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의 공공도서관들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각 도서관마다 독특한 복합문화공간을 추구하고 있다. 그 변화의 기저를 살펴보면, 정보 환경의 변화로 인한 인쇄매체의 선호도 감소, 증가하는 정보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매체 활용, 이용자들의 서비스 확대 및 공유 공간 요구, 여기에 다양한 세대와 계층으로 서비스를 강화하려는 지역공동체의 노력 등이 그 요인으로 자리한다.
사람들의 필요가 도서 밖의 다양한 범위로 확대되고 이용자의 요구가 다양한 목적을 갖게 됨에 따라, 도서관들은 정보 습득을 위한 교육의 기능에 중점을 둔 장소에서 탈피해 다양한 시설과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디지털 정보기술과 지식 서비스를 더해 문화, 예술 향유, 창작, 소통, 레저 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던 학습·연구 공간에서 지식 창출의 장소로 공간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용자가 도서관의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각종 예술을 향유하거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며, 이용자 스스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공공도서관이 자료실과 열람실의 학습 영역에서 공연장, 갤러리, 휴게실, 컨퍼런스 및 세미나실 등 문화 서비스로 그 영역이 확대되면서, 수준 높은 문화 프로그램과 다채롭고 풍요로운 서비스들이 제공되고 있다. 이는 공공도서관이 사회적 열린 공간으로서 지역사회 구성원간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개인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사회의 정보와 문화 축적에 이바지하고, 그럼으로써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에서 활력 있는 복합적 교류의 장으로 꾸준히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로, 예술 향유의 공간으로 탄생한 중국 상하이도서관 동분관, 소통을 통한 지식 창출의 실험실로 작용하는 네덜란드 로칼도서관, 21세기 문화백화점으로 불리는 네덜란드 포럼 흐로닝언(Forum Groningen), 중앙공원을 품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라미도서관(Rami Library, Rami Kütüphanesi), 창의적 아이디어의 실험공간인 호주 퀸즐랜드주립도서관(State Library of Queensland)의 엣지(The Edge)를 들 수 있다.
전 세계 예술가들의 작품을 많이 설치한 상하이도서관 동분관은 예술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개방된 문화예술 공간이다. 상하이도서관 동분관, 하면 바로 떠오르는 아이콘적 이미지가 바로 쉬빙(Xu Bing)의 ‘살아나는 글자(Living Word)’다. 3층 열람실 테이블 중 하나에 놓인 거대한 흰색 책에서 한자 ‘새 조(鳥)’를 해방해 842개의 아크릴 문자들이 창 남쪽의 열람 공간을 가로지르는 환상적인 작품이다.
이외에도 동분관은 ‘매체: 글쓰기의 발전’이라는 주제로 국내외 예술가들의 영구 작품 10점을 설치해 세계적 수준의 건축물로 거듭나고 있다. 7천 960개의 오래된 카탈로그 색인 카드로 구성된 미아 리우(Mia Liu)의 ‘지식의 탑(Tower Of Knowledge)’, 자연과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상하이 태생 정충빈(Zheng Chongbin)의 미래지향적 ‘비행하는 돌(Flying Stones)’, 신문에 대한 추상적 해석을 제공하는 센 팬(Shen Fan)의 ‘Passing Of The Seasons’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예술작품들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문화 경험을 제공한다. 도서관의 공공예술은 예술의 대중화를 촉진하고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소통을 자극하는 동시에 미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상하이도서관 동분관은 차세대 도서관입니다. 책을 보관하고 대여하는 장소 또는 열람실일 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위한 열린 공간이기도 합니다. 전시, 강의, 음악, 미술, 기술 체험, 심지어 도서관에 들어가는 것 자체도 일종의 ‘독서’로 여겨집니다.” 상하이도서관 진초(Chen Chao) 관장의 말이다.
로칼도서관에는 푸드랩(FoodLab), 워드랩(WordLab), 디지랩(DigiLab), 게임랩(GameLab), 퓨처랩(FutureLab), 타임랩(TimeLab)이라는 독특하게 디자인된 연구 공간들이 있다. 그런데 이 여섯 곳의 주제별 연구실 외에도 지식 메이커 케니스마커레(KennisMakerij)와 여론 메이커 스테밍마커레(StemmingMakerij)라는 특별한 공간들이 있다. 이 두 개의 공간에서는 책을 통해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지식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로칼도서관 1층에 위치한 밀폐 공간에서 싱크탱크, 프레젠테이션, 워크숍, 브레인스토밍, 대화 세션, 토론 및 기타 활동을 진행한다. 그중 온라인 강연 시리즈와 팟캐스트 시리즈로 지식 메이커 비평(KennisMakerij Revue)을 제작해 지식을 전수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주제는 기후변화부터 인종차별, 웰빙, 개인 발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강연자 중에는 자전거 세계여행자인 헤라 반 빌릭(Hera van Willick),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작가 토미 비링하(Tommy Wieringa), 라이덴대학교 사회학 교수인 주디 머스만(Judi Mesman), 그리고 행복 홍보대사인 레오 보만스(Leo Bormans)가 있다.
