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의 기차역에서 한 사서가 수용소로 향하는 아이들에게 엽서 한 장씩을 나눠주고 있었다. 수신인에는 자신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소식을 전해 달라는 짧은 부탁을 함께 남겼다. 그 약속은 이후 300여 통이 넘는 편지가 되어 그녀에게 돌아왔다. 떠나야 했던 아이들제2차 세계대전의 전선이 태평양까지 넓어지던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고백하건대, 내 손은 생산적인 딴짓을 하기에 적합한 기량을 갖추고 있지 않다. 쓸데없이 길쭉하고 매끄럽지만, 그런 손에 보통 기대되곤 하는 섬세함 따위는 없다. 집중력이 좋지도 않은 까닭에 뜨개질이나 요리, 수공예처럼 깊은 몰입을 요구하는 취미도 가질 수 없다. 나는 나를 쉽게 투박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내가 가진 것 중 유일하게 촉을 세우고 있는 것은
연기는 오직 내 직관과 본능에 달려 있다삶의 반평생 연기를 배워온 한 사람으로서, 철저히 본능에 입각해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이러니함에 현기증을 느낄 때가 있다. 이건 반복 속에서 철저히 계산된 연기가 주는 감동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능 속 극한의 시도가 어째서 이리도 아름다운가 하는 질문에 가깝다. 여기, 한평생 연기를 배운 적
문서의 시간이 움직이는 방식 문서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다. 세계적인 기록 관리 및 아카이브 관련 전문 학술 단체 미국기록관리자협회(SAA, Society of American Archivists)에서는 공식 학술 용어 사전 사이트인 ‘기록학 용어 사전(Dictionary of Archives Terminol
9월이 되자 낮 기온이 떨어지고 눈에 띄게 일몰 시간이 빨라졌다. 지난봄부터 이때를 기다려왔다. 얼른 털실과 대바늘, 그리고 ‘꽈배기바늘’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뜨개는 한 계절을 앞서간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다가 지난겨울에는 때를 놓치고 말았다. 하루이틀 미루는 사이 덜컥 봄이 와버린 것이다. 하루에 몇 단씩 뜨는 것이 고작이다 보니 계절을 따라잡
맑은 밤하늘에 휘영청 둥근 보름달이 뜨면 괜스레 맘이 설레면서 벅차오른다. 그날이 정월대보름이나 한가위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이 달을 바라본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을 텐데, 누가 언제부터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습을 만들어냈을까? 수천 년 전 어느 밤, 메소포타미아의 들판에서 달을 바라보던 농부였을까? 아니면 중국의 시인이었을까? 혹은
잠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누군가에게 물은 적 있다. 그때 들었던 말이 강렬했다.“놀아. 그냥. 억지로 눈 붙이지 말고.”그래, 그렇지. 배고플 때 먹으면 되고, 졸릴 때 자면 되고, 써질 때 쓰면 된다.달아나는 걸 좇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먹고 자고 쓰게 될 것이다.시원하고 담백한 그 대답이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잠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생활 면
도서관에 대한 단서들도서관과 지도(atlas)가 서로 닮았다는 걸 알아챈 한 사람이 있다.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에 대한 이야기다. 바르부르크 문화학 도서관은 그의 프로젝트 ‘므네모시네 아틀라스’와 함께 사고의 기계로서의 아카이빙을 이야기한다. 바르부르크 도서관의 책들은 십진분류의 주제별 숫자나 저자명 순으로 배치되지 않았다. 대신 ‘좋은
2002년, 스웨덴 말뫼의 항구에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크레인을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배에 실려 멀어지는 크레인을 보면서 그들은 눈물을 흘렸다. 우리에게 ‘말뫼의 눈물’로 알려진 바로 그 이야기이다.말뫼에는 오랫동안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이 서 있었다. 150미터 높이의 크레인은 도시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눈에 띄었다. 일상은 물론이고 한 사람의 생을 이
책으로 하는 가장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놀이, ‘낙서’동네 어린이도서관에서 ‘책 제목 끝말잇기’, ‘책에서 나온 단어 맞히기’ 같은 놀이가 안내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쉽게도 우리 집 어린이들은 이런 놀이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집에서는 책의 다른 쓸모를 일찌감치 발견했다. 책을 가능한 한 높이 쌓아 올리는 놀이였다. 다행히 책을 펼쳐 그림을 따라