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나는 지금부터 너를 도서관으로 데리고 갈 거야" -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박지희_작가, 연구자
2023-06-0800:00
[스토리] 코너에서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거나 사서가 등장하는 소설 등 도서관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열다섯 생일이 되는 날,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소년이 되겠다는 다짐을 안고 가출을 결심한 카프카. 소년은 다카마쓰에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다카마쓰로 행선지를 정한 마땅한 이유랄 건 없었다. 자신이 사라진 걸 알고도 그 누구도 그곳에 갔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곳, 그런 의외의 장소가 필요했을 뿐이다. 관계가 소원한 아버지로부터 최대한 멀리 벗어나는 것만이 우선의 목표였던 카프카, 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가 하나 있다. 까마귀라고 불리는 소년이다.
또 다카마쓰로 가는 심야 버스 안에서 동행하게 된 여섯 살 위의 여자 사쿠라가 있다. 사쿠라에게는 만나지 못하는 남동생이, 그리고 카프카에게도 비슷한 사정의 누나가 있다. 카프카가 보다 어렸을 적, 엄마는 누나와 함께 사라졌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카프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누나와 성적인 관계를 갖게 될 것’이라는, 다분히 오이디푸스 신화적인 저주를 한 적이 있었다.
이 가출 이야기는 그런 아버지로부터의 도피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가출 소년인 것이 발각되어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던 카프카는, 학교에서도 그러했듯 가능한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의 채도를 정해둔 듯하다.
별다른 우여곡절 없이 다카마쓰에 도착해 카프카가 향한 곳은 도서관이었다.
‘고무라 도서관에 가자. 거기까지 가면 그 다음은 아마 어떻게 되겠지. 근거는 없지만, 왠지 그런 예감이 든다. 그렇게 해서 내 운명은 점점 더 기묘하게 펼쳐지게 된다.’
소년이 다다른 곳은 고무라 기념 도서관이다(여타의 지명들과 달리 소설 속 도서관을 세운 고무라 집안도, 고무라 도서관도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소년은 도서관에서 좀처럼 얻기 힘든 인연을 둘이나 만나게 되는데, 도서관 사서이자 처음부터 카프카의 든든한 멘토가 되어주는 오시마, 그리고 도서관 관리인인 50대 여성 사에키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에 대한 묘사가 으레 그러하듯 위의 사쿠라와 더불어 사에키는 외적인 수려함과 내적인 신비스러움을 동시에 갖춘 인물로 그려진다. 이들은 물론 각각 카프카의 사라진 누나와 엄마일 수도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이 말은 즉, 사쿠라와 사에키의 존재가 아버지의 예언이 쳐둔 울타리의 잔존이라는 것이다.
소설의 주된 배경이 되어주는 고무라 도서관은 ‘기억’이라는 키워드와 깊게 관련하고 있음을 먼저 말해두고 싶다(무라카미 하루키의 또 다른 도서관 배경의 단편소설 〈도서관에서 있었던 기이한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암기나 기억 상실은 작품의 주요한 장치가 되고 있음을 넌지시 언급하고 싶다). 특히 사에키와 고무라 도서관, 사에키와 카프카, 카프카와 도서관은 각각 기억의 보존, 기억의 재구성, 기억의 왜곡으로 매듭지어 있다. 기억은 비밀과 밀접하며, 고무라 도서관에는 가출 소년 카프카처럼 비밀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런 서로를 알아봐서일까. 카프카는 오시마와 사에키의 배려로 도서관에서 생활하며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언제나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린아이가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 갈 수 있는 장소란 한정되어 있었다. 다방에도 들어갈 수 없고 영화관에도 들어갈 수 없다. 결국 남은 장소는 도서관밖에 없다. 입장료도 없고, 어린애가 혼자 들어가도 제지당하지 않는다. (중략) 도서관은 나에게 제2의 집과 같은 곳이었다. 아니, 실제로는 오히려 도서관이 진짜 우리 집 같은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에드워드 렐프는 장소의 현상학에 대한 저서 《장소와 장소상실》에서 ‘진정한 장소감’에 대해 말한다. 렐프에 따르면 진정한 장소감이란 ‘무엇보다도 내부에 있다는 느낌이며,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의 장소에 속해 있다는 느낌’(《장소와 장소상실》, 150쪽)을 말하는데, 이 카프카라는 소년에게 있어서는 바로 도서관이 그러한 장소감을 부여해준다. 소설 속에 나타나는 저주와 같은 예언과 언제나 충돌하는 것이 다름 아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예감들임을 기억한다면, 카프카가 도서관에서 얻게 되는 장소감은 그의 마음 저변에 놓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라는 존재와의 대립에 있는 소년을 품어준 것은 사에키와 사에키가 지키는 도서관이라는 사실이 그런 이유에서 의미심장해진다.
‘“나는 지금부터 너를 도서관으로 데리고 갈 거야. 그리고 너는 도서관의 일부가 되는 거야.”’
하나둘씩 도서관 인물들의 비밀이라면 비밀이고 신비스러움이라면 신비스러움일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홀수 장을 이끌어가는 카프카라는 소년의 이야기이며, 짝수 장에서는 나카타라는 60대 초로의 남자가 3인칭 시점 주인공이 되어 또 다른 기묘한 사건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고양이의 말을 할 줄 알게 된 나카타가 겪게 되는 사건들은 좀 더 초현실적이다.
