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배경으로 하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마을을 둘러싼 문학적 · 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
경향수가 만해문학박물관을 방문하고 쓴 에세이를 6월호에 싣는다.
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문학관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전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늘 고민하게 된다. 이와 함께 건축물의 역사적 의미, 주변 자연환경 등도 문학관의 가치를 확충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방문객은 내부의 전시물과 외부 환경을 복합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연환경이 더 강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
내설악 백담사 입구에 자리한 만해문학박물관은 이러한 외부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설악산을 배경으로 하는 자연환경은 물론이고, 청년 만해가 크게 발심하고 단단한 각오로 승려의 길로 들어선 곳, 쌓인 옛 전적을 읽고 읽으며 사유의 깊이를 더한 곳, 냉철한 통찰로 세계를 내다보고 민족 앞에 무엇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던 곳, 깊은 철학적 사유를 꽃으로 피운 《님의 침묵》을 탈고한 곳, 곧 만해 내면의 성숙과 개오를 이끈 백담사가 지척에 있다. 깊은 산중 백담사에서 한 걸음 가까이 대중에게 다가서 자리잡은 곳이 만해마을이고 만해문학박물관이다.
동홍천 IC를 빠져나와 44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홍천읍을 가로질러 흐르는 화양강이 눈에 들어온다. 미시령 가는 길, 산세는 험해지고 오른쪽으로 ‘12선녀탕’ 팻말이 보인다. 12선녀탕 길목, 설악의 수렴동 계곡을 흘러온 물이 모여 잠시 쉬는 한적한 곳에 만해문학박물관이 있다.
강원도에서는 1997년부터 강원도를 빛낸 역사 문화예술인을 선정, 선양하는 ‘강원의 얼 선양사업’을 추진해왔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2003년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주축이 되어 인제군 북면 용대리 1136-5, 2천여 평의 대지에 만해마을을 조성했다. 마을에는 만해문학박물관을 비롯하여 문인의 집, 만해수련원, 서원보전 등 교육 시설과 숙박 시설도 갖추고 있다. 매년 8월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주관하는 만해축전이 열리고 만해상을 시상하는 곳이 여기다.
만해마을에 도착하면 처음 마주하는 것이 경절문(徑截門)이다. 좀 생소한 경절문은 선(禪)을 닦음에 여러 단계와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시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이야 어림없는 일이다. 이어지는 ‘평화의 시벽(詩壁)’에는 2005년 이곳에서 개최된 세계평화시인대회에 참가한 세계 시인의 작품 여러 점을 동판에 새겨 걸어놓고 있다.
만해문학박물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세미나실, 회의실 등을 갖추고 있다. 1층 로비에서 ‘만해 연보’와 만해의 친필 ‘풍상세월 유수인생(風霜歲月 流水人生)’의 패널을 만나게 된다. 풍상의 강도, 그것의 인식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만해가 걸어온 혹독한 세월의 바람이 스쳐 지난다.
1층 상설전시실에는 한국문학사의 대표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잡지 《유심》과 만해한시집, 기미독립선언서 등 소장 유물과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주제별로 본 만해 한용운’, ‘연대별로 본 만해 일대기’ 패널이 만해가 걸어온 곧은 길을 이끌고 있다. 언제 읽어도 가슴 뛰는 <조선 청년에게>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1932년에 발표된 이 글은 당시 실의에 빠져 있을 젊은 청년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을 것이다.
“하늘과 땅을 둘러보아 조금도 부끄럽지 않는 옳은 일이라 하면 용감하게 그 일을 하여라.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참고 가거라. 그 일이 칼날에 올라서는 일이라도 피하지 말라.”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오면 문인의 집 바로 앞에 북카페 ‘깃듸일 나무’가 있다. 깃듸일 나무는 만해의 시 ‘생명’에 나오는 시어다. ‘님이여 끝없는 사막에 한 가지의 깃듸일 나무도 없는 작은 새인 나의 생명을 님의 가슴에 으스러지도록 껴안아 주셔요.’ 그 깃듸일 나무다. 안으로 들어서면 상쾌한 나무 향기가 은은히 번진다. 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며 잠시도 편안히 쉴 수 없었던 만해의 삶을 생각한다. 왜, 그는 그렇게 살았을까?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백담계곡에서 읽는 《님의 침묵》
만해마을에서 백담사까지는 마을버스를 타고 8킬로미터 정도 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만해 흉상, ‘나룻배와 행인’을 새긴 시비가 반긴다. 사찰 경내에는 만해기념관이 있고 만해당, 만해적선당, 만해교육관 등이 늠름하게 서 있다. 그만큼 만해를 생각하고 따르자는 뜻일 것이다.
눈보라 몰아치는 설악의 겨울, 이곳 백담사 영재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고 강철 같은 수행의 의지를 다지던 스물일곱 청년 만해. 그 후 20년이 지난 1925년 가을,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새벽, 세상을 돌아 나온 원숙한 지성의 만해가 《님의 침묵》을 탈고하고 붓을 내려놓는다. 백담계곡 물가에 앉아 《님의 침묵》을 펼친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악산의 무거운 그림자는 엷어 갑니다.
새벽종을 기다리며 붓을 던집니다.
