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한국 자연과학계를 대표하는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를 양영은 기자가 만나 인터뷰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양영은
KBS 보도본부 기자, 건국대 겸임교수
최재천 교수와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KBS 디지털 전용 콘텐츠 ‘양영은의 인터뷰 선물’을 진행하면서 처음 인터뷰를 했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그로부터 3년 후 《나를 발견하는 시간 – 하버드 MIT 석학 16인의 강의실 밖 수업》이라는 대담집의 추천사로 이어졌다. 그 사이 최재천 교수에게도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초대 국립생태원장을 거쳐 생명다양성재단을 창립하고 이제는 약 54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운영하는 성공한 유튜버로서 인생 2막을 화려하게 열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최재천의 공부-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라는 책으로 ‘드디어’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늘 글을 쓰고, 읽으며 살고 있다는 최재천 교수에게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막 손녀의 탄생을 지나 ‘할아버지’가 된 그에게 직접, 찬찬히 들어보았다.
저술 작업, 좋아서 하는 일
양영은(이하 ‘양’): 이번 인터뷰의 주제가 ‘최재천의 책’입니다. 교수님과 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저자로서 이야기하는 ‘나의 책’에 대해서 먼저 들어보고 싶습니다.
최재천(이하 ‘최’): 보통 사람들이 자기 책을 ‘새끼’ 같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책이 새끼보다 더합니다. 왜냐면 내 아들은, 진짜 내 새끼는 이름표를 달고 다니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책은 이마에다 내 이름을 딱 박아놓은 겁니다. 그러니 내 자식보다도 더 무서워요. 자식은 내가 최선을 다해 키웠지만 그 자식이 세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든 그것까지는 내 영역이 아니죠.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책은 내가 죽고 난 다음에도 있는 거잖아요.
제가 책을 감수한다든가 추천사를 쓴다든가 할 때 치열하게 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거예요. 저자가 아닌데도 거기에 내 이름이 같이 들어간다는 거죠. 누가 나중에 읽어보고 ‘아니 뭐 이건 번역이 엉망인데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나?’ ‘뭘 이런 책을 장황하게 추천했어?’ 이런 비판을 정말 받기 싫거든요. 그래서 매우 치열하게 합니다. ‘꼼꼼하게 챙기지 않을 거면 아예 안 한다’ 이런 거요. 남의 책에 내 이름을 얹는 것도 이 정도인데 내가 낳는 내 책을 허투루 한다? 그럴 수는 없죠. 그동안 수십 권의 책을 썼는데 이놈들은 내가 죽어도 내 이름을 턱 박아가지고 세상에 버티고 있을 테니까 부담감이라는 게 사실 굉장해요.
양: 그러면서도 계속 쓰시잖아요.
최: 그렇죠. 하여간 책 쓰는 걸 무지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일주일에 제일 많이 하는 일이 책 쓰는 일이죠. 그냥 끊임없이 책을 쓰고 있어요. 지금도 쓰고 있는데 곰곰 생각하면 ‘이게 무슨 짓이지?’ 그런 느낌도 들고, ‘왜 이렇게 계속 쓰고 있지?’ 싶기도 하고요.
양: 그 답은 찾으셨어요?
최: 아뇨, 못 찾았어요. 그냥 좋아서······ 그냥 좋아하는 것 같아요. 뭔가를 생각해내고 그 생각을 다듬고 그걸 말로 풀어내고 하는 작업을 매우 즐기는 모양이에요. 어떤 때는 바빠서 쓰던 걸 덮어놓고 며칠 후에 다시 돌아오면 내가 뭘 어떻게 썼는지 앞부터 다시 봐야 하잖아요. 그렇게 읽다 보면 가끔은 ‘뭘 이런 걸 썼지?’ 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오, 그럴듯한데?’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죠. ‘잘 생각했네, 이렇게 써놓으면 사람들이 이해하겠지’ 하는 ‘희열’도 가끔 느껴요. 신문 칼럼도 25년 동안 썼는데, 사람들이 늘 칭송하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아니, 어떻게 이런 좋은 얘기를 했냐’는 말을 듣고 더 나아가 그게 다른 좋은 일로까지 이어지면 ‘이거 쓰길 참 잘 했네’ 생각이 들면서 정말 뿌듯하죠.
주된 화두는 ‘통섭’
양: 지금은 어떤 책을 쓰고 계세요?
