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팟”은 독립서점, 도서관, 북카페, 복합문화공간 등 책과 관련된 이색 공간을 소개하고 해당 장소에 관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 서비스입니다.
북쪽으로 한강을 경계로 마포구와 마주하고 있고 남쪽으로 관악산을 비롯한 호암산, 독산연봉 등의 산악을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지역, 전철을 타고 지나가다 보면 사람들로 늘 복잡하게 붐비던 그곳, 이번엔 서울 영등포구로 향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문래동과 당산동에 위치한 독립서점과 북카페를 중심으로 방문했습니다.
그림책방 노른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6가 57
책과삶: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27길 16 한우리빌딩 1층 책과삶카페
새고서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1가 158-8 201호
영등포구는 1930년대에 군수 방직공장이 처음 들어선 후, 1960년대에는 제철, 제련, 제분 등의 기계·제조업체가 모여 공업 지대로 성장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문래동은 방직산업의 중심지로서, 지금도 그 시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문래동’이라는 이름의 유래에서부터 잘 드러납니다. 문래(文來), ‘글이 왔다’고 해서 문래동, 실을 감아 만드는 ‘물레’에서 변형되었다고 문래동, 문익점의 목화 전래의 이름을 따서 문래동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에 문래동에 큰 방직회사가 많이 있었다는 것에서 유추해보면 ‘물레’에서 ‘문래’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세 가지 유래만 보더라도 문래동과 방직산업 사이엔 상당한 연관관계가 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문래동에 위치한 ‘문래근린공원’에는 물레를 본따 제작한 커다란 크기의 조형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영등포 타임스퀘어 뒤편엔 영등포에 공장을 열고 방직산업을 일으킨 경성방직의 ‘구(舊) 사무동’이 있습니다.
문래동은 방직산업 말고도 한때 ‘철강 1번지’로 불릴 만큼 철강산업으로도 호황을 누렸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병참기지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영등포 일대는 △기계 △제련 △철강 등 중화학 공업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1970년대에 이르러 크고 작은 철공소나 자동차 정비소가 자리잡기 시작했고, △조선맥주 △OB맥주 △롯데삼강 △신한전기와 같은 대규모 공업단지가 들어서면서 공업지역으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산업 구조가 새롭게 재편되고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한 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이 일대는 과거의 명성을 잃게 됩니다. 결국 문을 닫는 철공소가 하나둘씩 늘어갔고, 문래동은 예전만큼의 활기를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직접 방문해 확인하니 작업에 몰두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작업 공간과 양옆에 나란히 늘어선 화물차량들 사이로 크게 울리는 기계음, 비릿하게 올라오는 쇳가루 냄새는 여전히 옛 문래동을 느끼게 합니다. 각양각색의 그라피티와 벽화가 작업장 출입구에 그려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 갤러리문래 골목 숲길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그저 낡은 공업지대로 전락할 것 같았던 문래동은 저렴한 임대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을 오래된 철공소들과 으슥한 골목들 사이사이에 녹여냈고, 그렇게 빛바랜 철공소 대문을 비롯한 골목길은 화려한 색의 벽화로 물들었습니다. 또, 2010년 서울문화재단이 예술가들을 위해 설립한 ‘문래 예술공장’이 문래동 골목 한가운데 들어서면서 이곳은 이른바 ‘문래창작촌’으로 재탄생합니다. 골목길 사이사이에 있는 독특한 분위기의 식당과 카페들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그곳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문래창작촌엔 ‘갤러리문래 골목 숲길’이라는, 예술가 감성이 물씬 풍기는 골목길이 있습니다. 여러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와 수공예 작품 등을 전시해놓은 갤러리와 식당, 카페 등이 함께 있어 예술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1. 그림책방 노른자
가장 먼저 방문한 독립서점은 ‘그림책방 노른자’입니다. ‘그림책방 노른자’는 아파트 단지의 오피스 건물에 위치해 있습니다. 높게 솟아오른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한 서점을 보며 내부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습니다.
그림책방 노른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6가 57
2층으로 올라서자 노른자를 상징하는 색깔인 노란 빛깔에 ‘책’이라고 크게 쓰인 포스터가 이곳이 ‘그림책방 노른자’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습니다. 서점 안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담했습니다. 넓게 트인 창문 주위에 놓인, 책장을 가득 메운 그림책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그림책은 그저 어린이들만을 위한 책인 줄 알았는데, 제가 보고 있는 책들 모두 성인들이 읽는 그림책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요즘은 성인들도 그림책을 자주 읽는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그림책은 유아나 어린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큰 편견인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서점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비치된 책들은 서점 내에 있는 책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으니 그림책에 관심이 있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규모는 작았지만 서적은 알차게 구비돼 있었습니다. 비치된 책들은 그때그때 정해진 테마에 따라 큐레이션되고 있었으며, 특히 노란색이나 파란색같이 선명한 색깔의 표지로 꾸며진 책들은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과 어우러져 생동감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책들 사이에는 계란형의 실뭉치들이 있는데 실뭉치들을 풀어보면 샛노란 노른자가 나오지 않을까 상상도 했답니다.
서점을 둘러보다 문득 서점 이름이 왜 ‘노른자’인지 궁금해 사장님께 여쭤보니, 책방을 함께 꾸렸던 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서점 이름은 무조건 쉬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어린이들이 자주 읽는 그림책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노란색과 둥글둥글한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노른자’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얘기를 듣고 나서 다시 책방을 둘러보니 노른자의 귀엽고 선명한 느낌이 더 잘 다가왔습니다.
