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되면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사서들 역시 바빠진다. 사서들이 맞이하는 겨울은 어떤 모습일지, 《나는 도서관 사서입니다》의 저자, 홍은자 사서의 이야기를 글로 만나본다.
기억에 남는 겨울
2년 전 겨울은 특별했다. 찬바람이 불 즈음이면 남은 예산 집행과 결산, 새해 프로그램 기획 등으로 정신없이 바빠지는 게 사서의 숙명이지만, 그해에는 전에 없던 큰일을 덜컥 맡아버렸다. 새로 문을 여는 도서관 개관 준비팀에 들어간 것이다. 게다가 이듬해 봄에 개관한다는 말을 듣고 준비 작업에 착수했는데 웬걸,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정이 갑자기 연말로 앞당겨지며 나를 포함한 팀원들 모두 반쯤 혼이 나간 상태로 일해야 했다.
공사도 채 끝나지 않은 개관 전 도서관 건물의 겨울은 혹독했다. 난방은 당연히 들어오지 않았으니 실내에서도 패딩과 목도리, 담요로 무장하고 핫팩으로 손을 녹이며 작업을 해야 했다. 퇴근이 늦어지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주임님, 이게 가능한 일정일까요?”
팀원들은 불만에 앞서 불안에 떨었다. 내부 마감공사조차 안 된 건물을 어떻게 채워야 그럴싸한 도서관이 될까, 그것도 제한된 시간 안에!
하지만 걱정은 잠시였다. 공사가 끝난 뒤 서가를 들이고 책을 채우고 독서 및 전시 공간을 꾸미기 시작하니 휑뎅그렁했던 공간이 제법 밝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팀원들도 신이 나서 개관 전날까지 시설과 기기를 점검하고, 장식을 하고, 이용자를 맞을 준비를 했다. 그렇게 문을 연 곳이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까망돌도서관’이다.
그 겨울이 사서 생활 중 가장 많이 배우고 즐겁게 일했던 때였다. 직접 새 도서관을 꾸며 문을 여는 건 사서에게도 흔치 않은 경험이다. 다양한 이용자와 그들의 독서, 문화 활동, 상호 소통 등을 상상하며 공간을 채워가면서 십여 년을 일한 도서관 공간이 하나하나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고 할까.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 포근한 도서관 열람실에서 외투를 벗고 느긋하게 책을 읽는 아이들을 보면 시린 손으로 일했던 그 겨울이 더욱 보람차게 느껴지곤 한다.
사서와 도서관이 맞이하는 겨울이란?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책과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공간이다. 특히 겨울에는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도서관을 일상적으로 방문해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공공도서관 사서들은 겨울방학 시즌이 되면 독서 모임을 새로 꾸리고 동화구연 같은 독서 프로그램, 북 트리 만들기나 쿠키 만들기 같은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야외 활동이 어려운 겨울에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도서관과 친해질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도서관이 난방 등 겨울철 시설 관리에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다행히 대부분 도서관은 다른 공공시설과 달리 겨울철 난방에 인색하지는 않다. 어떤 공공도서관은 이용자들이 뜨끈한 바닥에서 엉덩이를 지지며 책을 읽을 수 있게 ‘온돌 열람실’까지 마련해둘 정도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얼굴을 때리는 날, 따뜻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문화 프로그램까지 즐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알찬 하루가 있을까!
서울시는 내년 2월까지 ‘도서관은 핫하다’라는 캠페인도 진행한다. 서울도서관과 170여 개 구립도서관이 참여하는 행사로, 집 난방을 끄고 난방이 잘 되는 공공도서관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135개 도서관은 오후 6시 이후까지도 문을 연다고 한다. 사서들은 당장 연장근무로 힘들겠지만, 이용자들은 책을 가까이하며 집 난방비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탄소 배출까지 줄일 수 있다니 여러 모로 의미 있는 행사라고 하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최근 적지 않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서관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예산이 줄면 난방을 비롯한 시설 관리는 물론이요 장서 구입이 힘들어지고 각종 문화 프로그램도 넉넉하게 진행하지 못한다. 인건비 감축으로 사서 인력이 줄어 도서관 운영과 프로그램 기획의 전문성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몇몇 지자체에서는 예산 문제로 아예 도서관을 폐관했다는 뉴스도 나오는 상황이니, 난방이나 장서 구입 운운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해외에서 맞이한 이번 겨울
이번 겨울 나는 잠시 휴직하고 가족들과 미국 버지니아주에 머물고 있다. 직업병인지 틈나는 대로 이 지역 도서관들을 돌아보는데, 그럴 때면 부러움 섞인 감탄사를 자주 내뱉는다.
미국 공공도서관은 1인당 30~50권까지 대출이 가능하며, 연체료도 없고, 예약자가 없다면 대출이 자동으로 연장된다. 그만큼 장서가 풍부하다는 이야기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도 한인들을 위한 한국어 장서를 수백 권 비치하고 있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랴. 다문화 사회인 만큼 이곳 도서관들은 각종 언어별 서가를 갖추고 있고 문화 프로그램도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진행한다. 방문할 때마다 특정 주제에 따라 책을 추천하는 큐레이션 코너가 바뀌어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사서 인력이 풍부한 덕택일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공공도서관을 말 그대로 ‘공공 자원’으로 여긴다. 도서관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지적·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공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도서관을 문화 여가 및 복지의 수단으로 보는 인식이 강한 듯하다. 그러니 ‘급한’ 곳에 예산이 필요하면 도서관은 뒷전이 되는 게 아닐까.
지금 우리 도서관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하는 기성세대의 대부분은 과거 도서관다운 도서관이 부족하던 때에 성장기를 보냈을 것이다. 미국에서 도서관 확대를 지지하고 도서관에 크고 작은 후원금을 기부하는 사람들은 어릴 적 도서관을 자주 다니며 그 필요성을 절감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런 차이는 한 개인에게는 별 게 아닌 듯 보이지만 우리 사회 전체로 볼 때는 절대 무시 못 할 요소일 것이다.
다행히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걸음마 시절부터 공공도서관, 학교도서관 등 다양한 경로로 도서관을 접한다. 이런 경험의 축적이 앞으로 더 나은 도서관 환경을 만들고, 나아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크나큰 동력이 될 것이다. 올겨울에도 도서관의 그 포근한 열람실마다 풋풋한 이용자들이 그득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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