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첫째, 책은 습기와 햇빛에 취약하기 때문에 이 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창문을 수평고창(水平高窓)으로 설치해 책장을 직접 비추는햇빛을 차단했다. 환기가 잘 되고 많은 책을 수장하기 위해 층고를 4.5미터로 높게 했다. 둘째, 작은 도서관으로 개관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함께 독서하기 편한 공간으로 건축했다.
Q 그 집에 이름을 지어준다면?
A 집을 짓기 전부터 당호는 지나온 생을 돌이켜 생각해 미래를 지향하는 집, 생각을 따라가는 집, ‘추사재(追思齋)’라 명명했다.
Q 치의학을 전공하다가 법치의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결정적 계기가 있나.
A 은사이신 연세대학교 김종열 선생님을 만나 치과계에 남을 수 있었다. 선친의 권유로 전공, 대학 모두 바꿔 치과대학에 들어갔지만 치의학은 접하자마자 내가 갈 길이 아니란 것을 느꼈다. 치과의사의 길을 포기할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참으로 방황하던 대학시절이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대학은 일단 졸업하고 신문기자가 되려고 마음먹었는데, 본과 3학년 1학기 때 김종열 선생님의 법의학 강의를 접한 첫날 가야 할 길을 찾았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 치과계에 내가 하고 싶은 분야도 있구나. 그날 은사님을 찾아뵙고 문하생으로 입문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내 일생이 결정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Q 부검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
A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사건과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 두 사건은 내 인생의 의미를 통째로 바꿔놓았다. 대구지하철 참사 때는 혼자 많이도 울었다. 돌아가신 분들은 대부분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돌아가신 분들보다 인간적으로 의롭거나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분들은 나보다 부유하지 못해 물질적 풍요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인데 왜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야 했나, 끝없이 되뇐 기억이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수 주 동안 진도 팽목항 현장에서 희생자들을 검시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신은 점점 부패해갔고 얼굴은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검시 컨테이너박스 안에는 시신 썩는 악취가 진동했다. 다 썩어 문드러진 아들과 딸을 부여안고 볼을 부비는 부모님들의 모습과 그분들이 하신 말씀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아들아! 내가 잘못했다! 딸아! 미안하다! 우리 어른들의 잘못으로 너희들이 이렇게 죽어갔구나! 우리 어른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너희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살아 있는 우리들이 세상을 바꿔주마!”
세상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세월호 참사와 17세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250명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해 304명의 희생자들은 살아남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겨주었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넘어 끝없는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Q 국내에 활동하는 법치의학자가 열 명이 안 된다고 하는데, 누군가 법치의학자가 되고 싶어한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A 먼저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의학과 치의학이 생명의 존엄성을 귀히 여기는 과학이라면, 법의학과 법의치과학은 인권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인권 존중의 학문이다. 그래서 법의학의 수준은 바로 그 나라의 인권 수준이라고 한다. 법치의학은 주로 죽은 자들과 소통하고 그들이 외치는 침묵의 소리를 주의 깊게 경청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흥미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죽은 이를 찾아 가족에게 돌려드리는 작업은 살아 있는 우리의 의무이자 또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숙명이다. 아울러 우리의 가슴속에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유족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품는 작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희생된 분들과 상처받은 가족들을 상대할 때 필요한,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A 자주 생각하는 두 인물이 있다. 14세기 말 조선 건국의 설계도를 그린 삼봉 정도전, 그리고 19세기 중엽 회화의 새 지평을 연 폴 세잔이다.
정도전은 국운이 기울어가던 고려 말, 온건파와 급진파의 권력 다툼 중에 이성계를 도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실질적으로 조선의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왕권을 축소하고 신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다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러한 삼봉의 삶을 관조하면서, 나라면 그 시기에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행동을 취했을지 가끔 생각해본다. 또 한 번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여말 선초 혼란스럽고 치열했던 14세기 말로 돌아가 지식인의 삶을 접해보고 싶다.
19세기 중엽,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지 않고 마음속에 보이는 것까지 그림으로 그려 회화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폴 세잔의 내면세계가 궁금하다. 피카소, 마티스 등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20세기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지만 생애 대부분을 홀로 고독하게 작업에 몰두했던 세잔.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 시절의 폴 세잔과 만나보고 싶다.