최: 제목을 미리 정해놨는데 ‘숙론과 통섭’이라는 책이에요. 물론 바뀔지도 모르죠. 대한민국의 출판사들은 제목을 직접 지으려고 하니까요. 어쨌든 저는 ‘토론’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너무 오염이 많이 됐다고 생각하는데요, 토론하자고 하고선 싸움부터 하니까요. 그런데 한자를 보니 ‘토’ 자가 ‘두들길 토(討)’더군요. 그래서 토론하자고 하면 서로 두들겨 패나보다 싶어 아예 ‘토론’이라는 말을 버리고 ‘깊이 생각하면서 서로 이야기하자’라는 뜻으로 ‘숙론(熟論)’이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었어요, 제가. 그러니까 생각하면서 말하자.
양: ‘통섭’이라는 말도 교수님이 만드시지 않았나요?
최: 제가 통섭 책을 번역한 지가 한 15년 되는데요, 어느덧 우리 사회에 ‘통섭’이라는 개념이 보편화됐어요. 그 용어를 쓰는 분들도 제법 많아졌고요. 근데 비판도 많이 받았거든요. ‘너무 제국주의적인 단어다’, ‘모든 걸 한 데 묶어버린다’, ‘자연과학으로 다 분석해버린다’ 등. 얼마 전부터는 스스로도 자아비판을 시작했는데 ‘아, 조금 지나쳤던 면도 있나 보다’라는 생각을 해요.
‘통섭’이란 단어를 처음 찾은 건 이희승 선생님의 우리말 사전에서였는데, ‘통할 통(通)’ 자에 ‘건널 섭(涉)’ 자를 써놓고 ‘사물에 널리 통함’이라는 뜻풀이를 해놓으셨어요. 그래서 ‘이거다!’ 하면서 붙들었는데, 에드워드 윌슨 선생님의 《통섭(Consilience)》을 번역해나가는 과정에서 그 개념이 워낙 적극적이고 포괄적-그냥 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물리학으로 세상을 분석해라, 사회과학이 뭘 할 줄 아냐-이라 제가 한자를 바꾼 거라고요. ‘통할 통’이 아니라 ‘전체를 쥐라’는 뜻에서 ‘쥘 통(統)’ 자를 끌어다 붙여서 만들었거든요. 물론 나중에야 알았지만 원효대사님도 쓰셨고, 실학자 최한기도 이미 사용한 바 있어 참 부끄러웠는데······
어쨌든 십 몇 년 동안 밀어붙였는데 지금 이 책을 쓰면서 ‘통’ 자를 다시 바꾸려고 해요. ‘통할 통(通)’ 자로요. ‘귀 이(耳)’ 자를 세 개 붙인 ‘섭(攝)’ 자는 그대로 두고요. ‘섭’은 ‘잡다’ 또는 ‘쥐다’라는 뜻으로 ‘큰 줄기를 잡다’라는 의미도 있죠. ‘귀가 셋이나 있으니까 잘 들어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자의적으로 옛날 중국사람들이 ‘남의 말에 귀 기울여라’라는 뜻으로 그렇게 했나보다 싶어서. 아무튼 너무 제압하는 식의 ‘통(統)’ 자보다는 소통하는 의미의 ‘통(通)’ 자를 다시 받아들이려고요. 그래서 지금 그런 챕터를 하나 쓰고 있어요. “나는 마음을 바꿨다. 내가 ‘통섭’이란 단어를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게 했는데 그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도 받았고나 스스로도 생각을 많이 해보니 ‘통(統)’ 자를 쓴 게 적절치는 않은 것 같아 내가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에요, 우리 학계의 문화로는요.
양: 그러게요, 서양에서는 학자들이 공부하면서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죠. ‘내가 젊었을 때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공부를 더 해보니 아닌 것 같다’, 이렇게요.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최: 우리 사회는 그런 걸 잘 용납하지 않죠. 그런데 나는 해보기로 했어요.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바꾼다.’ 어찌됐든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내 주장을 기꺼이 접고 새로운 걸 취하겠다’, 그 얘기를 해보려고요. 언젠가 ‘통섭’이라는 책을 한번 쓰고는 싶었어요. 다시 한 번 재정리하는 책을요. 그런데 언제 또 쓰겠습니까. 쓰고 싶은 책도 많은데. 그래서 한 챕터 정도 ‘왜 우리가 숙론을 해야 하느냐, 그건 우리가 통섭을 이루기 위해서다’라는 논리로 에필로그든 그 바로 직전 챕터로 ‘통섭’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번 쭈욱 정리해보려고요.
양: 교수님은 책 쓰기에 있어서도 롱텀과 숏텀, 미드텀을 동시에 진행하고 계시나요?
최: 그렇죠. 그것도 일종의 멀티태스킹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난 20년 동안 하루에도 여러 가지 일을 줄기차게 해왔죠. 책도 많은 경우 두세 권을 한꺼번에 진행했고요.
