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대부분의 공공도서관마다 공통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어린이 대상의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은 공공도서관 프로그램의 핵심이며, 역사도 오래되었다. 19세기 중반에 유럽과 북미의 출판사들이 어린이책을 발행하기 시작하면서 어린이책의 인기는 상당히 커지게 되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아동문학을 전담하는 미국 최초의 공공도서관 부서가 설립되기도 했다. 이렇게 수집된 어린이책과 어린이를 효과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것이 도서관의 스토리텔링이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의 카네기도서관에서 1899년 공식적으로 어린이를 위한 스토리텔링을 시작했다. 이후 프로그램과 도서목록은 학교와 다른 도서관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미국에서 스토리텔링 운동을 구축하는 역할을 한 것은 두 명의 유럽 스토리텔러, 영국의 마리 쉐들록(Marie L. Shedlock, 1854~1935)과 노르웨이의 구드룬 쏜 톰센(Gudrun Thorne-Thomsen, 1873~1956)이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 (이미지 출처 : 카네기 도서관 웹사이트)
이들은 스토리텔링을 연습하고 시연했으며 사서와 교사,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쳤다. 이들의 노력은 뉴욕, 보스턴, 시카고, 클리블랜드에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스토리텔링 교육을 받고 지식을 전수받은 사서들은 미국 전역의 전문직에 진출했으며, 1927년에는 미국 공공도서관의 79퍼센트에 이르는 도서관에서 스토리텔링을 진행하게 되었다.
스토리텔러 트레이너의 영향 덕분으로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은 거의 모든 미국 공공도서관의 중요한 기능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에도 스토리텔링은 미국의 문헌정보대학원과 전국의 도서관에서 가르치고 있다. 스토리텔링 교육은 다양한 발달단계에 적합한 이야기를 식별하는 방법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미국 공공도서관의 스토리텔링은 매주 1~2회 진행되며, 대개 어린이실 사서가 전담한다. 미국의 소도시 공공도서관에서 30년 넘게 어린이실 사서로 근무한 사람의 방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 손때 묻은 동물 인형들과 각종 만들기 소품들 등 스토리텔링 도구들로 가득했다.
해외 공공도서관 스토리텔링 사례
일본의 공공도서관 어린이자료실에는 책을 읽어주는 이야기방인 ‘오하나시노헤야(お話の部屋)’가 따로 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위한 빅북도 마련되어 있다. 이른바 ‘카미시바이(かみしばい)’라고 부르는 그림연극용 자료들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장의 그림으로 구성해 한 장씩 설명하면서 보여주는 일본의 전통 그림연극이 ‘카미시바이(紙芝居)’ 공연이다. 카미시바이는 옛날 자전거 위에 그림판을 올려놓고 어린이들을 위해 한 장 한 장 그림을 바꿔가며 무성영화 속 변사처럼 줄거리를 얘기해주는 그림연극이다. 1930년대와 전쟁이 끝난 1946년부터 1950년대 말까지 흥했었다. TV나 영화가 없었던 시절에 아이들을 불러 모아 그림을 보여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대신 과자나 물엿사탕 등을 팔았던 행상이 손님을 끌기 위해 행했던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다. 어린이들을 위한 걸어 다니는 영화관이었던 셈이다. 공연 시작이나 중간 중간에 문제를 내어 정답을 알아맞히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한다. 그러니까 일본의 전통적인 연극이 현재의 공공도서관으로 옮겨간 셈이다.
교토국제만화박물관 2층 극장 (이미지 출처 : 교토국제만화박물관 웹사이트)
도서관과 박물관 기능을 겸비한 교토국제만화박물관(京都国際マンガミュージアム) 도서관에 가면 2층에 약 70여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미니 극장이 있다. ‘카미시바이실’인데, 매일 이야기꾼이 나무액자 속의 그림을 한 장씩 뽑아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카미시바이 공연이 열린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박수를 보내며 즐거워한다. 드문드문 앉아있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엉터리 영어로 질문하고 대답하며 웃음을 이끌어낸다. 전문 연극배우 특유의 카랑카랑하고 시원시원한 목소리와 관객을 쥐었다 놨다 하는 능청스러운 연기에 익살스러운 만화그림이 더해져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스토리텔링에 엔터테인먼트를 더하여 문화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와키종합도서관(いわき総合図書館, いわきそうごうとしょかん) 어린이실에서는 두 명의 어린이가 짝을 이루어 카미시바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을 목격했다. 저녁 시간이었는데, 서로 번갈아가면서 재미있게 카미시바이 극을 하고 있었다. 특별한 연기 재능이 없어도, 이야기를 듣는 청중이 많지 않아도, 서로가 즐겁게 이야기를 즐기는 광경이었다. 카미시바이 도서들로 가득한 자료실 서가에는 대여용 카미시바이 틀도 꽂혀 있었다. 이후 방문하는 일본의 공공도서관마다 카미시바이 틀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곳에서나 카미시바이 도서들은 수백 점씩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놀랐던 것은 벨기에 크룩(De Krook)도서관 어린이실에서였다. 대형 카미시바이 나무판 틀에서 그림연극이 상연되고 있었다. 일본의 카미시바이가 유럽까지 진출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다만 카미시바이 주인공이 인쇄 자료가 아닌 디지털 동영상이라는 점만 달랐다.