Q 사람의 치아를 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은?
A 치아는 사람의 조직 중 가장 단단해 물리적, 화학적 저항성이 강하고 부패가 서서히 일어나 오래 잔존하는 장기로 매우 유용한 법의학적 감정 대상물이 된다. 치아에는 연령이나 성별을 추정할 수 있는 정보와 혈액형물질이 포함돼 있다. 일단 손상되면 영구적으로 흔적이 남고, 개체마다 특징과 치료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점을 활용해 개인을 식별해낼 수 있다. 또한 DNA 정보가 내재되어 있어 수천 년 된 고대 치아도 DNA 분석이 가능하고, 사후 경과 시간과 일부 직업까지도 추정이 가능하다. 치아는 법의치과학 분야에서 각종 정보를 알아내는 보고다.
Q 독서 외에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즐기는 취미가 있나.
A 1970년대 중후반은 유신독재와 이로 인한 긴급조치 9호 시대였다. 대학에는 휴교령이 자주 내렸고 갈 곳 잃은 대학생들은 각자 알아서 지내야 했다. 절망하고 분노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수유리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북한산을 오르내리던 나는 자연스럽게 등산에 빠졌고, 허리를 다치기 전까지 몇 년을 미친 듯 산을 올랐다. 무등산국립공원 자락에 살고 있는 지금도 매일 등산을 한다. 1년 전 삼성안내견학교에서 대형견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를 분양받아 ‘무등’이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후 개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무등이를 교육시키고 함께 산책하며 지내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이다. 개를 처음으로 기르는데 개가 주는 위안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지난 40년간 불행의 현장에 직접 참여했다. 여러 건의 국내 및 중국 항공기 추락, 최고급 삼풍백화점의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세월호 침몰 같은 인공재난 현장뿐만 아니라 30만 명 이상이 사망한 서남아시아 쓰나미 참사 같은 자연재난 현장에서 희생자들을 찾는 작업을 수행했다. 또한 수만 명이 희생된 제주 4·3사건,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5·18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역사적 재난 현장에서도 희생된 유해들을 발굴하고 감정했다.
불행의 원인은 지진과 같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개인이나 조직 또는 국가의 잘못이었고 비슷한 유형의 재난이나 사건·사고가 되풀이되었다. 누구의 잘못이건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잊어서는 안 된다.영광의 역사이건 치욕의 역사이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Q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학생의 질문은 무엇인가.
A 두 가지 질문이 기억난다. 1989년 조선대학교 교수 공채 공개강의에서 치과대학생들이 한 질문들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당황스러웠다. “우리 대학에 교수로 임용된다면 언제 떠나실 건가요?” 두 번째는 더 황당한 질문이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대립이 첨예하고 전라도가 소외되고 푸대접을 받는데 해결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법의학 공개강의 심사장에서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들이었고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첫 번째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세상 일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고 사흘 후 벌어질 일들은 신의 영역이라 생각하지만, 내 분야를 안정시키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습니다.” 임용된 신임 교수들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른 대학으로 가거나 병원을 개원해 학생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32년 만에 대학을 정년퇴임한 나는 학생과의 약속은 지킨 셈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랬다.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고민해보겠습니다.” 광주에 몇 년 살다 보니 학생의 그 질문은 괜한 질문도 아니었고 잘못된 질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절실한 문제였기에 나올 수 있었던 질문이었다.
A 법치의학자의 길로 접어들면서 활동하던 시절 너무나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시대와 6·25전쟁을 겪은 후 절대빈곤인 상태에서 세계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임을 누구도 반박하지 못한다. 그러나 급속 성장의 그늘 아래 지구상에서 대형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고공화국으로 자리 잡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수차례의 비행기 추락, 대구지하철 참사 그리고 세월호 침몰 참사 등 그 수는 헤아리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방 직후 좌우 이념의 갈등, 남북의 대립과 충돌 속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어 희생양이 되었다. 1970~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독재에 항거하다 산화하거나 희생된 사람들 역시 부지기수다. 이름 없는 분들이 이유조차 모른 채 억울하게 이 세상을 떠나야 했고, 남은 자들은 보통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 속에 남은 생을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희생의 대가로 대한민국 법과학 수준은 세계 전문가들로부터 최고임을 인정받고 있다. 끊임없는 사고로 전문가들의 법과학적인 경험이 풍부해질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의 ‘웃픈’ 현실도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법의학이란 학문에 입문할 당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다. 좋아서 하는 일에 무슨 사명감이 있었을까? 그러나 하나하나 시신을 다루며 사건·사고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고, 내 학문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으며, 법의학은 내 팔자가 되었다.