로칼은 도서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로 보인다. 다양한 분야의 기관, 사람, 전문가 그룹 간의 교류를 통해 끊임없이 지식이 창출된다. 여기서 사서의 역할은 책만큼이나 중요하다. 사서는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며 실제 진행을 통해 전문가와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고, 이용자들로 하여금 적극적이고 풍부한 지식 창출을 돕는 일을 한다.
포럼 흐로닝언이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열 개 이상의 서로 다른 답변을 얻을 수 있다. 도서관, 영화관, 박물관, 레스토랑, 바, 기념품 가게, 학습 공간, 워크숍, 강연장, 회의실, 전시회가 있는 갤러리, 메이커스페이스, 어린이들이 탐험하고 배우는 놀이터 등이다. 그만큼 포럼은 한 가지로 한정지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제공한다.
포럼에서는 ‘도서관’이라는 단어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책은 곳곳에 잘 배열돼있고, 세심하게 전시돼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책과 만난다. 어린이들은 마음껏 뛰어놀다가도 자리잡고 앉아 책을 읽는다. 청소년들은 먹고 마시고 떠들며, 또 진지하게 토론한다. 어른들은 책으로 가득한 서가에 둘러싸여 체스를 즐기고, 느긋하게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거리거나 책을 읽는다. 10대 청소년과 70대 백발노인이 한 테이블에 앉아 공부하거나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모습도 흔하다.
포럼을 설계한 건축가 캐미얼 클라세(Kamiel Klaasse)는 “주민들이 소비할 의무 없이 어울릴 수 있는 편안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포럼에서는 무료로 소설, DVD, 정보 서적, 만화책, 신문 및 잡지 컬렉션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이 시야를 넓히도록 영감을 주는 것’을 목표로 영화관, 박물관, 전시회, 학습 장소, 토크쇼, 이벤트 등 포럼의 다른 기능 및 프로그램과 컬렉션을 결합해 현대의 문제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포럼에 있다는 것은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한눈에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해준다.
중앙공원을 품은 도서관,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라미도서관(Rami Library, Rami Kütüphanesi)
라미도서관은 튀르키예의 경제, 문화, 역사의 중심지인 이스탄불에서 2023년 1월 13일에 공공도서관으로 재개관했다. 220,000m² 부지에 수용인원 4천 200명, 도서 250만 권을 소장하고 있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서관이다. 도서관 실내 사용 면적이 36,000m²이고, 안뜰 조경 면적이 약 51,000m²로 유럽에서 가장 큰 중앙정원을 가진 도서관이다. 이 정원에는 원형극장, 독서 공간, 무대, 어린이놀이터, 전시 공간, 산책로 및 자전거 도로가 있다. 이 광대한 녹지 공간 외에도 나무로 둘러싸인 1,000m² 규모의 인공 연못도 있다.
18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의 위대한 문화적 유산인 라미 막사로 건립되어 국가지원 ‘문화재’로 등록된 라미도서관은 복원기술 및 인프라 시스템, 지역문화생활을 지원하는 구조, 방문객을 위한 새로운 녹색 생활공간 등 모든 측면에서 지속가능성 원칙을 완벽하게 준수한 것을 인정받아 튀르키예 최초로 ‘지속가능한 박물관 인증서(Biosphere Sustainable Museum Certificate)’를 받았다.
라미도서관은 고전적인 도서관을 뛰어넘어 사회의 문화적, 교육적, 예술적 요구를 충족하는 능동적, 다면적, 다기능적인 생활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스탄불 도시 중심부의 넓은 녹지에 열람실과 카페, 희귀 사본을 전시하는 전시실, 박물관, 인공연못,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거기에 국립기록보관소를 포함하는 다양성으로 모든 연령대의 방문객에게 ‘새로운 도서관 경험’을 제공한다.