아랍에미리트 모하메드빈라시드도서관(Mohammed bin Rashid Library) 어린이실에서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Pepper)’를 만났다. 다재다능한 로봇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도 인식하고, 이용자의 질문에 응답하고, 도서관 콘텐츠와 서비스 또는 도서관 지침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용자의 사진을 찍어주고 바로 이메일로 전송해주기도 하며, 무엇보다 어린이를 위해 다양한 언어로 동화책을 읽어준다. 어린이 이용자와 대화 나누는 것을 옆에서 한동안 지켜보다 “너 몇 살이니?”라고 장난스레 물어보았더니 “먹을 만큼 먹었어”라고 받아칠 만큼 유머러스하기도 하다. 만화 같은 눈과 명랑한 목소리를 가진 페퍼는 매력적이고 친근한 어린이 상대가 되어 있었다.
웨스트포트도서관의 책을 읽어주는 두 로봇 빈센트와 낸시 영상 (영상 출처 : Wall Street Journal 유튜브 채널)
사실 어린이를 위한 스토리텔링의 원산지도 미국이지만 로봇 스토리텔링의 시작도 미국이다. 2014년 10월 1일, 미국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도서관의 두 로봇 빈센트와 낸시가 춤추며 화려하게 첫 선을 보였다. 이들은 ‘스타워즈 읽는 날(Star Wars Reads Day)’의 주인공으로 스타워즈 책을 어린이들에게 읽어주었다. 이 로봇들은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고, 일상 대화도 가능하며, 명령에 따라 움직이도록 프로그램되었다. 앉거나 서기도 하고, 공놀이도 하고, 중국의 타이치(Tai Chi, 한국에서는 태극권으로 불린다) 무술도 뽐내고, 음악에 맞추어 춤추도록 코드화되었다. 춤추는 로봇의 등장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로봇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코딩 언어 학습에 대한 동기를 불러 일으켰다.
이후 도서관에서는 로봇을 코드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소개하는 워크숍을 갖고, 컴퓨터 언어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빨간색 로봇이 빈센트이고 파란색 로봇이 낸시인데 둘 다 16개국 언어가 가능하다. 함부르크공공도서관(Bücherhalle Hamburg)에서도 2021년부터 ‘Ada’와 ‘Nao’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사용해 독서를 장려해왔다. 로봇이 어린이들을 상대로 책을 읽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이들이 로봇에게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고 책 속의 내용으로 문제를 풀어보기도 한다.
비디오 동영상이나 로봇의 스토리텔링에는 제공하는 정보는 있지만 휴먼 스토리텔링만큼 상대를 이야기에 끌어들이고 지속적으로 매료시키는 힘이 없다. 처음엔 신기해서 흥미롭게 듣거나 보지만, 동영상이나 로봇 스토리텔링은 아이들이 즐거이 반복해서 듣는 경우가 드물다. 도서관에서 로봇이나 동영상 스토리텔링의 인기가 지속되기 어려운 이유다.
미국 공공도서관에서 스토리텔링은 대개 경험 많은 사서가 아이들을 상대로 능숙하게 눈높이에 맞추어 진행한다. 그날의 상황에 맞는 한두 권의 책을 골라 읽어주고, 손바닥을 치며 챈팅을 하면서 가볍게 몸동작을 하다가 아이들을 모두 일어서게 해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며 즐겁게 논다. 그렇게 춤추고 노래하고 한참을 움직인 다음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 그날의 이야기와 관련된 공예품 만들기 수업을 시작한다. 완성된 공예품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은 보호자의 손을 잡고 도서관을 떠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다.