Q 상실을 겪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수많은 참사를 겪으면서 스스로에게 자주 묻곤 했다. 왜 이런 엄청난 사고가 우리에게 닥쳤을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하늘의 심판이라 하기엔 생명의 가치가 너무 크고도 귀한데, 무너진 시설물들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다시 세워지겠지만 무너진 마음들은 무엇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위로는 기억이다. 함께하는 기억이다. 나는 사랑하는 막내동생을 잃고 나서 6개월 동안 악몽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그 악몽이 평생 계속된다면 어찌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십 수 년이 흐른 지금 상실감은 조금 다른 감정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기억에서 사라진다면 더 슬프고 미안할 것 같아 늘 기억하려 노력하고 있다. 잊는 것은 위로가 될 수 없다. 기억에서 지우려 하지 말고 기억하자고 말하고 싶다. 함께!
Q 지금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나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5년 소위 베이비붐이 시작된 첫해에 태어났다. 우리 세대는 헌신적으로 살아가시던 부모님의 모습, 사람들이 옥수수 같은 식량을 배급받으러 관공서로 모여들던 모습, 지붕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판자촌과 그곳에 바글바글 모여 살던 사람들을 보며 자랐다. 또한 경제부흥의 최전선에 나가 활동하는 가운데 시나브로 풍요로워진 세상을 느끼기도 했다. 가난이 지속되고 부패가 만연해도, 금수저가 아니어도, 노력하면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다는 패기를 가지고 살았다.
1960년대야 어려서 세상을 보는 눈이 없었지만, 군사독재 시절인 1970년대의 암울하고 음습한 사회 환경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후 동년배들이 우수수 실직해 사회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암담함을 겪기도 했다.
또한 베이비붐 세대 이후 태어난 X세대가 198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으로 독재에 저항하며 마침내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룰 때까지, 이들을 보는 뿌듯함과 동시에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느꼈다. 한편 지금 Y세대의 나약함을 탓하면서도 이러한 환경을 만들었다는 허탈함도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가족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책임감을 가졌던 세대이자, 절정의 나이에 사회에서 도태된 소외감과 MZ세대를 포함해 X세대, Y세대와의 이질감을 한꺼번에 느끼는 세대라 할 수 있다.
지금은 갈등 폭주의 시대다. 이념의 갈등, 동서의 갈등, 빈부의 갈등 그리고 세대의 갈등. 그래서 필요하다. ‘사람은 함께 사는 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경구가.
윤창륙이 추천하는 책 다섯 권
《잉여인간》(손창섭)
5년 전 타계한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은 “한국문학은 문학이면서 동시에 철학이다”라고 말했다. 《잉여인간》은 문학적 실존주의를 잘 구현한 소설가 손창섭 선생의 대표 작품이다. 손창섭 소설의 현장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벼랑 끝이고 절망적 세계에 대한 실존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6·25전쟁 전후 사회를 경제적 궁핍과 사랑의 결핍, 나아가 정신적 결핍과 육체적 불구로 묘사하고 있다. 1970년대 고등학교 시절 소설 속 우울하고 음험한 분위기에 빠져들게 되었고, 작품 속 삶의 밑바닥을 헤매는 군상들을 보고 나서 오히려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를 본 듯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바 있다. 대부분 비극적 삶을 묘사하고 있지만, 요즘 다시 읽어도 시대만 다를 뿐 공감되는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근대한국사논선(近代韓國史論選)》(이기백 편저)
박은식, 장지연, 신채호, 정인보, 문일평, 고유섭, 손진태, 이상백 선생 등 현대 한국사학의 토대를 만든 선구자들의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 고2 때 첫 번째 글인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韓國痛史)〉 서언을 읽은 후 역사와 역사소설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260여 쪽 문고판이지만 수십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이기백 편저로 엮은 이 책에 인용된 저자들의 글은 뼈아픈 몸부림이었고 지금도 언제나 피를 달군다. 듣기만 해도 힘이 솟는 박은식의 〈혼(魂), 정신(精神)〉.정인보의 〈얼〉, 신채호의 〈민족정신〉, 문일평의 〈조선심(朝鮮心)〉을 읽는 대목에서는 식민사관에 맞선 민족사학자들의 기개와 자존심을 느낄 수 있다.