노른자에선 그림책 모임, 인문학 독서모임, 어린이들을 위한 예술작업 등 다양한 모임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러 그림책 작가들이 이곳을 방문해 모임을 진행했으며, 제가 방문했던 날 역시 오전에 수업을 진행한 이후였을 만큼 규모는 작지만 각종 책 모임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소설가와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연수 작가도 올해 초 노른자에 방문해 모임을 진행한 듯 책방 한편에 다녀간 흔적을 남겨놓기도 했습니다.
02. 책과삶
그림책방 노른자를 나와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영등포구청역 근처에 위치한 북카페 ‘책과삶’입니다.
책과삶: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27길 16 한우리빌딩 1층 책과삶카페
‘책과삶’은 독서토론논술 교육 프로그램으로도 잘 알려진 ‘한우리’가 있는 빌딩 1층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카페에 들어서기 전 ‘회훈’과 ‘이념’을 담아 새긴 조형물에서부터 카페의 콘셉트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 카페 이름을 ‘책과삶’이라고 지었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3~4시경에 방문한 책과삶은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러 오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다행히 아직 남아 있었던 빈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느낀 책과삶은 북카페이지만 ‘카페’라는 분위기보다 ‘북’이라는 분위기가 더 어울리는 곳이었습니다. 카페를 찾은 이들 대부분은 노트북을 펴고 공부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고, 지인과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또한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어 흡사 독서실과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실제로 책과삶에선 공부하러 오는 이들을 위해 뒤편에 두 개의 미팅룸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화이트보드는 물론 TV도 갖추고 있어 큰 소리로 카페에서 모임을 진행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던 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인 것 같았습니다. 여러 카페에서 ‘카공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어쩌면 책과삶은 그들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삼면이 큰 책장으로 둘러싸인 곳엔 신간도서와 한우리에서 추천하는 필독도서 등이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요, 구비된 책을 읽는 손님들이 보여 저도 책 한 권을 골라 독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간도 분리돼 있어 책을 읽고자 이곳을 방문한다면 사진 속 공간에 자리잡고 독서 하기를 추천합니다.
3. 새고서림
세 번째로 방문한 독립서점은 ‘새고서림’입니다. 책과삶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며 버스를 타면 1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영등포구청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새고서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1가 158-8 201호
‘새고서림’은 도서출판 새벽고양이가 운영하는 독립서점입니다.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되며 서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운영시간이 변동되기도 합니다. 서점은 새벽고양이라는 몽글몽글한 단어와 달리 골목 안 청과시장 안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입구부터 고양이 사진과 일러스트가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어 사장님의 고양이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2층 복도를 환히 비추는 입간판이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잔잔한 노래와 함께 서점에 가득 찬 책들이 보입니다.
앞으로 늘어선 책들은 신간인 ‘오늘의 서재’,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책인 ‘책방지기의 서재’, 책 속의 한 문장만을 보고 취향에 따라 고르는 책 ‘운명의 서재’가 나란히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는 다양한 테마와 독특한 콘셉트와 디자인의 책들이 즐비했습니다. 카세트테이프나 통장 모양을 하고 있는 책, 밸크로로 앞표지를 구성한 책, 엽서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한 편의 문학을 실은 책 등 접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도서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또 그 옆으로는 마지막으로 남은 책을 모아둔 ‘유일의 서재’, 소설을 선호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소설의 서재’도 작게 마련돼 있었습니다.
새고서림에는 책 외에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있습니다. 고양이 일러스트가 새겨진 머그컵, 책갈피와 메모지, 마스킹 테이프, 스티커 등 다양한 소품들이 가득했습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소품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책방 사장님의 고양이 사랑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새고서림의 곳곳엔 고양이의 흔적이 녹아 있습니다. 테이블 너머 소파엔 고양이가 그려진 담요가 걸려 있고, 바로 그 옆엔 고양이 이미지가 그려진 2024년 달력이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흔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서점 왼편에 ‘Mellow Magazine’을 모아 놓은 코너였습니다. 《Mellow》는 반려동물 전용 잡지로 개와 고양이, 반려 가구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지는 않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로망과 애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유독 눈길이 갔습니다. 자세한 잡지 내용은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지만, 반려동물들의 사진이 가득 담겨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방문했던 여러 독립서점들보다 유독 볼거리가 많았던 서점이었습니다. 서점에 들어서서 바로 왼편에 위치한 ‘비밀의 서재’는 문장만 보고 책을 골라보는 콘셉트로, 캐비닛을 열면 나를 위한 책과 함께 추천하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카운터 앞엔 ‘오디오 영상북’이라는 이름으로 항공권 모양의 책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독특한 콘셉트의 책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 책방지기 사장님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창가엔 자신의 사연과 평소 궁금했던 내용의 질문들을 메모지에 남기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공유하는 ‘라디오의 서재’ 코너도 있었습니다. 메모로 남긴 사연과 질문은 라디오 형식으로 제작해 인스타그램으로 공유한다고 하니 방문하시는 분들은 한번 참여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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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방문한 독립서점들은 예술과 삶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들이었습니다. '그림책방 노른자'는 그림책 모임, 인문학 독서모임, 어린이를 위한 예술작업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일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주는 서점이었고, '책과삶'은 책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서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새고서림'은 독서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책이라는 예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느끼고 싶다면 방문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취재/글 : 나인턴*
*책과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양한 해석과 촬영기법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며, 언젠가 작품에 나왔던 장소들을 방문해 작품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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