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정선주 사서가 ‘2020년 특화도서관 육성지원사업 지원관 모집 안내’ 공문을 읽을 때만 해도 특화도서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우연히 특화도서관 사업 담당자가 된 이후 지금까지 사업을 운영해오면서 느낀 점들을 글로 보내왔다.
“이 정도면?”
특화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의 기본역할을 수행하면서 지역사회의 요구 및 지역 콘텐츠를 기반으로 주제를 선정하고, 전문인력, 자료, 서비스, 네트워크 등을 갖춰 주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높임으로써, 차별화된 서비스로 이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지역사회 현안을 해결하는 도서관’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정해야 하는 것은 어떤 주제를 선정할 것인가였다.
당시 탐라도서관이 미는 콘텐츠는 ‘독립출판물’이었다. 도내에서 가장 많은 독립출판물을 보유하고 있기도 했고, 바로 직전 해에 전국 독립출판물페어 ‘제주북페어 2019 책운동회’ 첫 회를 성황리에 개최한 터였다. 마침 길 위의 인문학 공모사업에서 시민들이 직접 독립출판물을 제작해보는 과정에도 선정됐다. 그때는 ‘’이 정도면’ 탐라도서관이 독립출판물 특화도서관 아니겠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아는 것도, 깊은 고민도 없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사업에 신청할 수 있었다.
이후 2020년부터 2021년까지 특화도서관 사업을 진행하고, 연계 프로그램을 이어오면서 당시의 ‘이 정도면’이란 가정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의정부시의 음악, 미술 도서관처럼 도서관을 지을 때부터 특화주제에 맞는 설계를 하고 운영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탐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은 이미 주어진 상황에서 특화주제를 정해 관련 장서를 구입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서서히 특화도서관 모습을 갖추어갈 수밖에 없다.
탐라도서관은 처음 특화주제를 정할 때 ‘이 정도면’이란 무모함으로 ‘독립출판물’이라고 정했지만, 현재까지 관련 서비스를 확장해오며 특화도서관으로서 역할을 해내려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고 4년째 썩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사례로 탐라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특화도서관 운영 과정을 간략히 소개해보려 한다.
제주시 탐라도서관 특화서가 ⓒ제주 탐라도서관
‘독립출판물’과 ‘그래픽노블’, 특화장서가 되다
‘독립출판물’의 정의를 나름 내려보면, ‘자신만의 콘텐츠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에 담아낸, 누구와의 협의도 거치지 않고 출판이 가능한 소규모 출판물’일 것 같다. 기성 출판에서 ‘협의’는 필수 과정인데 독립출판물은 그 과정을 생략하고 오롯이 나의 콘텐츠를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방식으로 세상에 내보일 수 있다. 독립출판물의 등장으로 기성 출판에서는 시도할 수 없었던 주제와 콘텐츠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발산하며 세상에 쏟아졌고, 열광하는 대중이 생겨났으며, 거꾸로 독립출판물이 기성 출판사에서 재출간되는 흐름이 자연스러워졌다. 특히 제주시민들은 제주 내 수많은 동네책방에 익숙했기에 독립출판물을 더 일찍 접했고, 더 빨리 사랑에 빠졌다.
2018년도 ‘탐라전국지역출판도서전’ 행사를 열며 처음으로 전국의 지역출판물(1,095권)과 독립출판물(413권), 그래픽노블(154권)을 서가에 비치했는데 이용자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당시에는 장르로 인정받는 과정이었던 그래픽노블과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가 없는 독립출판물은 공공도서관에서 찾아보기 힘들었고, 희망도서로 신청해도 거절되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그래픽노블과 독립출판물 코너를 마련한 지 며칠 만에 서가는 텅 비고 말았다.
“주사님! 책 다 어디간요? (어디갔어요?)” “다 빌려간. (대출해갔다)”
이를 기점으로 탐라도서관은 매년 독립출판물과 그래픽노블을 조금씩 구입하기 시작했고, 제주에서 가장 많은 해당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이 됐다.