《사랑과 인식의 출발》(구라타 하쿠조)
대학 신입생 때 철학 강의 시간에 교수가 추천해 읽은 책으로, 구라타 하쿠조(倉田百三)가 사랑에 대해 쓴 영혼의 자서전이다. 철학 교수가 소개한 책답게 여러 철학자들이 인용되었고,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인식의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뿐 아니라 선(善), 진리, 성, 연애, 우상 등 청춘들이 고민하는 다양한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청춘 시기에는 청춘의 옷을 입어야 하고 청춘은 길지 않다’는 저자의 말대로 젊은이들에게 특히 추천할 만하지만, 나이 들어 읽어도 가슴이 설레는 것은 매한가지다.
《용서》(달라이 라마)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읽은 책이다. 우리가 살면서 기쁘고 행복한 날들은 얼마나 될까? 1년에 열두 달, 여섯 달, 세 달, 아니면 한 달? 기쁨은 아무리 크더라도 지속 시간이 짧다. 반면에 분노 혹은 분노를 넘어 고통이라는 깊은 상처가 남는다면 그 지속 시간은 아주 길고 평생 치유 불능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누구나 살면서 수많은 상처를 받는다. 친구, 연인, 이웃, 사회, 가족 등으로부터. 어떤 이는 아픔을 바로 이겨내지만 다른 이는 평생 감내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책은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중국인 친구 빅터 챈이 나누는 용서의 대화다. 살아가는 지고지순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다면 더욱 권할 만하다.
《부생육기(浮生六記)》(심복)
1763년 중국 강소성 소주에서 태어난 중국 작가 심복의 작품으로, 현모이지만 허약하여 양처가 되지 못하고 41세에 병으로 죽은 아내 운(芸)을 위한 사랑의 찬가이자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격조 높은 자서전이다.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에서 운은 중국 문학에 있어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이라고 기술한 바 있다. 동갑내기이고 어려서부터 이웃친구로 지냈던 아내 운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까지 잃은 상실감을 감내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평범한 사람의 비범했던 이야기는 읽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줄 것으로 믿는다. 결혼 전 딸을 낳는다면 운이라 부르기로 했는데, 그것이 현실화되어 딸의 이름을 향기로운 풀 ‘운(芸)’으로 작명한 각별한 사연도 있다.
윤창륙_법치의학자
조선대학교 치과대학에서 법의학과 의료윤리를 교육했다. 주로 하는 일은 돌아가신 분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개인 식별을 수행해 망자의 권리를 찾아주고 억울함을 위로해주는 것이다. 평생 법의학 분야에 종사하는 것을 천직으로 삼고자 했고, 그 길을 따라와 지금까지 사고 현장에서 7천여 명의 신원을 밝혀 시신을 가족의 품에 돌려주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책 100권은 읽는다는 다독가로, 2만 5천 권의 책과 같이 살기 위한 집을 무등산 초입에 지었다.
2026년 1월 인사이트에서는 2023년 기후위기와 패스트패션에 맞서는 제로웨이스트 의생활을 표방한 책《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출간한 이소연 작가를 만나 기후위기 시대 소비하지 않는 일상에 대해 인터뷰 했다. 쇼핑을 중단하고 새롭게 만나게 된 세계와 변화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Q 7년 전,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 장면이나 사건이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7월호에서는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연출한 이동원 피디를 소개한다. Q 올해 SBS에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다독가들]은 독서가 한 개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서의 중요성, 책과의 관계 등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전문가 인터뷰 코너이다.책 이외에도 인터뷰이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관한 질문 또한 추가된다.2025년 12월호에서는 철학책 편집자이자 《철학책 독서 모임》 《동료에게 말 걸기》의 박동수 작가를 초대했다. Q 먼저 자기소개 부탁한다.철학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