만해는 이 깊은 산중에서 잠 못 이루고 시를 썼을까? 시인으로 독자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고,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자신의 작품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꽃수풀에 앉아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는 것’과 같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단지 만해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고 적었다. 기루어 하는 것, 그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다. 일차적 대상은 연인이겠지만 조국, 중생, 불법까지 확장된다. 만해가 말하는 사랑은 욕망에서 벗어나 자유자재한 경지에 도달했을 때 진정한 사랑이 된다. 사적 욕망이 개입된 사랑의 님은 그림자일 뿐이다.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지금까지의 내 사랑은 엷은 그림자였을지도 모른다. 눈을 감는다. 만해는 침묵하고 있고 백담계곡 흘러가는 물소리, 스쳐가는 바람소리가 법문이 된다. 올해는 만해 입적 80주년이다. 선학원에서는 여러 추모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80주년 표어를 ‘당신의 얼굴이 달이기에, 나의 얼굴도 달이 되었습니다’로 정했다. 만해의 시 ‘달을 보며’의 한 구절이다. 만해가 바라본 달은 누구였을까? 지금 어떤 모습일까? 만해문학박물관, 백담사에서 또 다른 달을 가슴에 담고 발길을 옮긴다.
명당산과 안산이 감싸고 있는 내설악 산자락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예술인촌, 1997년 20여 명의 예술인들이 인제군과 힘을 모아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자연 속에 조성한 마을이다. 굳이 예술인이 아니더라도 한두 주 푹 쉬다 가고 싶은 한가하고 고즈넉한 마을이다. 마을에 있는 인제 내설악 미술관에서는 원로작가 초대전, 현대미술 특별전, 기획전 등이 수시로 열리고 있다.
예뜰은 예술인촌 첫머리에 있다. 황토를 소재로 한 초가 양식의 건물이 고향집에 온 것 같은 푸근한 느낌을 준다. 이곳의 대표 음식은 능이토종닭백숙이다. 닭백숙은 친숙한 토종음식이다. 옛 사람들은 무더운 여름이면 하루쯤 날 잡아 하던 일 잠시 멈추고 더위를 식히고 영양 보충도 할 겸 뒷산 계곡을 찾았다. 차가운 계곡물에 탁족을 하고 시원한 나무 그늘에 둘러앉으면 파, 마늘, 듬뿍 넣어 푹 삶아 만든 푸짐한 닭백숙이 등장한다. 이렇듯 닭백숙은 소박하고 정감 가는 음식이었지만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건강에 관심이 높아진 요즘에는 능이를 비롯하여 황기, 대추, 밤 등을 끓인 능이한방백숙이 보편화되었다.
문학박물관 오는 길에 미리 주문했기에 음식이 바로 나왔다. 능이를 아끼지 않고 푸짐하게 넣어 끓인 능이닭백숙이 지친 식욕을 당긴다. 곰취나물, 가지무침, 고추장아찌, 석박지, 배추김치, 열무김치 등 밑반찬의 정갈함에 정성이 느껴진다.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서 음식이 정갈하고 담백하다. 맛의 비결을 물었다.
“특별한 맛의 비결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 가족이 먹는 음식이다’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만들고 있습니다.”
능이버섯과 어우러진 쫄깃한 토종닭의 식감, 대파의 풍미, 깊게 우러난 진한 국물 맛은 정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집 요리의 식자재는 가급적 국내산을 사용한다고 한다.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장 종류는 직접 담가서 사용하고 여름철 풋고추, 상추, 오이, 가지 등은 텃밭에서 직접 키워 사용한다고 한다.
이 집의 음식 맛을 더해주는 것은 고풍스러운 내부 인테리어다. 오래된 앤티크 가구와 목제 소품들이 은은한 조명 아래 빛난다. 예술인촌을 소재로 한 유화 작품과 시화(詩畫)도 전시하고 있다. 더구나 손님이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문학 서적을 비치하고 있다. 어찌 보면 북카페 같은 분위기다.
“예술인촌 내에 있어 식당 주변의 풍경이 고즈넉하고 편안합니다. 이곳에 오시면 음식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편안하고 일상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힐링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주인장은 맛보라고 청국장 한 그릇을 들고 나온다. 청국장도 이 집에서 인기 있는 메뉴라고 한다. 정성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현관 앞 벽면을 가득 채운 문학 서적에 눈이 간다. 능이백숙과 책,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이 음식점에서는 잘 어울린다, 음식을 만드는 정성과 나지막이 내려앉은 설악의 다른 모습이 이곳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주소: 강원도 인제군 북면 예술인촌길 66-32
·전화: 033-462-9627
경향수_에이치에스라이팅 대표
경희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에이치에스라이팅 대표로 있다. 대학 시절 음악다방에서 DJ를 맡으면서 다양한 음악에 빠졌다. 회사에 입사해서 전국으로 출장을 다니며 지역의 특색 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었고 많은 조리장을 만났다. 틈틈이 음악과 음식이 어울리는 글을 쓰고 있다.
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담고 있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마을을 둘러싼 문학적·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문학관 기행 연재를 맡은 경향수 대표가 강릉의 김동명문학관을 방문하고 쓴 에세이를 12월호에 싣는다.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가을 단풍 짙게 물든 대관령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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