가 고백의 형식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하며 글을 쓰거나 의식하지는 않는다. 글을 쓸 때는 글에 대해 온전히 다 알 수 없는 지점이 있어 그런 것 같다. 생각해보면 고백이란 내밀한 것을 꺼내놓는 행위일 텐데, 내 시가 발화하는 언어를 그만큼 내밀하게 받아들여주셔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단지 항상 내가 생각하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바라는데 그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진실은 저 아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Q 시를 쓸 때 나만의 습관이 있다면? 예를 들어 음악을 듣는다든지, 커피를 마신다든지.
A 저는 루틴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특별한 루틴이 있는 것은 아니고, 보통은 아이를 재운 다음 자정쯤 컴퓨터 앞에 앉아 노래를 듣고 시를 읽으며 예열을 한다. 엄마 모드에서 시인 모드로의 전환을 위한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쓰고 있는 시가 있는 경우에는 여태까지 쓴 부분을 반복해서 읽는다. 그 시의 세계에 입장하기 위해서다. 그러고 나서 이어 쓰기 시작한다. 쓰고 있는 시가 없는 경우에는 한글을 켜서 멍하니 앉아 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동안 했던 메모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이미지를 상상하곤 한다.
Q 등단작 〈어려운 일들〉부터 네 번째 시집 표제작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까지 백은선에게는 함부로 ‘안다고 말하지’ 않거나 어떤 대상을 ‘쉽게 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백은선에게 모른다는 것은 어떤 태도인가.
A 무언가를 완벽하게 안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다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나는 모른다, 라는 태도를 기본으로 삼고 세계의 풍경을 바라보고 싶다. 그래야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로운 법이니까. 물론 나도 사람이다 보니 다 알 것 같은, 뭔가 보나마나 뻔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많다. 그런 태도를 경계하려고 노력한다. 다 안다고 믿는 순간부터 배움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수천 번 오갔던 골목도 여행자의 눈으로 보고 싶다. 시인의 역할은 세계를 해석하고 단정 짓고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모든 것을 상징과 의미로부터 해방시키는 역할이라고.
Q 지금은 고인이 된 작가 중 한 명과 테이블에 앉아서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하고 싶은가.
A 나에게는 고인이 된 작가 친구들이 많다. 책으로 자주 만나니까. 내 생각에 작가 중에는 나를 포함해 실제 사람보다는 작품이 더 나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는 책으로만 알고 싶다. 가령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뛰어나지만 그는 노름꾼에 부인을 때리던 사람이지 않았나. 다른 많은 작가들도 그렇고. 그래서 책으로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더더욱 드는 게 아닐까. 그래도 꼭 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면 실비아 플라스를 만나 내 시를 읽어주고 싶다. 언어의 한계가 없다는 전제 아래.
Q 예고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생이 했던 질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A 특별히 기억에 남는 질문은 없는 것 같다. 그 시기에 글을 쓰는 학생들은 늘 비슷한 고민을 하는데 5년째 대답을 해주고 있기 때문일까? 하나 기억나는 게 있는데, 2021년 늦은 저녁 시간에 문학제 준비를 위해 학생과 함께 준비물을 사러 갔다. 그때 학생이 넌지시 물어보더라. “선생님은 시를 사랑하세요?” 그래서 웃으면서 “안 그러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니?”라고 대답했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가 내 인생 전체를 바꿔놓았기 때문에 ‘그걸 말이라고 하니!’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Q 시를 쓰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앞에서 말했듯,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혹은 ‘내 생각이 정답이다’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나 아닌 것에 투사해서 내 감정을 뒤집어씌우는 일을 조심해야한다. 예를 들면 내가 슬플 때 비가 오는 것을 보며 ‘내 슬픔에 하늘이 운다’ 뭐 그런 식으로 쓰는 일 말이다. 바꿔 말하면 세상의 중심에 서는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내 감정이 아무리 강렬해도 세상의 날씨에 영향을 줄 수는 없지 않나. 의아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텐데, 나는 세월호 사건을 자신의 우울에 빗대어 쓴 시도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위해 함부로 다른 것을 이용하는 것은 폭력적이라 생각한다.
Q 가장 사랑하는 곳은 어디인가. 무슨 골목, 무슨 가게 등 구체적으로.
A 가장 사랑하는 곳은 아무래도 내 차 안과 내 침대일 것 같다. 차는 움직이는 자기만의 방이라고 하잖나. 차에서 커피도 마시고 노래도 듣고 미친 듯한 속력에 올라탈 때도 있다. 그리고 차에서는 얼마든지 엉엉 울어도, 소리를 질러도 괜찮다. 그래서 차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침대는 워낙 누워 있는 시간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누워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본다. 여러 상상을 하기도 하고.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차와 침대가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값진 것이기도 하다. 차는 700만 원, 침대는 300만 원을 주고 샀다.
Q 시 쓰는 일을 다른 일로 비유한다면?
A 강연이나 북토크를 하러 다니기도 하고 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해서,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를 다른 일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문장을 써나가고 완성하는 것을 여러 홀을 돌며 공을 구멍에 넣는 골프에 비유하기도 한다. 실제로 골프를 해본 적은 없지만 정해진 목표까지 좌충우돌하며 점점 가까이 다가가 결국 공을 넣는 행위가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또 한 번에 공을 골인시키는 홀인원은 시를 쓰다가 나도 모르게 무언가 완벽한 것이 번뜩 떠오르는 순간 같기도 하다. 시 쓰는 일을 사과나무를 키우는 일에도 자주 비유한다. 작은 나무를 심고 나무가 크기를 기다리는 일, 계절을 읽고 병충해를 견디고 결국 열매를 맺는 일, 또 언제 수확을 할지 결정하는 일까지 하나하나의 과정이 시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겨울을 견뎌야한다는 것도.
