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털(Phygital)’은 물리적 오프라인 공간을 의미하는 ‘피지컬(Physical)’과 ‘디지털(Digital)’의 합성어다. 오프라인의 단점과 온라인의 단점을 서로 간에 유기적으로 보완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만족도를 높이고, 상품 구매에 대해 좀 더 편하고 직관적인 정보 제공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로 경제학과 마케팅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조금 생소하지만 피지털은 이미 일상 속 여러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던 개념이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식당과 카페, 편의점, 영화관 등에서도 피지털을 찾아볼 수 있다. QR코드를 이용한 상품 정보 확인이나 키오스크를 활용한 결제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먼저 피지털을 활용한 대표적인 기업이 미국의 유명 백화점 체인 ‘노드스트롬(Nordstrom)’과 미국의 슈퍼마켓 체인점 ‘타깃(Target)’이다.
노드스트롬은 키오스크를 통해 내게 어울리는 제품을 찾게 하거나 버추얼 미러를 통해서 가상으로 테스트해보는 피지털 기술을 도입했다. 타깃은 온라인으로 상품을 주문하고 매장 근처 도로에서 바로 물건을 픽업하는 ‘커브사이드 픽업(Curbside Pickup)’이라는 기술을 도입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대면 활동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비대면과 대면 쇼핑을 혼합한 이 방식은 큰 인기를 끌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계를 연결해 더 가깝고 효율적인 ‘고객 경험’을 만드는 것으로, 오프라인 공간에 온라인에서와 같은 편리함을 제공하면 신선하거나 특별한 경험 때문에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지털’은 공공도서관 현장에도 적용 가능한 개념이 아닐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지털 기술들은 이미 전 세계의 공공도서관들에 활발히 도입, 실행되고 있다. 다음은 공공도서관에 피지털이 적용된 사례들이다.
공공도서관에서의 피지털 경험 사례
1) 인터랙티브 키오스크 또는 디지털 사이니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자료 검색 분야이다. 인터랙티브 키오스크(Interactive Kiosk)에서는 검색을 통해 자료의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스크린에 자신의 스마트폰 속 QR 회원코드를 스캔해서 자료를 쉽게 예약하고, 대출하고,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좌석을 예약할 수도 있다. 자료실 곳곳의 투명한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에서는 각종 정보를 실시간 업데이트하거나 이용자 맞춤형 콘텐츠를 화면으로 보여준다.
피지털은 콘텐츠 제공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아랍에미레이트(UAE) 모하메드 빈 라시드 도서관 1층 로비에 설치된 독서 키오스크에서는 새로운 대화형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이용자가 서랍에 보관되어 있는 아랍어와 영어로 된 아홉 개의 직사각형 열쇠 하나를 골라서 기계에 올려놓으면 배경 악보, 애니메이션 및 텍스트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손가락 터치로 자유롭게 페이지를 넘겨가며 이용자는 콘텐츠의 화려함과 풍부함에 저절로 빠져들게 된다.
또한 이전에는 각각의 종이신문과 인쇄된 정기간행물로 구독하던 것을 이제는 하나의 스크린으로 전 세계 신문과 정기간행물에 손쉽게 접속할 수 있다. 프레스리더(PressReader)를 통해서 전 세계 7천여 개의 출판물에 접근이 가능해졌다.
2) 스마트 도서관 혹은 자료예약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내외 공공도서관들이 발 빠르게 피지털 기술을 도입하여 언택트 도서관으로 탈바꿈 중이다.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필요한 자료를 신청하고 집 가까운 장소에 설치된 오프라인 기계에서 자료를 ‘픽업’하는 서비스다. 온라인으로 언제든지 자료를 신청할 수 있으며, 사람과의 접촉 없이 오프라인에서 연중무휴 24시간 픽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외국에서는 ‘자료예약기(Reservation Lockers)’로, 국내에서는 ‘스마트 도서관’ 혹은 ‘언택트 도서관’으로 불리고 있다.
3) 가상현실 혹은 증강현실
방문자 감소에 따른 도서관의 적극적인 대응 방식으로, 국내외 공공도서관에서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을 활용한 서비스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도서관이라는 친숙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VR 기기를 이용해 온라인 게임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누구나 체험할 수 있다. 미국의 공공도서관에서는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 장비를 대여해주기도 하고, 핀란드 헬싱키의 중앙도서관인 오디(Oodi)도서관은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방(VR Room)을 조성했다.
우리나라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도 증강현실 체험관에서 증강현실 뮤지컬을 관람하거나 대형 화면을 활용한 상호작용형 증강현실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UAE의 모하메드 빈 라시드 도서관 1층 로비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거대한 우주 탐험이나 깊은 바다 속 세상을 증강현실로 체험할 수 있다.
4) 인공지능 혹은 로봇 서비스
2013년 10월 미국 웨스트포트 공공도서관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빈센트와 낸시가 도입된 이후 전 세계 공공도서관에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로봇 서비스가 일반화, 보편화되는 추세다. 싱가포르 국립도서관에서는 장서 점검 로봇이 도서관 책장을 따라 책을 스캔한다. 무선주파수로 정보를 읽는 RFID 태그를 이용해 잘못된 위치에 꽂혀 있는 책을 찾아내고 화면에 띄워준다. 단시간에 수만 권의 책을 점검한다. 싱가포르 템피니스(Tempines)도서관에서는 로봇이 반납된 도서를 사무실까지 자동주행으로 전달한다.
