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그림책이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용 책으로만 주로 제작되었던 그림책이 이제 전 세대를 아우르는 하나의 책으로 그 위상을 높인 것이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K-그림책을 살펴본다.
최근 몇 년 새, 세계적으로 K-그림책의 인기가 치솟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 그림책의 역사는 30~40년 정도로 그리 길지 않다. 90년대만 하더라도 번역 그림책과 상당한 수준 차이를 보이면서 주로 영유아 교육용 콘텐츠로 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질적으로 양적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는데, 이는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시도하는 작가군의 등장과 이를 수용하는 출판계의 토양이 자리잡은 결과일 것이다.
우리 그림책의 눈부신 발전은 짧은 기간 안에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데도 성공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매년 최고의 그림책을 선정하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수상하고 있고, 짧은 역사에도 이미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과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연이어 수상함으로써 우리 그림책의 위상이 한껏 높아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2023년 정부에서는 대한민국 그림책상을 제정했다. 수입 도서인 경우 관련 분야 수상 여부는 독자의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 나라나 작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때 그것이 해당 책의 질적 수준을 보증해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그림책이 해외 독자의 선택을 받는 과정에 대한민국 그림책상은 그간 갖지 못했던 상당한 권위를 담보해주리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최초,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에 빛나는 백희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이하 알마상)은 스웨덴의 유명한 동화작가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기리기 위해 그녀가 타계한 2002년 스웨덴 정부가 제정한 상이다. 알마상은 최고의 예술적 자질과 함께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리를 옹호한 린드그렌의 정신과 통하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스토리텔러, 독서운동가 혹은 단체를 대상으로 선정하며, 특히 작품에 깃든 인도주의적 가치를 중시한다. 스웨덴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바탕으로 500만 크로나(약 6억 원 정도)의 상금도 같이 주어지는 이 상은 연륜이 쌓이면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 될 전망이다.
알마상을 받은 백희나는 너무나 유명한 《구름빵》을 시작으로 《달 샤베트》 《장수탕 선녀님》 《알사탕》 《이상한 손님》 《꿈에서 맛본 똥파리》 등 수많은 그림책을 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그림책 작가다. 작품 대부분이 인형과 소품을 직접 만들고 배치한 뒤 사진을 찍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게 특징이다. 《구름빵》이나 《달 샤베트》처럼 상상력은 자유롭고 《장수탕 선녀님》처럼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깨는 시도는 독특하다. 그러면서도 대부분 작품에 한결같이 인간과 생명에 대한 연민이 서려 있다.
《구름빵》에서 아이들은 구름으로 만든 빵을 타고 둥둥 날아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출근하는 아빠를 응원하고 《달 샤베트》에서는 부지런한 반장 할머니가 뚝뚝 녹아떨어지는 달 물을 받아 더위와 삶에 지친 이웃의 목마름을 달래준다. 《이상한 엄마》에서는 바쁜 워킹맘을 대신해 이상한 선녀 엄마가 나타나 아픈 아이를 돌봐준다. 삶에 찌든 아빠, 더위에 지친 주민들, 삶이 버거운 워킹맘의 고단함이 한순간에 위로받는다.
그의 대표작 《장수탕 선녀님》은 선녀라면 무조건 젊고 예뻐야 한다는 우리 선입견을 단번에 깨버린다. 하늘로 올라갈 타이밍을 놓쳐 장수탕에서 늙어버린 선녀님이라니! 주름살 가득한 충격적 외모로 나타난 이 선녀님은 그러나 엄마와의 분리를 앞두고 세상이 낯선 아이에게 기꺼이 조력자가 되어주며 엄마의 품 밖에도 따뜻한 타자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오랫동안 장수탕을 벗어나지 못한 채 늙어가던 선녀님 또한 뜻하지 않게 아이에게 위로받으면서 선녀로서 전능한 힘을 되찾는다. 이처럼 작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위로를 담고 있어 작품에 깃든 인도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알마상의 취지에 잘 부합한다.