필자가 경험한 최고의 스토리텔러 사서는 네덜란드 로테르담도서관에서 만났다.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어린이실은 어린아이들과 보호자들로 가득했다. 자료실 한가운데 둥그렇게 소파로 둘러싼 곳에서 사서가 앉은 자세로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도서관 이용자들 중 시끄럽다고 불평하는 이는 없었고, 어른도 아이도 모두 이야기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미국의 공공도서관처럼 일어서서 몸을 흔들며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도, 몽글몽글 피어났다 사라지는 비눗방울의 마법도, 만들기 공예 시간도 없었다. 오랜 경험의 숙련된 사서가 읽어주는 스토리텔링만의 힘이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몰입하게 하는 휴먼 스토리텔링
스토리텔링에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예전 어린이도서관에서 근무할 때 외국어가 가능한 청소년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외국어를 네이티브처럼 구사하는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이 정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청소년들이 어린이들에게 일대일로 책을 읽어주기도 했고, 그룹으로도 읽어주었다. 한국어 그림책은 물론 일본어,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외국어 그림책들도 동원되었다. 한때 중고생 봉사자만 300명을 넘기도 했다.
그중에 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니던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매주 토요일이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도서관에 왔다. 영어 책도 읽어주고, 프랑스어 책도 읽어주었다. 책을 읽어주는 봉사 시간이 오후 4시부터면 2시부터 와서 준비했다. 서가에서 책을 고르고,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을 찾았다.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워도 왔고, 학기말 시험 기간에도 빠지지 않고 나왔다. 심지어 학교 체육시간에 다쳐서 깁스 한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봉사하러 왔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까지 4년 내내 도서관에 와서 책 읽어주기 봉사를 했다.
어린이들 사이에서 그녀는 대단한 스타였다. 스토리 타임이 되면 아이들은 졸졸졸 그녀를 따라 이야기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책을 들면 다리를 바짝 모은 채 최대한 그녀 가까이에 모여 앉았다. 책 읽기가 끝나면 그녀는 책 속의 내용과 관련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신기했던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이야기를 들었던 어른인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들을 아이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해낸다는 사실이었다. 글밥이 제법 많은 두꺼운 책들을, 그것도 한국어도 아닌 프랑스어나 영어 책들을 온 신경을 모아 집중해서 들었고(봉사 학생은 페이지마다 먼저 외국어로, 그리고 한국어로 번역해서 읽어주었다), 이야기가 끝나면 하나하나 기억해냈다. 이야기 자체의 매력도 대단하지만, 어린이들의 집중력이 굉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물론 아이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녀는 아이들에겐 다정다감한 옆집 언니 같은 이야기꾼이었으며, 사서인 내가 만난 최고의 낭독사였다.
어린이에게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것은 독특하고 중요한 방식으로 어린이의 발달을 촉진한다. 오락으로서의 가치 외에도 종이에 인쇄된 단어의 ‘코드’와 사람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의미 있는 언어 사이의 중요한 연결을 강화하며 어린이의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실제로 볼 수 없거나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시각화하는 능력을 기를 수도 있다. 아동발달 및 신경과학에 관한 최근의 연구들은 자녀에게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것이 자녀가 글을 읽을 수 있게 되기 훨씬 이전에 읽기 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됨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공공도서관에서의 스토리텔링은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린이가 부모나 보호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과 말하는 동안 조용히 앉아있는 방법을 포함해 다른 성인의 말을 경청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도서관에서 다른 어린이들과 만나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되고, 어린이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도서관을 탐색하고 도서관과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 스토리텔링에서 들은 책이 마음에 들면 서가에서 찾아 대출한 뒤 집으로 가져가 읽을 수도 있다. 스토리텔링은 도서관이 특별한 장소라는 느낌을 주어 아이들에게 지역 공공도서관에 대한 평생의 사랑을 심어줄 수 있다. 도서관의 스토리텔링은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생에서 도서관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아름다운 출발점이다.
조금주_작가, 넥스트 라이브러리 대표
작가, 넥스트 라이브러리 대표. 도곡정보문화도서관과 반포도서관 관장을 역임했다. 2023년 1월 1일, 도서관 건립 컨설팅, 운영 자문, 사서 교육 등 도서관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도서관의 미래를 기획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 도서관 연구소 ‘넥스트 라이브러리(Next Library)’를 열었다. 쓴 책으로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힘, 도서관》(2015),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2017)이 있다.
물리적 공간에 디지털 감각이 융합한 피지털‘피지털(Phygital)’은 물리적 오프라인 공간을 의미하는 ‘피지컬(Physical)’과 ‘디지털(Digital)’의 합성어다. 오프라인의 단점과 온라인의 단점을 서로 간에 유기적으로 보완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만족도를 높이고, 상품 구매에 대해 좀 더 편하고 직관적인 정보 제공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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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슈투트가르트시립도서관의 그래포틱유럽이나 북미의 도서관을 탐방 다니다 보면 ‘아니, 공공도서관에서 이런 것까지 대출해준다고?’ 하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 일명 ‘사물도서관(Library of Things)’ 서비스다. 도서관의 주요 소장 품목이었던 책과 정기간행물, 음악 CD와 영화 DVD를 넘어서 주방용품, 가정에서 사용하는 많은 각종 장비 세트,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