아마존 ⓒunsplash
‘비인간생명체’의 관점으로 보는 인간
양: 그러면 현재 미드텀, 롱텀 집필은 뭘 하고 계신가요?
최: ‘데이 노우(They Know)’라는 제목으로 쓰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비인간생명체라고 하는 다른 동물들이 인간에게 다가와 도움을 청하는 그런 경우들이 자꾸 관찰되는 걸 보면서 어느 날 ‘그래! 쟤네들이 우리를 모를 리가 없지’ 하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그동안 우리 인간들이 폭발적으로 수가 늘어나고 만물의 영장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속절없이 우리에게 밀려나는 과정을 겪었을 거 아니에요? 근데 우리는 마치 우리가 이 세상을 점유한 주인인 양 쟤네들은 안중에도 없죠.
최근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가 못 나가니까 곰들이 숲에서 나와 오두막을 들여다봤잖아요. 그걸 보면서 확신이 선 거죠. ‘그렇지, 쟤네가 보고 있었지!’ 동물들은 우리를 안 볼 수가 없지 않나요? 우리가 그들에게 가장 큰 위험 요소니까 끊임없이 우리를 관찰할 수밖에 없는 거죠. 지난 만 년 동안 계속 관찰해왔어요. 그래서 심지어는 위험에 처했을 때도 자기 동료를 찾아가는 게 아니에요. 예컨대 돌고래가 낚싯줄로 몸이 칭칭 감겼는데 자기 친구한테 가서 ‘야, 이거 좀 어떻게 안 되겠니?’ 하면 그 친구가 ‘나 손 없어. 자를 도구도 없어. 그거 갖고 있는 건 쟤네들 “호모 사피엔스”뿐이야, 그러니 쟤네한테 가봐’, 그래서 온 거잖아요. 그러니 그들은 우리를 알고 있다,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게 제 책이 될 ‘데이 노우(They Know)’의 결론입니다.
양: 그 책은 왜 쓰시려는 거예요?
최: 언젠가 강아지 박사 강형욱 씨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가 관점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거예요. 우리 관점에서만 보고 딴에는 ‘우리가 쟤네에게 앞으로 좀 더 잘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그들이 우리의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아니라 우리가 쟤네의 반려인이다’라고 한다면 완전히 판을 뒤집는 거잖아요. ‘쟤네들이 우리를 반려동물로 선택하고 만 년 동안 한 순간도 빠짐없이 우리를 지켜봤다’고 그러면 그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동물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관점들이 확 달라지지 않을까, 그걸 기대하는 거죠.
양: 좋네요. 그 책은 미드텀인가요, 롱텀인가요?
최: 몇 년은 걸리겠죠. 진짜 ‘롱텀’이 있는데, 실은 ‘라이프(LIFE)’라는 제목으로 또 다른 책도 쓰고 있거든요. ‘생명.’ 대충 계산해보니까 한 6천 쪽 정도 되지 않을까.(웃음) 농담이고요. 생명이라는 주제처럼 우리에게 중요한 주제는 없죠. 그런데 그 생명은 생명과학자의 전유물만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생명과학자의 시각을 좀 벗어나서 철학자들은 생명을 어떻게 규정해왔고, 종교에서는 어떻게 다뤄왔고, 예술가들은 어떤 식으로 표현해왔을까 등등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려고요. 죽기 전 마지막 책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미 첫 문장은 10여 년 전에 썼습니다. 영어로 쓰고 있어요.
양: 교수님,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교수님이 쓰신 책들 추천 좀 해주세요.
최: 제 책 추천이요? 하도 여러 번 얘기해서 새로울 것도 없는데······ 제가 가장 아끼는 책들 중 하나인데 가장 안 팔리는 책이 있거든요, 《열대예찬》이라고. 정말 심혈을 기울여 썼고 너무 사랑스러운 글들인데 출판사가 잘 못 파는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감히, 아름다움》이라는 책이 있어요. 제가 편집을 한 책인데, ‘아름다움’을 주제로 뭔가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통섭원 심포지엄으로 기획했었거든요. 그때 라인업이 정말 좋았어요. 화가 김병종 선생님, 타이포그래퍼 안상수 선생님, 사진작가 배병우 선생님, 천체물리학자 홍승수 선생님, 무용가 김현자 선생님, 해외에서 시로 여러 상을 받고 계신 김혜순 선생님, 건축하시는 민현식 선생님, 한예종 총장을 하셨던 작곡가 이건용 선생님 등. 진짜 우리 사회에 ‘Who’s Who’라고 할 만큼 각 분야의 거두들이 다 수락을 하셨어요. 기가 막힌 날이었어요. 그래서 그날의 심포지엄 내용을 바탕으로 ‘감히 아름다움을 논한다’ 이렇게 야심차게 책을 묶어냈는데 별로 안 팔렸죠.