대한민국 최초,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이수지
1956년 제정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이하 안데르센상)은 IBBY에서 주관하는 상으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칭할 만큼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 이 상은 평생의 업적을 통해 최고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바탕으로 세계 아동문학계에 중요하고 지속적인 공헌을 해온 글 작가 및 그림 작가에게 수여된다. 창조적 상상력과 예술적 표현, 작가의 혁신적 작업의 지속성 등이 중요하게 평가되는데 이 상을 2022년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 이수지가 받았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그림책 3부작인 《거울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는 이수지의 손꼽히는 대표작들이다. 이들 그림책은 제본선의 위치를 달리하는 물성의 실험이 두드러지는데, 세 권이 모두 같은 크기이면서 각각 제본선의 위치를 다르게 함으로써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루시드 폴이 노래하고 이수지가 그린 《물이 되는 꿈》에서 작가는 음악과 그림이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는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한다. 그림책의 면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 펼치면 물이, 꽃이, 씨가, 바다가, 그 모든 것들과 등가의 존재로서 인간이 결국은 하나의 세계로 완결된다. 음악과 그림 서사의 연결은 《여름이 온다》에서 절정을 이룬다. 《여름이 온다》는 이수지가 안데르센상을 받던 그해(2022년)에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싱그러운 여름의 시작, 소나기의 전조, 쏟아지는 비와 밀려오는 폭풍우 등 ‘사계’의 긴박감은 그림책에 고스란히 표현되어 독자의 손아귀에 땀이 솟는다. 분수처럼 뿜어지는 음악과 여름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표정이 압권이다. 독자는 그림책 안에서 음악과 하나되어 마음껏 자신을 발산하는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된다.
이수지의 작품은 대부분 글 없는 그림책이다. 그런데도 꽉 찬 서사가 있고 그 서사의 중심에 호기심 충만한 어린이가 있다. 그의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표현은 《이 작은 책을 펼쳐 봐》에서처럼 다른 작가와의 협업 속에서도 빛이 난다. 《검은 새》 《거울 속으로》 등에서 자신을 포용하고 위로받던 독자는 《파도야 놀자》 《선》 《여름이 온다》 등에서 모든 억압을 풀어놓고 마음껏 즐긴다. 첫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후로 끊임없이 새롭고 혁신적인 작업을 통해 지속해서 걸작 그림책을 탄생시킨 이 모든 역량이 이수지가 안데르센상을 받은 이유일 것이다.
제1회 대한민국 그림책상 픽션 부문 대상 수상작 《사라진 저녁》의 작가 권정민
최근 몇 년간 우리 그림책의 위상이 급격하게 높아졌지만, 우리나라에는 그 위상에 견줄 만큼 규모와 권위를 갖춘 상이 없었다. 그러던 중 반갑게도 정부 주도하에 대한민국 그림책상이 마련되었다. 종합적인 예술성과 창의성, 혁신성에 더해 어린이를 포함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담았는가를 살피는 게 심사 기준이다. 대상 2편(픽션, 논픽션)과 특별상 5편, 신인상 1편을 뽑는 이 상의 제1회 픽션 부문 대상작은 권정민의 《사라진 저녁》이었다. ‘긴장감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시각적인 연출과 그로테스크한 유머로 작가의 시대적인 통찰과 예술성, 문학성이 빛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권정민은 인간의 삶을 조명하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는 인간의 무차별적 개발로 갑자기 집을 잃은 멧돼지들이 등장한다. 새집을 찾는 과정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는 그들의 당당함은 연신 웃음을 유발한다. 멧돼지들은 마침내 알맞은 새집을 찾게 되는데 그게 하필이면 인간의 대표적 서식지인 아파트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는데 그 모습을 보며 독자들은 마음이 복잡해진다. 누가 침입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호탕한 멧돼지들의 좌충우돌을 보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독자는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삶에 대해 오래오래 고민하게 된다.
권정민은 타자의 관점에서 인간을 조명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에서 화자인 식물들은 인간을 우습게 보기도 하고 인간에게서 뭔가를 배우기도 한다. 인간과의 관계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고 투덜거리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에게 우호적이다.