창의적 아이디어의 실험공간, 호주 퀸즈랜드주립도서관(State Library of Queensland)의 엣지(The Edge)
퀸즈랜드주립도서관의 Open Lab (출처 : 퀸즈랜드주립도서관 웹사이트)
퀸즈랜드주립도서관은 퀸즈랜드 주정부가 설립 운영하는 참고자료 및 연구 도서관이다. 1896년 설립되었으며, 퀸즈랜드미술관(QAG)과 현대미술관(GOMA), 퀸즈랜드박물관 및 퀸즈랜드 공연예술센터를 포함하는 사우스 뱅크 문화구역의 일부로 브리즈번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지식 및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을 창의적으로 참여시켜 퀸즈랜드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겠다는 전략적 비전 아래 퀸즈랜드주립도서관의 엣지는 창의성, 아이디어, 실험을 위한 협업 공간으로 탄생했다.
패브리케이션랩(Fabrication Lab)은 레이저절단기, 납땜스테이션, 3D프린터, 재봉틀, CNC라우터 등의 장비를 갖춘 메이커스페이스 공간이고, 디지털 미디어 랩(Digital Media Lab)은 그래픽디자인, 오디오 및 비디오 편집, 웹 및 앱 개발, 게임 디자인, 애니메이션 및 프로그래밍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갖춘 디지털 창작공간이다. 그리고 사운드 녹음, 편집 믹싱 작업을 하는 레코딩 스튜디오(Recording Studio)가 있다. 카메라, 와콤(Wacom) 태블릿, 줌 레코더, 삼각대, 헤드폰 등 장비가 제공되며 이벤트, 워크숍, 모임, 커뮤니티랩 등 역동적인 프로그램과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진행된다. 16세 이상이어야 사용 가능하며, 발등을 덮는 신발을 착용하고 안전교육을 사전에 이수 완료해야 한다.
소규모 그룹 회의에 적합한 작은 공간 윈도우 베이(Window Bay)에서는 안내데스크 옆 브링크(The Brink) 카페에서 제공하는 커피, 케이크와 함께 강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엣지(The Edge)에서는 함께 공부하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같은 생각을 갖고 고민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미래에 대한 멋진 꿈을 꾸는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렇듯 세계의 많은 공공도서관은 갤러리, 공연장, 사무실, 강의실, 창작실, 카페 등의 기능을 결합해 미술 관람, 음악 감상, 강연 참가, 북클럽 참여, 친구들과의 모임 등 다기능 문화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이용자들에게 자료실, 문화센터, 갤러리, 박물관, 세미나, 실험실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책과 사람, 사람과 예술작품, 사람과 과학적 실험, 사람과 휴식,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준다. 문화와 예술과 창작과 레저를 함께하는 교류공동체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공공도서관의 본질은 단순히 자료의 소장을 넘어 소통과 공유를 통한 문화 생산과 향유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공공도서관은 ‘사람’을 위한 공간임을 거듭 확인시켜주고 있다.
조금주_작가, 넥스트 라이브러리 대표
작가, 넥스트 라이브러리 대표. 도곡정보문화도서관과 반포도서관 관장을 역임했다. 2023년 1월 1일, 도서관 건립 컨설팅, 운영 자문, 사서 교육 등 도서관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도서관의 미래를 기획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 도서관 연구소 ‘넥스트 라이브러리(Next Library)’를 열었다. 쓴 책으로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힘, 도서관》(2015),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2017)이 있다.
외국의 공공도서관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들제법 오랜 기간 도서관에서 근무를 했던 내게도 외국의 공공도서관에 가면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있다. 핀란드의 칼리오도서관(Kallion Kirjasto)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중년의 여성 이용자가 개와 함께 자료실로 당당히 들어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은 다른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개나 고
전자 티켓 하나로 유럽 전역을 누비고 다니다두 달 동안 유럽의 도서관을 탐방하고 돌아왔다. 공공도서관의 최신 트렌드와 코로나19 이후 도서관의 변화와 대응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새로 건립된 도서관이나 대규모 공공도서관들을 중심으로 다니다 보니 도시와 도시를 여행하며 국경을 자주 넘나들게 되었다. 총 16개국 62개의 도서관을 방문했는데, 주로 유레일패스를
도서관에서 누리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물소리 바람소리만으로 가득한, 고즈넉한 대나무 숲을 스님과 남성 배우가 걸어간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삐리리 울리면 배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고 한다. 1998년 시청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통신사 TV 광고다. 이 광고는 어디에서나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