UAE의 모하메드 빈 라시드 도서관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20개 이상의 언어로 방문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이용자의 사진을 찍어서 이메일로 전송해주기도 한다. 또한 가고 싶은 곳으로 안내하고, 어린이 이용자에게 스토리텔링을 해주고, 도서관 전 층으로 도서를 배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가 필요한 도서를 신청하면 보존서고에서 거대한 로봇 크레인이 책을 찾아내 몇 분 만에 이용자의 손에 도착할 수 있게 한다.
5) 에스프레소 북머신(Espresso Book Machine 또는 Print on Demand Book Stations)
‘에스프레소 북머신(Espresso Book Machine)’은 주문형으로 책을 인쇄하고 제본하는 기계다. 공공도서관으로는 UAE의 ‘지혜의 집(House of Wisdom)’ 도서관 내에 설치되어 있다. 대개 5분 이내에 완벽하게 제본까지 완성되는데, 에스프레소 한 잔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빠르다고 해서 ‘에스프레소 북머신’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지 않지만, 온라인의 약 300만 권의 원본 콘텐츠에 접근해 인쇄하고 자체 출판할 수 있다. 디지털로 다운로드 받아서 전자도서로 읽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특히 안성맞춤이다. 책의 물성적 감각과 함께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책 보관을 위한 물리적 공간을 절약하게 하는 강점도 있다.
싱가포르에서 2022년 5월 새롭게 시작한 무인도서관 서비스다. ‘그랩앤고(Grab-n-Go)’는 미국의 무인 상점인 ‘아마존고(Amazone Go)’의 도서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줄 서지 않고(No Lines), 계산하지 않으며(No Checkout), 직원이 없는(No Register) 방식인 아마존의 무인 결제 기술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 시스템과 같다. 회원카드를 꺼내지 않아도, 데스크나 대출기기를 이용하지 않아도 이용자가 들고 있는 도서를 자동으로 대출 처리해준다. 이용자가 핸드폰의 도서관 회원카드를 스캔하고 입장한 뒤, 읽고 싶은 책을 선별해서 별도의 대출 행위 없이 그냥 가지고 나오면 된다. 이 셀프체크아웃 서비스는 한 번에 여덟 권까지 대출 가능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어서는 공공도서관에서의 다양한 피지털 경험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제 도서관은 단순히 도서를 보관하고 대여하는 곳만이 아니다. 온라인으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공공도서관을 찾아온다. 도서관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라인에 파묻혔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날로그적 독서 공간이기도 하고, 여기에 더하여 이용자가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디지털 경험과 재미를 제공하는 독특한 경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콘택트가 불가피한 오프라인 공공도서관에서 디지털과 결합하는 새로운 피지털 경험을 구현하고자 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기술은 복잡하지만 서비스는 최대한 단순하게, 이용자의 편의성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용자의 불편함을 기술로 해결해주되, 이용자의 입장에서 기술을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이용자의 도서관 경험을 극대화해야 한다. 도서관에 온라인의 편리함을 더하면서도 오프라인만이 줄 수 있는 독창적인 경험(체험)을 확대 제공하는 것이 도서관으로 다시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공공도서관의 피지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주_작가, 넥스트 라이브러리 대표
작가, 넥스트 라이브러리 대표. 도곡정보문화도서관과 반포도서관 관장을 역임했다. 2023년 1월 1일, 도서관 건립 컨설팅, 운영 자문, 사서 교육 등 도서관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도서관의 미래를 기획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 도서관 연구소 ‘넥스트 라이브러리(Next Library)’를 열었다. 쓴 책으로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힘, 도서관》(2015),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2017)이 있다.
고립된 노인들을 세상과 연결해주다코로나19 상황이 심각했던 때의 일이다. 캐나다 토론토시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공공도서관의 강제 폐쇄를 결정했다. 도서 대출은 금지되었고, 대면 서비스는 모두 보류되었다. 노스욕(North York)에 거주하는 75세의 새론 자비스(Sharon Jarvis) 씨는 도서관 이용이 불가함을 알게 되자 좌절했다. 15년간
외국의 공공도서관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들제법 오랜 기간 도서관에서 근무를 했던 내게도 외국의 공공도서관에 가면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있다. 핀란드의 칼리오도서관(Kallion Kirjasto)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중년의 여성 이용자가 개와 함께 자료실로 당당히 들어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은 다른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개나 고
전자 티켓 하나로 유럽 전역을 누비고 다니다두 달 동안 유럽의 도서관을 탐방하고 돌아왔다. 공공도서관의 최신 트렌드와 코로나19 이후 도서관의 변화와 대응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새로 건립된 도서관이나 대규모 공공도서관들을 중심으로 다니다 보니 도시와 도시를 여행하며 국경을 자주 넘나들게 되었다. 총 16개국 62개의 도서관을 방문했는데, 주로 유레일패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