Q 백은선 시를 읽다 보면 긴 호흡이 유독 눈에 띈다. 장시를 쓸 때 염두에 두는 것은 무엇인가.
A 특별히 염두에 두는 것은 없다. 아마도 내 시가 처음부터 아주 길었던 건 아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시를 썼고, 대학에서도 시를 공부했고, 졸업 후에도 2년 동안 습작을 했다. 그렇게 한 7년간 써나가면서 조금씩 내가 맞는 방향을 모색하다 보니 아주 조금씩 길어진 것 같다. 사람들이 얘기해주기 전에는 내 시가 그렇게 길다는 자각도 못 했던 것 같다. 그동안 이 질문을 수십 차례는 받았는데, 시가 하루아침에 길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로 3개월에서 4개월, 더 오래 쓸 때도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아주 조금씩 문장을 덧대어나간다.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그 생각이 드는 순간은 순전히 감이라서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어떤 경계까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는 그런 느낌이다.
Q 세상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풍경이 있다면 어떤 풍경인가.
A 바다를 참 좋아한다. 파도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데 벌써 이만큼 흘러버렸다니 하고 놀라게 될 때가 많다. 취미로 종종 해루질을 다니기도 한다. 바다가 잘 있었으면 좋겠다. 갯벌도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고.
Q 독자에게 앞으로 출간 예정이거나 쓰고 있는 책을 간략하게 소개해줄 수 있나.
A 아마 언젠가는 시집이 나오고 또 산문집도 나올 것 같다. 산문집은 다시는 안 낸다고 했다가 내게 된 이유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산문집을 낸 후 산문 청탁이 너무 많아져서 그 글들이 다 흩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서였고, 다른 하나는 산문집이 한 권이다 보니 독자분들이 내 시를 위한 해설서처럼 읽는다는 것에 당혹감을 많이 느껴서였다. 나와 내 시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산문집을 많이 내서 초점을 흐트러뜨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백은선이 추천하는 책 다섯 권
《오믈렛》(임유영)
최근 읽은 시집 중에 가장 좋았다. 언어를 투명하고 진솔하게 적는 담담한 힘이 강하다고 느꼈고, 시의 말미에 한 번씩 독자를 놀라게 만드는 지점이 인상 깊었다. 나는 첫 시집을 참 좋아하는 편인데, 임유영 시인의 첫 시집에는 절대 반복될 수 없는 에테르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자의적인 기교나 꾸밈이 없어서 좋았다.
《좋은 엄마 학교》(제서민 챈)
제목만 봐서는 예상하기 어렵겠지만 SF소설이다.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를 나눠 검열하는 미래의 엄마 교정시설에 대한 내용이다. 내가 추천사를 쓰기도 했지만 이 책은 ‘엄마’란 무엇인가에 대해 통렬한 질문을 던진다. 아이가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라는 역할이 여성에게 기대하는 사회적 폭력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인섬니악 시티》(빌 헤이스)
가장 좋아하는 산문집 중 하나다. 일단 책의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책이 가진 물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다. 올리버 색스의 연인이었던 빌 헤이스가 일기처럼 써내려간 글들인데, 작가라선지 섬세하고 통찰력 있게 순간들을 포착해 그려내고 있다. 몇몇 에피소드는 많이 읽어서 외우기도 했다. 가령 올리버 색스와의 첫 키스를 기록해둔 부분, 누군가의 눈을 한참 들여다보고 그림을 그렸던 순간의 감각 같은 것들은 언제나 기억날 것 같다.
《멀고도 가까운》(리베카 솔닛)
리베카 솔닛을 참 좋아하는데 그의 책들 중 《멀고도 가까운》을 가장 좋아한다. 엄마와 딸로서의 관계가 가감 없이 쓰여 있어 좋다. 그녀가 가진 표현의 풍부함과 책 한 권을 이루는 구조적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이 책은 한 줄의 기사 제목으로 시작한다. ‘나방이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신다’라는 제목이다. 그것이 어떻게 한 줄의 시가 되는지 리베카 솔닛은 명징하게 바라보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살구나무와 엄마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이 책을 네 번 읽었다. 나는 시집 외에는 잘 재독하지 않는데, 그 정도로 시적인 책이니 모두 꼭 읽어봐야 한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아고타 크리스토프)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에서 태어났고 스위스로 망명, 스무 살이 넘어 프랑스어를 배워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문장들이 다 짧다. 그리고 아주 적확하게 중심을 찌른다. 우리도 한국어로는 얼마든지 돌려 말할 수 있지만 영어로 말하려고 하면 직설적이 되어버리지 않나. 그래서 가장 중심에 가까운 말들로 엮어낸 전쟁 이야기를 아이의 시선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내 인생소설 중 하나여서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다.
백은선_시인
2012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가능세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도움받는 기분》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가 있다.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 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 Q 기억 속 첫 번째 책은 무엇인가.A 정확한 전집 타이틀이 기억나진 않지만, 초등학생 시절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학생백과》와 《소년소녀 세계
서울시립대 휴먼라이브러리에서는 책이 아닌 ‘사람’을 빌릴 수 있다. 2000년 봄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로부터 시작된 ‘사람책’ 프로젝트는 현재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처음에 사람책은 난민이나 소수자 등 쉽게 만나기 어렵고, 목소리를 잘 들어볼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휴먼라이브러리에서는 누구나 사람책이 되어서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기 시작하면서 도서관을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패션‧코스메틱 MD로 직장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빠듯하게 살아가느라 도서관을 자의로 간 게 손에 꼽을 정도였지요. 초보 맘이었던 저는 여러 육아서를 교과서처럼 읽곤 했는데, 공통된 얘기가 어릴 때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림책은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