상·하권으로 이루어진 이 장편소설은 각 장의 중심인물인 카프카와 나카타의 존재감이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났을 때 드러나는 옴니버스 전체의 주인공은 전혀 다른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필연적인 악연 같은 것. 두 인물의 여정이 병렬식으로 나아가다가 기어이 하나의 이야기로 뭉쳐지는 그 지점은 정작 주인공 카프카보다는 사에키와 같은 인물이 될 수도 있고, 나카타의 부조리극 같은 세계관의 환상적 존재일 수도 있고, 도서관일 수도 있으며, 그들 자신일 수도 있다.
즉, 이야기 전체는 선형적인 시간이나 고정적인 공간에서 벗어나며, 그 모든 역할을 ‘우연’이라는 기제만이 톡톡히 해내고 있는 소설이다. 하나의 필연이 되기 위해 몇 번의 우연을 거쳐야 하는지. 독자는 카프카와 함께 그 여정 위에 있을 뿐이다.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도서관에서 포착한 것은 시간성과 공간성을 이분하지 않는, 어쩌면 이분할 수 없는, 장소의 희미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희미함은 작중 오시마가 말했듯 세계는 메타포지만 ‘이 도서관만은 아무런 메타포도 아니’게 되는 성질에서 비롯된다. 사실 판에 박힌 독서법이긴 하지만, 이왕 작품 속에서 이 세계를 ‘메타포’라고 지정했으니 거기에 한 발짝 더 다가가보자면, 도서관은 메타포라는 사막에 난 오아시스와 같은 생명성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신기루와 같은 것이 된다. 실제로 거기에 있지 않으며 비동시적인 것들, 그것들의 동시적인 발현은 도서관과 책들이 일상과 같이하는 일들이 아닌가. 앞서 말했듯 기억과 기록들의 조용한 저장소, 그것이 도서관이라면, 그런 도서관에 들어가는 우리는 이미 조금 희미한 채일 것이다.
팬데믹 이래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도서관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다. 도서관이 아니고도 누구나 갈 수 있다는 다른 장소들에서, 그 ‘누구나’라는 말 뒤에 감춰진 조건들이 때때로 우리를 쓸쓸하게 만들기도 하지 않는지.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입 회원이라면 누구나,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상업적이고 차별적인 말장난에 운 좋게 걸러지지 않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의식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도취되기도 하지 않는지 돌이켜본다. 심지어 누군가는 그것을 공평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서관은 이용객을 타겟팅하지 않는다. 할 수도 없다. 어느 날엔 가출한 소년이 나쓰메 소세키를 읽기 위해, 어느 날에는 꿈속에서 사람을 죽인 노인이 알 수 없는 부름을 듣고, 그리고 어떤 날에는 그저 어떤 직감 때문에 갈 수 있어야 하는 곳이 도서관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마치 시간에게 잊힌 장소처럼 보인다. 혹은 시간에게 발각당하지 않으려고 숨을 죽이고 있는 장소처럼 보인다.’(《해변의 카프카》, 332쪽)
지금껏 장황하게 늘어놓긴 했어도, 꼭 그런 장소가 도서관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도서관과 닮은 희미한 공간이 조금 더 절실해져가는 것은 맞다. 명징한 의미와 은유들이 얻는 인기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것들이 나 자신의 기억과 얼마나 상관하고 있는지를 따져본다면 더 이상의 충만한 감정을 쫓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반쯤은 투명해진 채로 그곳의 일부가 되어, 다른 이들의 침묵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박지희_작가, 연구자
도쿄의 히토츠바시대학원에서 여성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소설을 발표할 때는 ‘박몽’이라는 필명을 쓴다. 아시아의 수전 손택을 꿈꾼다. 여성 인간의 반려 문제와 반인간중심주의와 포스트휴먼에 관심이 있고, 세상의 모든 전쟁에 반대한다.
[스토리] 코너에서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거나 사서가 등장하는 소설 등 도서관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우주=도서관?여기 우주가 있다(사람들은 그곳을 ‘도서관’이라고도 부른다). 이 우주는 무한히 확장하며 영원으로 나아간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스물다섯 개의 알파벳 철자다. 물론 알파벳 철자는 스물두 개이고 다른 세 개는 쉼표와 마침표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것이 때때로 우리 인생의 모습을 결정짓곤 한다. 축구가 아니라 야구, 커피 대신 코코아, 여름보단 겨울, 자전거를 탈 시간에 소설책 한 권. 그런 것들은 내가 속한 삶의 풍경을 바꾸곤 한다. 시간이 남은 어느 휴일에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좋은 플레이리스트를 가진 번화가의 펍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한강공원의
[스토리]코너에서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거나 사서가 등장하는 소설 등 도서관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도서관에선 모든 것이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어요. 멜빈은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멜빈이 좋아하는 책들도 늘 제자리에 있었어요. 마치 병정들처럼 책꽂이에 줄지어 놓여 있었지요. 그리고 멜빈이 좋아하는 사서 선생님들도 늘 그 자리에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