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어린이만 읽는다? 혹자는 글에 익숙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얘기하지만, 최근 그림책은 성인 독자에게도 큰 인기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이해시키기 위해 읽는 경우도 있지만 그림책을 통해 위로받는자 하는 독자도 점점 늘고 있다. 성인과 어린이가 함께 보고 감동할 수 있는 한 권의 그림책을 펼치고 좀더 깊숙히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바꿔주는 책
우리가 사는 집에는 밖을 향한 다양한 ‘창’이 있습니다. 창의 모양에 따라 밖의 풍경도 달라 보이는데요. 작은 창이 답답해서 큰 창으로 바꾸면 단지 크기만 바뀌었는데도 마음속까지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죠. 마찬가지로 우리 생각의 창도 때로는 창 모양에 변형을 주거나 크기를 바꾸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쑥쑥 키워주기 위해, 말랑말랑한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고 싶을 때 세상을 향한 창을 깨끗이 닦거나 창을 바꾸게 됩니다. 그 활동은 책이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는 것으로 가능할 수 있죠.
이수지 작가의 <토끼들의 밤>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그동안 갖고 있던 창을 바꿔주는 그림책입니다. 작가는 생소한 토끼의 모습을 통해 자연과 동물, 인간과의 공존을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주로 이미지로 봅니다. 짧은 순간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여러 곳에 활용합니다. 그렇지만 반복된 이미지는 감성을 무뎌지게 하죠. 일상을 살다가 동화와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어떨까요? 숲에서 만난 작은 새가 나를 따라오기도 하고 고라니가 출몰한다는 지역에서 진짜 고라니 가족을 만난다면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남게 될 것입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뜻밖의 만남은 정지 화면으로 다가오고 잠시라도 환상의 세계에 빠지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작가는 우연히 영국의 토끼 출몰지역에서 토끼를 만났던 경험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작가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든 그림책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히죠. 토끼와 아이스크림 트럭의 조합은 아이들의 눈길을 끌어당기기에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아이들은 트럭 아저씨와 토끼 중 누구에 감정이입을 할까요? 책이 끝나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책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무더운 밤은 이야기가 싹트는 시간
<토끼들의 밤> 표지 ⓒ예스24
표지를 보면 캄캄한 밤하늘을 나는 역동적인 토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뒷표지에는 토끼가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앉아 있고요. 토끼는 주로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입니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토끼지만 야행성인 토끼의 특성을 잘 살렸죠.
먼저, 밤의 이중성을 살펴볼게요. 대다수 어린 아이들은 밤을 두려워합니다. 낮시간에 아무리 씩씩하게 놀았던 아이라도 잠자리에 드는 일을 힘들어합니다. 깜깜한 밤은 불을 끄면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막연한 불안감을 갖게 하죠. 요즘은 어른도 불면의 밤으로 많은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밤은 마법을 부려 온갖 이야기를 탄생하게 합니다. 긴 밤의 두려움과 무료함을 잊기 위해 글을 쓰고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으니까요. 더구나 뜨거운 여름날이 계속되는 밤이라면 더욱 잠들기 힘들죠. 그래서 등골이 오싹한 공포물도 여름에 더 인기가 많은가 봅니다. 덥고 혼자 잠들기 힘든 밤 아이들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잠을 청하죠. 그러다 언제인지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듭니다. 이야기를 듣거나 낮에 보았던 특별한 일들은 꿈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밤은 무섭기도 하지만 환상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시간이기도 하죠.
표지는 작가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장면을 뽑은 것인 만큼 좀더 자세히 보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제목과 연결하며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책에 들어가기 전 기대 소감을 나누는 일을 권합니다.
깜깜한 밤인가? 검은 천인가? 여기는 어디일까? 토끼는 무엇을 하는 중이었을까? 등등 책 속으로 들어가기 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면 책장을 넘기는 동안에도 미리 생각해둔 스토리와 비교하며 상상력을 키우게 됩니다. 그림책을 즐기는 어른들도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굳게 닫아둔 동심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어떨까요? 그림책이지만 함께 토론할 부분은 많습니다.
뜨거운 여름 밤, 아이스크림 트럭 앞에 토끼들이 나타난 이유는?! 어느 뜨거운 여름날 토끼는 ‘로드킬’을 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니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면 좋습니다. 낮시간이 주로 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이라면, 저녁놀이 짙어질 무렵부터는 야행성 동물들의 시간이 됩니다. 아이스크림 트럭을 몰고 밤길을 운전하는 아저씨는 한 무리의 토끼들을 만납니다. 트럭을 알아서 피할 줄 알았는데 토끼들은 위협적으로 뛰어 날아듭니다. 그림책의 진행 방향은 왼쪽에서 오른쪽인데 앞모습을 볼 수 있는 토끼들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날아옵니다. 커다란 뒷발도 보이면서요. 사람에게 토끼는 두려운 대상이 아닌데 묘하게 이 부분에서 공포가 느껴집니다. 아이스크림 트럭 아저씨의 표정도 긴장한 모습이고요. 토끼들의 시간에 토끼들의 터전으로 들어온 아저씨는 침입자입니다. 더구나 맨 앞 장면이 토끼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면 복수를 하고 싶은 대상이겠죠.
<토끼들의 밤> ⓒ예스24
토끼들은 삼삼오오 모여 불 켜진 아이스크림 트럭을 응시합니다. 그러다 앞뒤로 트럭을 빙 둘러서죠. 아저씨는 높이 날아오르는 토끼와 눈이 마주치고 정신을 잃고 맙니다. 이 부분부터 책은 밝아집니다. 토끼의 배 부분의 색깔이 점점 확대되면서 아저씨가 누워있는 길과 연결됩니다. 아저씨는 왜 밖에 나와 있을까요? 아저씨는 토끼가 출몰하니 조심하라는 표지판을 돌아보지만 어젯밤 일이 가물가물합니다. 꿈을 꾼 것인지, 현실에서 겪은 일인지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책은 아저씨가 트럭을 몰고 숲길을 빠져나가고 토끼들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아저씨는 일상으로 무사히 돌아갔겠죠? 아무리 무서운 일을 당했더라도 그 일이 꿈처럼 느껴진다면 마을로 돌아가 평소에 했던 일을 계속할 수 있을 테니까요.
<토끼들의 복수>부터 <토끼들의 밤>, <아이스크림 대작전>까지 이 책은 여러 개의 제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이야기가 다층적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처음 스위스에서 출판되었을 때의 제목은 ‘토끼들의 복수’, 우리나라에서는 ‘토끼들의 밤’, 이수지 작가와 자녀들이 최근 다시 붙인 ‘아이스크림 대작전’까지 다양합니다. 환경을 중시하는 관점에서는 토끼들의 복수가, 환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다양한 상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토끼들의 밤’이 더 당연한 제목으로 받아들여지겠죠.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토끼들이 아이스크림 트럭을 발견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작전을 펼치는 모습으로 읽히기도 하겠죠.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말을 걸어주는 부분은 다를 수 있으니 제목도 다양합니다.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신체적으로 약자이므로 책을 볼 때 약한 동물의 편에 서게 된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으로 토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아이들의 환한 모습이 떠오르네요.
아이들이 어떤 제목을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들어보고 다른 제목을 붙여보는 활동도 흥미있을 것 같아요. 또 책의 앞 이야기와 뒷 이야기를 지어 이야기를 확장해봐도 좋겠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아이들과 함께 <토끼들의 밤>을 만나보세요.
허유진_숭례문학당 강사
현재 숭례문학당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그림책과 어린이 글쓰기 관련한 다양한 강연과 모임의 리더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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