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로 출간 81주년을 맞은 이 책.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감명을 준다. 어릴 때 읽고, 성인이 되어 또 읽는 동화책 《어린왕자》를 조금 깊이 있게 살펴보자.
사막에 불시착하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삶의 궤도를 따라 바쁘게 돌고 있는 우리는 책 속의 조종사가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듯 때때로 뜻밖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정비소도 없는 사막에서 조종사를 도와줄 것은 며칠을 겨우 버틸 물이 전부다. 조종사는 어떻게 다시 날아갈 수 있을까? 번 아웃, 좌초, 불시착이라는 단어들은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거나 멈췄을 때를 의미하며, 그런 상태에 놓이면 우리의 마음은 불안해진다. 아이들도 어른과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며 때에 따라서는 어른보다 더 큰 아픔을 겪기도 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의 성장은 결핍과 고통을 필수 재료로 한다.
《어린왕자》 표지(더스토리) ⓒ예스24
작가 생텍쥐페리(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는 네 살에 아버지를, 열일곱 살에는 형을 먼저 떠나보냈다. 집안이 몰락하며 화가의 꿈이 좌절된 그는 결혼 생활도 원만하지 않았다. 또, 《어린 왕자》를 집필할 당시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작가들은 작품 속에 자기 모습을 위장하여 숨긴다. 책 속의 주인공이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고 비행기 조종사가 된 것은 작가의 삶과 닮았다. 실제로 작가 생텍쥐페리는 조난당한 비행사들을 구조하는 임무도 수행했었다. 책 속 조종사와 작가를 동일시하는 것을 넘어 조종사에게 자기 모습을 투영시키는 시간을 가져보자.
“사막이 아름다운 건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소행성을 떠나올 때 이동하는 철새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다면 비행기 사고를 당한 조종사는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가만히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누가 나를 도울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도 질문을 던져보자. 사막이 아름다운 건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지만 그건 너무 먼 가르침이다. 구원의 문제는 절대자에게 의지해도 쉽지 않다. 문제가 해결되는 동안 시간의 지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어떻게 버틸 것인가가 중요하다.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어린 왕자》를 통해 찾아보자.
아이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조종사는 "속을 터놓을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살아왔다"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게 지구로 불시착한 어린 왕자를 만난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원하는 '양' 그림을 얻기까지 조종사에게 몇 차례나 수정을 요구한다. 결국 둘은 양이 아닌 양이 사는 '상자'로 합의를 본다. 상자라는 사물과 관계를 맺고 상상력을 발휘해 무한한 이야기가 생성되는 순간이다. 상자는 상상의 여지를 담은 공간이다. 이런 빈 상자는 공간적, 시간적으로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고 창작의 원동력을 만들어준다. 그동안 다른 이들과 속을 터놓고 교류하지 못한 조종사가 어린 왕자를 만나 어렸을 때 본인이 그렸던 그림 형태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왕자의 채근 덕분이었다. 상자 속 보이지 않는 양은 어린 왕자가 생각하는 대로 커졌다가 작아지기도 하고 풀을 먹다가 잠이 들기도 할 것이다.
ⓒ교보문고
“나는 안타깝게도 상자 속에 있는 양을 보는 법을 알지 못했다.”
조종사는 어렸을 적 속이 보이는 보아뱀과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을 그렸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상자 속 양을 보지 못한다. 그렇지만 양 덕분에 어린 왕자와 가까워지고 어린 왕자의 비밀도 알게 된다. 여기서 그가 사막에서 만난 누군가가 낙타가 아닌 어린 왕자인 이유를 생각해보자.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 발달의 3단계(낙타, 사자, 어린이) 중 어린이를 성장의 최종 단계에 놓는다. 어린이는 창조를 즐기는 유희의 인간이며 자유롭고 자신의 의지로 획득한 세계를 가진다는 이유에서다. 조종사인 '나'는 어린 왕자와 만나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비행기 고장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조종사는 어디에서 여유를 얻고, 무엇으로 결핍을 채우며 버틸 수 있을까? 낙타나 사자의 관점이 아닌 어린이의 시선으로 본다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어린이의 시선으로 돌아가 상자 속 양을 볼 수 있을 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진짜 나의 모습을 찾게 될 수 있고,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인생 문제에 답이 보일 수도 있다.
시간을 지속시켜주는 상상력
여러 별을 여행하던 어린 왕자는 일곱 번째 별인 지구에 온다. 어린 왕자는 지구 사람들은 상상력이 없어 들은 걸 반복할 뿐이고 그저 각박하다고 말한다. 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줄 알았던 장미가 5천 송이나 있는 정원을 보고 슬퍼한다. 그때 여우가 나타나 ‘길들이다’, ‘관계를 맺는다’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결국, 어린 왕자는 관계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토대로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교보문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네 장미가 중요한 존재가 된 건,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단 하나의 장미, 유일한 나의 존재는 관계를 통해 혹은 시간을 지속시켜주는 상상력을 통해 더욱 견고해지고 풍부해진다. 어린 왕자는 그 관계를 책임지기 위해 뱀의 도움으로 지구를 떠난다. 인터넷의 발달로 네트워킹의 범위가 전 세계로 확장된 지금, 현대인은 관계에 피로를 호소하며 공허하고 덧없음을 느낀다. 접촉 없이 순간적인 접속으로 이루어진 관계는 책임의 무게가 가벼워 끊어지기 쉽다. 길들이는 시간의 누적보다 숫자로 나타내지는 관계의 누적은 결국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마음을 나눌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쌓아 공을 들여보면 어떨까?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부터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이 즐거워질지 모른다.
미래가 더욱 불확실해진 시대에서 우리는 사막에 불시착할 경우의 수가 더 많아졌다. 사막이라는 공간은 실존을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자 부활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어린이는 어른으로의 성장을 이루고, 어른은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순수한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소행성의 분화구를 청소하며 장미와 함께 살아가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 상상력을 맡겨보고 싶거나, 어느 날 찾아온 위기의 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답을 찾고 싶다면 어린 왕자가 다녀간 곳으로 떠나보자. 동이 틀 무렵 조종사가 우물을 발견하듯 책을 통해 어른이 되고 다시 아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허유진_숭례문학당 강사
현재 숭례문학당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그림책과 어린이 글쓰기 관련한 다양한 강연과 모임의 리더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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