최근에는 《다윈지능_최재천의 진화학 에세이》 개정판을 냈습니다. 다윈의 이론에 대해 제가 쉽게 쓴 책인데 ‘드디어 다윈’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어요. 2019년 나온 《종의 기원》, 그리고 재작년에 나온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가장 최근에 나온 《다윈의 사도들-최재천이 만난 다윈주의자들》 등입니다. 우리 시대 대표적 다윈주의자들을 인터뷰한 《다윈의 사도들》도 의미가 있고요. 《다윈지능》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윈의 이론에 대해 풀어 쓴 것인데, 그 다음 《다윈의 사도들》을 읽으면 훨씬 심화학습이 된다고 하니 두 권을 세트로 해서 가보려고요.
얼마 전 누가 “선생님 쓰신 책 중에 대표 저서가 뭐예요?” 묻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제가 가장 먼저 쓴 《개미제국의 발견》을 이야기했는데, 그 질문을 받고 나서 《다윈지능》이라고 대답했어요. 가장 무게감 있고, 제 전공에도 가깝고, 그러면서 일반인도 읽을 수 있고······ 이렇게 여러 가지를 다 고려해보니 제가 지금까지 쓴 책들 중 대표 저서는 역시 《다윈지능》일 것 같다 싶었던 거죠. 거기에 《다윈의 사도들》을 합치면 결국 제 대표 저술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2년 4월 베니스비엔날레 학술포럼 초청으로 ‘생태 백신’을 주제로 기조연설 중인 최재천 교수 [사진출처: 블로그 ‘최재천의 아마존’]
‘사회생물학자’의 일
양: 교수님의 정체성과 관련해 가장 어울리는 타이틀은 어떤 걸까요?
최: 평소에는 ‘생물학자’라고 많이 얘기하는데, 제가 조선일보에 칼럼을 10년 이상 썼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스스로를 ‘사회생물학자’라고 소개했어요. 아마도 가장 확실한 제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 사회생물학자일 거예요.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동물의 진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측면에서요. 저는 동물 사회를 연구하는 사람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간이라는 동물의 사회도 제 관심 영역에 들어왔고요. 제가 연구하는 모든 걸 관통하는 게 ‘사회성’이거든요.
한때는 사회생물학자라고 스스로 이야기하지 못했던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사회생물학은 내가 너무나 사랑한 학문이기 때문에 ‘만약에 이 세상에 사회생물학이라는 분야가 없었다면 과연 내가 이 정도로 스스로 내가 하고 있는 연구에 만족하면서 살았을까’ 싶은 거예요. 생태학자는 수없이 많은데 사회생물학자는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그게 저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니치(niche)’인 거죠. 아마 제 뜻대로 대학에 갔다면 저는 문과를 갔을 것이고 그중에서도 사회학과를 갔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요.
양: 교수님은 베스트셀러도 내셨죠?
최: 그게 참 아이러니인데, 제 책은 그렇게 많이 팔리는 책들이 아니었잖아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그래도 많이 팔렸지만. 그런데 지난해 《최재천의 공부》라는 책이 나와서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단 말이에요. 난생 처음 셀 수 있을 정도로 인세를 받아봤어요. 근데 사실 그 책은 제가 쓴 건 아니잖아요. 저는 떠들기만 했고 정리해서 다듬은 사람은 따로 있죠. 누군가 “당신, 문장 하나하나 가지고 그렇게 유별나게 구는 사람이 자기가 쓴 것도 아닌 책으로 돈을 많이 번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거야?” 하는 소리를 들으니 진짜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에요. 더 웃긴 건, 저 동화책도 나왔거든요. 《최재천의 동물대탐험》이라고. 그건 진짜 제가 쓴 게 아니거든요.같이 기획은 했지만 동화작가분이 쓴 거예요. 10권까지 나올 건데, 물론 자주 만나서 정례 기획회의를 하고 있긴 하죠. 하지만 제 역사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 두 권이 모두 제가 직접 쓰지 않은 책들이에요. 돌이켜보면 약간의 자괴감도 들어요. 내가 그렇게 문장을 다듬어가며 치열하게 쓴 책들은 별 볼일 없고, 아이디어만 제공하거나 그냥 떠들어대서 남이 쓴 책들은 잘 팔리고······ 참 유구무언입니다.(웃음)
자식보다 소중한 책
양: 교수님께서 제 책 《나를 발견하는 시간》에 정말 화룡점정 같은 추천사를 써주셨듯, 많은 추천사로도 독자들을 만나고 계시잖아요. 추천사를 대하는 교수님의 마음가짐, 즉 어떤 기준으로 추천사를 쓰시는지 교수님만의 철칙 같은 게 있을까요?