2020 제1기 제주독립출판제작 동네책방 탐방 ⓒ제주 탐라도서관
독립서점·창작자·지역출판 + 탐라도서관
제주에는 ‘책방 여행’이 유행일 정도로 매력적인 동네책방이 산재해 있다. 동네책방은 도내 100여 곳에 이르고, 독립출판물을 유통하는 독립서점의 수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제주와 육지를 오가며 활동하는 매력적인 예술가와 창작자들도 많아서 그들의 책과 작품은 마을의 문화공간인 동네책방에서 유통되고, 도서관에서 전시회와 북토크를 열기도 하면서 선순환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더불어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책으로 담아내는 지역출판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제주’ 책 관련 행사도 많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제주 내 풍부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도서관에서 함께 진행할 수 있는 연계 프로그램 운영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제3기 제주독립출판제작 출간기념회 ⓒ제주 탐라도서관
독자에서 작가로, 생각에서 세상으로 <제주독립출판>
2020년부터 길 위의 인문학 사업으로 ‘독자에서 작가로 생각에서 세상으로, 제주독립출판’ 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참가자가 직접 원고-편집-디자인-인쇄 과정 전반에 참여해, 모두 다른 주제, 판형, 디자인의 독립출판물을 발간하는 프로그램이고 작년까지 67명의 참가자가 67권의 모두 다른 독립출판물을 발간했다. 이 프로그램은 매년 경쟁률이 치열해 20초 만에 접수가 마감되고, 매해 25명의 참가자 중 21명이 완주해 책을 발간하는 높은 참여도를 보인다. 작년에는 우수사업에 선정되어 문체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는 책만들기 프로그램과 더불어 소규모 출판사 운영을 꿈꾸는 제주의 독립출판제작자들을 위해 전문 출판 과정을 알아보는 ‘제주출판학교’ 프로그램도 연계 운영하고 있는데 매회 6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제주에는 이토록 독립출판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고, 자칭 독립출판 특화도서관인 탐라는 더욱 다양한 방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을 계속 모색 중이다.
제주북페어 2023 포스터 ⓒ제주 탐라도서관
전국 독립출판물 모여라! ‘제주북페어 2023 책운동회’
지난 4월에 개최한 ‘제주북페어 2023 책운동회’는 전국 독립출판물 제작자·소규모 출판사·독립서점 200여 팀이 참여한 대규모 독립출판물페어다. 탐라도서관에서 개최하는 가장 큰 행사이자 특화프로그램의 꽃이기도 하다. 2019년부터 올해까지 세 번 개최됐는데(코로나19로 2020~2021년 미개최), 올해 참여 지역 비율은 제주 59팀(29%), 서울 89팀(43.5%), 그 외 지역 56팀(27.5%)으로 보통 도외 참가 비중이 높다. 올해 참가팀들은 행사 기간 이틀간 1억 2천만 원의 판매수익을 냈고, 참여 만족도 95.5%, 관람객의 향후 행사 재참여 의사는 99%가 나올 정도로 참가팀과 관람객 모두가 만족하는 성과를 거뒀다.
제주북페어 2023 현장 사진 ⓒ제주 탐라도서관
탐라도서관, 특화도서관일까?
아직 이 질문에 아주 자신 있게 답하지는 못한다. 특화장서는 따로 서가를 마련해두긴 했지만, 별도의 특화자료실을 꾸리진 못했고, 특화장서 구입예산이 편성되지도 않아 매년 소량의 장서만을 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화장서 비중은 전체 장서 240,000권 중 1,500권으로 전체의 약 0.6%밖에 미치지 못하고, 특화프로그램 운영 예산도 넉넉지 않아 공모사업을 특화주제로 연계해 운영하기도 한다.
제주시 탐라도서관 특화서가 ⓒ제주 탐라도서관
그래도 탐라도서관은 매년 특화장서를 구입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역 내 책방․출판사와 협력해 함께 사업을 진행하는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앞으로도 관련 내용을 계속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이 노력이 계속되고 시민들이 즐거워한다면, 탐라도서관은 특화도서관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공공도서관들도 저마다 지역과 어우러지는 특화주제를 선정하고 특화도서관을 운영한다면 도서관을 찾는 이용자들이 저마다의 도서관이 뿜어내는 특별함에 한껏 즐거워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정선주_제주시 탐라도서관 사서
현재 제주시 탐라도서관에서 사서로 재직 중이다. 특화도서관 및 제주북페어 2023 사업을 비롯해, 중앙단위 공모사업 기획 및 운영, 탐라도서관 대학·고전 읽기, 시민 평생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 독서진흥사업 업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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