《엄마 도감》에서 타자의 시선을 담당하는 건 갓 태어난 아기다. 아기가 태어날 때 준비되지 않은 ‘엄마’도 같이 태어난다. 아이 앞에선 낯설고 두려워 쩔쩔매다가 자기 엄마 앞에선 다시 아기가 되는 이상한 엄마! 권정민의 그림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벼운 웃음을 토해내다가 문득 스스로 오만하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사라진 저녁》은 인간의 민낯을 은유 없이 드러내어 충격적이다. 클릭 한 번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관계없음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갑자기 배달된 살아 있는 돼지 한 마리! 시시각각 달라지는 돼지 표정과 혼란에 빠진 주민들의 행동이 섬뜩한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는 또 한 번 인간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당황했던 그들은 돼지를 처리하기 위해 모이고 의견을 나누고 도구를 주문한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관계를 형성했을 때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는지 그들은 알게 된다. 그들이 전과 다르게 흥에 차서 파티 준비를 하는 동안 돼지가 사라진다. 하지만 이미 그들에게 돼지는 의미가 없다. 앞으로 문 앞에 뭐가 놓이든, 이제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고 말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거면 된 것 아닌가?
권정민의 그림책은 타자의 눈으로 현재의 나를 보게 한다. 화자는 냉소적이고 서사는 유머러스하다. 그 때문에 실실 웃음을 흘리기도 하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도 한다. 하지만 그는 항상 서사 이면에 인간에 대한 연민을 숨겨놓음으로써 독자를 돌아보게 하고 끝내는 안심시킨다. 그것이 이 작가의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제1회 대한민국 그림책상 선정 공고에 609편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들이 응모되었다. 총 상금은 적은 편이었지만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작품이 몰린 것은 그간 우리 그림책 작가들이 얼마나 국가적인 관심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수출 지원과 같은 혜택도 무시할 수 없다. 세계 시장에서 우리 그림책의 경쟁력이 높아지려면 국가적 차원의 강력한 지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 그림책의 수준이 세계적인 만큼 서점에는 굵직한 상의 수상자 못지않게 내공을 자랑하는 다양한 그림책들이 많이 눈에 띈다. 책을 읽으라는 말 한마디 않고도 신나게 읽고 싶게 만드는 이은경의 《오리는 책만 보고》, 변화는 필요하지만 그 안에서도 진짜 내 것은 지키자고 말하는 정희선의 《다크 이야기》, 흔들리는 세상을 이기려고 애쓰기보다 때로는 세상에 나를 맡기고 흔들림도 즐기자는 이영림의 《달그락 탕!》, 어떤 관계에서도 ‘선’은 필요하다는 얘길 귀엽고 재치 있게 건네는 백혜영의 《이 선을 넘지 말아 줄래?》, 조그만 틈 하나만 있으면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 이순옥의 《틈만 나면》 등등. 정부 차원의 아낌없는 지원과 지금처럼 그림책 독자들의 끊김 없는 관심이 받쳐준다면, 이런 작가들이 이런 그림책들이 우리 그림책의 미래를 세계적으로 장밋빛으로 이끌 것이다.
김수영_아동문학연구자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동문학을 공부하고, 동대학원에서 〈강소천 연구―트라우마와 애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라깡임상정신분석협회에서 정신분석 임상가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시립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건국대학교, 협성대학교 등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했고 도서관, 학교, 서점 및 다양한 인문학 단체에서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다. 지은 책으로 《내 이름은 퀴마》, 《사랑해 언니 사랑해 동생》이 있다. 프로이트와 라캉으로 다양한 그림책과 동화를 분석하고 강의하며, 동화 창작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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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얼마 전 열린 제29회 독서문화상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한 이들을 만나본다. 지난 9월 1일 개최된 2023 대한민국 독서대전에서 제29회 독서문화상 시상식이 진행됐다. 독서문화상은 독서문화 확산과 진흥을 위해 노력한 이들을 발굴하고 격려해 책 읽는 사회 분위기를
도서관 이용자가 사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더라이브러리에서는 몇 년 전부터 사서들이 이용자 대상으로 직접 강연을 진행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충남도서관의 두 명의 사서를 만나보았다. 인문고전을 강연하는 ‘사서고생’ 윤소연 사서와 베스트셀러를 쉽고 재미있게 읽어주는 ‘책 읽어주는 사서’ 유재열 사서이다.충남도서관은 충남도청이 옮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