최: 아까 책이 제 아들보다도 더 소중하다는 얘기는 했었죠. 책은 내 이름을 달고 사는 거니까. 그런데 내가 쓴 책도 그렇지만 남이 쓴 책에 추천사를 쓴다든가 감수를 한다든가 이런 것에도 제 이름이 분명히 같이 들어가잖아요. 그걸 허투루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저한테는. 짐작하시는 대로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이 참 많이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제가 굉장히 까다롭게 하죠. 일단 내용을 파악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이건 제가 추천사를 쓸 만한 종류의 책이 아니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고사를 하죠. 어느 정도 그 단계를 통과한 것은 원고를 보내달라고 해요. 직접 읽어보고 이름을 걸 만한 책인지 판단하고 알려주겠다고 이야기를 하고요. 그렇게 관문을 통과한 책들만 제가 추천을 하는 거죠. 신기하게도 제가 추천사를 쓴 책들이 잘 팔려요. 제 책보다 잘 팔리는 책들도 수두룩하고요. 그래서 ‘이거 뭐야, 내 책보다 남의 책을 열심히 홍보해주고 있네?’ 생각하죠.(웃음)
어떤 때는 추천사만 쓰기로 했다가 책이 나올 때가 되면 ‘추천 및 감수’ 이렇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왜냐면 원고를 꼼꼼하게 읽기 때문에 오탈자, 오역에서부터 개념 등을 잘못 잡은 것까지 다 바로잡다 보면 대개의 경우 추천사 길이보다도 그게 더 길거든요. 그래서 출판사 측에서 “감수라고 써도 됩니까?” 이렇게 먼저 물어오기도 해요. 주로 “안 됩니다. 그 정도로 제가 꼼꼼하게 보지는 못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죠. “제가 감수자로 이름을 올리려면 다시 읽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빼주세요.”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요. 근데 제가 다른 일에 있어서는 그렇게까지 치밀한 사람이 아닌데 왜 ‘책’에 있어서만큼은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접근하는지, 가끔 생각하면 좀 이상할 정도예요. 어쨌든 그게 ‘책’이라는 걸 대하는 저의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책이란 정말 끔찍한 것이거든요. 책은 마구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내 자식보다도 더 끔찍한 존재이기 때문에 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제 마음가짐, 태도, 관점 등은 제가 생각해도 좀 징그러울 정도로 너무 진지하죠.
양: 교수님, 제가 이번 인터뷰의 제목을 ‘최재천의 책’이라고 지었다고 했잖아요. ‘최재천에게 책이란 무엇인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주시겠어요?
최: 다 얘기 했는 걸요, 책이란 자식보다 더 무서운 놈이다.(웃음)
완벽한 도서관을 꿈꾸며
양: 그러면 교수님에게 ‘도서관’이란 무엇인가요? 특히 교수님 유튜브 채널에 배경으로도 나오는 교수님 연구실, 이화여대 통섭원도 하나의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데요.
최: 그 질문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제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사실 제 연구실, 그러니까 통섭원은 완벽한 하나의 도서관이 기준이에요. 제 분야는 대한민국에서 인정받는 분야가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 국회도서관이건 국립중앙도서관이건 서울대도서관이건, 관련 책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제 분야로는 제 서재가 최고의 도서관입니다. 이 연구를 하는 사람은 제 서재에 오면 거의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데, 그 정도의 책들을 몇 십 년 동안 평생 모았어요. 거의 완벽한 도서관이거든요.
문제는 제가 이제 퇴임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도서관에서 퇴임 교수의 책을 안 받아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 책들을 어떻게 하나가 큰 고민이에요. 버리거나 어딘가에 가져다두어야 하는데 어느덧 제 서재는 저 개인의 서재를 넘어섰단 말이에요. 포스트잇으로 붙이고 사람들이 책을 빌려가는 도서관이 돼버렸으니까요. 제가 퇴임하면서 이게 사라져버리면 공공재가 사라지는 수준이 되는 거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지금 그게 상당히 고민이에요.
인터뷰 정리: THE LIVERARY 에디터팀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을 지낸 대한민국 대표 사회 생물학자로 이화여대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로 있다.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통해, 수많은 저술 활동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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