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거의 공짜에 가깝다.지인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무해한 대화 나누기, 흥미로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와 자기 전에 조금씩 읽기, 낯선 이의 플레이리스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눈에 띄는 나무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그날의 기분과 함께 간직하기, 오늘의 날씨를 살펴보기 위해 매일 아침 하늘을 올려다보기, 존경하
도서관에는 내가 읽지 않은 책이 있어서 좋다. 그것도 많이. 어떤 현안에 대해 아는 척하려다가도 그 책들을 떠올리면 절로 입이 다물어진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건 핑계일 수 있다. 점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차오른다. 매사에 젠체하며 살았던 일이 후회된다. 나의 경험과 지식은 손바닥만 한데 거기에 의지해 지금의 나와 이 세상을 판단하고
이렇게 따뜻한 11월이 있을까 싶을 정도더니 12월이 되자 기온이 뚝 떨어졌다. 계절은 순식간에 바뀌어 문득, 겨울이다. 무거운 외투를 걸치고 마산에 갔다. 80여 년 전 시인 백석이 걸어간 길을 따라 걸을 요량이었다. 그렇게 부둣가 어시장까지 이르렀다. 겨울 해는 이내 저물고 어둑신한 골목으로 짠물이 흘러갔다.오래 전 백석이 쓴 시를 떠올리니 어떤 마음
파도를 바라보는 일이 내게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지중해의 항구도시에서 머물던 어느 해 가을의 일이었다. ‘코스타 델 솔(태양의 해안)’이란 별명을 가진 피카소의 고향답게 늘 햇살이 작열하는 곳이었다. 컬러가 선명한 곳은 더없이 뜨거웠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그만큼 서늘했다.스페인어는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밖에 모르면서 그 도시에서 석 달
진주를 좋아한다. 10년이 넘게 쓰다 말다 하는 소설이 있는데, 글이 막힐 때마다 진주를 찾아간다. 그러다가 정이 들었다. 갈 때마다 비가 내린 덕분에 한적함을 마음껏 즐긴 진주성도 좋았고, 거울처럼 잔잔하고 은은하게 달빛을 비추던 진양호도 좋았다. 비 내려도 좋고 날 맑아도 좋으니 진주는 내게 언제라도 좋은 도시다.이번에는 태풍과 함께였다. 역대급이라고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 나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다. 내가 죽을 때 세상은 울겠지만 나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미국 인디언인 나바호족에 전해 내려온다는 이 말은 요즘 내가 가장 기대고 사는 말이다. 너무나 무더웠고, 또 너무나 많은 비가 내린 여름을 보내고 나니 기쁘게 살고 싶다, 가 아니라 기쁘게 죽을 수 있도록 살고 싶다, 는
일년에 한 번은 경주에 가는 편인데, 그 이유는 모두 능 때문이다. 능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무덤이라면 어쩐지 무서운데 능이라고 말하면 평온하고 부드럽다. 말을 닮아 능은 둥글고 초록이어서, 또 제각각 따로지만 함께 모여 ‘능들’이어서 좋다.매번 같은 능을 볼 때도 있지만, 예전에 미처 몰랐던 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